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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사전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소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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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문예사조이자 중요한 사회현상 중 하나라고 할만큼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고 있다. 거기에 부응해 최근 국내문단에서도 페미니즘 소설들이 많이 쓰여지고 있고 또 그와같은 시류를 타고 영화화된 것들도 여러편이 있다. 예컨대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나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화제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아마도 여성이 남성을 납치해 감금하는 존 파울스의 「콜렉터」식 설정 때문일 것이다. 「콜렉터」에서는 나비채집이 취미인 한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을 납치해 자기 집 지하실에 가두어 놓는데 반해 「나는 소망한다…」에서는 한 페미니스트 여자가 남자를 납치해 자기 별장에 감금한다. 후자가 전자와 다른 점은 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채집해 놓고 소유감을 즐기는데 반해 후자는 정 반대의 목적으로 남자를 감금해 놓고 고통을 가한다는 점이다.

 

「나는 소망한다…」는 가장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한다. 즉 납치와 감금과 폭력을 통해 남성에게 여성의 고통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납치되어온 남자는 바로 그러한 반대의 경험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또는 모든 남자들이) 여성에게 행사해 온 감금과 억압과 폭력의 부당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같은 것은 필연적으로 남성들의 잘못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또 하나의 억압체제와 폭력구조를 수반하게 된다. 바로 그같은 모순을 이 작품은 여자 주인공과 그녀의 남자 조수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즉 여자는 자신이 증오하고 응징하고 있는 남성들의 억압과 폭력을 자신의 조수에게 똑같이 행사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의 심층구조는 훨씬 더 복합적이다. 예컨대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반항하던 남자의 체념과 순응이다. 처음에는 부당함을 항의하던 남자는 반복되는 폭력과 회유 속에서― 마치 폭력가정의 여자들처럼― 결국은 체제순응적이 된다. 바로 그 순응(제도화)과정을 여자는 은밀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감금된 남자가 「텍스트」가 되고, 이 모든 과정이 저자의 「글쓰기」와 연결되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이 작품에서 과연 여자는 내내 자신의 「텍스트」를 관찰하며 글을 써 나가고 있다.

 

장길수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는 원작의 그러한 주제들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비교적 잘 살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작품 초반에 삽입된 여자들의 증언이나, 자막처리된 강민주(최진실 扮)의 글쓰기 내용, 그리고 신속한 장면 전환 등의 편집기술이 돋보였고, 자칫하면 지루할 수도 있는 상황을 제법 흥미있게 이끌어 나간 점도 장점으로 느껴졌다. 납치된 남자 백승하(故 임성민 扮)의 이미지도 배역과 잘 맞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모든 한국영화들의 문제점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어둡고 세련되지 못한 색상과 음향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영화처럼 별로 제작비가 필요없는 영화라면, 색상과 음향에 보다 더 과감한 투자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영화의 미래는 인건비가 아닌 시설비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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