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말- 정지용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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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용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조선지광 69, 1927.7)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어린 화자의 따스한 마음을 통해 가축이 겪고 있는 이산(離散)의 아픔을 지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박한 동시(童詩)적 감각의 시로, 속삭이는 듯한 어투와 밀도 있는 압축과 여운 있는 생략, 특히 색채감과 질량감을 함께 보여 주는 검정콩 푸렁콩이라는 시어는 이 시의 작품성을 더욱 튼튼하게 하고 있다.

 

첫 행에서 화자는 말을 다락과 같다고 한다. 이것은 어두컴컴하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다락과 말이 사는 마구간이 비슷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발상으로, 이것을 통해서 화자가 어린 아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어두컴컴할 뿐만 아니라 곰팡이 냄새까지 배어 있어, 흡사 마구간을 연상하게 하는 다락은 우리의 전통 가옥 구조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 부엌과 천장 사이의 공간에 이층처럼 만들어 물건을 넣어 두게 된 곳을 말한다. 유년의 화자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그 곳에 몰래 기어들어가 자기만의 세계를 건설하고, 그 속에서 군것질도 하고, 책도 읽고, 동무들과 장난도 하며 무지개 꿈을 키웠을 것이다. 말을 다만 동물로만 여기지 않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가축으로 생각하는 화자는 말아, 사람 편인 말아라고 다정히 부르며 검정콩 푸렁콩을 주겠다고 말한다. ‘은 말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로, 화자가 콩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곧 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함축한다. 그러나 키가 크고 날렵하게 생긴 말에게서 화자는 점잖음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말에게서 진한 슬픔을 느낀다. 화자가 말에서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2연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자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 말이 밤마다 달을 쳐다보며 헤어진 부모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온갖 정성과 사랑을 기울여 가축을 길러 내지만, 가축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가족과의 이산의 아픔을 겪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해 주는 이 작품은 가축을 기르는 우리의 일상적 삶을 반성하게 하는 한편, 나아가 동물에게도 육친에 대해 갖는 그리움이 인간과 동일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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