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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散文)으로 쓴 환상시(幻想詩) / 도데(Daudet)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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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散文)으로 쓴 환상시(幻想詩)  / 도데(Daudet) 

 

 

 

 오늘은 아침 문을 열었을 때, 풍차간 주위는 온통 흰 서리로 덮여 있었습니다. 풀잎은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고 바스락거렸으며 언덕 전체가 추위로 떨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동안에 사랑하는 프로방스가 한대 지방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서리가 하얗게 빛나고 있고, 저 맑게 갠 하늘 위엔 하인리히 하이네의 나라에서 온 황새들이 커다란 삼각형을 이루며 까마르그 쪽으로 '추워… 추워…' 외치며 날아가고 있었는데, 나는 흰 서리가 꽃술처럼 덮인 소나무들과 수정의 꽃이 핀 라벤더 숲 속에서 다소 독일풍인 두 편의 환상시를 썼습니다.

왕자의 죽음

 어린 왕자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왕국의 모든 교회에서는 왕자의 회복을 빌며 낮이나 밤이나 성체를 내어 놓고, 커다란 초에 불을 켜 놓았습니다. 고색 창연한 거리는 고요하고 쓸쓸했으며 교회의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차들도 조용조용히 다녔습니다……. 궁궐 주위의 주민들은 궁금해서, 위엄 있는 태도로 궁정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금줄 단 뚱뚱보 위병들을 창살 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성 안이 온통 들끓고 있었습니다. 시종들과 청지기들이 종종걸음으로 대리석 층계를 오르내립니다. 현관에는 비단옷을 입은 신하들과 시동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새로운 소식을 알아내려고 수군거립니다. 넓은 계단 위에서는 눈물에 젖은 시녀들이 수를 놓은 고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오렌지 온실 안에서 가운을 입은 의사들의 회합이 거듭됩니다. 그들의 긴 검정 소매가 움직이고, 길게 늘인 가발이 점잖게 수그러지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입니다. 사부와 시종은 문 앞에서 서성대며 시의의 발표를 기다립니다. 요리사들이 그들 곁을 인사도 없이 지나갑니다. 시종은 이교도처럼 욕설을 퍼붓고, 사부는 호라스의 시를 읊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 편 마구간 쪽에서는 구슬픈 말 울음 소리가 길게 들려 옵니다. 그것은 마부들이 잊고 밥을 주지 않아 텅 빈 구유 앞에서 슬프게 울부짖고 있는 왕자의 밤색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어디 계신가? 임금님은 성 끝에 있는 방 안에 홀로 들어앉아 계십니다. 임금님들이란 남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여왕님은 다릅니다. 여왕님은 어린 왕자의 머리맡에 앉아 고운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비단장수처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흐느껴 울고 계십니다.

 레이스가 달린 침대에는 어린 왕자가, 깔고 누운 요보다도 더 흰 얼굴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듯 하였지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마마마, 왜 울고 계셔요? 정말 제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여왕님은 대답을 하려고 하였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어마마마, 제발 울지 마세요. 제가 왕자라는 것을 잊으셨군요. 왕자가 이렇게 죽을 수 있나요?"

여왕님은 더욱더 흐느껴 웁니다. 그래서 왕자도 무서워집니다.

"그만두세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죽음이 여기까지 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 거예요 ……. 당장 사십 명의 아주 힘센 근위병을 오게 해서 침대 주위를 둘러싸게 해 주세요 ……. 대포 백 문을 창 밑에 배치하여 도화선에 불을 붙인 채, 밤이나 낮이나 지키게 해 주세요. 그래도 죽음이 접근해 올 때는 호통을 쳐 줄 거야!"

 왕자를 즐겁게 해 주려고 여왕님은 손짓을 합니다. 당장 궁정 안으로 커다란 대포가 굴러 오는 소리가 들리고 창을 든 장대한 사십 명의 근위병들이 몰려와 방 안에 둘러섭니다. 이들은 수염이 허옇게 된 노병들입니다. 왕자는 그들을 보자 손뼉을 칩니다. 왕자는 그들 중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로뎅! 로뎅"

그가 침대 앞으로 한 걸음 나섭니다.

"로뎅, 난 당신이 참 좋아……. 당신의 장검을 좀 보여 줘. 죽음이 나를 잡으려고 하면 죽여 버려야 하겠지?"

로뎅이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노병의 거무죽죽한 뺨 위에는 굵은 눈물이 두 줄 흘러내립니다.

 이 때, 궁정 목사가 왕자 곁으로 가까이 오더니 십자가를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어린 왕자는 아주 놀란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갑자기 목사의 말을 가로막습니다.

"사제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베뽀 녀석에게 돈을 많이 주고 내 대신 죽게 할 수는 없을까요?"

 목사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어린 왕자는 더욱더 놀란 얼굴을 합니다.

 목사가 이야기를 다 끝내자, 어린 왕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 나를 아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저 하늘 위 별들의 낙원에 가도 나는 역시 왕자일 터이니까 안심이 되는군요……. 하느님은 나의 친척이니 나를 신분에 맞도록 대우할 것을 잊으시진 않겠죠."

 그리고는 어머니 쪽으로 몸을 돌리며 왕자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제 가장 고운 옷들, 흰 담비가죽 저고리와 빌로오도 무도화를 가져오라고 하세요! 왕자의 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천사들에게 뽐내고 싶어요."

목사는 세 번째 어린 왕자를 향해 몸을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왕자는 화를 내며 말을 가로막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왕자란 아무것도 아니군요!"

그리고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하지 않고, 벽을 향해 돌아눕더니, 왕자는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풍차간의 편지>

들판의 군수님

나이팅게일의 말에 한시름 놓은 새들은 다시 노래를 계속하고, 샘물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으며, 오랑캐꽃은 다시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군수님이 그 곳에 있다는 사실엔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 군수님은 이러한 경쾌한 소란 속에서 태연하게 공진회 시신의 가호를 마음 속으로 기원하며 연필을 들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연설문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 하고 군수님이 엄숙하게 서두를 꺼내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보이는 거라곤 커다란 딱따구리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딱따구리는 그가 벗어 놓은 모자 위에 앉아서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군수는 어깨를 으쓱 치켜 올리고 나서 연설을 계속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딱따구리가 잽싸게 말을 가로채며 멀리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소용없어요!"

"뭐라고? 소용없다고?"

군수님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팔을 휘둘러 저 방자한 새를 쫓아 버리고 나서 더욱 목소리를 가다듬어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 하고 똑같은 서두가 시작되자 귀여운 오랑캐꽃들이 줄기 끝에서 군수님에게 고개를 내밀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군수님, 우리들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죠?"

이어서 이끼 밑으로 샘물이 졸졸 맑은 소리로 흐르고, 머리 위 나뭇가지 위에서는 휘파람새들이 우르르 몰려와 명랑한 소리로 울어댑니다. 작은 숲 전체가 결탁을 한 듯이 군수님의 연설문 작성을 한사코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숲 전체의 결사적인 방해에 군수님은 오랑캐꽃 향기에 취하고, 노래 소리에 넋을 잃어 온몸을 파고드는 숲의 매력에 끌려들어 가지 않으려 저항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는 팔꿈치를 괴고 풀 위에 누워 고운 옷의 단추를 풀며 두어 번 중얼거려 보았습니다.

"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내빈 및 친애하는 군민 여러분……""내빈 및 친애……"



 요점 정리

지은이 : 도데(Daudet) /김사행(金思行) 옮김

갈래 : 단편소설, 서정 소설

성격 : 종교적, 명상적, 서정적, 비극적

표현 : 1. 반복적인 구성-목사와 왕자의 대화를 세 번 연속시킴 2. 직접적인 설교의 배제-목사님의 말씀을 직접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독자 스스로  목사님이 제시하고자 하는 교훈을 생각나도록 함. 간접 제시법, 보여주기의 수법

제재 : 왕자의 죽음

주제 : 인간의 한계와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자각

출전 : <풍차 방앗간의 편지> (1869)

줄거리 : 여기에 인용된 부분은 '산문으로 쓴 환상시'라는 단편의 일부이다. 이 단편은 '왕자의 죽음'과 '들판의 군수님'이라는 두 개의 에피소드(episode)로 구성되어 있다.

 '들판의 군수님'에는 군민(郡民)들 앞에서 멋진 연설을 하려고 원고를 쓰기 위해 숲 속에 들어갔던 군수님이 등장한다. 군수님은 숲 속의 동물들이 내는 소리에 신경질을 낸다. 원고 쓰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수님은 곧 새들의 노랫소리, 짐승들의 행복한 세계에 빠져 원고 쓰는 일을 포기하고 노래하며 시를 쓰는 일에 몰두한다. 원고 따위의 일은 까맣게 잊고 만 것이다.

구성 : 반복적인 구성 - 목사와 왕자의 대화를 세 번 연속하고, 직접적인 설교를 배제하여 독자 스스로가 목사가 제시하는 교훈을 생각하도록 하고, 그로 인해 목적 목학으로 떨어지지 않음.

서문 :  흰 서리로 덮인 라벤더 숲 속에서 두 편의 환상시를 썼음

기 : 병이 든 왕자의 죽음을 앞 둔 궁정 안의 불안한 분위기

서 :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왕자

결 :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왕자

 

내용 연구

어린 왕자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왕국의 모든 교회에서는 왕자의 회복을 빌며 낮이나 밤이나 성체를 내어 놓고, 커다란 초에 불을 켜 놓았습니다. 고색 창연한 거리는 고요하고 쓸쓸했으며 교회의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차들도 조용조용히 다녔습니다(왕자의 죽음을 앞 두고, 온 나라와 백성들이 슬픈 분위기에 잠겨 있는 모습, 왕국의 슬픔을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 작가는 여전히 관찰자의 시점에 서 있지만, 냉혹한 과학자의 시선이 아니라 따뜻한 공감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왕자의 죽음이 왕국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그는 마치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좋은 인상을 받았던 여행자처럼 마을 사람들과 같이 이러한 행동을 의문 삼지 않고 제시하고 있다.)……. 궁궐 주위의 주민들은 궁금해서, 위엄 있는 태도로 궁정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금줄 단 뚱뚱보 위병들을 창살 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성 안이 온통 들끓고 있었습니다(왕자의 병에 온나라가 근심 걱정에 빠져 있다는 말). 시종들과 청지기들이 종종걸음으로 대리석 층계를 오르내립니다. 현관에는 비단옷을 입은 신하들과 시동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새로운 소식을 알아내려고 수군거립니다. 넓은 계단 위에서는 눈물에 젖은 시녀들이 수를 놓은 고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습니다.(왕자의 위독함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음)

 오렌지 온실 안에서 가운을 입은 의사들의 회합이 거듭됩니다(왕자의 병색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 작품 내용으로 보아 의사들의 회합은 오랜 기간에 걸쳐 거듭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 안 되는 사이에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자의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이 약간 거리를 두고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오렌지 온실과 검은 가운의 색 대조가 짙은 불안을 더해 주고 있다.). 그들의 긴 검정 소매가 움직이고, 길게 늘인 가발이 점잖게 수그러지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입니다. 사부와 시종은 문 앞에서 서성대며 시의의 발표를 기다립니다(긴장된 분위기). 요리사들이 그들 곁을 인사도 없이 지나갑니다. 시종은 이교도처럼 욕설을 퍼붓고, 사부는 호라스(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로마에서 활동한 뛰어난 서정 시인, 풍자작가.)의 시를 읊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 편 마구간 쪽에서는 구슬픈 말 울음 소리가 길게 들려 옵니다. 그것은 마부들이 잊고 밥을 주지 않아 텅 빈 구유 앞에서 슬프게 울부짖고 있는 왕자의 밤색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어디 계신가? 임금님은 성 끝에 있는 방 안에 홀로 들어앉아 계십니다. 임금님들이란 남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통치자의 이중적인 모습을 암시, 어린 왕자의 첫 번째 별의 왕과 같은 이미지로, 그 왕은 자신의 권위가 존중되기를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었는데 그 내용과 비슷한 연상을 줌). 그러나 여왕님은 다릅니다. 여왕님은 어린 왕자의 머리맡에 앉아 고운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비단장수처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흐느껴 울고 계십니다.

 레이스가 달린 침대에는 어린 왕자가, 깔고 누운 요보다도 더 흰 얼굴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듯 하였지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마마마, 왜 울고 계셔요? 정말 제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여왕님은 대답을 하려고 하였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어마마마, 제발 울지 마세요. 제가 왕자라는 것을 잊으셨군요. 왕자가 이렇게 죽을 수 있나요?"

여왕님은 더욱더 흐느껴 웁니다. 그래서 왕자도 무서워집니다.

"그만두세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죽음이 여기까지 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 거예요 ……. 당장 사십 명의 아주 힘센 근위병을 오게 해서 침대 주위를 둘러싸게 해 주세요 ……. 대포 백 문을 창 밑에 배치하여 도화선에 불을 붙인 채, 밤이나 낮이나 지키게 해 주세요. 그래도 죽음이 접근해 올 때는 호통을 쳐 줄 거야!" (군사력으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진난만한 태도가 나타남.)

 왕자를 즐겁게 해 주려고 여왕님은 손짓을 합니다. 당장 궁정 안으로 커다란 대포가 굴러 오는 소리가 들리고 창을 든 장대한 사십 명의 근위병들이 몰려와 방 안에 둘러섭니다. 이들은 수염이 허옇게 된 노병들입니다. 왕자는 그들을 보자 손뼉을 칩니다. 왕자는 그들 중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로뎅! 로뎅"

그가 침대 앞으로 한 걸음 나섭니다.

"로뎅, 난 당신이 참 좋아……. 당신의 장검을 좀 보여 줘. 죽음이 나를 잡으려고 하면 죽여 버려야 하겠지?"

로뎅이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노병의 거무죽죽한 뺨 위에는 굵은 눈물이 두 줄 흘러내립니다. (전체적인 인물 배치에서 보면 노병은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물들과 그 슬픔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모르는 왕자 사이에 있다. 어린 왕자가 하는 명령의 천진함은 슬픔을 감추던 노병이 눈물을 보이게 한다. 여기서 노병은 왕자의 죽음이 아니라 어린이의 죽음을 보고 있다.)

 이 때, 궁정 목사가 왕자 곁으로 가까이 오더니 십자가를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어린 왕자는 아주 놀란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갑자기 목사의 말을 가로막습니다. (목사는 왕자의 죽음을 병사들의 호위로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왕자에게 설명한다. 말하자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겸허하게 깨닫고 그간의 과오를 신 앞에 회개하며 용서를 빌면서 평화롭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요지의 설교를 직접 제시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은 종교 문학 내지 목적 문학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왕자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보여 주고 있다면 목사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제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베뽀 녀석에게 돈을 많이 주고 내 대신 죽게 할 수는 없을까요?" (노병에 대한 요구는 권력, 베뽀에 대한 요구는 재물에 대한 왕자의 신뢰를 보여 주고 있다. 권력과 재물은 사람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지만, 결국 인생의 대리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말은 권력과 재물은 삶과 행복의 물질적 토대이지만, 그것이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왕자는 천진함으로 그가 최초에 세상에 갖게 된 인상, 즉 재물과 권력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지만, 행복이 그러한 것처럼 죽음 앞에서도 재물과 권력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이 '들판의 군수님'과 나란히 하나의 제목 아래 있는 것은 그러한 인식의 동등함 때문이다. 돈으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진난만한 태도가 나타남.)

 목사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목사의 이야기가 제시되지 않은 이유는 첫째, 지루한 설교를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둘째, 독자가 상상으로 이야기를 채움으로 해서 독자는 죽음이 무엇인지 자문자답할 수 있다. 셋째, 상상하는 과정에서 왕자를 설득하는 입장에 서 보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게 한다.). 어린 왕자는 더욱더 놀란 얼굴을 합니다.

 목사가 이야기를 다 끝내자, 어린 왕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 나를 아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저 하늘 위 별들의 낙원에 가도 나는 역시 왕자일 터이니까 안심이 되는군요……. 하느님은 나의 친척이니 나를 신분에 맞도록 대우할 것을 잊으시진 않겠죠." (계급적이고, 특권적인 사고 방식의 엿보임)

 그리고는 어머니 쪽으로 몸을 돌리며 왕자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제 가장 고운 옷들, 흰 담비가죽 저고리와 빌로오도 무도화를 가져오라고 하세요! 왕자의 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천사들에게 뽐내고 싶어요."

 목사는 세 번째 어린 왕자를 향해 몸을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세 번째'라는 관형어의 위치가 문장의 의미를 애매하게 한다. 이런 오류를 이중의 의미의 오류라고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합니다'의 반복 사용은 목사의 설교를 직접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독자 스스로 목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을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 이야기를 하는 도중 왕자는 화를 내며 말을 가로막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왕자란 아무것도 아니군요!" (왕자는 많은 근위병들을 거느리고, 또 화려한 옷과 권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찾아온다. 목사님은 왕자에게 인간의 한계에 대해 설교하면서 인생과 종교의 참된 가치를 가르쳐 준다. 그래서 왕자 스스로 죽음을 깨닫게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하지 않고, 벽을 향해 돌아눕더니, 왕자는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자각했기 때문에) <풍차간의 편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인생의 목표는 사람마다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물과 권력, 명예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이 작품의 왕자는 이러한 것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작자는 이들을 등장시켜, 과연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며,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왕자는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과신(過信)하고 있다. 그러나 목사가 나타나서 그러한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그렇다면 진정한 삶의 가치란 무엇일까. 작자는 그것을 직접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독자들은 왕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적어도 재물, 권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교훈을 얻는다.

 도데는 서정적인 필체로 전원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면서도,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종교적·철학적 탐구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인생의 교훈을 직접 들을 수도 있지만, 이처럼 서정적인 단편 문학을 접하면서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출처 : 한계전 외 2인 공저 대한교과서 발간 문학교과서)

 '들판의 군수님'에서는 군민(君民)들 앞에서 멋진 연설을 하려고 원고를 쓰기 위해 숲 속에 들어갔던 군수님이 등장한다. 군수님은 숲 속의 동물들이 내는 소리에 신경질을 낸다. 원고 쓰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수님은 곧 새들의 노랫소리, 짐승들의 행복한 세계에 빠져 원고 쓰는 일을 포기하고 노래하며 시를 쓰는 일에 몰두한다. 원고 따위의 일은 까맣게 잊고 만 것이다.

 


이해와 감상2

 알퐁스 도데는 프랑스 문학사에서 자연주의를 예고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사는 행복을 묘사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과 부분 부분을 묘사하면서 독자에게 전체적인 흐름을 감지하게 하는 기법으로 쓰여져 있다. 그는 냉철한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그 이면의 아름다움을 감지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도 과도한 감정의 흐름에 빠지지 않은 점에서 독자에게 인상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왕자의 죽음'이라는 짧은 작품은 '들판의 군수님'과 함께 '산문으로 쓴 환상시'라는 단편에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한 주제를 양면에서 파악하고 있다. 왕자와 군수라는 직책은 권력과 재물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을 통해 권력과 재물이 소용없거나 필요 없는 어떤 각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공통된다. 반면 두 작품의 차이는 이 두 사람이 처한 현실이 다르다는 데 있다. 왕자는 죽음에 처해 있으며 죽음 앞의 무력감을 점차 느끼게 되는 반면, 군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의 유지와 자연 속에서 시를 쓰며 살고 싶다는 미적 본능 사이에서 자연의 유혹을 느끼고 있다. 둘 다 우화의 수법을 쓰고 있지만, '왕자의 죽음'은 단계적 설정 혹은 논리적 진전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 '들판의 군수님'은 자연 사물의 의인화와 낭만적 서술을 통해 이를 보여 준다.

  삶과 죽음을 함께 제시하고 죽음 앞의 무력함과 자연 속에서의 예술 본능의 강렬함을 차례로 보여 주면서, '산문의 환상시' 전체는 독자에게 인생의 목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출처 : 김병국 외 4인 공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

 그리고 '산문으로 쓴 환상시'의 두 작품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를 묻고 있는 작품이다.

 

심화 자료

존재(存在)와 소유(所有)의 차이

 우리는 흔히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 또, 스스로도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 즉 사랑과 이성의 능력을 버리고 '소유'만을 위해 사는 인생은 불행하다. 철학에서는 '존재'를 위해 사는 태도를 '본래적 자아', '소유'만을 위해 사는 태도를 '현상적 자아'로 분류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를 잊고 소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을 '자기 소외' 현상으로 설명한다. '현상적 자아'가 '본래적 자아'를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출처 : 한계전 외 2인 공저 대한교과서 발간 문학교과서)

알퐁스 도데의 문학 세계

  다른 자연주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도데도 잔뜩 노트를 한 수첩들을 갖고 있으면서, 그의 노트를 소설 속에 쏟아 넣었다. 그러나 그는 시인의 넋도 또한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결코 구속하지도 감추지도 않았다. 즉 이 넋이 끊임없이 이야기 속에 기어들어 오고 있는데, 그가 유능한 것은 바로 그 점에서인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 있는, 실제로 겪은 개인적 인상, 단지 본 것뿐만 아니라 느낀 것, 이 모든 것이 그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또는 감미롭게 떨게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즉 그는 그의 공감을 자아내 주는 모든 것의 묘사에 있어서 탁월했던 것이다. 학자의 몰개성(沒個性)은 결코 그의 능사(能事)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감동의 외부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갈 줄을 알았으며, 문장의 표현법 자체 속에서, 한 마디의 말 속에서, 한 개의 형용사 속에서 언제나 떨리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는 그의 마음의 내적 전율을 완전히 억제하지는 못하면서도, 어떤 대상과의 접촉에서 그가 감정을 상했었거나 애무를 받았었을 경우, 그는 대상을 정확히 적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객관적이면서도 전혀 몰개성적이 아닌 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프로방스 사람인 그는 프로방스 지방을, 그 태양과 풍경을 그렸다. 리옹과 파리의 인구가 많은 지구에서, 소시민 계급 사이에서 살았고, 자기 자신 고생했고, 상인, 점원, 노동자 등 고생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접촉하고 있었으므로, 리옹과 파리의 낡은 집들이며, 시끄러운 거리들, 공장의 힘겹고 소란스러운 생활, 지불만기가 되는 돈을 갚기 위한, 또는 급료받는 날까지 살아가기 위한 고된 싸움, 빈궁에 맞서 기진맥진하는 나날의 노력, 이런 것들을 그는 그렸다. '자크', '동생 프로몽과 형 리슬레르', '르나바브'와 '전도사'의 어떤 장면들은 부르주아적이고 거의 서민적인 생활의 섬세하고도 강력한 묘사이다. [출처 : G. 랑송 P. 튀프로, 정기수 옮김, <랑송 불문학사> (을유문화사, 1997)]

 

도데(Alphonse Daudet)

1840. 5. 13 프랑스 님~1897. 12. 16 파리(?). 프랑스의 작가.

주로 프랑스 남부 지방의 인물과 생활을 익살스럽고 정감있게 묘사한 것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의 장편소설 〈 동생 프로몽과 형 리슬레르 Fromont jeune et Risler aine〉(1874)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았다.

 


생애

도데는 견직물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849년에 아버지는 공장을 팔고 리옹으로 이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옹에 간 알퐁스는 처음에는 그 습기찬 공기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곧 엉뚱한 짓과 론 강의 생활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는 14세 때 처음으로 시와 소설을 썼다. 1857년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도데는 대학 진학의 꿈을 버려야 했다. 그는 알레스에 있는 한 학교에서 사환으로 일했는데, 이 불행한 생활은 6개월 만에 결국 해고당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의 반(半)자서전적 소설인 〈꼬마 Le Petit Chose〉(1868)에 주제를 제공해주었다. 이 소설은 그때의 경험에 살을 붙이거나 생략하여 재미있게 꾸민 것이다. 1857년말에 그는 형 에르네스트가 있는 파리로 갔다.

그후 도데는 글쓰는 일에 몰두하는 한편 보헤미안 문단과 사교계 문단을 모두 드나들기 시작했다. 젊고 잘생긴 그는 모델인 마리 리외와 관계를 맺고, 유일한 시집인 〈연인들 Les Amoureuses〉(1858)을 리외에게 헌정했다. 그는 리외와 오랫동안 골치아픈 관계를 계속했는데, 이 관계는 훨씬 나중에 〈사포 Sapho〉(1884)라는 반자서전적 소설에 반영되었다. 그는 또한 신문, 특히 〈피가로 Le Figaro〉지에 자주 작품을 기고했다. 1860년에 그는 19세기 프로방스어 문학부흥운동의 지도자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을 만나, 남프랑스의 생활에 열중하게 되었다. 남프랑스의 생활은 북부의 윤리적이고 지적인 엄격성과는 반대로 열정적이고 예술적이며 관능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같은 해 그는 모르니 공작의 비서로 일자리를 얻었다.

그의 건강은 가난과 그리고 결국은 그의 목숨을 앗아간 성병에 서서히 침식당하고 있었다. 도데는 1861년에서 186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을 알제리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 얻은 성과 가운데 하나가 〈사자 사냥꾼 샤파탱 Chapatin le tueur de lions〉(1863)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사자 사냥꾼은 도데의 미래의 주인공 타르타랭의 첫번째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 도데가 처음으로 쓴 희곡 〈마지막 우상 La Derniere Idole〉은 1862년에 파리의 오데옹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방앗간 소식 Lettres de mon moulin〉(1869)에서 그는 1862년말 코르시카에서 보낸 겨울을 회상하고 있다. 1863~65년(모르니 공작이 죽을 때까지)에 겪은 풍부한 사회생활은 그가 〈르 나바브 Le Nabab〉(1877)에서 무자비하게 분석한 자료를 그에게 제공해주었다. 1867년 1월에 그는 재능있는 작가인 쥘리아 알라르와 결혼했는데, 그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고, 그녀는 그의 이후 작품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레옹과 뤼시앵이라는 두 아들과 에드메라는 딸 하나를 낳았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은 그의 2번째 단편집 〈월요일 이야기 Les Contes du lundi〉(1873)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전쟁 때 도데는 군에 입대했지만, 1871년 파리 코뮌의 공포정치 때 파리를 탈출했다. 그의 〈타라스콩의 타르타랭이 겪은 놀라운 모험 Les Aventures prodigieuses de Tartarin de Tarascon〉(1872)은 별로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천진함과 허풍스러움을 풍자한 인물로서 유명하다. 〈아를의 여인 L'Arlesienne〉이라는 희곡도 역시 실패했으나 1885년에 재공연되었을 때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의 다음 소설인 〈동생 프로몽과 형 리슬레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고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후 몇 년 동안(적대적인 비평이 전혀 없지는 않았음) 그는 부귀와 명성을 누렸다.

말년에 도데는 성병이 척수까지 번져 심한 고통을 겪었다. 〈고통 La Doulou〉(1931년까지 출판되지 않았음)은 고통을 연구함으로써 완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감탄할 만한 자제심으로 온갖 종류의 책을 써서 파리의 문단과 음악계를 계속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젊은 작가들(예를 들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친절한 후원자였다. 1895년에 그는 런던과 베네치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2년 뒤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평가

심리학적으로 볼 때, 도데는 상충하는 요소들의 통합을 보여준다. 모든 사회계층에서, 그리고 여행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겪은 체험은 그가 타고난 재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남프랑스 사람이었던 도데는 정념에 대한 이해와 지중해적인 세계관을 결합했고, 인간행동의 세부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동안 다른 사람들을 관찰한 내용을 작은 공책들에 기록했고, 이 공책들을 영감의 보고로 이용했다. 소설은 "어떤 역사도 갖지 못할 사람들의 역사"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접근 방식은 냉정한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그는 줄곧 감상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선입관에서 자유로웠던 그는 동료 자연주의자들과는 달리, 세계의 추악한 면에만 관심을 쏟는 소설가들은 세계의 다양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는 겉으로 드러난 세부적인 면에 객관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의 글에는 이런 관심과 동시에 유난히 동정심이 많은 인간성과 사물 및 개인의 신비에 대한 외경심도 표현되어 있다. 그의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은 내적인 진실성을 갖고 있으며, 그는 물질적 현상을 묘사할 때처럼 충실하게 이 진실성을 재현했다. 나아가, 그는 정념에는 운명의 힘과도 같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생각은 그의 많은 글에서 열매를 맺어 그의 풍자는 동정심으로 부드러워지곤 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모파상뿐 아니라 영국의 찰스 디킨스와도 유사점을 갖는다.

도데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의 계통을 따라 계속 발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문학적 경향이 서로 동떨어진 삽화들처럼 잇따라 나타난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래도 〈타라스콩의 타르타랭이 겪은 놀라운 모험〉에 나타난 반낭만주의적 풍자는 〈방앗간 소식〉에서는 점묘파나 인상파 화가들과 비슷한 사실주의로 바뀌었고, 이것은 다시 남프랑스의 특성을 조롱한 초기작품을 수정하기 위해 쓴 〈아를의 여인〉의 비극적 색조로 이어졌다. 또한 〈꼬마〉와 〈월요일 이야기〉에는 풍자보다 오히려 동정과 염려가 더 많이 담겨 있다. 도데는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의 갈등에 점점 더 몰두하게 되었다. 〈자크 Jack〉(1876)는 육체적 사랑과 모성애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한 여인을 묘사하고 있고, 〈뉘마 루메스탕 Numa Roumestan〉(1881)은 남자와 여자의 북부적 성격과 남부적 성격 사이의 적개심을 묘사하고 있으며, 〈전도사 L'Evangeliste〉(1883)는 종교적 광신과 싸우는 아들의 애정을, 〈작은 교구 La Petite Paroisse〉(1884)는 질투심의 모순을 다루고 있다. 〈사포〉에서 제기하는 도덕적 문제는 자신이 버리고 떠나는 소녀에 대한 동정심과 자유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연인의 해묵은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 세대 전체의 청년들에 대한 도데의 평가가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아를라탕의 보물 Le Tresor d'Arlatan〉(1897)과 〈삶에 대한 단상(斷想) Notes sur la vie〉 및 〈새로운 단상 Nouvelles notes〉은 프로이트보다 앞서서 억압된 잠재 의식을 분석한 대담한 심리학자 도데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데의 걸작에는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 즉 진실과 환상, 무자비한 묘사와 시, 명석한 진지함과 유머 감각, 아이러니와 연민 등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자료실 돋보기



1. '들판의 군수님' 줄거리

  순시 중이던 군수님은 공진회를 향하고 있는 중이다. 군수는 주민들 앞에서 할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더운 마차 안에서 잠깐 밖을 내다본 군수님은 상록 참나무의 숲이 눈에 띄자 잠시 쉬다가 가고 싶어진다. 수행원들에게 기다리라 하고 상록 참나무의 숲에 간 군수는 열심히 연설을 준비한다. 그러나 샘물, 딱따구리, 꾀꼬리, 등 참나무 숲 전체가 속살거리는 소리에 이기지 못하고 점잖은 옷을 헤쳐 가슴을 드러낸 채 집시처럼 누워 자고, 오랑캐꽃을 씹으며 시를 쓰게 된다.

2. 더 찾을 거리

- 도데의 '별'

  줄거리 : 나는 산에서 양을 치고 사는 목동으로, 이곳은 사람들의 인적이 뜸하다. 두 주일에 한번씩 미아로와 노라드 아주머니가 보름치의 양식을 실어다 주면서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무엇보다도 나의 관심은 주인집 딸인 스테파네트 아가씨였다. 어느 소나기가 오는 일요일, 식량을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대신 가져왔다. 아가씨는 돌아가려고 했으나 강물이 아침에 온 비 때문에 불어서 건너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산 위에서 같이 밤을 지새면서 나는 별에 대한 이야기를 아가씨한테 해주었다. 아가씨는 별들의 결혼에 대해 듣던 중 조용히 내 어깨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작품 해제 : <풍차간 편지>에 함께 실려 있다. 프로방스 산기슭의 한 어린 목동이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주인 아가씨와 별을 보며 밤을 지샌, 순수한 마음을 그린 단편이다.

- 도데의 '월요 이야기'

  줄거리 : 1870년 보불전쟁 당시, 알자스 로렌 지방이 프로이센에 의해 점령당하게 되었을 때, 아멜 선생님은 이번 시간이 프랑스어를 배우는 마지막 수업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수업을 지루하게만 여기던 장난꾸러기 학생들은 그 말을 전해 듣고 숙연해진다.

작품 해제 : 보불 전쟁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역시 단편 모음집인데 '마지막 수업'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프러시아에 병합된 알사스 마을의 한 소년이 프랑스 어 마지막 수업에서 느낀 부끄러움이 일제 강점기를 겪었던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외에도 프러시아 치하에서도 자리를 지키려는 판사나 게임에 열중해서 전쟁을 망친 대령, 전쟁 중에 피자를 찾으러 나왔다가 포로로 잡혀간 부르주아 등 풍자적인 부분과 농민들 속에 남아 있는 순박한 애국심과 자식 사랑이 잘 결합되어 있다.

 

참고 문헌 :

알퐁스 도데(신혜선 역), <별 : 프로방스의 목동 이야기> (책 만드는 집, 2002)

G. 랑송 P. 튀프로(정기수 역), <랑송 불문학사> (을유문화사, 1997)

 

이해하기

1.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왕자가 죽음에 임박해서 자신의 존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정리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작품에서 구체적인 순서를 찾아내어 이를 도식화한다. 다음으로 이를 추상적인 것으로 도식화해 보고,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을 제시한다. 이러한 도식은 작품의 주제를 분명히 자각하는 데 기여한다. 작품에서 궁정 목사의 대답이 생략되어 있으므로, 왕자의 제안과 목사의 대답에 대한 반응을 통해 도식화해 본다.

예시 학생 활동 :

① 병사들을 이용한 해결(실망)→ ② 돈을 이용한 해결(죽음 수락)→ ③ 신분에 맞는 대우 요구(울음)

 이를 추상적으로 도식화하면 '① 권력으로 통제하는 물리적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음→ ② 재물을 이용한 대리인이 통하지 않는 것을 깨달음→ ③ 최소한의 명예욕도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나타난다. 이는 크게 권력과 명예, 재물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죽음 앞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자세는 어떠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2. 이 작품 속에 제시된 주제는 거의 종교적 깨달음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중심으로 다음활동을 해 보자.

(1) 이 작품의 주제를 말해 보자.

교수 ·학습 방법 :

 작품의 주제는 이 작품에서 왕자의 물음을 하나의 질문으로 집약시켰을 때 파악할 수 있다. 왕자의 질문이 제시되는 이유는 천진한 어린이의 고집스러움을 통해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도한 죽음 앞에서 인간의 자세를 독자가 생각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주제는 권력과 명예의 한계, 죽음 앞의 평등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혼자이며, 겸허한 자세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를 자각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종교적인 가르침과도 통한다.

(2) 종교적 깨달음과 문학적 주제가 동일할 수 있는지 종교적 경전과 문학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동일할 수 있다는 답과 동일할 수 없다는 답이 있을 수 있다. 두 가지 경우를 모두 예상해 보고, 형상화에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주제에 있어서의 동일함이 있을 수 있다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동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 : 문학적 주제는 종교적 깨달음을 다룰 수 있으며, 그 신비함에 대해 찬탄 어린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종교 경전은 꾸준히 보편적인 깨달음을 제시해왔다. 모든 경전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깨달음으로 대표적인 것으로 다른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있다. 이는 많은 문학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주제이기도 하다. 독특한 깨달음도 있을 수 있다. '좁은 문'은 <성경>에 토대하여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기독교식으로 천착(穿鑿)한 소설이다. 불교적 주제를 다룬 소설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있다. 이 외에도 종교적 주제나 위인에 대한작품은 많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죽음 앞에서의 겸허한 역시 종교적 주제가 형상화된 것이며, 톨스토이는 종교적 탐구를 소설로 형상화하는 데 평생의 정열을 바쳤다.

·동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 : 종교적 깨달음이 문학적 주제와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은 나타날 수 있다 하더라도 진정한 문학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문학은 끊임없는 의심이며, 그 의심은 종교의 믿음과는 다르다. 종교의 믿음이 문학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 문학적 형상화는 실패한다.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광수의 소설 '사랑'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3) 종교적 깨달음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문학적 주제로 형상화할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에 대해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종교 혹은 종교점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종교적 감수성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자상하고 고상한 인격을 지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인생을 편협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견지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의 인생에 새로운 이상을 제시하고 추구할 수 있게 한다. 사회와 문화 속에서 즐기며 살아가는 한계를 넘어 홀로 삶과 죽음 앞에 대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3. 궁정 목사는 세 차례에 걸쳐 왕자 곁으로 와서 뭔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작가는 목사의 말을 한 마디도 옮기지 않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작가는 왜 목사의 말을 옮기지 않았는지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주제를 제시하는 방법은 직접 제시와 간접 제시의 방법이 있다. 궁정 목사의 말은 간접 제시에 해당할 것이다. 독자에게 나타나는 효과를 예상하여 작가의 의도를 짐작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첫째, 지루한 설교를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둘째, 독자가 상상으로 이야기를 채움으로 해서 독자는 죽음이 무엇인지 자문자답할 수 있다. 셋째, 상상하는 과정에서 왕자를 설득하는 입장에 서 보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한다.

(2) 목사가 왕자에게 건넸을 법한 말을 상상하여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목사가 말을 건넨 당시 왕자의 질문과 대답을 들은 이후 왕자의 반응을 감안하여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게 한다. 비유를 많이 사용하는 종교적 담화의 특성도 고려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첫 번째 이야기 : 왕자님, 죽음은 날카로운 장검과 커다란 대포와 단단한 성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안개와도 같습니다. 맑은 대기와 신선한 녹음 속에 서 있다가 서서히 강으로부터 몰려오는 안개처럼, 죽음은 천천히 왕자님의 몸을 감싸고 주변의 것들을 지워갈 것입니다. 왕자님, 죽음은 우리가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를 먹다가 씨를 뱉어 놓은 곳에 어느새 사과나무가 자라 있듯이 죽음은 우리의 삶과 함께하면서 어느 순간에 갑자기 다가오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항상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눈을 활짝 뜨이게 하여 보여지는 그런 장미꽃과도 같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 왕자님, 죽음은 누구로 하여금 대신 죽게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혹해서 그것을 꺾으려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가시에 찔렸다는 것을 깨닫는 그런 아픔과도 같습니다. 이미 찔린 다음에야 누구에게 대신 아파해 달라고 할 수 없듯이 이미 죽음의 어두운 안색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지우거나 대신하게 할 수 없는 그 자신의 안색이 됩니다. 어느 날 들녘에 야유회를 갔다가 벌들이 몰려와 왕자님을 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왕자님은 벌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셨죠. 사실 그 벌들은 왕자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다만 자신의 식량이 있는 벌집을 왕자님께서 위협하셨기 때문에 왕자님에게로 달려든 것입니다. 왕자님의 친구인 베뽀도 역시 그런 운명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왕비님도 임금님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죽음의 안식 속에서 신의 얼굴을 대면할 것입니다. 다행히 왕자님은 죄의 두터운 외투를 입기에는 나이가 어리십니다. 왕자님은 천사들이 노래하고 왕자님과 함께 놀아주는 저 하늘 별들의 낙원으로 가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흰 대리석 궁전에 별빛과도 같은 천사들과 무도회를 벌이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 왕자님, 사람은 벌거숭이로 태어납니다. 벌거숭이로 태어난다는 것은 사람이 본래 신의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누리는 존재일 뿐, 그 신분을 원래 지니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상의 권세는 지상에 있을 뿐이고, 하늘의 권세는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왕자님이 누리던 것을 왕자님께서 하늘로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왕자님이 가실 별들의 낙원은 옷이 필요한 곳이 아니니까요. 그곳은 신의 아름다운 미소로 옷을 입고 신의 아름다운 음성으로 음악을 삼아 춤을 추는 곳입니다. 그곳의 천사들은 귀천이 따로 없지요. 모두가 신의 아이들일 뿐입니다. 왕자님도 그곳에서 천상의 권세를 가진 신의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구별도 없고 질투도 있을 수 없습니다. 풍성한 과육과 먹을 것이 꿀처럼 흐르고 강물이 왕자님을 반겨줄 것입니다. 그곳에서 마음껏 춤을 추고 동무들과 어울리십시오. 그리고 맑고 드높은 웃음소리 속에서 왕자님도 그들과 하나가 되십시오. 우리를 괴롭히던 모든 것들을 잊고 그들과 함께 뛰어 노십시오. 죽음의 세계는 무엇을 시킬 일도 명령을 받을 일도 없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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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본문의 '왕자의 죽음'과 함께 한 작품으로 처리되어 있다.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알퐁스 도데, '산문으로 쓴 환상시 - 들판의 군수님'

 작품 해제 : '숲속의 군수님'은 '왕자의 죽음' 바로 뒤에 실려 있는데, 이 두 편의 에피소드가 '산문으로 쓴 환상시' 라는 제목 하에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있다. '왕자의 죽음'이 죽음에 있어 권력, 재물, 우월함 등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면, '들판의 군수님'은 자연 속에서의 행복이 일에서 느끼는 행복보단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1) 두 이야기의 공통적 주제를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왕자의 죽음' 에 나타난 주제를 확인하고, 군수의 목적과 현실에 대한 반응을 살펴 두 이야기의 공통 주제를 추출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소재는 다르지만, 권력과 명예의 한계와 인생에 대한 태도를 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결국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를 묻고 있는 셈이다.

(2) 작가가 사건과 인물이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 속에 나열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토론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먼저 두 이야기의 공통 주제를 확인한다. 다음으로 두 이야기의 차이에 대해 몇 가지 확인하고, '왕자의 죽음'에서 '들판의 군수님'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제시한다. 두 작품을 순서대로 보았을 때, '산문의 환상시' 전체가 다른 의미를 내포한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시 학생 활동 :

 '왕자의 죽음' 이라는 짧은 작품은 '들판의 군수님'과 함께 '산문으로 쓴 환상시' 라는 단편에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한 주제를 양면으로 보고 있다. 왕자와 군수라는 직책은 권력과 재물을 가지고 있으며 권력과 재물이 소용없거나 필요 없는 어떤 각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반면 두 작품의 차이는 이 두 사람이 처한 현실과 반응이다. 왕자는 죽음에 처해 있으며 죽음 앞의 무력감을 느끼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군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의 유지와 자연 속에서 시를 쓰며 살고 싶다는 미적 본능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자연의 유혹 앞에 나서게 된다. '왕자의 죽음'은 단계적 설정, 혹은 논리적 진전을 통해 이를 들어내고, '들판의 군수님'은 그런 논리보다는 자연의 의인화와 공감을 통해 이를 드러낸다. 둘은 비슷한 주제를 다른 제재로 그리며,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한다. 그리하여 삶에 있어서 행복을 암시하는 '산문으로 쓴 환상시' 전체의 주제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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