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1- 김용택
by 송화은율섬진강 1- 김용택
< 감상의 길잡이 1 >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은 우리 시대의 가장 소중한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 세계는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는 농촌, 풀 한 포기, 어머니의 머릿기름 냄새 등에서 출발점을 이룬다. 그가 쏟아 넣는 애정의 대상은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주변 사람들이거나 지나치기 쉬운 주위의 흔한 사물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도시인들에게는 더욱 소중한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나 그의 시가 갖는 소중함은 농촌에 대한 친근감 넘치는 섬세한 묘사가 단지 현상 파악에 그치지 않고, 매서운 비판의 시선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리고도 투명한 정서 속에 숨어 있는 당당함이 그의 시를 그의 시로 존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농촌 실정을 왜곡하는 도시의 위정자나 정책 당국에 대한 강한 외침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로부터 비롯된다. 그와 함께 그의 시에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는 공동체에 대한 소박한 소망이 깔려 있다. 그 소박함이야말로 화려한 논리가 난무하고 가치가 왜곡된 현실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 줄 뿐 아니라,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고려할 때, 그의 시는 더욱 존재 가치를 얻게 된다. 거기에다 전라도 사투리로 진행되는 가사체, 타령조, 판소리체 가락과 형식은 그의 시를 옹골찬 비판의 맛이 잘 드러나게 하는 동시에, 농촌 공동체적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킨다.
김용택의 등단작이자, 첫 시집이면서 대표 시집인 섬진강의 표제시이기도 한 이 시는 오늘의 김용택을 있게 한 작품으로, 같은 제목의 연작 시편이 30편 가까이 된다. 이 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용택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섬진강같이 맑고 투명하면서도 진한 서정성이다. 이 서정성은 섬진강 강변 마을의 아름답고 서럽고 한맺힌 삶의 실상을 어루만져 끌어안는 그의 기막힌 언어 구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섬진강을 어머니의 젖줄로 하여 질박한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남도 사람들의 가슴 속 상처가 된 응어리진 한과 설움을 보여 주는 한편, 그들의 설움을 위무해 주는 포용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전라도 실핏줄 같은 /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는 섬진강은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에 피어난 ‘토끼풀꽃’과 ‘자운영꽃’같이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온갖 서러운 ‘어둠을 끌어다 죽이’는 젖줄로 흐를 뿐 아니라, ‘그을린 이마’로 제시된 남도의 깊은 한을 달래며 ‘훤하게 꽃등도 달아주’기까지 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섬진강은 지역에 따라서는 영산강을 가까이 불러내기도 하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한편, 지리산과 무등산 사이를 굽이치며 흘러가면서 남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두 산을 교통, 결합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어느 한구석도 빼놓지 않고 남도 전체를 푸근히 얼싸안고 흘러가는 섬진강이기에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로 제시된 위정자 내지 정책 당국이 아무리 남도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 해도 그들은 결코 위축되거나 굴복되지 않을 것임을 몇 번씩이나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시는 남도의 지극한 한과 설움의 세계로까지 심화, 확대되어 마침내 폭넓은 민중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자연을 바라볼 때면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이다. 농촌에서 자라난 사람에게 강한 이러한 정서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정마저 느끼게 한다. 언제라도 달려가 보고픈 곳, 언제까지라도 지친 나를 감싸안아 줄 곳으로 자연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은 그러한 보편적인 공감을 갖게 할뿐만 아니라, 시인에게는 민중의 굽힐 줄 모르는 생명력으로 다가서게 된다. 전체 시의 전개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바라본 풍경들이 등장하면서 이루어진다. 2행부터 11행까지 전라도의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모이는 섬진강의 강변에 작은 들꽃과 풀들이 어울려 있는 모습이 나온다. 섬진강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가는 물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마치 민중 전체가 힘없는 개개인이 모여 커다란 힘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섬진강의 저력이라면 강변의 식물들은 농촌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쌀밥, 숯불에 비유되는 꽃과 풀들은 섬진강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들은 농민의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비록 소박하지만 꽃등과 같은 은은한 밝은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힘을 갖기도 한다.
12행부터 마지막 행으로 가면서 시에는 힘이 넘치면서 호탕한 기세가 펼쳐진다. 영산강, 지리산, 무등산의 주변을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기세는 몇 놈씩이고 달려들어 퍼낸다 하더라고 결코 마르지 않을 당당함을 보인다. 시인의 이 말에 껄껄대며 웃는 지리산과 훤한 이마로 고갯짓하는 무등산이 그럴 것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산과 강이 어우러지고 있는 것처럼 자연의 힘찬 생명력이 한데 어우러지는 장관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력은 민중의 생명력과 다름없으며 애비 없는 후레자식 같은 세력이 위협하더라도 그 건강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해설: 조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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