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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입(滅入)- 정한모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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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한모


<감상의 길잡이>

점점 멸하여 들어간다는 다소 추상적인 의미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시적 화자가 미루나무에서 보고 느낀 가을의 공허감을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화자의 주관적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 채,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가을을 제시하고 있다.

 

1연은 시간의 이미지를 제시한 부분으로, 12행에서는 한 개 돌 속에 / 하루가 소리 없이 저물어 가듯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것을 차가움과 냉혹함의 정적인 것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반해 34행에서는 옮기어 가는움직임이란 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동적 이미지로 변모된다. 2연은 도치법이 구사된 부분으로, 적막한 가을의 모습을 헐벗은 미루나무를 통해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조한 시야란 가을을 바라보는 화자의 쓸쓸한 마음을 뜻하며, ‘미루나무의 나상이란 종말에 선 인간, 곧 무상한 인생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모여드는 원경을 흔들어 줄 / 바람도 없이는 바람도 없는 적막 속에 서 있는 미루나무의 외로움과 함께 인생의 허무감을 정적 이미지로 보여 주고 있다. 3연은 미루나무의 줄기를 묘사한 부분으로서 여름날의 화려했던 푸르름을 잃어버린 그것을 이루어 온 밝은 빛깔과 보람 / 모두 다 가라앉은 줄기로 나타내어 젊은 날의 꿈과 영광을 잃고 황혼길에 선 인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이란 표현은 나목을 보여 주기 위한 화자의 단순한 시선 이동이라기보다는 인생의 무상성, 유한성을 뛰어넘고 싶어하는 화자의 초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연은 하늘에 맞닿아 있는 미루나무의 모습으로 비록 육신은 지상에 묶여 있지만, 정신만은 삶의 유한적 한계를 극복하고 천상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태도가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이 시는 가을의 고독한 미루나무를 밑그림으로 하여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멸입되어 자연에 귀의하게 된다는 철리(哲理)와 그것의 극복 의지를 암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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