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논리 / 해설 / 질 들뢰즈
by 송화은율질 들뢰즈 '의미의 논리'
〈이정우 서강대 철학과 교수〉
우리는 흔히 사물을 실체와 성질로 나누어 본다.사과는 실체이고 그 모양,색깔, 맛 등은 성질이다.그러나 실체도 성질도 아닌 것,이 세상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그리고 반복되는 것,이런 존재가 있다.들뢰즈는 바로 이런 존재,즉 「사건」을 사유하고자 한다.
〈사건〉
우리의 사유를 좌절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다.세계는 존재할 수도 있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그런데 존재하게 되었다.그런데 이 「존재하게 됨'은 하나의 실체도,또 성질도 아니다.그것은 사건(事件)이다.
〈사건의 특성〉
보다 일상적인 예를 들어보자.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있었다.우리는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고 말한다.대관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화려한 궁전 안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주교의 손에는 왕관이 들려 있었다.즉,사물들이 존재했다.사람들의 옷 색깔은 화려했고,주교의 모자는 독특한 모양새를 띠었고,왕관은 환하게 빛났다.즉,사물들의 다양한 성질이 존재했다.왕관이 나폴레옹의 머리에 얹힌다.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왕관이 얹히는 순간 사람들의 수가 증가했는가.특정한 의자가 사라졌는가.아니면,사람들의 옷 색깔이 변했는가.주교의 모자 모양이 바뀌었는가.왕관의 빛이 사라졌는가.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모든 사물,모든 성질은 그대로다.그럼에도 왕관이 나폴레옹의 머리에 얹힌 그 순간적 운동,즉 순간적으로 발생했다가 사라진 그 행위 자체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형성한다.그 사건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사건은 왕관이 나폴레옹의 머리에 얹히는 바로 그 순간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그럼에도 그 모든 일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한 것이다.사건은 순간적인 것이다.그럼에도 우리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사건들이다.이 점에서 전통철학이 사건을 충분히 사유하지 않았던 것은 유감이다.
〈사건과 반복〉
사건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장종훈이 홈런을 칠 때의 「딱」소리는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홈런을 치는 상황 자체도 마찬가지다.사물(타자 공 심판 등)도 성질(장종훈의 생김새,공의 모양,심판의 옷 색깔 등)도 변하지 않았다.단지 순간적으로 사건이 발생했다가 사라진 것이다.그러나 사건은 반복된다.세 경기 뒤에 장종훈이 다시 홈런을 쳤다면,「딱」소리와 홈런을 치는 상황은 재현(再現)된다.수십년 전에 루 게릭과 베이브 루스가 홈런을 쳤을 때,오늘날 장종훈과 이승엽이 홈런을 칠 때 똑같은 사건들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사건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그 어디에서인가 다시 나타난다.들뢰즈의 「의미의 논리」(1969)는 바로 이 사건 개념을 탐구한다.
〈사건과 의미〉
사건은 또한 의미이기도 하다.물론 사건은 일차적으로 물질적 과정이다.나폴레옹의 머리에 왕관이라는 금속이 얹히는 것,야구방망이가 공과 부딪쳐 「딱」 소리가 나고 공이 멀리 날아가는 것은 물질적 과정이다.그러나 사건은 동시에 의미이기도 하다.나폴레옹의 머리에 왕관이 얹힌 것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유럽에 새로운 정치적 질서가 탄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장종훈의 방망이가 공과 부딪쳐 공이 멀리 날아간 것은 `장종훈이 올해의 홈런왕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물질의 차원과 의미의 차원은 이렇게 동시적으로 발생한다.그러므로 물질을 관념의 차원에,관념을 물질의 차원에 환원시키려는 시도들은 빗나간 사유들이다.물질의 운동이 의미를 동반하며,또 의미를 통해서만 물질의 운동은 이해되는 것이다.이 점이 「의미의 논리」가 전개하고 있는 핵심적인 사유다.
역동적 구조주의로서의 사건의 존재론
사건의 존재론은 칸트 이래 전개되어 온 주체의 철학,내면의 철학을 비판한다.세계는 사건으로 구성된다.그리고 이 사건들은 계열화(系列化)된다.예컨대 한 반체제 인사가 어떤 건물 아래를 지나다 위에서 떨어진 벽돌을 맞았을 때,그 사건 자체는 물리적 사건이다.그러나 이 사건이 한달 전에 있었던 사건 즉 그 반체제 인사가 정부의 한 고위관리를 비판했던 사건과 계열화될 때,그리고 한달 뒤의 사건 즉 민주혁명이라는 사건과 계열화될 때 그 사건의 의미는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다.다시 말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계열화됨으로써 일정한 의미체계를 형성하며,인간․주체는 이렇게 형성된 계열들의 그물 안에서만 행위하고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이 점에서 들뢰즈의 사유는 주체가 의미를 `구성한다'고 보는 주체․내면의 철학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구조주의적 사유에 근접한다.그러나 들뢰즈는 고전적 형태의 구조주의가 시간,우연,특수성 등 궁극적으로는 사건을 사유할 수 없다고 보고,보다 역동적인 형태의 구조주의를 제시하고 있다.이 점에서 들뢰즈의 사유는 푸코의 계보학,셰르의 인식론,부르디외의 `아비투스'의 사회학,르네 봄의 카타스트로피 이론,프티로의 언어학 등과 더불어 후기 구조주의,역동적 구조주의를 대변한다.특히 이들 중에서도 들뢰즈의 사유는 후기 구조주의의 가장 깊은 차원,즉 존재론의 차원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건의 존재론에서 욕망의 세계사로〉
「의미의 논리」는 68년에 발표된 「차이와 반복」과 더불어 들뢰즈의 대표적인 주저를 이룬다.들뢰즈가 이 저작들에서 전개한 논리는 흔히 「사건의 존재론」또는 「차이의 존재론」이라고 불리며,이 존재론은 오늘날의 철학을 대표하는 핵심적 사유다.그리고 이 사건․차이 개념은 후에 「욕망」의 개념으로 변환된다.들뢰즈는 가타리와 더불어 저술한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이 욕망 개념을 토대로 해 세계사를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다.이 점에서 들뢰즈는 존재론이라고 하는 순수철학 분야와 역사의 사유라고 하는 보다 실천적이고 시사적(時事的)인 분야에 동시에 공헌한 보기 드문 예를 남기게 되었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