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봄은 간다 - 김 억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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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간다 - 김 억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닲은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흔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슯히운다.

 

검은 내돈다.

죵소리 빗긴다.

 

말도 업는 밤의 셜음

소리 업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

 

- (태서문예신보 9, 1918.11)


작가 : 김억(金億) : 본명-김희권(金熙權), -안서(岸曙), 안서생(岸曙生), AS

1886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07년 오산 중학 입학

1913년 게이오 의숙(慶應義塾) 영문과 입학

1914년 동경 유학생 기관지인 󰡔학지광(學之光)󰡕<미련>, <이별> 발표

1916년 오산 학교 교사로 부임, 김소월 지도

1920󰡔폐허󰡕, 󰡔창조󰡕 동인

1924년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

1950625 때 납북

시집 : 󰡔해파리의 노래󰡕(1923), 󰡔봄의 노래󰡕(1925), 󰡔안서 시집󰡕(1929), 󰡔안서 시초󰡕(1941), 󰡔먼동이 틀 제󰡕(1947), 󰡔민요 시집󰡕(1948)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근대시는 교훈적, 계몽적, 민족적인 사상을 담은 신체시와는 달리 종래의 한문투의 문장을 벗어나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 쓰고자 노력했으며, 순수한 서정시를 지향하고자 했다. 특히 김억은 애조를 띤 가락에 우리 민족 고유의 민족적 정조를 담은 민요적 서정시를 쓰고자 노력했는데, 이 작품에 보이는 34, 44조의 형식이 이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애조를 띠고 있다. 애조를 띤 가락은 식민지 치하에 있던 청년 안서와 내적 번민이 여성 편향이란 우리 옛시의 전통성과 만나 승화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개인적인 절망감과 그것을 야기한 암담한 현실적 분위기가 상징적으로 노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한 화자가 등장하여 애상적 정조를 바탕으로 당시의 어두운 시대 상황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신체시가 지녔던 계몽성을 탈피하여 개인적 서정을 노래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의식하고 있는 점, 순수한 우리말의 미감을 잘 살려 쓴 점, 공감각적인 이미지 속에 정서를 함축시킨 점, 2행을 1연으로 묶어 나간 연에 대한 배려와 ‘-, -, -의 각운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점, 정형적 리듬을 벗어난 자유시인 점 등에서 한국 근대 詩史상 특별한 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 하겠다.

 

성격 : 상징적, 감상적, 독백적

운율 : 각운

특징 : 각 연이 2행 대구로 됨. 감정 이입법

구성 : 가는 봄의 아쉬움과 상실감(13)

시대 상황이 주는 절망감(4,5)

침묵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6)

가버린 봄에 대한 탄식(7)

제재 : 봄밤의 슬픈 감정

주제 : 상실한 자의 애상적 정서

 

 

<연구 문제>

1. ‘이 지닌 일반적인 의미와 이 시에서의 의미를 구별하여 100자 정도로 쓰라.

<모범답> 봄은 일반적으로 소생과 희망과 새로운 삶 등의 이미지를 지녀 암담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희망의 시간을 의미하나, 오히려 이 시에서는 소생의 의미를 상실한 비애의 봄을 의미한다.(봄은 화자로 하여금 절망을 느끼게 하는 소재이다)

 

2. 이 시가 신체시와 비교하여 자유시에 상당히 근접해 있고, 순수한 우리말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한시(漢詩) 번역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를 쓰라.

<모범답> 대구, 각운 등 형식적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3. 에 상응할 만한 시구를 찾아 쓰라.

<모범답> 봄은 간다

 

4. 이 시는 서양시를 모방하여 지은 흔적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 외형적 현상이 무엇인지 지적하라.

<모범답> 각운법

<<해설>> ‘-’, ‘-’, ‘-과 같은 동일한 음절, 동일한 음운을 규칙적으로 반복함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시는 암담한 시대 상황을 인식한 데서 비롯된 작품으로 독백체의 표현과 간결한 구조를 통하여 주관적 정서를 절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정서적으로는 우리의 전통시에서 보인 애상과 비애를 바탕으로 상실과 체념의 미학을 계승하고 있다. 치열한 현실 인식에서 오는 어떤 적극적인 행동의 미학이 표출되지 못하고, 수동적 자세로 탄식하는 데에 머물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 시의 전통성과 시인의 내적 번민이 만나 시로 잘 승화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전통적 가락과 정서를 계승하고자 한 시인의 시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1: 시 전체의 배경이 제시되어 있다. ‘은 어둠을 표상하며 당시의 암담한 현실을 상징하고, ‘은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상실의 존재이다. 따라서, ‘봄밤은 낭만적 이미지가 아닌, 모든 것을 상실한 암담한 고뇌의 현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2: 봄밤에 느끼는 화자의 애상과, 소생(蘇生)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상실감이 나타나 있다.

3: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통하여 아쉬움과 상실감을 노래했다.

4: 화자의 슬픔과 수심(愁心)이 새에 이입되어 있다. ‘슬피 우는새는 시대 상황이 주는 절망감을 대변하고 있다.

5: ‘검은 내는 제1연의 과 같은 이미지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종 소리와는 상반된 이미지다. 이 종 소리가 비껴가는 것은 절망적임을 암시한다.

6: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인식에서 오는 답답함과 비애가 나타나 있다.

7: 가는 봄에 대한 탄식이 나타나 있다. 꽃의 떨어짐을 통해 봄의 상실과 더 나아가서 모든 것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시는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는 주요한의 <불놀이>보다도 두 달 앞서 발표된 김억의 첫작품이다. ‘태서문예신보에 발표된 시의 일반적 수준은 육당의 신시나 창가의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나, 이 시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있다. 개인의 정감의 소리가 나타나고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 의식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기존의 신체시에서 지적되는 계몽성을 탈피하여 개인의 주관적 정서를 상징적 수법을 통해 보여 주는 이 작품은 어느 늦은 봄날 밤에, 떨어지는 꽃을 바라보며 느낀 상실의 슬픔을 여성적 어조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정서적으로는 우리의 전통시에 흐르는 애상과 비애를 바탕으로 한 상실과 체념의 미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애달픈데생각인데아득이는데슬피 운다탄식한다등의 주관적 하강의 감정어와 간다떠돈다빗긴다떨어진다등의 객관적 하강의 상태어의 결합을 통해 나타나는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는 이 작품이 암울한 시대 상황을 인식한데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된 은 당시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으며, 계절적 배경인 오는 봄이 아닌, ‘가는 봄으로서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상실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봄밤은 모든 것을 상실한 고뇌의 현실을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상황을 치열하게 인식하지 못한 결과, 적극적 행동의 미학이 표출되지 못하고, 수동적인 자세로 탄식하는 데에 머물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시행 배열의 규칙성, 대구법의 남발, 의도적인 각운법, 불필요한 이미지의 반복, 감정의 무절제한 표출 등으로 작품의 전체 구조가 약화되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에다 시인의 감정을 의탁한 감정 이입의 수법과 종소리 빗긴다에 나타난 공감각적 이미지는 동시대 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감상의 길잡이 3 >

서정시(抒情詩)에 있어서 일반적인 미적(美的) 표출은 슬픔의 정서에 근거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한 이유는 인간의 체험의 여러 종류 중에서 인간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친족과의 사별, 직업이나 일에 따른 헤어짐, 소중한 것을 잃는 일 등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들은 삶의 내용을 다른 빛으로 보거나 이해하는 안목을 제공하기도 하고, 깊은 체념에 빠지게도 하는 등 매우 뜻있는 인식에 도달하게도 한다. 향가(鄕歌)의 한 편인 제망매가(祭亡妹歌)’나 여요(麗謠)에서는 가시리나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여러 이별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그러한 잃음을 슬퍼하는 내용을 보이고 있는데, 그 잃음을 어떤 형식으로든지 극복하고 초월하려는 노력으로서 노래의 문학이 창조되는 것같이 보인다. 실상 잊음이나 체념은 언뜻 보기에 소극적인 반응으로서 곤경으로부터의 도피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잊음이나 체념조차도 아픔이나 슬픔을 초극하는 한 방식으로서 뜻이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승화의 경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안서(岸曙)의 작품들이 대부분이 그러한 잃음에 근거되고 있는데, 그러한 시인 의식은 그 시인(詩人)의 개인적 취향이나 슬픔에 민감한 감성에 의한 것으로도 보이지만, 그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대 전체가 애상적 정조(情調)로 물들어 있었던 이유도 가볍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19181130일자의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 9호에 의하면 안서(岸曙)3편의 서정시를 발표하고 있다. 그 첫째는 <>으로서 천지에 봄의 기쁨이 충만한 때에 한 서정적 주체자(主體者)그대를 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봄의 계절적인 아름다움보다는 한 사람을 사모하고 있는 그리움의 내용이 담긴 시이다. 다음에는 <무덤>이라는 작품이 게재되어 있는데, 이 작품의 화자(話者)는 죽음이 가까워 오는 사실을 의식하고,

 

벗이여, 절믄에 노는 벗이여,

울다 남은 눈물이 아직도 남앗는가,

只今(지금) 아 어둡어지어,

늙음의 저녁은 차차 갓갑어오나니.

 

와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미루어 보아서 김안서(金岸曙)의 의식 세계는 상실에 민감한 시적 천분을 타고 난 시인이 아닌가 짐작하게 된다. 이 연()은 그 뜻의 짜임으로 볼 때 노는에서는 발랄한 청년가의 활동과 눈물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한 욕망을 지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급기야는 늙음의 저녁을 맞이하는 운명에 놓여 있음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젊음과 늙음의 의미가 반어적(反語的)으로 결합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인식은 사물이나 삶의 양상에서 그 자체의 내재적인 운명을 통찰하는 시인의 인식에 근거한 것이라 하겠다. 죽음이 전제된 삶의 운명성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젊음의 가치에 보다 더 적극적인 의의를 부여할 경우, 시인은 그 값진 성취욕을 북돋우는 내용을 시화(詩化)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현상의 양 측면을 통찰하면서도 그 어느 한 쪽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시인의 가치 선택의 성향과 관계된 것임은 두말할 여지도 없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주지된 바와 같이 안서(岸曙)의 감상주의는 시집(詩集) <<해파리의 노래>> 전작품에 두루 펼쳐져 있는데, 그의 번역 작품집인 <<오뇌(懊惱)의 무도(舞蹈)>>에서 이미 그러한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의 두 시집(詩集)은 정서 표출상에 있어서 상당히 근접된 유대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춘원(春園)<<해파리 노래에게>>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 적이 있다.

 

 

이천만 흰옷 입은 사람! 결코 적은 수효가 아니다. 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뭉치고 타는 회포를 대신하야 읍저리는 것이 시인의 직책이다.

 

우리 해파리는 이천만 흰옷 닙은 나라에 둥둥 돌며 그의 몸에 와 닿은 것을 읍헛다. (중략) 해파리는 지금도 이후에도 삼천리 어둠침침한 바다 우흐로 돌아 다닐 것이다. 그리고는 그의 부드러운 몸이 견딜 수 업는 아픔과 설음을 한 업시 읍흘 것이다.

 

 

이 문맥(文脈)을 검토한다면 안서(岸曙)1910년대에서 1920년대 초의 민족 시인을 대표한 한 사람임이 명백하다. 그의 노래는 민족의 곤란을 대변하는 시로서 그 기능이 있음을 춘원(春園)은 명백히 말하고 있다. ‘어둠침침한 바다는 그 당시 일제치하의 한국을 지칭한 은유적 표현이며, 해파리도 시인의 약함과 표랑적인 함의(含意)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고찰에 큰 잘못이 없다면 시대의 어두움과 민족의 약함을 노래한 것으로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작(詩作)을 통해서 과연 춘원(春園)이 생각했던 것처럼 민족을 대변하는 시의 기능이 확립되고 또 독자들의 공감을 촉발케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는 역시 재고할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왜냐 하면, 슬픔의 본질에 대한 천착이나 해명을 시적 진실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안서(岸曙)의 작품은 그러한 경지에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밑바닥에 천착해 들어갈 때 시인은 진실을 발견하는 경이감과 내적 충일감을 맛보게 될 것이고 그것을 시화(詩化)할 때 독자들은 그러한 감동에 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 <봄은 간다>에는,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한 화자(話者)가 등장하여 그 슬픔을 노래하는 내용이 보인다. 우리 삶의 모습 자체가 시간적 질서에 의존해서만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 작품의 시간 의식은 시간의 빠름과 상실의 슬픔이 융합되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상실은

 

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와 같이 단순한 진술로 결사(結辭)를 맺고 있으므로 표면상으로는 단순히 시간의 신속함에 관한 화자(話者)의 슬픔으로 인식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시간 의식은 그러나 무엇인가를 이루고 더 지속해야함을 전제로 했을 때에 시간의 신속한 흐름에 관한 슬픔의 인식이 공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말도 업는 밤의 슬움

소리 업는 봄의 가슴

 

과 같이 진술하여 제5연에 이르러서 슬픔이 침묵의 시대 전체와 걸려 있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시는 슬픔의 근원이나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시상에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어둠에 휩싸여 있는 세계 전체를 보여주면서 그 고통을 말할 수조차 없는 시대임을 알려 준다. 생성의 봄이 도래하였어도 기쁨과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상황적 훼손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침묵의 시대를 시로써 노래했고 그 슬픔을 봄의 계절에 기탁하였으며, ‘깊은 생각은 있지만 그것을 표언(表言)하지 못하는 괴로움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

 

3연에서, 서정적 화자(話者)는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있다. ,

 

깁흔 생각은 아득이는데

--바람에 새가 슯히 운다.

 

와 같이 말하여, ‘를 통하여 화자가 자유(自由)를 빼앗기고 있으며, 또 그가 처해 있는 세계 전체가 슬픔에 잠겨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1920년대에 이르는 구한말과 일제 초기의 고압적인 일제의 군인 정치하에 있었던 한국인 일반의 정황이 예각적으로 시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의 문맥을 시인한다면, 춘원(春園)의 서문에 보인 바와 같이 대변적인 시()의 직능도 상당히 근거가 있고, 또 타당한 해석이 된다고 믿게 된다. 한 마리의 새가 그 자유를 희구해 마지않음을 울음을 통하여 알 수 있게 설정했고, ‘--바람이야말로 거센 제국주의의 폭압적인 힘을 상징하는 바가 된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12행의 연구조(聯構造)를 가진 독자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1박율(拍律), 2박율(拍律)을 교체하여 비교적 속도감을 경쾌하게 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체적으로 종래에 볼 수 없었던 개성있는 율격을 이루고 있으며, 2, 3, 4의 자수를 적절히 변화있게 운동하여 자유스런 형태를 창안하여 신선감조차 느끼게 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실험은 안서(岸曙)의 서양문학적 교양과 한문학적 소양이 어울린 바로 추측이 되며 동시에 우리 고유의 민요 또는 속요에 관한 민감한 시적 수용과도 떼놓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것 같이 생각된다.

 

이미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에 불란서의 시를 번역하고, 이어 민요시 운동에 앞장선 것을 고려에 넣는다면, 직접 간접으로 상호 영향 관계에서 그의 시작(詩作)도 진행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도대체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 9호에 수록된 안서(岸曙)의 서정시 3편과 같은 시의 형태는 우리 문학에서는 그 당시까지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특성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서정의 단순성이 표면에 흐르면서, 그 이면에 시대의 아픔이 아로새겨져 있으면서 새로운 율조를 창안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안서(岸曙)의 서정시편들의 형태는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적극적인 실험성을 내보인 하나의 사례가 됨을 알 수 있다.

 

작품의 내용에 있어서 시적 형상성이나 형이상적인 깊이는 별개의 문제로 비판되거나 밝혀져야 할 여지가 있으면서도 그의 기여한 바는 뚜렷한 바 있다.

 

여기에서 불란서의 상징파 시인의 작품 번역과 안서(岸曙) 시문학의 가치 수용의 문제는 빠뜨릴 수 없는 문제임을 알게 된다. 즉 보들레르, 베를레느 및 아일랜드의 예이츠 등이 보인 우울미는 19세기의 상업주의에서 소외된 문학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향을 대변한 독자적인 미의식을 보인 것인데, 이러한 미의식과 일제의 식민지 치하의 젊은 문학인이었던 안서(岸曙)의 내적 번민과는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리하여 <<오뇌(懊惱)의 무도(舞蹈)>>의 정신 풍경과 <<해파리의 노래>>의 애상미(哀傷美) 사이에는 서로 겹쳐지는 공분모가 있다고 보인다.

 

다만 신채호(申采浩)와 같은 남성적 저항을 보이지 못한 안서(岸曙)는 여성적 내공성(內攻性)으로써 민족의 곤경을 시화(詩化)하였다.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서정을 읊은 작품들로 보이는데, 그 이면에는 분명히 시대고(時代苦)를 말하고 있다. 그의 문학은 자주 지나친 편견에 의하여 소홀히 다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의 문학적 기여는 <봄은 간다> 한 편에서도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하겠다. < 안서의 초기시와 애상미의 발상 근거 ; 신동욱(문학평론가, 연세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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