국어문학창고

영어공용화 논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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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용화 논쟁>

 

[]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과잉 민족주의에 반기

 

한국의 20세기는 민족주의 시대였다. 일제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시대 상황을 넘어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근대사 전개과정에서 민족주의는 국민적 자신감 회복과 에네르기의 결집에 가장 유효한 도구였다. 그러나 이 세기말, ‘지구제국의 시대에 민족주의는 더 이상 우리 사회를 이끄는 이념이 될 수 없다는 주장들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그 대표적 논객 중 하나인 소설가 복거일씨. 그가 내놓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 지성사간)는 모국어 문제를 중심으로 아직도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정 서적 공감대인 민족주의를 비판한 드문 지적 모험이다.

 

한국 사회처럼 민족주의가 모든 사회문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을 뒤틀리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흔히 자유주의 지식인이란 레테르가 따라다니는 복씨의 이 같은 진술은 민족이란 말만 붙으면 일단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는 시기를 살았던 이들에겐 상당한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복씨에 따르면 언어생활에서 쓸모 있는 말들을 특정 외국어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몰아낸다면 시민들에게 언어의 편식을 강요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쓰리 네다바이 나와바리 와이로 히야카시처럼 그에 딱 들어맞는 한국어가 없는 어휘들은 설령 일본어라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한국어와 함께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으로까지 발전한다. 영어는 이제 단지 앵글로색슨족만의 언어가 아니라 지구 제국의 언어다. 국제어인 영어를 쓰지 않음으로 해서 우리가 보는 손해나 비용은 너무 커서 이대로 가다간 다른 나라에 뒤떨어지는 게 필연이라는 것이다.

 

복씨는 자신의 지향점이 '열린 민족주의'라고 밝힌다. 그러나 그 '개방'도 어디까지나 '주체'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 여전히 유효한 이상, 그의 주장은 새로운 세기를 앞둔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반론] 남영신씨, '세계화를 위해 민족 버리자고?'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의 역할은 이제 끝난 것인가. 세기말, 세계화 열풍 속에서 민족주의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가 지식인 사회 일각에서 싹트고 있다. IMF 사태의 근본 원인이 따지고 보면 상대를 도외시한 채 자기세계에만 빠져 있던 맹목적 민족주의 사고에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족주의 비판이 최근 가장 감성적이고 극적으로 나타난 케이스가 소설가 복거일씨의 저서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간)이다.

 

요즘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우리의 의식 구조도 상당히 다양해져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주장들이 제기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최근 간행된 소설가 복거일씨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에 실려 있는 주장들은 그런 부류의 하나로 보고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심각한 독이 들어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부분에서는 '민족주의를 버릴 것'을 주장하고 있고, 뒷부분에서는 '민족어를 버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지구 제국' 시대에는 민족주의나 민족어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인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이는 대단히 '용감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는 독도 영유권 분쟁이나 동해 표기 등의 문제가 터졌을 때 우리 사회에 나타났던 여러 부정적인 민족주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이제는 민족주의를 버릴 때가 되었다고 충고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만 따진다 하더라도 둘 사이에서 약한 나라는, 그래서 둘 사이의 분쟁에서 훨씬 손해를 크게 입을 나라는 우리다. 아쉬운 쪽은 일본이 아니다.".

 

그가 우리 사회에 민족주의를 버릴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약소국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강대국의 민족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약소국의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국제 사회에 호소하고 국제 기구에 하소연하는 것인가? 그가 주장한 우리 사회의 감정적인 민족주의의 위험성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그의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민족주의 죽이기'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둘째 주장은 '민족어를 버리고 영어를 모국어로 삼자'는 것이다. 그가 영어를 모국어로 삼자고 주장하는 근거는 놀랍게도 단순하다. 지금은 미국을 지도국으로 하는 '지구 제국' 시대이고 이 시대에 는 영어가 국제어로 자리잡고 있으므로 우리가 '지구 제국' 중심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영어를 처음부터 모국어로 배우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은 민족주의자들의 맹렬한 반대로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여 국어와 함께 사용하게 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구 제국'이 어떤 나라인지 그가 밝히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으나 공용어인 영어만 잘하면 그 나라의 중심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도 천박할 뿐만 아니라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으로 보는 생각도 단순하고 위험하기는 그가 배척하고 있는 민족주의자들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영어를 국제어로 보고 국어까지 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가 어떻게 하여 국어 속에 들어와 있는 '쓰리, 와이로, 히야카시' 같은 일본어 찌꺼기를 되살려 쓰자고 주장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일본어는 영어와 같은 반열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국어는 아무렇게나 의사소통을 쉽게 하는 방향으로 사용하면 되는 하급언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1천년 전에 자기 정체성을 잃고 국어를 중국어의 하위 언어로 전락시켜 우리 문화와 민족의 자주성을 송두리째 짓뭉개버렸던 신라의 지식인이 21세기를 앞두고 환생한 것이 아닌지 착각하게 한다.

<'국어 천년의 실패와 성공' 저자>

 

[논쟁] 열린 민족주의를 찾아서.....복거일

이 글은 졸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비판한 남영신씨의 '세계화 위해 민족 버리자고?'에 답하는 글이다. 남씨의 글을 읽으니, '민족주의와 민족어는 너무 예민한 주제들이어서 논의가 차분히 진행되기 어렵다는 사정'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민족주의와 민족어에 관한 내 생각은 지금 인류 사회들이 느슨하게나마 하나의 제국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 이제 이 세상에서 국경 안에서 끝나는 일은 드물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또는 환경 문제 등. 이번 외환 위기가 우리에게 아프게 일러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반영해서, 영어가 실질적 국제어로 자리 잡았다.

놀랍지 않게도, 이제 민족주의는 점점 현실에서 유리되고 비적응적으로 되어간다. 특히 다른 민족들과 민족국가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닫힌 민족주의'를 지닌 사람들은 둘레에 괴로움을 끼 칠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해를 입힌다.

 

민족주의적 열정은 불이다. 그것을 잘 다스리면, 사회에 활력이 넘치지만, 잘못 다스리면, 많은 것들을 잃는다. 우리는 민족주의적 열정 을 잘 다스려서 '열린 민족주의'로 다듬어내야 할 것이다. 남씨의 주장 과는 달리, 나는 '민족주의를 버릴 때가 되었다'고 한 적이 없다. 그렇게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민족주의에 대해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의 논지는, 민족주의를 추구함에 있어서, 우리가 이해득실을 냉정하게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해 전 일본의 순시선이 독도 근해에 나타났을 때, 우리 대통령이 군함을 보내 시위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국내 정치를 겨냥한 과잉 대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외교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 우리가 외환 위기를 맞자, 바로 그 대통령은 서둘러 경제 부총리를 일본에 보내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돈을 빌리지 못했다. 나는 이런 공허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다.

 

국제어와 민족어에 관한 내 주장을 '민족어를 버리고 영어를 모국어로 삼자'로 요약한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국제어로 자리잡은 영어를 모국어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입는 손해가 이미 너무 크고 앞으로는 더욱 커질 터이므로, 경제 논리로 사람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삼도록 만든다는 것이 내 주장의 바탕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는 생존에 결정적인 기술이 되었고, 모두 영어를 배우는 데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아직 모국어도 배우지 못한 아이를 영어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부터 이어폰을 끼고 영어 회화를 배우는 중년들에 이르기까지. 안타깝게도, 그런 투자는 효율이 아주 낮다. 그래서 나는 일단 영어를 우리말과 함께 공용어로 삼을 것을 제안한 것이다.

 

나는 독자들에게 물었다. '만일 막 태어난 당신의 자식에게 영어와 조선어 가운데 하나를 모국어로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느 것을 권하겠는가? 한쪽엔 영어를 자연스럽게 써서 세상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일상과 직장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고 영어로 구체화된 많은 문화적 유산들과 첨단 정보들을 쉽게 얻는 삶이 있다. 다른 쪽엔 조상들이 써온 조선어를 계속 쓰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영어를 쓰는 것이 힘들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고 평생 갖가지 불이익을 보고 분초를 다투는 정보들을 뒤늦게 오역이 많은 번역으로 얻어서, 그것도 이용 가능한 정보들의 몇십만분의 일이나 몇백만분의 일만 얻어서, 세상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삶이 있다. 당신은 과연 어떤 삶을 자식에게 권하겠는가? 아예 그에게서 선택권을 빼앗겠는가?'

< 소설가 복거일>

 

[논쟁]국어를 박물관 언어로 만들자니...박광민

 

복거일(卜鉅一)씨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비판한 남영신씨 글과 이에 답한 복거일씨 글을 읽었다. 결론적 느낌부터 말한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강대국도 드 러내놓고는 입에 담지 않을, 황당한 영어공용어화 주장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복거일씨는 '지금 인류 사회들이 느슨하게나마 하나의 제국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고 했는데 복거일씨가 말한 '하나의 제국'은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만 지선(至善)이 되는 조지 오웰의 'Big brother'가 지배하는 일국(一國) 체제인가. 복씨는 또 '민족주의는 점점 현실에서 유리(遊離)되고 비적응적으로 되어간다'고 했는데 우리가 민족주의를 버리면 서구인도 유색인종에 대한 우월감이나 민족주의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영어는 분명 국제적 공용어(共用語), 영어를 공부해 국제 사회에 일원이 되는 것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현재 세계의 언어별 사용 인구는 영어권 497백만, 스페인어권 49백만, 프랑스어권 127백만, 독일어권 126백만, 포르투갈어권 187백만(THE WORLD ALMANAC 1998) 정도이고, 한자(漢字) 사용권은 중국을 포함 17억 정도라고 한다. 복거일씨가 자존심 강한 프랑스나 독일, 세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권을 젖혀두고 무슨 근거로 '영어의 공용어화 (公用語化)'가 대세라고 했는지 모르겠으나, 대세가 기울면 옳은 일이든 옳지 않은 일이든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가.

 

대한민국 어린이에게 영어를 잘 가르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복씨 말대로, '열린 민족주의'라는 교언(巧言)으로 국민을 속이고 민족 언어를 복거일씨가 조어(造語) 해낸 '박물관 언어'로 팔아먹은 후 영어를 사용하는 강대국의 '한 주()'가 되는 것이다. 일제(日帝)의 압제 속에서도 조상들이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언어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고 국어가 '박물관 언어'로 남은 후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강대국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대한민국을 자치주(自治州) 정도로 병탄(倂呑)할 수도 있을 게다.

 

필자는 복거일씨의, "당신은 과연 어떤 삶을 자식에게 권하겠는가? 아예 그에게서 선택권을 빼앗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졸고를 끝맺고자 한다. "국어를 지키는 것이 조금 불편하고 손해보는 일이라도 옳은 길을 갈 것이며, 그런 연후에 영어든 프랑스어든 스페인어든 자유롭게 배울 것이며, 복거일씨의 영어 공용어화론이나 국어의 박물관언어화라는 패역(悖逆)스런 논리에는 귀기울이지 말라.

<박광민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

 

[논쟁] "영어 능동적 도입해야"-공용어주장동조...함재봉

배타적 민족주의는 열등의식의 발로이다. 만일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이 올바른 것, 즉 보편타당한 것이라면 꼭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내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보편타당한 것이라는 자신이 없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문화교류에 있어서도 궁극적인 기준은 객관적인 옳고 그름일 수밖에 없다.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보편성이란 곧 '강자의 것'이라는 냉소적인 주장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강대국이나 할 수 있다.

 

강대국에 둘러 싸여있는 약소 민족국가가 생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인 가치와 원칙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뿐이다.

 

실제로 한민족은 이러한 원칙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생존과 번영을 기약해왔다. 우리는 예로부터 내려오면서 보편적인 사상과 철학,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는 불교를, 조선조에서는 유교를, 근세에 들어와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가장 보편적이고 수준 높은 문명을 적극 수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사상과 제도는 특정 민족과 사회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토착화 과정을 거치면서 굴절되고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래문명과 문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문화를 살찌웠다는 역설 아닌 역설이 성립된다. 불교와 유교는 '외래' 문명이지만 우리 특유의 모습으로 일구어 왔다. 팔만대장경과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한문, 즉 중국 글자로 되어 있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보물들이다. 그러면서도 한문이라는 국제어로 쓰여졌기에 보편성도 확보하고 있다.

 

민족문화는 결코 불변의 고정태가 아니다. 늘 바뀌고 변화하고 진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얘기는 결코 무국적의 보편주의자나 자유주의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우리의 문화', '우리 민족'의 번영과 미래를 기약해보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얘기들이다. 복거일씨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민족주의자'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어떻게 우리에게 맞게 수용하는가이다. 복거일씨는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새로운 사상과 체제를 보다 빠르고 올바르게 수 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를 보다 잘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역설이 있고 동시에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사상적 도전이 있다.

 

그렇다면 영어를 국어와 함께 우리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 그것이 진정 한민족의 번영을 보장하는 방법이라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과거에 한자를 도입하였듯이 영어를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도입한다면 그 결과 생겨나는 새로운 문화의 변형은 역시 한국의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어와 한글, 한자와의 지속적이고 균형잡힌 사용과 발전을 전제로 한 영어의 도입은 한국인의 인식의 지평을 다시 한번 세계적인 차원으로 넓혀주는 기폭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 표현된 한국문화는 그만큼 보편화될 수 있다.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 고유의 사상과 미풍양속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볼 때 영어라는 국제어의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영어 공용어 채택 여부는 철저하게 민족과 국가의 실익 차원에서 따져야 할 문제이지 반민족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연세대정치외교학과 교수>

 

[여론조사] 영어공용어화 여론조사 찬성 44-반대 55%

소설가 복거일씨가 저서 '국제어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간)에서 제기한 '영어 공용어화' 주장을 둘러싸고 조선일보 문화면에서 전개되고 있는 민족주의 논쟁과 관련, 서울 중앙병원은 10일 의사와 직원 114명을 대상으로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원내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44.7%51명이 영어공용어화에 찬성했으며, 55.3%63명이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찬성 이유로 세계화-국제화에 필수, 세계공용어, 영어생활화, 세계 변화에의 적응, 국제 경쟁력 제고, 세계화된 생활과 세계화된 문화도 만끽하는 삶 영위, 국제 미아화 우려, 우리 언어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비판에 따른 진정한 발전 기대, 우리 것에 대한 우물 안 개구리식 판단 지양 등을 들었다. 또 반대 이유로는 민족주체성 상실, 언어와 문화의 식민지화, 한글 퇴조 우려, 고유문자 말살, 문화 사대주의, 영어를 하는 자와 못하는 자간의 단절, 국력 낭비, 필요하지만 시기 상조 등을 들었다.

 

[신문]

우선 경제특구에 영어를 공용하게 했을 때 득실은 무엇일까? 이는 제주도특별법 추진 때 제기된 바, 외국인들이 누릴 편의와 투자효과에 견줘 한국인들이 치를 폐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당장 민족 정체성 혼란 언어 혼란 민족문화 파괴 국어 사랑 언어 계층 발생 등을 꼽는다. 특히 그 폐해가 특구에 한정되지 않고 곧장 온나라로 번진다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경제특구에 한해 영어를 공용한다는 것의 허술함으로 지적된다. 특구 안에서 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법령, 교과서, 판결문 등 공문서를 두 언어로 작성해야 하며, 거래도, 강의도, 연설도 이중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선은 그곳만이라도 이런 정도는 준비를 해야 한다. 특구를 독립국가로 따로 세우지 않는 한 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이득도 없다는 이야기다.

<2002. 4. 7()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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