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인
by 송화은율
백석(1912~ )
· 평양 정주생
· 오산고보를 거쳐 1934년 일본의 청산학원을 졸업
· 1935년에 조선일보에 시[정주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
[문학] 시인 백석을 다시 만난다…전집 발간
{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춘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 먹었다/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산적을 꿰었다/ 손자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둘렀다}(시[고방]의 일부)잊혀진 시인 백석이 돌아왔다.
백석은 평안도 방언을 시어로 사용하여 우리의 토속적인 삶의 모습을 이야기시 형태로 형상화한 3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36년 발표한 [사슴]으로 한국시사에 큰 발자취를 남겨 일부 국문학자들 사이에는 {남에는 정지용, 북에는 백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지만 일반독자에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해방이후 북한에서 활동, 납-월북 작가 작품 해금조치 이전까지는 잊혀진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백석전집](실천문학사)이 발간되어 백석에 대한 전체적인 조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전집]은 시와 소설을 비롯, 동화시, 수필, 평론, 정론에 이르기까지 백석의 저작을 망라하고 있다. 해방이전의 시95편, 수필 3편, 소설 3편을 비롯, 해방이후 발표한 동화시 12편, 시13편, 평문 4편, 정론 3편이 실려있다. 북한에서 발표한 작품 33편은 이번에 최초로 독자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백석은 본명이 백기행으로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고보를 거쳐 34년 일본의 청산학원을 졸업했으며 35년에 조선일보에 시[정주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전집]을 엮은 문학평론가 김재용씨는 {백석문학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서는 일제하는 물론이고 북한에서 발표한 작품까지 포함해 전반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밝히고 있다.
백석 작품의 특색은 민속적 세계다. 그는 전근대 민중들의 생활속에 전해내려오는 풍속을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여우 난골족]이나[칠월백중] 등의 시에 나타나는 공동체는 근대인이 잃어버린 원형질의 세계다. 백석의 또 다른 특색은 지방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쓴 시가 많다는 것이다. 남행시초를 비롯해 관북지방, 특히 관서지방의 방언을 의식적으로 사용했다. 표준어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지만, 바탕에는 중앙집권화가 지방나름의 구체적인 삶을 압살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해방직후 만주에서 고향인 평북 정주에 돌아온 그는 당시의 남북현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꿈을 가졌던 백석에게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큰 차이가 없었는지 모른다. 결국 6․25이후에도 남하하지 않고 삼팔선 이북에서 활동한 그는 본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시 쓰기를 버리고 번역을 하는 한편, 동시나 동화를 발표하기도 한다. 57년에 나온 [집게네 형제]는 시의 형식을 빌린 동화시집으로 혁명이나 계급의식보다 휴머니즘을 고양하려는 글들이 주로 실려있다.
이런 경향이 북한내부의 당파분쟁에 겹쳐 백석은 58년 사실상 숙청되어 삼수군에 있는 국영협동조합으로 내려가 양치기 일을 한다. 그리고 62년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 비판과 연관되어 마침 내 창작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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