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소설사전 / 꺼삐딴 리 / 전광용 단편 풍자소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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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술실에서 나온 이인국 박사는 응접실 소파에 파묻히듯이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그는 백금 무테 안경을 벗어들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등골에 축축이 밴 땀이 잦아들어 감에 따라 피로가 스며 왔다. 두 시간 이십 분의 집도(執刀). 위장 속의 균종(菌腫) 적출. 환자는 아직 혼수상태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수술을 끝낸 찰나 스쳐가는 육감, 그것은 성공 여부의 적중률을 암시하는 계시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뒷맛이 꺼림칙하다.

 

그는 항생질 의약품이 그다지 발달되지 않았던 일제 시대부터 개복(開腹) 수술에 최단 시간의 기록을 세웠던 것을 회상해 본다.

 

맹장염이나 포경(包莖)수술, 그 정도의 것은 약과다. 젊은 의사들에게 맡겨도 대개 원장의 직접 집도를 조건부로 입원시킨다. 그는 그것을 자랑으로 삼아 왔고, 스스로 집도하는 쾌감마저 느꼈었다.

 

그의 병원 부근은 거의 한 집 건너 병원이랄 수 있을 정도로 밀집한 지대다. 이름 없는 신설병원 같은 것은 숫제 비장날 시골 전방처럼 한산한 속에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인국 박사는 일류 대학병원에서까지 손을 쓰지 못하여 밀려오는 급환자들 틈에 끼여 환자의 감별에는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것은 마치 여관 보이가 현관으로 들어서는 손님의 옷차림을 훑어보고 그 급에 맞는 방을 순간적으로 결정하거나 즉석에서 서슴지 않고 거절하는 경우와 흡사한 것이라고나 할까.

 

이인국 박사의 병원은 두 가지의 전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병원 안이 먼지 하나도 없이 정결하다는 것과 치료비가 여느 병원의 갑절이나 비싸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환자의 초진에서는 병에 앞서 우선 그 부담 능력을 감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신통치 않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무슨 핑계를 대든 그것도 자기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간호원더러 따돌리게 하는 것이다. (중략)

 

2.

이인국 박사는 양복 조끼 호주머니에서 십팔금 회중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두 시 사십 분!

 

미국 대사관 브라운 씨와의 약속 시간은 이십 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시계에도 몇 가닥의 유서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인국 박사는 시계를 볼 때마다 참말 ‘기적’임에 틀림없었던 사태를 연상하게 된다.

 

왕진 가방과 함께 38선을 넘어온 피란 유물의 하나인 시계. 가방은 미군 의사에게서 얻은 새것으로 갈아매어 흔적도 없게 된 지금, 시계는 목숨을 걸고 삶의 도피행을 같이한 유일품이요, 어찌 보면 인생의 반려(伴侶)이기도 한 것이다.

 

밤에 잘 때에도 그는 시계를 머리맡에 풀어 놓거나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버려두지 않는다. 반드시 풀어서 등기 서류, 저금 통장 등이 들어 있는 비상용 캐비넷 속에 넣고야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또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다. 이 시계는 제국 대학을 졸업할 때 받은 영예로운 수상품이다. 뒤쪽에는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발단부)

 

· 미국 혼반(婚班) ~ : 혼반 - 서로 결혼할 수 있는 지체

· 다다미방 : 일본식 돗자리를 깐 방

· 훈도시 : 일본식 남자 속옷

· 유까다 : 목욕을 한 뒤 또는 여름에 입는 무명 홑옷

· 당꾸 : 탱크

· 독또오루 : 닥터(doctor)의 러시아 발음

· 로스케 : 러시아인

· 노서아 : 러시아

· 다찌기리 : 스크랩

· 보국대 :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갔던 노무대

· 닥싸귀 : 도꼬마리 혹은 까치발, 도깨비바늘

* 감상 : 일제 시대 이인국은 자식들을 일본인 학교에 보내어 일본어만 쓰게 하여 철저한 친일분 자로 지나다가, 광복이 되어 북쪽을 소련군이 점령하게 되자 러시아어와 자신의 의술로 소련 군 장교에게 환심을 사고, 아들을 소련으로 유학 보낸다. 또한 월남해서는 미 대사관에 붙어 아부하고 친미주의자가 된다. 작가는 이인국 박사의 이러한 인물됨을 ‘직접적 제시’와 ‘간접적 제시’ 방법을 적절히 섞어 잘 보여 주고 있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1940~50년대, 북한과 남한

* 구성 : 이 작품의 구성은 이인국 박사가 브라운씨를 만나러 가는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 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쓴 소설임. 10개의 장절 중 첫째와 마지막이 현재이며 가운데 8개 장절 중 7개는 과거에 대한 회상이며 5번째 장절에 현재가 잠시 나타난다. 따라서 <타임 몽타쥬 (time montage)>형식을 취한 구성

( 사건 구성 : 일제 시대 󰠜󰠜󰋼 소련군 진주 시대 󰠜󰠜󰋼 월남 이후의 시대 )

- ‘회중시계’의 의미

: 단순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평면적 전개 방식 대신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더 과거로, 과 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역행적 전개를 하는데 동원된 도구이다.

 

* 등장인물

· 이인국 : 상업적인 외과 의사로서, 인술(仁術)보다는 권력에 기생하고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하 는 이기주의자이며,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해 가는 변신술에 능한 (카멜레온을 닮은) 기 회주의자(機會主義者)로서 전형적 인물

· 다른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의 생애를 그려내는 데 필요한 소도구 역할만 한다. 즉, 철저하게 한 사람의 인생 역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나미(일본식-나미꼬) : 미국에 가 있는 딸. 영문학 전공. 동양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교수 와 결혼하려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냄

- 아내(혜숙) : 간호원 경력이 있는 후처. 거제도 수용소에 있을 때 죽었음

- 아들(원식) : 광복 후 스텐코프 소좌의 배경으로 요직에 있는 당 간부의 추천을 받아 소 련 유학을 갔으나 생사를 알 수 없음

- 혜숙 : 서울에서 만나 후처로 들어온 여인. 20년의 연령 차가 있음. 사이에 돌 지난 어린 것이 있음

- 스텐코프 : 이인국이 왼쪽 뺨에 있는 혹을 제거해준 소련군 장교

- 브라운 : 미 대사관에 근무하며 이인국을 돕는 자

* 주제 : 시류와 타협하면서 자신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인간형에 대한 비판

* 출전 : [사상계](1962), 동인문학상 수상작(1962년)

 1) 이인국 박사의 사람 됨됨이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은?

 환자를 돈으로 계산하는 태도와 먼지 하나 허락하지 않는 결벽성은 자신의 부도덕성에 대한 <반작용>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2) 이 작품에는 심각한 갈등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심각한 갈등은 없다. 시류와 타협하는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단편 소설로 보여준 한국 근·현대사 비판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 단편 [프로할징]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학적인 가치에서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 어떤 모양으로 - 마음과 몸 - 사람은 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가 그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내용과 주제는 다르지만 전광용의 이 작품이 남기는 여운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주인공 이인국을 생각하면 ‘잘 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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