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소설가
by 송화은율
박태원(朴泰遠, 1909-1987)
· 소설가. 서울 생. 경성제일고보 졸. 일본 호세이 대학 예과 중퇴
· ‘구인회’ 회원
· 식민지 치하 서민층의 변모상을 객관적으로 묘사, 1930년대 대표 작가로 위치
· 월북작가
--- 장편 <천변풍경>,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 월북문인들>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박태원의 `천변풍경' 청계천
청계천은 경복궁 서북쪽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서울의 중 심부를 뚫고 동진한 다음 답십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물길을 틀어 내려가 다가는 성동구 사근동과 송정동, 성수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중랑천과 합 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성수대교와 동호대교의 어름이다. 태백시 인근 에서 샘솟아 강화 북쪽의 서해로 몸을 풀기까지 5백㎞ 가까운 한강의 흐 름이 대체로 서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강의 제2지류인 청 계천의 물길은 본류와는 정반대되는 행로를 밟고 있는 셈이다. 본디 이름이 청풍계천(淸風溪川)인 청계천은 그러나 일제 때 광화문 네 거리에서 광교까지가 1차로 복개된 데 이어 1958년부터 시작된 여러차례 의 복개로 지금은 용두동과 마장동 어름 이하를 제하고는 정작 물길을 볼 수는 없게 돼 있다. 폭 50m의 아스팔트가 덮이고 그것도 모자라 삼일고가도로가 공중을 가로지르는 지금의 청계천에서 `맑은 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짐작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복개되 기 전의 청계천에는 제법 맑은 물이 흘렀고, 시골의 여느 개울가와 마찬 가지로 아낙들은 빨래더미 속에 일신의 번뇌와 세상 근심을 함께 넣어 두 들기고 비벼 빨았다. 박태원(1909~86)의 장편 <천변풍경>은 바로 이 청계 천 빨래터의 광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히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1936~7년에 걸쳐 월간 <조광>에 두차례로 나뉘어 연재된 <천변풍경>은 일제 통치의 극성기라 할 30년대 중반 서울 서민층의 삶을 꼼꼼히 재현하 고 있다. 모두 50개의 짧은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청계천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장삼이사들의 삶의 이모저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십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중심되는 사건도 주인공이라 할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이 소설에서 어찌 보면 청계천이야말로 진짜 주 인공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청계천 주변이라는 것말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과 사건들을 하나의 소설 속에 모아 놓는다. 요컨 대 청계천은 이 소설의 조직원리가 된다.
젊은 첩 안성댁이 학생놈과 보쟁이는 모양을 보고 속을 태우는 민주사, 바람둥이 남편에게 시집을 갔다가 남편의 무관심과 시부모의 학대를 못 이겨 이혼하고 돌아오는 이쁜이, 처녀과부 신세로 호색한인 시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무작정 상경한 금순이, 술집 여급에서 부잣집 맏며느리로 신 분이 격상됐으나 남편의 변심과 시댁 식구들의 냉대로 괴로워하는 하나꼬 , 금순이와 하나꼬를 친언니처럼 보살피는 또다른 여급 기미꼬, 시골 가 평에서 상경해 어리보기 취급을 당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서울 깍쟁이로 변모하는 소년 창수, 청계천 다리 밑 움막에 거주하는 거지들…. 소설은 이들 천변 인물군상의 1년 남짓한 삶을 카메라의 눈처럼 충실히 좇을 뿐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통일된 주제를 일구어내거나 섣불리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소설은 문득 시작하고 불쑥 끝난다. 기승 전결이 따로 없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도 천변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고, 소설이 끝난 다음에도 그들의 삶은 아랑곳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럴진대, 소설의 의미란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 속에서 청계천은 근대와 전근대, 도시와 시골이 만나는 접경이다. 창수와 금순이, 만돌 어멈 등은 각자의 사정이야 어떠하든 시골집을 떠나 서울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시험해보고자 할 때 청계천변을 그 첫 무대로 삼는다. 그곳에는 기생과 카페 여급이 나란히 활보하며, 냉혹한 이익의 추구와 끈끈한 인간애가 공존한다. 시골에서와는 달리 청계천의 빨래터에 는 엄연히 주인이 있어 빨래꾼들에게서 돈을 받아서는 다시 나라에 세금 을 낸다. 그러나 전후사정을 모르고 빈손으로 나온 시골뜨기 아낙이 다른 빨래꾼들의 역성 덕분에 첫번의 요금 지불을 면제받을 만큼은 인정이 살 아 있다.
<천변풍경>은 이처럼 두 개의 시대의 공존과 자리바꿈을 세필화의 필치 로 그려내지만, 그것은 그뿐,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임화가 그 자연주의적 편향을 지목해 `세태소설'이라 이름붙인 것은 이 때문일 것이 다. 소설에는 소박한 휴머니즘의 관점은 있을지언정 뚜렷한 이념이나 사 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소설 속 어느 인물에게서도 당시의 민족적․계급적 모순에 대한 자각을 엿볼 수 없음은 물론 그에 대한 밖으 로부터의 비판도 부재하다는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바람 없고 따뜻한 날, 남향한 대청에는 햇빛도 잘 바람 없고 따뜻한 날, 남향한 대청에는 햇빛도 잘 들고, 그곳에가 시 어머니와 며느리, 귀돌 어멈과 할멈이, 각기 자기들의 일거리를 가지고 앉아 육십팔원짜리 `콘서트'로 `쩨․오․띠․케'의 주간방송, 고담이라든 그러한 것을 흥미 깊게 듣고 있는 풍경은, 말하자면, 평화―그 물건이었 다는 대목은 그 직후에 나온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탁류>의 풍자적 어투나 비극적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가.
박태원은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이효석 등 30년대 모더니스트 들과 함께 문학친목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해 활동한다. 그들이 내세운 바는 문학적 전문성과 프로의식이었거니와, 그것은 실은 카프 계열의 계급문학에 대한 반발에 다름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중편 `소설가 구보 씨의 1일'과 <천변풍경>은 당시로 보아 최고의 문학적 기교를 갖춘 작품 으로서 춘원 이광수와 월탄 박종화 등의 상찬이 잇따랐다. 그 박태원이 해방기에는 좌익계인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을 맡고 한국전쟁중 월 북해 북한 최고의 역사소설로 평가받는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한 사실은 지금도 숱한 논란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 다 괜은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루 덮는단 말이유? 온, 참….
소설 속 한 인물은 청계천 복개에 관한 소문을 듣고 턱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마나 그 넓은 청계천은 어김없이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이 제 그 위로는 자동차들이 질주한다. 빨래하는 아낙들이 깃들었던 천변의 가옥 자리에는 높직높직한 건물들이 솟아 있다. 한때 맑았던 물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소음과 진동에 짓눌리며 질식 상태로 흘러간다. 광교를 중심 으로 한 소설의 무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청계천 평화시장은 1970 년 봉제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감싸안고 오늘도 청 계천의 복개된 도로 아래로는 한때 맑았으나 더이상은 맑지 않은 물이 동 쪽을 향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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