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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雪國) /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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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雪國) /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지방의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 나가자,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진 듯했다. 신호소(信號所)에 기차가 멎었다.

건너편 좌석에서 처녀 하나가 일어나 이쪽으로 와서 시마무라(島村) 앞의 유리 창문을 열었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어 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밖으로 내밀고는 멀리 외치듯이,

"역장니임, 역장니임." 했다.

등불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고 온 남자는 코 위까지 목도리를 감았고, 양쪽 귀에는 모자의 털가죽을 드리우고 있었다.

벌써 그런 추위인가 하고 시마무라가 바깥을 내다보니, 철도 관사인 듯한 바라크들이 산기슭에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을 뿐, 하얀 눈은 거기까지 이르기 전에 어둠에 삼켜지고 있었다.

"역장님, 저예요. 안녕하세요?"

"아니, 요오코(葉子)아냐. 돌아오는 길인가? 또 날씨가 추워졌어."

"이번엔 동생이 여기서 근무하게 돼서 역장님 신세를 지게 됐군요."

"여긴 쓸쓸한 곳이라서 곧 싫증이 날 텐데, 젊은 사람이 안됐다니까."

"아직 어린애니까 역장님께서 잘 지도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걱정 말아요, 일 잘 하고 있으니까. 앞으론 바빠질거야. 작년 겨울엔 눈이 굉장했지. 곧잘 눈사태가 나서 기차가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 마을에서는 밥을 해 대느라 바빴었지."

"역장님은 옷을 꽤 많이 입으신 것 같네요. 동생 편지에는 아직 조끼도 안 입은 것처럼 씌어 있던데."

"난 옷을 네 벌이나 껴 입었어. 젊은이들은 추우면 술만 마셔 댄단 말이야. 그래 가지고 저기에 쓰러져서 빈둥거리고 있기 일쑤지. 감기가 들어서 말이야."

그러면서 역장은 손에 든 등불로 관사쪽을 비추어 보였다.

"동생도 술을 마시나요?"

"아니."

"역장님도, 벌써 돌아가시려구요?"

"다쳐서 병원에 다니고 있는 중이거든."

"어머나, 그거 안됐네요."

화복(和服)에다 외투를 걸친 역장은 추위 때문에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싶은 듯 돌아서면서 말했다.

"그럼, 조심해 가요."

"역장님, 동생은 지금 나와 있지 않나요?" 하고 요오코는 눈 위를 이리저리 살피고 나서 말했다.

"역장님, 동생을 좀 잘 돌봐 주세요. 부탁이에요."

슬플이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높은 울림 그대로 밤의 눈 속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올 것만 같았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몸을 창 안으로 들여 놓지 않았다. 그리고 선로 아래쪽을 걷고 있는 역장에게 다시 가까워지자 소리쳤다.

"역장님, 이번 휴일에는 집에 다니러 오라고 동생한테 좀 전해 주세요."

"알았어." 하고 역장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요오코는 창문을 닫고, 붉어진 빰에 두 손을 갖다 댔다.

러셀을 세 대나 갖추어 놓고, 눈을 기다리는 국경 지방의 산이었다. 터널의 남북으로 전력에 의한 눈사태 통보선(通報線)이 통하고 있었다. 제설(除雪) 인부 연인원 오천 명과 함께 연 이천 명의 소방대 청년단까지 이미 출동의 수배가 되어 있었다.

그러한, 곧 눈에 묻히게 될 철도 신호소에 요오코라는 처녀의 동생이 이번 겨울부터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시마무라는 한층 더 그녀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여기서 '처녀'라고 한 것은 시마무라에게 그렇게 보였기 때문일 뿐이지 동행인 남자가 그녀와 어떤 관계가 되는건지, 물론 시마무라로서는 알 턱이 없었다. 두 사람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부부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남자는 분명히 환자였다. 환자를 상대하게 되면 절로 남녀 간의 거리가 없어지고, 정성껏 시중을 들수록 부부처럼 보이는 법이다. 또한, 자기보다 연상인 남자를 돌보는 여자의 어딘지 모르게 어리면서도 어머니다운 태도는 얼른 보면 마치 부부처럼 느껴진다.

시마무라는 그녀 하나만을 따로 떼어서, 그 모습을 주는 느낌만으로 제멋대로 처녀일 것이라고 단정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처녀를 좀 색다른 눈으로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감상적인 것이 깃들어져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벌써 세 시간 전의 일인데, 시마무라는 너무 심심하고 지겨워서 왼손 집게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가만히 바라보며,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부터 만나러 가는 여자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똑똑히 떠올리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흐릿하게 흐려지는 듯 기억은 덧없는데도,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촉감에 지금도 젖어 있어서 자기를 먼 곳의 그 여자에게로 이끌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코로 가져 가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하다가 무심히 그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긋자, 거기에 웬 여자의 한쪽 눈이 뚜렷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먼 곳에 가 있었기 때문일 뿐이고,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비친 것이었다. 바깥엔 어둠이 내려져 있고, 기차 안은 불이 켜져 있다. 그래서 창유리가 거울이 된다. 그렇지만 스팀의 온기 때문에 유리가 온통 수증기에 젖어 있어서 손가락으로 닦을 때까지 그 거울은 없었던 것이다.

처녀의 한쪽 눈은 이상할이만큼 아름다웠지만, 시마무라는 얼굴을 창에 대고, 별안간 저녁 경치가 보고 싶은 듯한 그런 여수(旅愁)에 젖은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유리를 문질렀다.

처녀는 가슴을 약간 기울여서 앞에 누워 있는 남자를 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 점으로 보나, 약간 위엄이 있어 보이는 그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 점으로 보아 매우 진지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창쪽을 베개삼아 누워서 처녀의 옆에 구부린 다리를 올려 놓고 있었다. 삼등차였다. 시마무라의 바로 옆자리가 아니라, 하나앞의 건너편 좌석이었기 때문에 옆으로 누워 있는 남자의 얼굴은 귀 언저리밖에 거울에 비치질 않았다.

마침 처녀는 시마무라와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는 셈이어서 똑바로 보려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기차에 올랐을 때 어쩐지 시원하게 찌르는 듯한 처녀의 아름다움에 놀라서 눈을 내리까는 순간, 처녀의 손을 꼭 잡은 남자의 파리하면서도 누르스름한 손이 보였기 때문에 시마무라는 다시 그 쪽을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남자의 안색은 그저 처녀의 가슴 언저리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듯이 차분해 보였다. 약한 체력은 약한 대로 어떤 감미로운 조화 같은 것을 이루고 있었다. 목도리를 베개로 깔고는 그 한쪽 자락을 코 밑까지 끌어올려 입을 꼭 덮고, 그리고 또 위로 드러난 뺨마저 싸고 있어 일종의 복면을 한 것 같은 모습인데, 느슨해졌다가는 코에 덮여지곤 한다. 남자가 눈을 끔벅거릴까 말까 하는 동안에 처녀는 상냥한 손놀림으로 그것을 바로잡아 주고 있었다. 보고 있는 시마무라가 신경이 쓰일 정도로 몇 번이나 똑같은 짓을 두 사람은 무심히 되풀이하고 있다. 또, 남자의 발을 덮은 외투 자락이 이따금 벌어져서 아래로 처진다. 그것도 처녀는 곧 알아차리고 고쳐 주고 있었다. 이런 동작이 참으로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해서 거리라는 것을 잊으면서, 두 사람은 끝없이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시마무라는 슬픈 것을 보고 있는 듯한 괴로움은 없고, 꿈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묘한 거울 속의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거울 밑바닥에는 저녁 풍경이 흐르고 있어서, 말하자면 비치는 것과 비춰 주는 거울이 영화의 이중 영상처럼 움직이는 것이었다. 등장 인물과 배경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더구나 인물은 투명한 덧없음으로, 풍경은 저녁 어둠의 몽롱한 흐름으로, 그 두 가지가 묘하게 융합되어 이 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에 들이나 산에 켜진 등불이 비쳤을 때는, 시마무라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렸을 정도였다.

먼 산 위의 하늘에 아직 저녁놀의 여운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먼 곳까지 물건의 형체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빛깔은 이미 지워져 버려서, 아무리 가도 평범한 들과 산의 모습이 한결 평범하게 보일 뿐, 아무것도 특별히 주의를 끌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뭔가 멍한 것 같은 커다란 감정의 흐름이었다. 물론, 그것은 처녀의 얼굴이 그 속에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모습이 비치는 부분만은 창밖이 보이질 않지만, 처녀의 윤곽 언저리를 끊임없이 저녁 풍경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처녀의 얼굴도 투명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정말로 투명한지 어떤지는, 얼굴의 뒤쪽을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저녁 풍경이 얼굴의 표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착각이 되어, 도무지 확인할 틈을 잡을 수가 없었다.

기차 안도 그다지 밝지는 않았고, 창의 유리도 정말 거울처럼 선명하지도 않았다. 반사가 없었다. 그래서 시마무라는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에 거울이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 저녁 풍경의 흐름 속에 처녀가 떠 있는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때 그녀의 얼굴 가운데에 등불이 켜진 것이다. 이 거울의 영상은 창 밖의 불빛을 막을 만한 힘은 없었다. 불빛 역시 영상을 지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불빛은 그녀의 얼굴 속을 흘러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빛나게 하지도 않았다. 차갑고 먼 빛이었다. 조그마한 눈동자의 언저리를 어슴푸레하게 밝히면서 처녀의 눈과 불빛이 겹쳐진 순간, 그녀의 눈은 저녁 어둠의 물결 위에 뜬, 요염하고도 아름다운 야광충(夜光蟲)이었다.

이런 식으로 자기가 남의 눈에 비치고 있다는 것을 요오코는 알 턱이 없었다. 그는 단지 병자에게만 정신이 쏠리고 있었지만, 가령 시마무라 쪽을 돌아다보았다 하더라도 유리창에 비치는 자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남자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리라.

시마무라가 요오코를 오랫동안 훔쳐보고 있으면서도 그녀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은, 저녁 풍경을 배경으로 한 거울의 비현실적인 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역장을 불러 뭔가 지나치게 진지한 면을 보였을 때 역시, 무슨 이야깃거리 같은 흥미가 앞섰는지도 모른다.

그 신호소를 지날 무렵은 이미 차창엔 어둠뿐이었다. 창밖에 풍경의 흐름이 사라져 버리자, 거울의 매력도 없어지고 말았다. 요오코의 아름다운 얼굴은 여전히 비치고 있었지만 그 따스한 동작에도 불구하고 시마무라는 그녀한테서 뭔가 맑은 차가움 같은 것을 새로이 발견하고는, 거울이 흐려져 오는데도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삼십 분 가량 뒤에 뜻밖에도 요오코 일행도 시마무라와 같은 역에 내렸기 때문에, 그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고 마치 자기와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되돌아보았으나, 플랫폼의 찬 공기를 느끼자 갑자기 기차 안에서의 실례가 부끄러워져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관차 앞을 건너 갔다.

남자가 요오코의 어깨를 붙잡고 선로 쪽으로 내려가려 했을 때, 이쪽에서 역원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나타난 긴 화물 열차가 두 사람의 모습을 가렸다.

여관의 안내원은 마치 화재 현장의 소방수처럼 거창한 눈옷 차림이었다. 귀를 싸매고, 긴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다. 대합실의 창문으로 선로 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여자도 푸른 망토를 입고, 그 머리 덮개를 쓰고 있었다.

시마무라는 기차 안의 온기가 가시지 않아서 바깥의 진짜 추위를 아직 느끼지는 못했으나, 설국의 겨울은 처음이기 때문에 이 고장 사람들의 차림새에 우선 질렸다.

"그런 차림을 할 정도로 추운가?"

"그럼요, 이제 완전히 겨울 채비죠. 눈 온 뒤, 날씨가 개기 전날 밤은 특히 추워져요. 오늘 밤은 이미 벌써 영하로 내려갔을 걸요."

"이게 영하의 날씨란 말인가?" 하고 시마무라는 처마 끝에 매달린 예쁜 고드름을 바라보면서 여관 안내원과 함께 자동차에 올랐다. 눈 빛이 집들의 낮은 지붕을 한층 낮게 보이게 해서 마을은 괴괴하게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과연 무엇을 만져도 차가운 느낌이 다르군."

"작년에 영하 이십 몇 돈가 하는 게 가장 추운 때였죠."

"눈은?"

"글쎄요, 보통 일여덟 자지만 많이 쌓일 땐 열 두어 자 될 때도 있죠."

"지금부터겠군."

"지금부터죠. 이 눈은 며칠 전에 한 자 가량 왔던 게 많이 녹은 거예요.”

"녹는 일도 있군."

"언제 또 큰 눈이 올지 모릅니다."

십이월 초순이었다.

시마무라는 끈덕진 감기 기운 때문에 막혀 있던 코가 머리속 깊숙이까지 단번에 뚫려 오물이 씻겨 나오듯이 콧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선생 댁의 아가씨는 아직 있나?"

"예, 있고 말고요. 역에 나와 있었는데, 못 보셨나요? 짙은 푸른 망토를 입고 있던데."

"그게 그 아가씨였던가? 나중에 부를 수 있겠지?"

"오늘 밤에요?"

"그래 오늘 밤에."

"지금 그 막차로 선생의 아들이 돌아온다면서, 마중을 나왔더군요."

저녁 풍경이 비치던 거울 속에서 요오코에게 간호를 받고 있던 병자가 바로 시마무라가 만나러 온 여자의 주인집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줄을 알자, 자기의 가슴 속을 뭔가가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느꼈지만, 이 우연한 맘남을 그는 그다지 이상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자신이 좀 이상하다고 여겨졌을 따름이었다.

손가락으로 기억하고 있는 여자와 눈에 등불이 켜지기도 했던 여자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시마무라는 어쩐지 마음 속 어디엔가에 그것이 보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직 저녁 풍경의 거울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때문일까. 그 저녁 풍경의 흐름은 결국은 시간의 흐름의 상징이었구나 하고, 그는 문득 그런 소릴 중얼거렸다.

스키 시즌 전의 온천 여관은 가장 손님이 적은 때여서 시마무라가 목욕탕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모두 잠이 들어 고요했다. 복도가 낡아서 그가 발을 옮겨 디딜 때마다 유리문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 긴 복도 끝의 회계실 모퉁이에 옷자락을 싸늘하게 검정으로 빛나는 마루 위에다가 펼치고서 여자가 우뚝 서 있었다.

마침내 기생으로 나선 것인가 하고, 그 옷자락을 보고 조금 놀랐으나,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도 아니고, 몸의 어딘가를 움직여서 반기는 기색을 보이는 것도 아닌, 꼼짝 않고 서 있는 그 모습에서 그는 먼 눈으로도 그녀의 진지함을 느끼고 급히 다가갔으나, 여자의 곁에 가서도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여자도 짙은 화장을 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오히려 우는 듯한 표정이 되어 버려,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은 방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편지도 하지 않고, 만나러 오지도 않고, 무용 교본을 보내 준다던 약속도 이행하지 않았으니, 여자 쪽에서는 웃고 잊어 버렸을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므로, 먼저 시마무라 쪽에서 사과나 변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으나, 얼굴을 보지 않고 걷고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그를 책망하기는커녕 온몸 가득히 그리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그는 더욱 무슨 말을 한다 해도 그 말은 자기 쪽이 불성실하다는 느낌밖에 줄 수 없을 것같아, 뭔가 그녀에게 억눌리는 듯한 감미로운 기쁨에 젖어 있었으나, 계단이 있는 데까지 오자,

"이놈이 자네를 가장 잘 기억하고 있더군." 하고, 집게손가락을 뻗친 왼손 주먹을 불쑥 여자 눈앞에 들이댔다.

"그래요?" 하고 여자는 그의 손가락을 거머쥐자, 그대로 놓질 않고 손을 끌 듯이 계단을 올라갔다.

코타쯔(火 ) 앞에서 손을 놓자, 그녀는 별안간 목덜미께까지 빨개지더니 그것을 얼버무리려는 듯이 당황하며 그의 한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이게 기억해 줬어요?"

"오른쪽이 아니야, 이쪽이야." 하고 여자의 손바닥 사이에서 오른손을 빼내어 코타쯔에 넣고는 다시 왼쪽 주먹을 내놓았다. 그녀는 시치미를 뗀 얼굴로 말했다.

"예, 알고 있어요."

후후 하고 입 속으로 웃으며 시마무라의 손바닥을 펴서 그 위에다가 얼굴을 갖다 댔다.

"이게 기억하고 있어 줬군요."

"어, 차가와. 이렇게 찬 머리카락은 처음이야"

"도쿄엔 아직 눈이 안 오나요?"

"자넨 그때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역시 거짓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누가 연말에 이렇게 추운 곳엘 오겠어." 

 

<후략> 




 요점 정리

지은이 :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하근찬 옮김

갈래 : 중편 소설. 서정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 서정적, 심미적, 감각적, 낭만적

제재 :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 남녀의 만남

구조 : 두 남녀의 발견 - 거울 속에 비치는 두 남녀의 정경 묘사 - 거울의 조화로 인한 새로운 아름다움의 발견

배경 : 눈이 많이 내리는 북쪽 지방의 온천장이 있는 마을

경향 : 신감각적(新感覺的) - 심리주의 방법에 입각한 주관적, 감각적 표현 기술과 새로운 문체를 확립하려 함.

주제 : 인간의 사랑과 그 숙명적 비극성, 설국에서 펼쳐진 비극적인 사랑

의의 : 설국의 아름다움과 남녀의 섬세한 심리의 흐름을 그렸으며, 환상적인 분위기 속의 신비적인 애수를 그렸으며,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특징 : 무엇보다도 작품 전체의 주제, 줄거리, 심지어 작중 인물들의 성격마저도 뚜렷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눈이 하얗게 내린 환상적 분위기와 인간의 심리를 바탕으로 한 신비적 애수(哀愁)의 아름다움이 담긴 극도의 서정성을 보여 주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적 경향을 '신감각파'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치고유자와[越後湯澤]온천장을 배경으로 도쿄[東京] 사람 시마무라[島村]를 둘러싸고 게이샤[藝者]인 고마코[駒子]와 미소녀 요코[葉子]의 미묘한 심리가 복잡하게 전개된다. 산문시와 같은 세련된 문체는 작가가 재발견한 신감각파적 수법의 극치를 이룬다. 특히 본문에 수록된 기차의 차장에 비치어 포개지는 인물과 자연 환경, 그리고 불빛의 영상이 주인공 시마무라의 감각의 굴절을 통해 하나로 묶여지고 있는 대목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투명한 느낌을 갖게 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독특한 미적 세계가 제시된 부분이다.

출전 : <설국(雪國)>

 

줄거리 :

1935년부터 연재 형태로 발표되어 1937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이다. 근대 일본 소설에서 서정 소설의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1950년대부터 서구의 언어로 번역 소개되었으며, 1968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작이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시마무라(島村)는 무용 연구가이다. 그는 북쪽 지방 눈이 많이 내리는 온천 거리의 고마코라는 기생에 끌려 몇 해 동안 온천장에 찾아오곤 한다. 물론, 적극적으로 그 여인에게 구애를 하기 위함도 아니요, 헛되고 보람 없음을 알면서도 시마무라의 마음이 그녀에게 끌린다. 그때, 고마코를 통해 젊은 요오코가 나타난다. 시마무라에 대한 고마코의 사랑이 점차 고조되는 가운데 시마무라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혹되면서도 요오코의 신비스러움과 지순함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끼게 된다. 소설의 결말에서 화재로 인한 여인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만, 죽음 자체도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처럼 그려지고 있다.

등장 인물 :

시마무라(島村) : 도쿄 시다마찌(下町-일반서민층생활지)출신. 어린 시절부터 가부끼 연극에 취미를 붙였으나, 학생시절부터 취미가 무용이나 고전 무극에 쏠림. 그런데 점차 침체된 일본춤에 불만을 느끼게 되고, 서양무용에 관심을 둔다. 한편으로 등산과 여행을 즐기는 작중 인물로 고마꼬와의 기억을 찾으며 눈고장의 온천지를 찾아온 남자.  -

고마코(驅子) : 순결과 청순함을 지닌 게이샤(기녀.妓女). 항구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춤선생님을 따라 눈고장(설국)으로 따라왔던 게이샤. 춤선생의 아들인 유끼오와 약혼 이야기가 있었으나, 시마무라와 연정을 느끼게 된다.

요오코(葉子) : 유끼오의 애인이며, 병든 애인을 데리고 눈고장으로 돌아오게 되나 애인도 고마꼬를 찾으며 세상을 뜨고, 얼마 뒤 자신도 영화 상영 창고 화재 사건으로 인해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는다. 시마무라는 그녀의 신비로운 인상을 느낀다.

유끼오(行男) : 춤선생의 아들.  

 


내용 연구

설국 : 눈의 고장이라는 뜻

냉기 : 찬 공기. 찬 기운

관사 : 관리가 살도록 관에서 지은 집

바라크(barrack) : 임시로 지은 허술한 집. 가건물, 군대의 막사 여기서는 허술한 집

을씨년스럽게 : 보기에 군색한 듯하게

눈사태 : 산비탈 같은 데 쌓인 눈이 한꺼번에 세차게 무너져 내리는 일

조끼 : 저고리나 적삼·와이셔츠 위에 덧입는, 소매가 엷고 주머니가 달린 옷.

빈둥거리다 : 하는 일 없이 매우 얄밉게 게으름만 부리는 모양

화복 : 일본 고유의 옷

선로 : 철길을 이루는 강재(鋼材)

러셀(russell) : 앞에 제설기를 부착한 기관차

제설 : 쌓인 눈을 침

언저리 : 둘레의 부근

감미롭다 : 달콤한 느낌이 있다.

복면 : 얼굴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리는 데 쓰이는 물건

자락 : 옷이나 피륙 따위의 아래로 드리운 부분

융합 : 여럿이 녹아서 하나로 합침

괴괴하다 : 쓸쓸할 정도로 아주 고요하고 잠잠하다.

자 : 척관법의 길이의 단위 (약 30.3cm에 해당함)

코타쯔 : 화로의 일종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흐르고 있었는데, : 기차가 달리고 있는 가운데 바깥의 풍경과 기차 안의 풍경이 흘러가는 듯이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은 비쳐지는 ∼ 움직이는 것이었다. : 창으로 내다보이는 바깥의 풍경과 창유리가 거울 역할을 하여 비쳐지는 기차 안의 풍경이 겹쳐는 하나의 풍경인 듯이 보인다는 뜻이다.

그녀의 눈은 저녁 어둠의 물결 위에 뜬, 요염하고도 아름다운 야광충(夜光蟲)이었다. : 은유법, 원관념은 유리창에 비친 요오코눈

저녁 풍경을 배경으로 한 거울 : 거울의 역할을 하는 차창을 지칭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정경이 배경을 이룬다. 그 정경 속에서 지순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의 모습을 감각적인 필치로 섬세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는 것은, 고마코라는 기생과 그녀를 통해 등장하는 요오꼬라는 여인의 특이한 대조이다. 이 두 여인의 모습은 아름다움의 정점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시마무라를 상대로 하여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갈등이 서려 있다. 가련하면서도 진지한 존재로서 비정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고마코와, 청순하면서도 애련한 느낌으로 가득찬 요오코의 대비는 서정적인 소설의 이야기를 인간 내면의 심리극으로 전화시키는 힘이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과 분위기는 싸늘하고도 청결하다. 그것은 서두에서 그려지고 있는 눈덮인 산야의 배경과 그 배경에서 얻어진 첫인상이 지속적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결말 부분에서 황홀하게 타오르는 불기둥과 스러지는 여인의 사랑은 쓸쓸하고도 허망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출처 : 권영민저 지학사 문학)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가 느끼는 것은 작품 전체의 주제가 무엇인지 막연하다는 점과, 인물들의 성격이 일정한 형상으로 떠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의 주제가 어떤 특정한 순간이 아닌, 항상 움직이고 있는 인간 생명의 각 순간을 이어가는 '순수 지속'이기 때문이다. 작자는 일관된 하나의 인물, 성격이 아닌, 생명의 각 단면, 각 순간만을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처음에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터널 이쪽이 현실 세계라면, 터널 저쪽은 가와바타 문학의 미적 세계이다. 독자는 이 기차와 함께 그의 미적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유리창에 비치는 사물들의 묘사에서 감각의 훈련을 받는다. 그리하여 자연 풍경이나 사건, 등장 인물들이 모두 투명한 거울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며, 독자 자신의 감정마저도 거울 속에 비치는 것 같다.(출처 : 김봉군 최혜실 공저 지학사 문학)

 

심화 자료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Kawabata Yasunari)

1899. 6. 11 일본 오사카~1972. 4. 16

 일본의 소설가로 196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우수에 젖은 서정성을 통해 고대 일본문학의 전통을 현대어로 되살려낸 작가이다. 문학적 원숙기에 씌어진 작품 대부분에 짙게 깔려 있는 고독과 죽음에 대한 집착은 외로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으며 청년시절에 가까운 친척까지도 모두 잃었다. 1924년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반(半)자전적인 작품 〈이즈의 무희 伊豆の踊子〉(1926)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작품은 작가인 요코미쓰 리이치[橫光利一]와 함께 창간한 잡지 〈분게이지다이 文藝時代〉에 실렸는데, 이 잡지는 일찍이 속했던 신감각파(新感覺派)의 기관지가 되었다.

 

 이 문학 유파의 미학은 대부분 다다이즘·퀴비슴·표현주의 같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 문예사조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러한 사조들이 가와바타의 작품에 미친 영향은 갑작스런 장면 전환, 조화되지 않는 인상들과 뒤섞여 자주 놀라움을 주는 이미지, 아름다움과 추함이 동시에 나타나는 점 등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17세기의 일본 산문과 15세기의 렌가[連歌]에서도 나타나는데, 그의 후기소설은 렌가에 더 가까워진 듯하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아 렌가의 유동적인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유명한 소설 〈설국 雪國〉(1948)은 1935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결말 부분을 여러 번 고쳐쓴 끝에 12년이나 지난 뒤에야 완성되었다. 〈설국〉의 속편 격으로 구상한 〈센바즈루 千羽鶴〉는 1949년에 쓰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다. 이 두 작품과 〈산의 소리 山の音〉(1949~54)가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노벨상을 받았을 때, 그는 작품 속에서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으며 평생 동안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죽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신감각파

 신감각파란 1920년대 중반 일본 소설 문단에 등장한 새로운 소설적 경향의 하나로, 문학사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신현실주의의 자연주의적 관찰과 묘사를 지양하고, 사소설(私小說)의 경향에 반발하면서 복잡한 근대 사회의 현실과 자아의 해체를 주제로 심리주의 방법에 입각한 주관적`감각적 표현 기술과 새로운 문체를 확립하려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표현 기술을 중심으로 한 예술지상주의운동은 프로레타리아 문학 운동과 대조를 이루며 쇼와문학(昭和文學)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개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표현상의 매너리즘, 관능주의, 천박한 모더니즘에 빠져 차차 프로레타리아 문학과 신흥 예술파 및 통속 문학에 흡수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특징

 우선은 서정과 드라마의 융합을 들 수 있다. 일본 문학의전통적인 서정과 현대 소설의 극적(劇的) 논리가 그의 작품속에서 독특한 융합을 형성한다. 작중 인물들이 뚜렷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이미지가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 하나는 형식의 문제이다. 소설이라고 하면 정돈된 형식을 갖추는 것이 보통인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에서는 오히려 형식에 대한 무관심이 느껴진다. 절정과 결말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진행 과정이 보이지 않고, 다만, 하나의 에피소드가 연상 작용에 의해 또 다른 에피소드를 유도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한 편의 완결된 소설이라기보다는, 우연히 펼쳐진 어느 부분을 보는 것 같다. (출처 : 김윤식·김종철 공저 한샘 문학)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세계

 가와바타 문학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서정과 극의 융합에 있다. 서정은 일본 문학의 전통에서 오고 극은 현대 소설의 논리에서 오는데, 이 때문에 그의 소설의 인물들은 뚜렷한 행동을 하지 않는데도 이미지가 뚜렷하다. 또 어떤 극적인 사건에도 그 밑바닥에는 일본의 중세기적인 정적주의가 깔려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특징은 형식과 무형식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은 일관된 플롯들의 형식을 갖추는 것이 보통인데, 작자는 여기에 무관심하다.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자유 연상에 의해 다음 에피소드가 유도되어 나오며,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아무런 암시도 주고 있지 않다. 한 편의 완결된 소설이라기보다 우연히 펼쳐진 소설의 어느 한 부분을 읽는 느낌이다. (출처 : 김봉군 최혜실 공저 지학사 문학)

 

설국 - 투명한 거울과 같은 서정의 세계

 1968년도 노벨문학상이 일본 작가 와바다 야스나리(山端康成)에게 수여된다는 결정이 발표되었을 때, 깜짝 놀란 사람들 중에는 그 작품을 영어로 옮겨서 해외에 소개하는 데 이바지한 사이덴스테커(미국 미시건대학교수) 자신도 들어 있었다.

 그날 사이덴스테커는 한국의 어느 시골에서 등산을 하고 있었는데, 산에서 내려오자 사이덴스테커가 느낀 감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와바다시가 수상을 했다구? 종전부터 그런 추측이 떠돌기는 했지만, 과연 사실일까. 다니자끼(谷崎)씨나 마시마(三島)씨라면 그다지 뜻밖의 일도 아니지만, 가와바다씨에게 수여됐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 까닭은 가와바다씨의 문학이 노벨문학상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일본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번역하기가 어려우며, 스웨덴의 왕립 아카데미 심사원들은 그 불완전한 번역으로밖에는 읽을 수 없었을 터이니까, 그러나 가와바다씨에 대한 수상이 정치적이라든가, 엑조티시즘이라든가 하는 말은 모두 근거없는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가와바다씨의 서정적인 감수성과 소설작법의 특이성에 대한 흥미를 일종의 엑조티시즘이라고 할 수는 있다. 아마 그러한 흥미가 번역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전달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사이덴스테커는 가와바다문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그 하나는, 서정과 드라마와의 융합이다. 말하자면 서정은 일본문학의 전통에서 오고, 드라마는 현대소설의 논리에서 오는 것인데, 그것이 가와바다의 작품 속에서 독특한 융합을 형성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무슨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이미지가 뚜렷한 것은 그 때문이다. 또,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에 있어서도 그 밑바닥에 중세기적인 일종의 정적주의가 깔려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하나는 형식과 무형식의 문제이다. <소설>이라고 하면 정돈된 형식을 갖추는 게 보통인데, 가와바다의 작품에서는 그 이상 무관심할 수가 없을 만큼 형식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클라이막스>와 <해결>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진행과정이 보이지 않으며, 미리 그것을 설정한 듯한 형적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자유연상에 의해 다음의 에피소드가 유도되어 나오며, 그것이 장차 어디로 나아갈지는 아무런 예상도 주고 있지 않다. 어쩌면 작가 자신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 결국 가와바다의 소설은, 전체를 일관하여 끝맺는 완결적인 결말이 거의 없다. 그저 어쩌다가 시작을 하고, 어쩌다가 끝이 난다. 다시 말하면 한 편의 완결된 소설이라기보다는, 우연히 펼쳐진 어느 부분부분을 슬쩍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이러한 무형식의 형식을 사이덴스테커는 일본문학의 고전에서 그 유서(由緖)를 찾고 있거니와, 여기서는 더 자세히 따질 겨룰이 없으므로 일단 접어두고, 작가 야스나리의 발자취를 살펴 보기로 한다.

그는 1899년 오사카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이며 문학에도 취미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3세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누이가 하나 있었으므로, 조부모 밑에 어린 남매만이 남겨졌다.

 그후 누이는 백모댁에 맡기고, 조부모와 세 식구가 살았는데, 7세 때에는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몇 해 후에는 누이도 죽고 말았다. 이제 할아버지와 단둘이 남은 셈인데, 그가 중학교 3학년일 때(1914년) 그 할아버지도 소년 가와바다를 홀로 남겨 두고 눈을 감았다.

 이렇게 잇따라 혈육을 여의고 사고무친한 신세가 된 사람이면, 선천적으로 특별히 민감한 감수성이 아니라도 그 성격에 어떤 각인이 찍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할아버지가 죽음에 임박한 당시에 쓴 일기는, 그후 <16세의 일기>라는 작품으로 발표됐다.

 가와바다가 문학을 뜻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무렵, 중학교 2,3년 때부터였다. 문학만이 잃어버린 육친들을 추모하는 방법이고, 또한 외롭고 허무한 인생을 견디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오오사카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자. 1917년, 도쿄에 가서 제일고등학교 일부 을(영문과)에 입학했으며,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러시아 문학을 가장 많이 읽었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즈(伊豆)를 여행하며 떠돌이 광대와 길벗이 된 일이 있었는데, 이때 겪은 일이 그후 《이즈의 춤추는 소녀》로 작품화되었다.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1920년 도쿄제대 영문과에 진학했다가 이듬해 국문과로 옮겼으며, 그 무렵부터 활발하게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문단에 진출한 것은 1924년 대학을 졸업하고, 신진작가 약 20명이 모여서 <문예시대>를 창간했을 때, 그 창간사를 쓰면서부터라고 하겠다.

 <문예시대>의 창간은 곧 <신감각파>의 탄생이었다. 가와바다는 그 창간사에서 "일본 문단은 지금 과도기에 서 있다. 젊은이가 멸망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당시의 일본문단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자연주의, 유미주의, 인도주의, 신이지주의 등의 사조가 계속 일어났으나, 1920년대에 와서는 그게 모두 침체상태에 빠졌으므로 사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각에 무엇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감각파는 반드시 통일된 이론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적인 경향으로는 기계화·산문화되어가는 일상생활에 저항하여 새로운 생활감정의 표현을 모색하는 것으로서, 그 배경을 크게 확대하고 보면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일어난 미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같은 움직임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신감각파의 문학은 1927년 <문예시대>의 폐간과 아쿠다가와 류우노스케의 자살로 갑자기 해체되어 동인들 사이에도 분열이 일어나, 좌경화하는 작가도 나왔다.

 그러나 가와바다의 문학이 참으로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하겠다. 미시마 유끼오는 가와바다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어떤 시대관념도 가와바다씨를 기만하지는 못했다. 근대, 신감각파, 지성, 국가주의, 실존철학, 정신분석 등등 온갖 관념이 우리 시대에 백귀야행처럼 나돌고 있으나, 가와바다씨는 그 어느 것에도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라고, 그리하여 명작 《설국》에 이르러, 기다란 터널을 지나서 저쪽에 전개되는 미적 세계에 다다랐다.

 《설국》은 1935년에 쓰기 시작하여 1947년에 완결되었으니, 일본이 국가로서 패전한 시기에,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그 문학세계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전쟁 중 침체했던 문단이 다시 활발해지자, 미시마가 '서정의 로마네스크'라고 부르는 장편소설이 나뭇가지에 꽃이 피는 것처럼 해마다 쏟아져 나왔다. 《설국》이후 후기의 대표작으로 《천우학(千羽鶴》《산의 소리》《잠자는 미녀》《아름다움과 슬픔》《고도(古都)》등이 있다.

 가와바다의 문학세계는 분해하기 어렵다. 일단 분해를 하면 다시 원상으로 돌리지 못하는 그런 성질이 있으므로, 결국은 그 작품을 통해서 들어가는 수밖에는 없다.

 1968년엔는 노벨 문학상이 가와바다에게 수여되었다. 그때 일부에서는 '서구인의 일본 문화에 대한 엑조티시즘'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이 문제에 대한 가장 명확한 해명은 다른 누구의 말보다도 가와바다 자신이 그 수상기념연설 <아름다운 일본의 나-그 서설>에서 한 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학인으로서 영예의 절정에 오른 그는, 불과 4년 후인 1972년 4월 16일, 불가해한 자살을 했다. ,노벨상 작가 <가와바다의 자살>이라는 보도는 미시마 유끼오가 할복자살에 경악한 사람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자살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책상 위에는 원고를 쓰다가 중단한 뚜껑을 연 만년필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일찍이 사고무친한 고아로 자란 그가 죽기로 하면 진작 죽었어야 했을 터인데, 영예와 행복 속에서 스스로 생명을 끊어야 했을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문예춘추>(6월호)가 바친 가와바다 야스나리 추도특집에서 오랜 친구인 곤 토꼬(今東光)가 말한 것처럼, 아무도 풀지 못할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가와바다의 사생관이 어떤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가 널리 알려진 인사였기 때문에 세인에 끼친 충격은 그만큼 중대한 것이었다. (삼성출판사 전집)

 

 '설국'에 대해서

 이 작품은 발표 도중에 일본의 <문예간담회상>을 받은 명작이며, 작가 자신도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한 바 있는 중기의 대표작이다.

 그다지 길지도 않은 중편소설이지만 기고에서 완성까지 13년이나 걸려 연작의 형식으로 그때그때 발표되었으며, 1935년 <문예춘추> 1월호에 시작하여 1947년 <소설신조> 10월호에서 끝을 맺었다.

 노벨문학상은 반드시 이 작품을 대상으로 수여된 것은 아니지만, 해외에 가장 널리 소개된 것은 이 《설국》이다. 1956년, 사이덴스케커에 의한 영역을 비롯하여, 독일, 스웨덴, 핀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등 각국어로 옮겨져서 국제적인 평판을 일으키기도 했다.

 맨 처음에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터널 이쪽이 현실세계라고 하면, 터널 저쪽은 가와바다문학의 미적 세계이다. 독자는 이 기차와 함께 그 미적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유리창에 비치는 반영의 묘사에서 감각의 훈련을 받는다. 그 반영은 물론 현실 아닌 것이 거기에 비칠 리는 없으나, 반영의 작용에 의해서 투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하여 자연풍경이나, 사건이나, 등장인물들이 모두 투명한 거울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며,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독자 자신의 감정-마저도 거울 속에 비쳐지는 것 같다.

 다만 독자가 이 작품을 읽어가면서 다소 초조하게 느끼는 것은 작품 전체의 주제가 무엇인지 막연하다는 점과, 인물들의 성격이 일정한 형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미시마 유끼오의 견해가 작품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어떤 특정된 순간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있는 인간생명의 각 순간을 이어가는 순수지속이다. 따라서 그것은 변화의 기록이고, 순간의 집성이다. 고마꼬(駒子)라는 여성도 요꼬(葉子)라는 여성도, 일관된 하나의 인물, 하나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생명의 각 단면, 각 순간으로만 묘사되고 있다. 독자는 그러한 세부를 연결해서 하나의 전체상을 포착하려고 할지 모르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애당초, 정념은 전체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수지속이 마지막에 가서는 스스로 어떤 종합에 다다른다."

 사이덴스테커가 말하는 <형식에 대한 무관심>이 바로 그것인데, 미시마의 견해로는 오히려 그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소설, 소설다운 소설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필자 : 민병산의 '투명한 거울과 같은 서정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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