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통사 언해(朴通事 諺解)
by 송화은율박통사 언해(朴通事 諺解)
요점 정리
언해자 : 최세진
연대 : 중종 초 (한문 원본 '박통사'의 작자·연대는 미상)
내용 : 조선 시대의 중국어 학습서(3권 중에 현전 상권뿐)
문체 : 회화체
주제 : 어느 봄날 형제같이 여기는 이들이 이름난 화원에 가서 잔치를 베풀 것을 의논하고 준비하는 장면을 회화체로 적은 글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조선 시대의 중국어 학습서로 어느 봄날, 형제같이 여기는 이들이 이름난 화원에 가서 잔치를 베풀 것을 의논하고 준비하는 장면을 회화체로 적은 것으로 준비하는 과정의 꼼꼼함이 잘 나타나 있다.
심화 자료
박통사언해
≪박통사≫의 원문에 한글로 중국어의 독음을 달고 언해한 책. 3권 3책. 목판본. 간기는 없으나, 1677년(숙종 3) 10월에 된 이담명(李聃命)의 서문과 같은해 11월에 된 내사기(內賜記)에 의하여 1677년의 간행으로 단정된다.
〔간행경위〕 서문에 의하면, 최세진(崔世珍)의 ≪번역박통사≫는 이미 당시에 볼 수 없었는데, 평안도 선천군의 역학(譯學) 주충(周食)이 민가에서 최세진의 ≪노박집람 老朴集覽≫을 얻게 되자 사역원제조 권대웅(權大雄)이 역관 변섬(邊暹)·박세화(朴世華) 등 12인을 시켜 ≪노박집람≫을 참고하여 이 책을 편찬하게 하였다고 하며, 출판은 변섬과 박세화의 사재로 된 것이라 한다.
〔체재〕 체재는 ≪노걸대언해 老乞大諺解≫와 같으나, ≪노박집람≫ 중에서 ≪박통사집람≫은 해당 구절의 주석으로 넣고 ≪노걸대집람≫과 ≪단자해 單字解≫를 부록으로 한 점이 다르다. 그때 발견된 책에 없었기 때문에 ≪누자해 累字解≫가 빠졌지만, 이로써 ≪노박집람≫도 1677년에 중간된 셈이다. ≪박통사≫는 100년 가까이 중국어 학습서로 사용되어오던 중, 원문인 중국어가 시용에 맞지 않아서 중국사람과의 응대에 소용되지 않은 점이 있어서 역관 김창조(金昌祚) 등이 이 책을 ≪박통사신석 朴通事新釋≫ 1권으로 만들고, 이를 언해한 ≪박통사신석언해≫ 3권을 1765년(영조 41) 평양 감영에서 동시에 간행하였다.
≪박통사신석언해≫의 체재는 이 책과 같으나, 주석으로 수용되었던 ≪박통사집람≫이 ≪박통사신석≫의 주석으로 일부 옮겨지면서 삭제되고 ≪노걸대집람≫ 등 부록이 없어진 점이 다르다. 이 책과 ≪박통사신석언해≫는 모두 지난 시기의 중국어 학습서지만, 현대에서는 국어와 중국어의 역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언해문은 ≪번역박통사≫와 함께 비슷한 내용의 번역이므로 그 대조로써 국어사의 변천과 번역 양식의 차이를 알게 하며, 원문의 한자에 병기된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은 중국어 음운사연구에 이용될 수 있다.
≪박통사언해≫는 서울대학교 규장각도서와 이담명의 내사본 등이 전하는데, 1943년 경성대학에서 ≪규장각총서 奎章閣叢書≫ 제8로 영인하였고, 1983년 아세아문화사에서 ≪노걸대언해≫와 함께 다시 영인한 바 있다. ≪박통사신석언해≫는 서울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데, 1985년 홍문각에서 영인하였다.
≪참고문헌≫ 通文館志, 增訂朝鮮語學史(小倉進平, 刀江書院, 1940), 朴通事新釋諺解解題(洪允杓, 朴通事新釋諺解 影印本, 弘文閣, 198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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