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사자와 늑대와 여우 / 라 퐁테느(라 퐁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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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늑대와 여우 / 라 퐁테느(라 퐁텐)

 

사자는 늙어 중풍에 걸려 꼼짝할 수 없어

노환을 고치는 약이 없나 해서 구하고 있었다.

임금님에게 불가능하다고 해도 쓸데없는 노릇.

뭇 왕 중에서도 으뜸가는 이 왕은

의사들을 모았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저기서 의사들이 사자에게 모여 온다.

사방에서 모인 그들은 사자에게 약 처방을 준다.

짐승이란 짐승은 모두 모여들었으나

여우는 유유히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늑대는 왕의 침소를 문안하여 여우를 헐뜯어

내 동료가 오지 않았다 했다. 그러자 왕은 즉시

그 거처에서 여우를 끌어내어

당장 데려 오라 했다. 여우는 끌려 와

이것이 늑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상감마마, 저는 걱정스럽습니다. 근거 없는 말로

상감마마를 향한 소신의 충성심을 막고

소신에게 모욕을 주지 않았나 생각되옵니다.

소신은 순례의 길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상감마마의 건강 비법을 찾기 위해서 지요.

여행 도중에 저는 재량이 뛰어난 학자들을

만나서, 상감마마의 건강법을 물었고

그들로부터 이런 처방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마께선 열이 식어 버렸을 뿐이옵니다.

오랜 세월이 열을 앗아가고 만 것이지요.

늑대의 가죽을 벗겨 써보도록 하십시오.

따뜻하고 김이 나는 식기 전의 가죽이어야 합니다.

다름 아닌 바로 이 처방이야말로

쇠진하여 가는 체질에 꼭 맞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만 내킨다면 늑대 각하는

상감마마의 실내 옷으로 안성맞춤일 것입니다."

왕은 그 처방이 그럴 듯하다 생각하였다.

그 즉시 늑대 각하의 가죽은 벗겨지고,

몸은 여러 덩어리로 토막 지어졌다.

임금님은 늑대를 밤참으로 잡수시고,

그 가죽으로 자기 몸을 둘렀다.

아첨하기를 좋아하는 벼슬아치여, 파멸을 부르지 말지어다.

가능하면 몸에 상처를 입지말고 모시도록 하거라.

불행은 행복의 네 곱절이 되어 당신의 집을 찾는다.

험담하는 사람의 신상에는 여러 모양으로 답례가 있게 마련이다.

당신은 그 어느 경우에도

용서받지 못하는 처지에 처해 있는 것이다.


요점 정리

작자 : 라 퐁테느(라 퐁텐)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예지와 교묘한 화술로 폭력을 제압한 고대의 노예 이솝에 대한 공감과 우화의 장르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흥미에서 출발하여 이솝 ·동양 우화를 비롯한 다양한 소재를 독창적 수법으로 다루어 서정 ·풍자 ·경묘(輕妙)한 대화 ·콩트풍(風) 등 모든 패턴을 구사(驅使), 일종의 자유시형으로 노래하였다. 시구(詩句)의 거의 완벽한 음악성 및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희극을 부각시키는 절묘성 등은 후세의 모방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오늘날에도 어린이들에게까지 친숙한 프랑스 유일의 우화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연에서 한 발짝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고전주의 신조에 철저했으며, 이야기와 교훈으로 이루어진 이 우화시는 그 자신의 말을 빌면, 사자와 늑대와 여우의 이야기는 이 우화의 육체이며 마지막 6행에 보이는 교훈은 그의 혼이라고 한다.

심화 자료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

1621. 7. 8(?) 프랑스 샤토티에리~1695. 4. 13 파리. 프랑스의 시인. 그의 〈우화 Fables〉는 프랑스 문학의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생애

라 퐁텐은 샹파뉴 지방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그는 1647년에 여자 상속인인 마리 에리카르와 결혼했지만 1658년에 헤어졌다. 그는 아버지의 공직을 물려받아 1652~71년에 걸쳐 산림과 수로 감독관으로 일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중요한 교분들을 맺고 작가로서 가장 생산적인 시절을 보낸 것은 파리에서였다. 그는 특히 후원자들의 호의를 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1657년에 그는 부유한 재정 총감인 니콜라 푸케의 보호를 받게 되었고, 1664~72년에 뤽상부르에서 오를레앙 공작 미망인의 보호를 받았으며, 1673년에는 라 사블리에르 부인의 보호를 받게 되었는데, 이 부인의 살롱은 학자와 철학자 및 작가들이 자주 모이는 유명한 집회소였다. 프랑스 국왕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신앙심이 없는 그의 성격을 못마땅하게 여겨 반대했지만, 1683년에 그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우화

〈우화〉의 기본 소재는 라 퐁텐의 창작이 아니었다. 그는 소재를 주로 이솝의 전설에서 취재했고, '제2집'의 경우에는 동양의 전설에서 취재했다. 그러나 옛날의 우화 작가들은 대개 편협한 교훈적 의도에 따라 줄거리를 형식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만족했지만, 그는 그 단순한 이야기들을 끝없이 풍부하게 만들었다. 〈우화〉는 라 퐁텐이 고안한 유쾌한 단막 희극이다. 그는 때로는 배우들의 겉모습을 능숙하게 묘사하거나 그들의 몸짓을 지시함으로써, 그리고 항상 그들을 위해 표현력이 풍부한 대사를 만들어냄으로써, 배우들의 성격을 신속하게 묘사하는 데 특히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그는 대개 시골을 무대로 하여 시골의 영원한 매력을 환기했다. 〈우화〉에서 약 240편의 시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그 처리방법은 놀랄 만큼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그는 당시의 사회계급제도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이따금 풍자적 충동을 느끼기는 했지만 공격이 비록 날카롭다 해도 급소를 찌르는 진정한 풍자작가로서의 분노가 그에게는 부족했다. 〈우화〉는 이따금 그 당시의 정치적 문제와 지식인의 편견을 반영한다. 그 중 일부는 이름만 우화일 뿐 실제로는 비가이거나 전원시, 교훈적인 편지, 또는 시적인 명상들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가장 포괄적인 주제는 역시 우화가 전통적으로 다루어 온 주제들이다. 여기에는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기본적이며 일상적인 도덕적 경험들이 전형적인 등장인물의 감정 및 태도와 상황 속에 제시되어 있다.

수많은 비평가들은 라 퐁텐의 〈우화〉가 이야기하는 교훈을 목록으로 만들고 분류하여, 그것이 단지 속담과 다소 비슷한 지혜를 요약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지혜는 대체로 타산적이지만, '제2집'의 경우에는 좀더 부드러운 쾌락주의에 물들어 있다. 이 희극에서는 우화에 의레 등장하는 동물들만이 아니라 순박한 시골 사람과 그리스 신화 및 전설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모두 자신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우화〉의 시적 반향은 어느 특정한 시대가 아니라 어떤 시대에나 볼 수 있는 이 배우들, 시대를 초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배우들에게 다분히 힘입고 있다.

프랑스어권에 속하지 않는 많은 독자와 비평가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은 〈우화〉에서 심오한 문제가 가볍게 다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라 퐁텐의 동물 주인공들은 인간유형의 진지한 표상으로서,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이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공상의 산물이어서 동물학자들이 관찰하는 실제 동물과는 별로 비슷하지 않다. 그들이 재미있는 까닭은 동물과 그들이 나타내는 인간적 요소의 부조화를 시인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화〉에서는 라 퐁텐 자신의 목소리를 〈콩트집 Contes〉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서정적인 음조를 띤 채 끊임없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가장 감정적으로 고조될 때조차도 항상 절제되고 신중하다. 그 목소리의 음색은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여 풍자적이거나, 뻔뻔스럽거나, 무뚝뚝하거나, 간결하거나, 유창하거나, 동정적이거나, 우울하거나, 명상적이다. 그러나 지배적인 음조는 '명랑함'이다. 라 퐁텐이 '제1집' 머리말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우화〉에 의도적으로 '명랑함'을 도입하려고 애썼다. "명랑함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주제에나, 심지어는 심각하기 짝이 없는 주제에도 어떤 매력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우화〉를 읽으면서 미소(재미 때문만이 아니라, 시인과 더불어 인간 희극을 이해하고 그의 예술을 즐기는 일에 참여한 데서 나오는 미소)를 짓지 않는 사람은 〈우화〉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우화〉의 우아함과 평이함 및 세심한 마무리에 대해서는 아무리 자세하게 주석을 달아도 충분치 않다. 그 우화들은 프랑스에서의 1세기 동안의 운율학과 시적 어법의 실험이 이룩한 정수를 보여준다. 〈우화〉의 대부분은 다양한 보격을 가진 시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 퐁텐은 압운들과 그 변화하는 운율들의 예측할 수 없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가장 아름답고 다양한 음색과 율동의 효과를 얻는다. 그의 어휘는 예스러운 것, 고상한 것과 우스꽝스러운 것, 세련된 것, 친숙한 것과 상스러운 것, 지적 직업이나 상업의 언어들, 철학이나 신화의 언어들 등 성격이 전혀 다른 다양한 요소들을 조화시킨다. 그러나 이런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체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절제와 함축이며, 그 진가를 충분히 음미하려면 17세기 프랑스어의 뉘앙스에 대한 이해와 감각이 필요하다.

잡문과 콩트집

라 퐁텐의 많은 잡문으로는 다양한 형식을 취한 수많은 행사시들, 그의 첫 발표작인 〈환관 L'Eunuque〉(1654)과 〈클리멘 Climene〉(1671) 같은 희곡들, 그리고 〈아도니스 Adonis〉(1658, 개정 1669)·〈성 마가의 유수 La Captivite de saint Marc〉(1673)·〈기나나무 Le Quinquina〉(1682)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시들이 있다. 이들 잡문은 수준이 고르지 못한 작품들이며 〈우화〉의 완성도에 비한다면 시의 습작이나 실험에 불과하다. 예외는 〈 프시케와 큐피드의 사랑 Les Amours de Psiche et de Cupidon〉(1669)이라는 느긋한 이야기뿐이다. 이 작품은 명쾌하고 우아한 산문, 섬세한 감정과 재치있는 농담의 교묘한 조화, 여성심리에 대한 섬세한 연구로 주목할 만하다.

잡문과 마찬가지로 라 퐁텐의 〈콩트집〉은 〈우화〉보다 부피가 훨씬 크다. 첫번째 단편집은 1664년에 발표되었고, 마지막 단편집은 그가 죽은 뒤에 발표되었다. 그는 대부분 이탈리아(특히 보카치오)의 문학에서 단편의 재료를 빌려 왔지만, 14세기 시인인 보카치오의 풍부한 현실감각은 전혀 보존하지 않았다. 라 퐁텐의 〈콩트집〉은 거의 모두 음탕함에 본질을 두고 있는데, 이 음탕함은 라블레의 작품에서처럼 솔직하고 활기차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속이 들여다보이게끔 경박하게 위장되어 있다. 등장인물들과 상황들은 애초부터 진지한 의도가 아니라 독자를 즐겁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오랫동안 독자를 웃기기에는 너무 단조롭다. 〈콩트집〉은 시인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재치있는 문장가의 작품이다. 화자인 라 퐁텐의 말투는 장난스럽고 변덕스러운 주석과 설명 및 주제에서 벗어난 여담으로 단편에 활기를 준다.

인간성과 평판

라 퐁텐은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지는 못했지만, 왕의 측근과 귀족들 중에는 그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성직자·의사·화가·음악가·배우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그가 특히 자주 어울린 사람은 문단 사람들이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는 그가 몰리에르와 니콜라 부알로 및 장 라신과 맺은 관계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지만, 라 로슈푸코와 세비녜 부인 및 라 파예트 부인을 비롯하여 지금은 거의 기억에서 잊혀진 수많은 작가들뿐 아니라 위에 말한 3명도 라 퐁텐의 친구나 친지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라 퐁텐의 진정한 본성은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는 천진난만한 이기주의자였고, 인습에 얽매이기를 싫어했으며, 어떤 구속도 참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대에는 보기 드물었던 자연스러운 태도와 진지한 사교관계로 인해 수많은 친구들을 매혹시켰고, 그의 적은 분명 한 사람(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동료 회원이었던 앙투안 퓌르티에르)뿐이었다. 그는 비굴하지 않은 식객이었고, 비열하지 않은 아첨꾼이었으며, 실수투성이인 동시에 약삭빠른 음모자였고, 그와 가까운 어떤 사람이 말했듯이 '지혜로 가득찬' 잘못을 저지르는 죄인이었다. 그는 때로는 정당한 자존심을 꺾으면서까지 남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피상적인 관찰자들이 말했듯이 게으르고 얼빠진 바보는 결코 아니었다. 그가 남긴 작품의 양과 질을 보면, 그에 대한 이 전설적인 묘사가 결코 사실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40년 동안 라 퐁텐은,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날카로운 지성과 섬세한 양식을 가진 야심만만하고 부지런한 문학적 장인(匠人)이었다.

그는 부지런하고 날카로운 심미안을 가진 독자였으며, 그의 작품에는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다룬 소재와 표현양식을 신중하게 모방한 것이 많다. 그가 영향을 받은 16세기와 17세기의 프랑스 작가는 너무 많기 때문에 프랑수아 라블레, 클레망 마로, 프랑수아 드 말레르브, 오노레 뒤르페, 뱅상 부아튀르만 언급하는 것은 불공평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작가들은 호메로스와 플라톤, 플루타르코스(그가 이 작가들의 저서를 번역판으로 읽은 것은 거의 확실함)와 테렌티우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및 오비디우스 등이었다. 보카치오와 마키아벨리, 아리오스토 및 타소는 그가 애독한 이탈리아 작가들이었다. 라 퐁텐은 결코 낭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의 작품이 지닌 깊이와 향기는 그의 인생경험이 아니라 그가 애정을 가지고 받아들여 끈기있게 탐구한 이 풍부하고 복합적인 문학유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도덕적 진실이 단순할 수 있다고 믿기에는 너무 현명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어떤 도덕에 대한 기본적인 실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덕에 대한 미묘한 주석을 제공하며, 때로는 그 도덕을 수정하고 순진한 사람만이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암시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화〉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암시하는 것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하다. 〈우화〉가 암시하는 것은 비록 불완전하지만(그것은 인간의 형이상학적 고뇌나 인간의 가장 강렬한 소망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숙하고 심오하며 현명한 인생관이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즐겨 읽는 〈우화〉는 지금도 어린 학생에서 수많은 문필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프랑스인의 문화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특히 앙드레 지드와 폴 발레리 및 장 지로두 등은 20세기에 라 퐁텐의 명성을 새로이 드높인 바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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