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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간 바회 아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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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간 바회 아래

 

산수간 바위 아래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살려고 하니,

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고들 있지만,

나같이 어리석은 시골뜨기의 마음에는 이것이 분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노라.

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뒤에,

바위 끝이나 물가에서 실컷 노니노라.

그 밖에 다른 일이야 부러워할 것이 있으랴.

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서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찾아온다고 한들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산이 말씀하거나 웃지 아니하여도 나는 그를 한없이 좋아하노라.

누군가가 상공보다 낫다고 하지마는 만승천자라고 한들 이만큼 좋겠는가

이제 생각해보니 소부와 허유가 영악했도다.

아마도 자연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어라.

내 천성이 게으른 것을 하늘이 아시고서,

인간 만사를 하나도 맡기지 않으시고,

다만 한 가지 다툴 것이 없는 강산(江山)을 지키라 하시도다.

강산이 좋다고 한들 내 분수로 이렇게 편안히 누워 있겠는가

이 모두가 임금님의 은혜인 것을 이제야 더욱 알겠노라.

하지만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내가 해드릴 일이 없구나.

요점 정리

지은이 : 윤선도

연대 : 조선인조 때

갈래 : 연시조

성격 : 강호한정가로 일명 '만흥'이라고 함

제재 : 자연을 벗하는 생활, 산수 자연속의 생활

주제 :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의 한정, 산수의 한가함을 누리는 즐거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친화하며 사는 삶의 즐거움 노래

각 연의 주제

1연

안분지족의 삶

2연

안빈 낙도의 삶

3연

강산과의 혼연 일체

4연

강호 한정의 삶

5연

자연 귀의의 삶

6연

임금의 은혜 찬양

특징 : 작가의 안분지족하는 삶의 자세가 드러났고, 물아일체의 자연 친화정신이 잘 나타나 있음. 설의법 사용

출전 : 고산유고 중 '산중신곡'

내용 연구

 

산수간(정계와 떨어진 곳, 속세와 떨어진 곳) 바위 아래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살려고 하니(송순의 '십 년을 경영하여'와 비슷하다. 자연 귀의(自然歸依),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사상이 담겨 있다.)

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속세의 사람들, 그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고들 있지만(비웃는다고 한다마는),

나같이 어리석은 시골뜨기(햐암은 향암, 시골에서 자라 온갖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사람. 여기서는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의 마음에는 이것이 분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노라.

 

자연 속에서 세속적 명리를 잊고 안분지족하려는 작자의 초탈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초장의 '띠집'은 안분지족의 심정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이며, 종장의 '햐암'은 자신의 겸손을 드러낸 표현이다. 어지러운 현실을 벗어나 이제 막 자연으로 돌아온 화자의 모습을 통해 작자에게 있어서 영혼의 고향으로서의 자연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마초(알맞게) 먹은 뒤에,

바위 끝이나 물가(자연의 대유적 표현)에서 슬카지( 실컷, 마음껏) 노니노라. - 자연 친화 사상

그 밖에 다른 일(세속 현실의 벼슬살이를 말함)이야 부러워할 것이 있으랴.(안분지족의 자세)

 

비록 보리밥과 풋나물로 연명하는 가난한 생활이지만, 자연을 벗하는 작자의 유유자적하는 마음은 세속의 온갖 부귀영화가 전혀 부럽지 않다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초장의 '보리밥 풋나물'과 같은 소재들은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작자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암유로 이해해야 한다. 중장에서는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한가롭게 지내는 생활의 흥취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종장의 '녀나믄 일'은 세속적 명리, 곧 부귀영화를 의미한다. 사물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세속과 탈속의 이분법적 사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서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찾아(오다 : 온다고 한들)온다고 한들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산이 말씀하거나 웃지 아니하여도[주체는 산으로 이심전심의 자세/이심전심 : 말·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됨. 유사어로 심심상인(心心相印). 염화미소(拈華微笑 :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 지었다는 데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 불립 문자(不立文字 :오도(悟道)는 문자나 말로써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교외별전(敎外別傳) : 선종(禪宗)의 요체(要諦)를 나타내는 말의 하나로 부처의 가르침을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일. 또는 그 심원(深遠)한 뜻] 나는 그를 한없이 좋아하노라.(몯내 됴하 하노라 : 못내 좋아하노라.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의 한정 / 천석고황(泉石膏亡+日) : 산수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 정도에 지나쳐 마치 불치의 고질과 같음. 연하고질(煙霞痼疾).)

 

자연에 몰입되어 무아경에 빠진 작자의 의연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는 연이다. 자연은 말도 없고 웃지도 않건만 이심전심의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너무 반갑다는 작자의 말은 한 잔 술이 있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산중에 혼자 앉아 술잔을 들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의 아름다움을 안주삼아 자연에 도취되어 감으로써, 자연과 일체가 되는 그윽한 감흥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말이 없는 자연이 그리운 임보다 더 정겹다는 작자의 인식을 통해 이미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버린 작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누군가가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말하는 삼정승)보다 낫다고 하지마는 만승천자(만 개의 수레로 황제의 지위를 가리키는 말)라고 한들 이만큼 좋겠는가(비교법 사용)

이제 생각해보니 소부와 허유(중국의 대표적인 은자,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들(?~?). 허유는 자는 무중(武仲). 요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받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고 하여 잉수이(潁水) 강 물에 귀를 씻고 지산(箕山) 산에 들어가서 숨었다고 하고, 소부는 그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한 전설상의 인물들)가 영악했도다(냑돗더라는 약았다는 의미로 소부와 허유에 대한 관심보다는 작가가 느끼는 흥겨움을 강조하기 위해 약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등진 소부 허유가 사실은 약았다는 뜻으로 곧 세속 현실의 삶보다는 산수 자연의 삶이 겪어 보니 더 낫다는 의미).

아마도 (임천한흥은 수풀과 샘물을 이르는 말로 자연의 대유적 표현으로 자연 속에 살아가는 즐거움을 말함) 자연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어라.

 

자연 속에서 누리는 한가로운 마음의 평화가 만승천자보다 낫다는 작자의 말을 통해 자연에 흠뻑 빠져든 그의 정신 세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초장의 '삼공'과 '만승'은 세속적 명리에 대한 대유이며, 중장의 '소부허유'는 자연에 묻혀 사는 은자의 대유이다. 즉, 이 부분은 세속과 탈속의 대립항을 설정하여 탈속적 초월을 지향하는 작가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종장의 '임천한흥'에 작자의 내면을 집약시킴으로써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도 작자에게는 더 이상 추구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며, 오직 자연만이 의식을 지향점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속세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내 성(천성)이 게으른 것을 하늘이 아시고서( 아르실샤 : 아셔서),

인간 만사(세상의 모든 일)를 하나도(한일도 : 한 가지 일도) 맡기지 않으시고,

다만 한 가지 다툴 것이 없는 강산(江山)을 지키라 하시도다.

 

실질적으로 이 작품 전체의 결구에 해당하는 연으로, 오랜 동안의 벼슬길에서 대부분의 세월을 유배 생활로 보낸 작자가, 지친 몸과 영혼을 이끌고 마지막 도달한 자연귀의의 심정을 읊고 있다. 초, 중장에서 환해풍파의 아픔을 자신의 게으른 천성 탓으로 돌리면서, 종장에서는 자연에 귀의하여 사는 것이 하늘이 자신에게 맡긴 분수임을 밝히는 작자의 체관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또한, 자연과 하늘에 대한 작자의 겸허한 태도와 인간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및 관점을 엿볼 수 있다.

강산이 좋다고 한들 내 분수로 이렇게 편안히 누워 있겠는가

이 모두가 임금님의 은혜인 것을 이제야 더욱 알겠노라( 아노이다 : 알겠도다.).

하지만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내가 해드릴 일(해올 일이 : 할 수 있는 일이)이 없구나.

마지막 시조는 그 당시의 선비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으로 모든 것을 임금의 은혜로 돌리고 있다. 사실 그 당시는 임금의 권한은 하늘과 같았고, 그 임금에 대한 충성이야 말로 가장 큰 보신이었다. 그는 임금에 대한 진실의 가부를 떠나서 임금의 치세에 대한 태평성대를 말한 것은 그 시대의 보편적인 선비들이 가졌던 세계관이었고, 한계였던 것이다.

이해와 감상

 

1642년(인조 20) 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작자가 금쇄동(金鎖洞)에서 산중의 생활을 읊은 〈산중신곡 山中新曲〉 9편 가운데 첫번째 편으로, 모두 6수로 되어 있다. 1798년(정조 22) 전라감사 서정수(徐鼎修)가 재판(再版)한 작자의 문집 ≪고산유고 孤山遺稿≫ 제6권 하편 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만흥’은 산중생활에서 문득 느껴지는 ‘부질없는 흥(만흥)’을 소박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첫째 수는 “산슈간(山水間) 바회 아래 뛰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몰론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햐암의 뜻대는 내분(分)인가 하노라.” 하여 자연에 묻혀사는 소박한 생활이 작자에게 알맞는 분수임을 노래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보리밥 풋나물을 알마초 머근 후(後)에, 바횟긋 물가의 슬크지 노니노라, 그 나믄 녀나믄 일이야 부랄 줄이 이시랴.” 하고 가난에 평안하는 안분(安分), 안빈(安貧)의 경지를 그렸다.

셋째 수는 “잔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하랴, 말씀도 우음도 아녀도 몯내 됴하 하노라.” 하여 담담한 표현 속에 느긋한 정취를 은은히 풍기고 있다. 산수시의 미, 느긋한 즐거움〔閑寂〕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넷째수는 “누고셔 삼공(三公)도곤 낫다 하더니 만승(萬乘)이 이만하랴, 이제로 헤어든 소부(巢父)·허유(許由) ㅣ 냑돗더라, 아마도 님쳔한흥(林泉閑興)을 비길 곳이 업세라.” 하여 한흥, 곧 이 시의 주제인 만흥을 노래하였다. 〈만흥〉은 전원시이면서 산수시다.

(출처 : ≪참고문헌≫ 尹孤山硏究(李在秀, 學友社, 1955), 江湖歌道硏究(崔珍源, 國文學과 自然, 成均館大學校出版部, 198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1연은 혼란한 정계에서 벗어나 인간을 멀리하여 심산유곡에 들어가 자연과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의 고매한 진의를 모르는 세인은 이러니 저러니 비웃고 떠들지만, 내 우직한 성격으로 판단하면 이것이 나다운 생활의 본령이라는 것이다. 곧 이 시조의 이면에는, 사회의 현실상과 자기의 이상이 도저히 융화되지 못함을 알 때에는 고인의 도를 밟아 깨끗이 명리를 버리고 거짓과 속임이 없는 자연을 찾아서 정신적으로 평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도피 사상과 결백성이 깃들여 있다.

2연은 유인이 되어 검소하고 담박한 의식에 만족하며, 자연을 마음껏 완상하는 생활의 진취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 부귀와 공명 따위는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극히 평범한 사상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보리밥, 풋나물'은 한시나 다른 시조에서 보기 드문 말로서, 향토적인 미각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고산이 아니면 가능성이 없는 순한국적 감촉을 가진 말이다. 한학자인 고산이 이런 말을 그의 시조 창작상에서 구사하여 그 효과를 십이분 나타내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시조에 능수 능란하였던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3연은 작자가 울적한 마음을 풀고자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가 우연히 먼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았을 때 경(景)과 의(意)가 융합되는 순간 즉흥적으로 나타난 시상을 노래한 것이다. 대자연에 도취되어 손에 잡고 있던 술잔마저 잊어 버리고 있던 작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여기에서는 자신이 자연 속에 녹아드는 순간 무념 무상의 경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먼 산과 같이 태연부동하여 만사에 초연 자약할 수 있는 자신을 얻은 심경이라고 보고 싶다. 현세로부터 도피하여 인간과의 교섭을 끊고자 한 고산이었지만,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에 뜻밖에 사모하던 임이 찾아온다면 반가움이 말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고산은 말과 웃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인간중에서 가장 사랑하며 그리던 임보다도 말도 웃음도 없는 자연이 좋다고 구가한 것이다. 고산 자신의 말과 같이 그가 자연을 유달리 사랑하는 버릇과 염세기인의 사상이 깃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연은 자기의 성품이 나태하다고 말하고 인간 만사 중에 무엇이나 이루지 못했다고 자기의 무능 무위를 솔직히 말한 곳에 겸양의 미덕이 숨어 있고, 또 조화의 명수를 좇으면서 조금도 세정을 원망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숙명론자인 약점은 다소 있으나, 확고한 신념 아래 사는 사람의 체관적 태도가 엿보인다. 조화의 명수를 좇아 아무도 다툴이 가 없는 자연을 마음껏 완상하고 자연을 지키고 있으리라는 천명의 당위성을 자각하고 있는 모습은 고산같은 인격에게나 있을 법한 뜻깊은 말이라 할 것이다. (출처 : 이재수의 윤고산 연구에서)

만흥(漫興)은 작자가 병자호란 때(1642년, 56세) , 왕을 호종(扈從: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 또는 그런 사람)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해남 금쇄동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인데, 산중 신곡(山中新曲) 속에 있는 전 6수로 된 연시조로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산중생활을 흐뭇하게 즐기는 심정을 읊으면서도 임금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지극한 충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그것을 모두 성은으로 돌리고 있음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공통된 의식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이해와 감상2

 

작가가 유배에서 풀려나 자연에 은거하면서 지은 작품으로 한문투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윤선도는 시어의 아름다움과 형상적인 구조로 시조 문학의 절정을 이룬 작가로 평가받는다. '만흥'은 세속과 떨어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흥취를 그리고 있다. 자연을 단순한 음풍농월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고 현실과 대비되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설정하고 작가와 혼연일체를 이루는 경지를 설정한 점에서 자연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자연과 친화하며 사는 삶은 조선 시대 선비의 이상인 안빈낙도의 정신과 관련 있다.

심화 자료

윤선도

 

본관 해남(海南). 자 약이(約而). 호 고산(孤山) ·해옹(海翁). 시호 충헌(忠憲).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함경도 경원(慶源) 등지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 여러 관직에 임명된 것을 모두 사퇴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은거했다. 저서에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있다.

자연 시조를 보는 시각 :

 

이제까지 이른바 강호가도에 대한 논의에서는 대부분 '사회를 떠나온 인간'으로서의 시적 화자의 모습이 중시되었다. 더욱이 사회에 대한 이념과 자연을 향한 동경 사이에서 방황하는 분신으로 시적 화자를 그리고 있는 경우에도 그 강조점은 항상 이념 쪽에 놓이게 된다. 이때 자연은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 원천이기도 하지만 종종 자기 합리화의 근거로 작용한다. 즉 사회 속에서 입은 상처를 품고 자연으로 찾아 든 시적화자는 자연을 대상화하여 이념을 재확인하고 수신함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다고 해석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은 살아 변화하는 자연 자체가 아니라 작가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재단되고 추상화한 관념적인 무엇이며, 시에 묘사된 바와 같이 자연을 누리고 찬양하는 즐거움은 진정한 것이 아니라 가식적인 것인 셈이다. 그러나 자연 시조의 시적화자가 떠나온 출발점으로서의 사회가 아닌 도달점으로서의 자연에 비중을 두어 본다면 이와는 다른 전해에 도달하게 된다. 이 때 시적화자는 '자연에 안긴 인간'의 모습으로 자연을 즐기면서 그 원리를 통찰하고 자연이 가진 생명력에 의하여 치유되어 가는 것으로 설명된다. 시적 화자에게 주어진 자연의 이 같은 생명력은 개인과 시대를 넘어 인간에게 선사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며, 이러한 점들을 지적함으로써 강호가도 연구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만한 해석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 만흥'에 드러나는 안빈낙도의 지향과 자부심

 

이 시조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친화하며 사는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세속과 동떨어져 자연 경치를 완상하며 살아가는 은거자의 삶이 부귀공명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에 비해 월등히 낫다는 가치관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안빈낙도의 삶은 '띄집, 보리밥, 풋나물' 등의 시어에서도 확인되지만, 그의 자부심은 제 3수에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또한 시적 화자는 세속 사회와 교섭을 끊고 먼 산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그리던 임'이 와도 더 이상 반갑지 않을 정도로 산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화자는 문득 마음 속에 다가오는 산의 모습에 말 없는 말과 웃음 없는 웃음을 느끼면서 황홀한 기쁨에 젖는 것이다. 산수에 몰입하여 무아경에 든, 산같이 의연하고 고고한 시인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산중신곡

 

1798년(정조22)에 재간된 작가의 시문집<고산유고(孤山遺稿)>권6 <하별집(下別集)> <가사(歌辭)> 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조들은 그가 56세 때인 1642년(인조 20)에 지은 것으로,병자호란에 임금을 호종(扈從)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상도 영덕(盈德)에서 귀양살이하다가 풀려나와 전라남도 해남의 금쇄동(金鎖洞)의 자연 속에 묻혀 살던 때의 작품이다.

<만흥(漫興)> 6수, <조무요(朝霧謠)> 1수, <하우요(夏雨謠)> 2수, <일모요(日暮謠)> 1수, <야심요(夜深謠)> 1수, <기세탄(饑歲歎 : 饑歲謠)> 1수, <오우가(五友歌)> 6수, <고금영(古琴詠)> 1수로 되어 있다.

윤선도의 문학 세계

 

고산의 문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견회요, 우후요이다. 이 시기 고산의 문학은 현실적 상황과 직면하여 그의 내심과 갈등과 모순이 충돌하였던 격동기로 규정된다.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과 이를 거부하는 주변 상황 때문에, 어둡고 음울한 경향이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강직한 성격 때문에 곤궁을 당하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뫼흔 길고 길고 믈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만코 만코 하고 하고

어듸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나니

중기의 작품에서는 너무나 그와 밀착된 공간으로 그려져 담박하게만 보였던 산과 강도 초기에는 자신의 지향을 가로막는 단절의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뛰어넘을 수 없는 산과 강을 사이 에 두고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삭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러기는 날개를 가진 존재, 비상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항상 떼지어 날아다니던 무리에서 일탈되어 홀로 가고 있다. 그것은 무리를 찾는 울음일 수 있고, 또는 자신이 한 마리의 기러기가 되어 단절의 벽인 산과 강을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산 윤선도의 국문시가에서 최후의 작품은 몽천요(夢天謠)3장이다. 전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다가왔던 현실과 이상의 갈등을 그는 인생의 종반에서 꿈으로 풀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꿈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꿈의 형식을 빌었지만 꿈을 꿀 수 없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샹해런가 꿈이런가 백옥경(白玉京)의 올라가니

옥황(玉皇)은 반기시나 군선(郡仙)이 꺼리나다

두어라 오호연월(五胡烟月)이 내 분(分)일시 올탓다 -몽천요1-

이는 자신의 인생 역정에 대한 분명한 자기 확인이다. 자신의 인생이 또 다시 시작되어도 지나온 인생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굳은 인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더 찾을 거리

- 윤선도,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작품 해제 :

효종 2년(1651년), 작가가 67세 이후 전남 보길도에 은거하며 지은 것으로,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을 각각 10수씩 읊은 총 40수의 연시조이다. 각 작품에 계절마다 펼쳐지는 어촌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부 생활의 흥취를 노래하고 있다.

고려 시대부터 전해 오던 '어부가'를 이현보가 개작하고, 윤선도가 다시 창작한 것이 '어부사시사'이다. 원래의 '어부가'와 이현보의 '어부가'는 한문 고시(古時)를 그대로 따서 토를 붙인 것에 불과한 데 비해, 윤선도는 난삽한 한시구(漢詩句)를 순 우리말로 바꾸었다. 특히 기교면에서 대구법(對句法)의 처리, 환경 변화와 시간의 추이에 따른 시상 전개의 조화가 주목 할 만한다. '어부사시사'에는 윤선도의 독특한 경지인 우리말의 조탁(彫琢)에 의한 아름다움의 표현, 속화된 자연을 시로써 승화시킨 점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여음구를 효과적으로 살려 시조의 리듬 효과를 고양시키는 한편 청유형과 의문형을 조화 있게 사용하여 이 시조를 읽는 독자층에게 친근감을 주는 한편 작가와 더불어 자연에 동화되게 하는 효과를 동시에 살리고 있다.

참고문헌

 

조동일, <한국 문학 통사> (지식산업사, 1993)

이상익 외, <고전 문학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집문당, 1994)

이해하기

 

1.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하고 있다고 할 때, 빈('貧)과 관련 깊은 시어를 모두 찾아보자.

교수·학습 방법 :

안빈낙도는 가난한 처지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지켜 즐기는 태도를 가리킨다. 가난함을 드러내는 시어를 찾게 한다. 가난함은 의식주 차원에서 드러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작품에서 작가는 벼슬을 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자신의 분수에 맞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안빈낙도의 정신과 일치한다. 이러한 안빈낙도의 정신은 '뛰집, 보리밥, 풋나물' 등의 소재를 통해 잘 구현된다.

2. 이 작품에서 다음 구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말해 보자.

그나믄 녀나믄 일

 

교수·학습 방법 :

시인은 자연 속에서 삶의 안식을 구하고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세속, 즉 벼슬길과 대립되는 공간이었음을 주지시킨다. 작가의 삶과 관련지을 필요가 있다.

 

예시 학생 활동 :

2수에서 말하고 있는 '그나믄 녀나믄 일'이란 작가에서 좌절감을 안겨준 벼슬길이다. 작가는 벼슬과 관련된 현실에 무심하며 자연 속에 은거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다.

3. 윤선도의 시조가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윤선도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고, 윤선도의 작품이 내용면, 형식면에서 전대의 시조와 어떻게 갈고 다른 가를 설명하게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윤선도의 시조는 조선 전기에 이어 우리 시조의 아름다움을 완성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즉 어부사시사의 경우 후렴구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후렴구를 사용함으로써 음악성을 동시에 흥겨움을 부여하는 효과를 높이고 있다.

4. 이 시기에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노래한 다른 작품들을 조사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인터넷을 이용해서 자연 속에서 삶의 안식을 구하거나, 자연 속에서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시조를 조사하게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조선 후기에 이르러 자연은 흥취의 공간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으로 다음을 들 수 있다.

 

말없는 청산이요

말 업슨 청산(靑山)이요, 태(態) 업슨 유수(流水) l 로다.

갑 업슨 청풍(淸風)이요, 님자 업슨 명월(明月)이라.

이 중(中)에 병(病) 업슨 이 몸이 분별(分別) 업시 늙으리라. - 성혼

농암에 올라 보니

농암애 올아 보니 노안(老眼)이 유명(猶明)이로다.

인사(人事)l 변한들 산천이야 가실가.

암전(巖前) 모수모구(模水模丘)이 어제 본 듯 하예라. - 이현보

두류산 양단수를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녜 듯고 이졔 보니.

도화(桃花) 뜬 말근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겨셰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매오 나난 옌가 하노라. -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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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작품과 다음 시에 나타난 시적 화자의 태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해 보자.

 

- 두보, '두시언해초 절구'

작품 해제 :

두보가 53세(764년) 때의 봄, 피난지 성도(成都)에서 지은 무제(無題)의 절구 2수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봄의 정경. 그 봄이 또 지나감을 아쉬워하며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읊은 걸작이다. 벽(碧)·백(白)·청(靑)·홍(紅)의 화려한 색채의 조화, 거기에 조응된 작가의 초라한 삶과 향수를 역력히 읽을 수 있다. 어느 날이나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될 해인가를 절실히 토로하고 인생의 무상감을 강조하며 향수에 애태우던 두보는 결국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

작가소개 :

두보(杜甫, 712~770) : 중국 성당 시대의 시인. 자 자미(子美). 호소릉(少陵).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으며, 또 이백(李白)과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일컫는다. 우수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제재를 많이 따서, 널리 인간의 사실, 인간의 심리, 자연의 사실 가운데서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는데, 표현에는 심혈을 기울였다. 대표작으로 '북정(北征)' , '추흥(秋興)' , '삼리삼별(三吏三別)' , '병거행(兵車行)' , '여인행(麗人行)' 등이 있다. 그의 시 작품과 시풍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대어 풀이 :

 

강이 푸르니 새는 더욱 희고,

산이 푸르니 꽃 빛이 불붙는 듯하다.

보건대 올봄이 또 지나가니,

어느 날이 돌아갈 해인가?

교수·학습 방법 :

두보의 삶과 제시된 '절구'에 대해서 조사하게 한 후에 이를 토대로 두 작품에서 나타난 화자의 태도의 차이를 설명하게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윤선도의 '만흥' 과 두보의 '절구'에서 보이는 시적 화자의 공통점은 자연을 통해 시적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윤선도의 시조에서 자연은 시적 화자의 한가로운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이 되었다면, 두보의 '절구'에서 자연 은 시적 자아의 정서와 대비하기 위해 제시된다. 즉 두보의 시에서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는 작자의 쓸쓸한 심회가 대조됨으로써 시적 자아의 고향 상실감은 한층 더 고조되고 있다.

2. 이 작품처럼 자연 대상에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투영하는 시나 시조를 써 보자.

 

교수·학습 방법 :

먼저 자연과 교감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 후에, 자연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태도를 결정하게 한다. 이를 토대로 자유롭게 시조나 시를 써 보게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제목 : 낙엽

 

가을을 준비하는,

나무를 위한

마지막을

낙엽은 오로지

죽으면서

다시 살아나 듯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지키는데,

가을을 수놓을

마지막 잎새의

이 붉은 고달픈 사랑은

어느 조용한 밤,

찬바람에 말없이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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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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