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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 김영랑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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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 김영랑

 

걷던 걸음 멈추고 서서도 얼컥 생각키는 것 죽음이로다

그 죽음이사 서른 살 적에 벌써 다 잊어버리고 살아왔는디

웬 노릇인지 요즘 자꾸 그 죽음 바로 닥쳐 온 듯만 싶어져

항용 주춤 서서 행길을 호기로이 달리는 행상(行喪)을 보랐고 있느니

 

내 가 버린 뒤도 세월이야 그대로 흐르고 흘러가면 그뿐이오라

나를 안아 기르던 산천도 만년 하냥 그 모습 아름다워라

영영 가버린 날과 이 세상 아무 가겔 것 없으메

다시 찾고 부를 인들 있으랴 억만 영겁이 아득할 뿐

 

산천이 아름다워도 노래가 고왔더라도 사랑과 예술이 쓰고 달금하여도

그저 허무한 노릇이어라 모든 산다는 것 다 허무하오라

짧은 그동안이 행복했던들 참다웠던들 무어 얼마나 다를라더냐

다 마찬가지 아니 남만 나을러냐? 다 허무하오라

 

그날 빛나던 두 눈 딱 감기어 명상한대도 눈물은 흐르고 허덕이다 숨 다 지면 가는 거지야

더구나 총칼 사이 헤매다 죽는 태어난 비운(悲運)의 겨레이어든

죽음이 무서웁다 새삼스레 뉘 비겁할소냐마는 비겁할소냐마는

죽는다고만이라이 허망한 생각 내 마음을 왜 꼭 붙잡고 놓질 않느냐

 

망각하자해본다 지난날을 아니라 닥쳐오는 내 죽음을

! 죽음도 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허나 어디 죽음이사 망각해질 수 있는 것이냐

길고 먼 세기(世紀)는 그 죽음 다 망각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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