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 정진규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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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 정진규


 

작가 : 정진규(1939- ) 경기도 안성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60동아일보신춘문예에 나팔서정(抒情)이 당선되어 등단.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그의 초기시는 화려하고 섬세한 언어적 수사와 자의식의 심층에 대한 탐닉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후의 시들에서는 시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의 갈등, 그리고 내적인 갈등을 형상화하였고 산문시의 유려한 리듬을 통해 시련을 감내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시집으로는 마른 수수깡의 평화(平和)(모음사, 1966), 유한(有限)의 빗장(예술계사, 1971),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교학사, 1977), 매달려 있음의 세상(문학예술사, 1979), 비어있음의 충만을 위하여(민족문화사, 1983), 연필로 쓰기(영언문화사, 1984), 옹이에 대하여(문학사상사, 1989) 등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정진규의 시집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는 그의 60년대를 지배하던 방황을 모태로 하고 있다. 그 스스로 제어할 수 없었던 방황의 방향성은 점점 더 그를 일방적인 한 곳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마침내 가족으로부터도 추방당한 극단에서 그의 절창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가 쓰여진다.

 

추방당한 자의 비애감이 이 시의 격정적 어조를 드높이고 있다. 빈 들판에서 오로지 혼자 차가운 술을 마시는 고립되고 소외된 자, 그리하여 마침내 버려진 자의 격앙된 비애는 `때가 아니로다'와 같은 탄식을 세 번이나 되풀이하게 만든다. 때를 만나지 못한 이무기가 과연 자기 자신인가. 왜 그 이무기는 때를 만나지 못하고 온 국토의 벌판을 기어가는가. 그는 한 가마솥의 물을 덮히던 어머니의 불을 왜 그리워하는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자의 파멸감이 이 시의 비애감에 깊게 배어 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떠올리며 때가 아니로다를 외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어머니의 불로 지피어진 한 가마솥의 뜨거운 물로 삶의 모든 허물을 씻어버리고 새로이 태어나고자 하지만, 음산한 하늘, 뜨락에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홀로 있게 만드는 그의 처절한 자의식은 아마도 그에게는 이무기처럼 운명적인 것일는지도 모른다.

 

고립된 자의 고독하고 쓸쓸한 내면은 `들판의 비인 집', 뜨락의 `작은 나무 의자 하나', `온 국토의 벌판을 기일게 기일게 혼자서 건너가는 비에 젖은 소리의 뒷등' 등의 서글픈 이미지를 통해 잘 형상화된다. 비어 있고, 버려졌으며, 조그맣고 혼자인 존재, 더구나 그 뒷모습은 뼈저린 고통을 겪은 자의 것일 터이며, 그가 있는 곳은 춥고 황량한 장소임이 분명하다. 비 내리는 들판의 비인 집에서 차가운 한잔의 술로 혼자인 자신을 위로하는 그에겐 지금 한줌의 따뜻함이 얼마나 간절히 그리울 것인가.

 

그는 행복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따뜻한 기억을 품고 있는 아늑한 시간일 것이다. 잃어버린 꿈인 듯 시인의 유년에는 한 마리의 이무기가 살아남아 울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한 가마솥의 뜨거운 물과 아궁이에 지펴지던 어머니의 불이 있다. 뜨거운 물과 불이 있는 유년은 비와 차가운 술밖에 없는 현재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춥고 하강적인 현실에서 시인은 뜨겁게 불타 오르던 과거의 시간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 어머니가 지피던 불을 다시 타오르게 할 수가 없다. 지금은 `잘 마른 삭정이들, 불의 살점들 하나도 없이' 오직 혼자일 뿐이며, 한잔의 술만이 전재산이기 때문이다.

 

로다(도다)'의 단정적이고 고압적인 어투는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절망적인 현실을 더욱 벗어날 수 없는 속박으로 느끼게 만든다. [해설: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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