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死靈)- 김수영
by 송화은율사령(死靈)- 김수영
······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후략>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죽은 영혼’이라는 뜻의 제목이 암시하듯 자유와 정의가 활자로만 존재하는 부도덕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시인 자신의 영혼을 자책하고 비판하는 작품이다. 자유와 정의가 실제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 사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 사회라 할 수 없으며,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진리도 참된 진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화자는 ‘예언적 지성’으로 불리는 시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소시민적 지식인으로 전락해 버린 자신의 영혼을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여긴다.
현실의 부도덕성을 누구보다 깊이 통찰하고 있으면서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분노는 현실과 자아 일체를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그것은 지식인 모두의 반성을 촉구하고 비판과 저항의 정신이 용출(湧出)하기를 희망하는 화자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화자가 파악하는 현실은 자유와 정의가 상실된, 책으로만 위장되어 있는 거짓된 세계이다. 이러한 현실 세계의 부도덕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행동화하지 못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분노는 결국 현실과 자기 자신 모두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거짓된 현실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겠다고 다짐해 보기도 하지만, 그 행동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수반하는 것임을 아는 화자는 다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라며 절망할 뿐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솔직한 자기 반성의 모습을 반복, 강조함으로써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 모두의 타협적 행동을 준엄하게 추궁함은 물론, 나아가 그들에게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는 주술적 힘을 보여 주기도 한다.
▶ 성격 : 주지적, 비판적
▶ 심상 : 시각적 심상
▶ 어조 : 자유와 정의가 실종된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는 자아를 반성하는 ‘자성적 어조’
▶ 특징 : 일상적 어휘와 독백적 진술을 사용하여 자유와 정의가 소멸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지식인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 구성 : 수미쌍관의 구성
① 활자로만 존재하는 자유와 죽어 있는 나의 영혼(제1연)
② 침묵만 지키고 있는 자아 반성(제2연)
③ 고요한 현실에 대한 불만(제3연)
④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만(제4연)
⑤ 죽어 있는 나의 영혼에 대한 자괴감(제5연)
▶ 제재 : 부도덕한 현실과 지식인의 죽은 영혼
▶ 주제 : 불의에 적극 항거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자기 반성
<연구 문제>
1. 다음 시에 나오는 밑줄 그은 말과 의미가 통하는 시어를 위 시에서 찾아 쓰라.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폭포’> |
<모범답> 자유
2. 이 시에서, 자유와 정의가 부재하는 거짓된 공간, 곧 타락한 사회를 표현한 구절을 찾아 쓰라.
<모범답>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
3. ㉠에 쓰인 수사법을 말하고, 내포적 의미를 설명하라.
<모범답> (1) 반어법 (2) 불의에 항거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비겁함을 비판
<감상의 길잡이>
일반적으로 김수영의 시 세계는 정직과 사랑과 자유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세 개념은 별개로 존재한다기보다 상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는 독자에 따라 정적으로 자유와 사랑을 말하기도 하고, 자유로써 정직과 사랑을 포괄하기도 한다.
사령(死靈)의 핵심어는 ‘자유’이다. 그런데 그 자유는 시인이 일상 생활에서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적의 활자로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근대 민주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규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가 활자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비민주적 사회라는 지적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인석하고 있는 화자(시인)는 자유가 억제된 독재 정권에 항거하지 못하는 자신의 영혼을 죽은 것으로 여긴다. 흔히, ‘예언적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작가와 시인은 독재자의 부도덕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의 사회의 구현을 위해 신명(身命)을 바칠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실은 독재 정권에 기생(寄生)하여 개인의 부귀와 영달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사회이다. 자유를 말하는 벗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자는 자신의 비겁함을 고백한다. 이것은 자신의 비겁함과 소심함을 자책하는 의미로 읽힌다.
화자가 파악하고 있는 현실은 자유와 정의가 보재한 거짓된 공간이다. 거짓된 공간은 외면적인 고요로 위장되어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따라서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격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행동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수반한다. 이런 현실에 화자는 절망하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희망하는 자유와 정의가 보장된 사회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일까? 제1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면서 종결되는 이 시의 결구는 화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준다. 그것은 나와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현실 개혁의 운동에 앞장서자는 비판적 지식인의 솔직한 자기 반성의 태도이다. 이런 자기 반성적 태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자유와 정의는 서적 속의 관념에서 현실의 가치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