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滿船) / 본문 일부 및 해설 / 천승세
by 송화은율만선(滿船) / 천승세
등장 인물
곰치 (49세. 어부) 성삼 (47세. 곰치의 친우, 어부)
구포 댁 (48세. 그의 아내) 연철 (28세. 도삼의 벗, 어부, 슬슬이의 애인)
도삼 (30세. 그들의 아들) 임제순 (60세. 선주)
슬슬이 (19세. 그들의 딸) 범쇠 (50세. 주막의 주인)
마을 어부 A
때 : 현대, 여름
곳 : 남해안에 있는 조그만 어촌
바다여 바다여
제 3 막
무대 : 무대 오른편에 낡은 초가. 몇 해 동안이나 이엉을 얹은 듯 거무스름하게 퇴색한 지붕이 군데군데 움푹 꺼져 있어 허술하기 짝이 없다. <중략> 무대 안쪽 멀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질러 난 뚝길, 평지보다 높다. 그 뒤론 바다, 먼 섬들의 산봉우리들이 배경이 된다. 막이 오르면 저녁, 우편 방 추녀 끝에서 좌편 방 추녀 끝으로 긴 빨랫줄에 보잘 것 없는 옷가지가 널려 있고, 마당 한가운데 높은 장대줄엔 잡생선 몇 마리가 널려 있다. 세간 하나 없는 마루가 훵하다.
(이때 구포댁 터벅터벅 걸어 들어온다. 안은 갓난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당을 빙빙 돈다. 한눈에 미친 것 같다.)
곰치 : 으디를 쏴댕겨?
구포 댁 : (여전히 갓난애의 얼굴에 눈길을 박은 채) 모실 갔다 왔소!
곰치 : 모실? 아니 믄 청승에 모실이여?
구포 댁 : (하늘을 쳐다보며) 그냥 구경하고 댕겼제 머…….
곰치 : 슬슬이 년은 으디 갔어?
구포 댁 : (고개를 살래살래 내젓는다.)
곰치 : (마루 위에 벌렁 드러누워 버리며) 이고, 도삼아아――
구포 댁 : (무표정한 얼굴)
곰치 : (드러운 채) 아무 말도 아니여! (처절하게) 그래 뱃놈은 물 속에서 죽어사 쓰는 법이여……. 그것이 팔짜니라아―― (열을 올려) 나는 안 죽어! 그여코 배를 부리고 말 것이여! 돛 달 때마다 만선으로 배가 터지는 때가 반다시 있고 말고!
구포 댁 : (마당을 서성대며) 흥! 그 꼴로 에미를 보다니, …… 눈은 희멀겋게 뜨고는 머리는 산발하고는, 옷은 믓을 입었드라? 옳체! 생모시 저고리 바지를 입고는…… 그 옷을 해 주지도 않었었는디 으디서 빌려 입었단 말잉가? 연철이 옷이등가?
곰치 : 믓이라고? 믄 소리여?
구포 댁 : (내뱉듯) 우리 도삼이 말이요!
곰치 : (벌떡 일어나 앉으며) 믓이라고 도삼이!
구포 댁 : 아암! 나도 도삼이를 봤어!
곰치 :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도, 도삼이를 봐?
구포 댁 : 봤고 말고! 이 에미 손목을 떨어져라 흔들어 댐시러는 믓이라고 해쌓드만은 새끼가 말소리도 똑똑하게 안 하고 실실 웃기만 하고는……그러다가……그러다가……그냥 가부렀어! (몇 걸음 부리나케 달려가다 우뚝 서며 찢어질 듯) 도삼아! 도삼아!
곰치 : 저것이…….
구포 댁 : (사방을 휘둘러보고 나선) 아니, 아니……이 매정스런 놈의 새끼가 으디로 가부렀어? 아 도삼어으――도삼어으――(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으흐흐흐! (운다.)
곰치 : (침통하게) 도삼이는 죽었다!
구포 댁 : 죽었어? 연철이도 죽고?
곰치 : 아암! 벌써 죽었어!
구포 댁 : 그짓말! 내가 아까 참에도 봤는디?
곰치 : (구포댁의 어깨를 툭툭 치며) 여봐! 정신 채려!
구포 댁 : 시상에 내 청대 같은 아들놈이 으째 죽는단 말이여? 다, 다아 그짓말이여! 그짓말! 도삼이는 살었어!
곰치 : 아니, 이것이 참말로 미쳤단 말잉가? (우악스럽게 어깻죽지를 잡아 흔들어 대며)
여봐! 으째 이려 응? 정신을 채려! 자네까지 이라고 나서면 곰치는 참말로 죽어 나자빠진 줄 안단 말이여! 다른 놈들이 나를 그렇게 봐도 괜찮단 말이여?
구포 댁 : 그래, 우리 도삼이는 참말로 죽었소? 참말?
곰치 : (비통하게) 아암! 주 죽었어――.
구포 댁 : 그람 남은 놈은……남은…… (애기를 들어 보이며) 이놈 하나람 말이제?
곰치 : 으음―― 그놈이 열 살만 되면 그물을 손질할 놈이여!
구포 댁 : (눈이 휘둥그래져서) 이놈도 그물을 칠 것잉고? 열 살이먼?
곰치 : 아암! 열 살만 되먼 그물을 치고 말고!
구포 댁 : (애기를 들어 눈앞에다 세우고는 뚫어지게 쳐다본다.)
곰치 : 나한테 남은 것은 그물하고 이놈하고 슬슬이뿐이여! (허탈하게) 다아 잃었어! 다아…….
구포 댁 : (불현듯) 오 참! 우리 슬슬이! 아조 범쇠한테 시집 보내!
곰치 : (깜짝 놀라) 믓이라고?
구포 댁 : 제 발로 얹어 묵는 놈한테 시집 가서는 안 되제! 그래도 범쇠는 배를 부링께…….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슬슬어으――
곰치 : 미친 소리! 나가고 없어!
구포 댁 : (애기를 들쳐 업으며) 그람 찾어사제! 범쇠는 배가 있어!
곰치 : (막아 서며) 안 된다! 이 곰치 두 눈이 멀뚱할 때까지는 절대 안 돼! 내일이라도 당장 배 탄다! 으뜬 배라도 타고 만다! 칠산 바다 부서는 아직도 사태여!
구포 댁 : (갑자기 간드러지게) 흐흐흐흐――부서가 사태? 그람 내일도 당장 만선이겠네? 흐흐흐흐――
곰치 : (질려서) 아니? 니가 참말…….
구포 댁 : 아암! 미쳤다! 미쳤어! (홱 빠져 나간다.)
곰치 : 저련 육실헐……. (성삼 들어오다 허겁지겁 달려나가는 구포댁의 뒷모습을 의혹에 찬 눈으로 쳐다보다가 불안한 얼굴로 곰치에게 다가선다.)
성삼 : (어리둥절해서) 아니, 갑자기 믄 일잉가?
곰치 : (퉁명스럽게) 내버려 둬!
성삼 : 얼굴이 사색인디?
곰치 : (침통하게) 미쳤어…….
성삼 : 믓이 아니, 믓이라고?
곰치 : 미친 것! 흥! 곰치는 안 죽어! 내가 죽나 봐라!
성삼 : 자네 그 소리 좀 고만 허게! 아짐씨도 오죽허먼 저래? 시상에 하나 남은 도삼이까지 물 속에다 처박었으니……(손바닥을 털며) 말이 아니여!
곰치 : 일일이 눈물 쏟음시러 살려면 한정 없어! 뱃놈은 어차피 물 속에 달린 목숨이여!
성삼 : 자네도 그만 고집 버릴 때도 됐어!
곰치 : (불만스럽게) 고집?
성삼 : (못을 박아) 아니고 믓잉가?
곰치 : (꼿꼿이 서선) 나는 고집 부리는 것이 아니다! 뱃놈은 그렇게 살어사 쓰는 것이여! 누구는 아들 잃고 춤춘다냐? (무겁게) 내 속은 아무도 몰라! 이 곰치 썩는 속은 아무도 몰라……(회상에 잠기며) 내 조부님이 그러셨어. 만선이 아니면 노잡지 말라고……. 우리 아부지도 만선 될 고기 떼는 파도가 집채 같어도 쌍돛 달고 쫓아가라 하셨어! (쓸쓸하게) 내 형제가 위로 셋, 아래로 한나 남은 동생놈마저 죽고 말었제…… 어…… (허탈하게) 독으로 안 살먼 으찌께 살어?
성삼 : 그래, 조부님이나 춘부장 말씀대로만 하실 참잉가?
곰치 : (단호하게) 내일이라도 당장 배 탈 참이다! 흥! 임 영감 배 아니면 탈 배 없어?
성삼 : 도삼이 생각도 안 나서?
곰치 : (격하게) 시끄럿! (침착하게) 또 있어! 아들은 또 있어…….
성삼 : 갓난쟁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후유――지독한 놈!
곰치 : ……그놈도……그놈도……열 살만 묵으면 그물 말어……. (이때 어부A 숨이 차서 들어온다.)
어부A : 곰치! 크 큰일 났네!
곰치 : 아니, 믓이 큰일 나?
어부A : 배가 떴어!
두사람 : (영문을 몰라) 배가 떠?
어부A : 자네 안사람이 우실이네 배를 띄웠단 마시!
곰치 : 믓이라고?
어부A : 벌써 한가운데 만큼이나 떠밀리고 있을 것이여!
곰치 : (말문이 막혀 혼을 빼고 서 있다.)
성삼 : 이것이 또 믄 소리여?
어부A : 돛까지 올려 띄웠으니 잡을 수도 없고, 그나저나 바람이 웬만해사 잡을 엄두라도 내제? 또 으디로 떠밀릴지 알기나 해서?
곰치 : 아니, 믄 일로? 응?
어부A : 내가 알어? 진작 봤드라먼 내가 배 띄우게 놔 둬? 배삯도 못 치르는 판에 배 하나 또 부서지게 생겼으니……(쓴 입맛을 다시며) 자네도 큰 일이여!
성삼 : 대체 믄 곡절일까?
어부A :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쉬잇! (사립문께를 힐끗 하고 나선) 물어 보게나! 나, 가네! (급히 퇴장)
(구포댁 뭐라 중얼대며 들어온다. 그네의 등엔 애기가 없다.)
곰치 : (와락 달려들어) 아니, 으쨌다고 남의 배를 띄웠나? 엉?
구포 댁 : (실실 웃으며) 나 배 안 띄웠어! 참말!
곰치 : (목을 움켜쥐고) 말을 햇! 어서! (구포댁의 등을 보곤 기겁해서) 아니,애기는? 애기는 으따 뒀어? 엉?
구포 댁 : (손을 내저으며) 몰라! 나는 몰라! 숨줄이 끊어져도 참말로 몰라!
곰치 : 믓이? 말 안 해? (목을 바싹 졸라대며) 이래도? 이래도?
성삼 : (황급히 곰치의 손을 떼어 놓으며) 이라먼 못써! 물어 봐사제, 이라먼 못써! (구포댁에게) 아짐씨, 나 성삼인디 나 알지라우?
구포 댁 : (연방 고개를 내저으며) 애기는 몰라! 나는 몰라!
곰치 : (다시 구포댁의 목을 졸라 잡고) 이것을 나 죽이고 말거여! 말 안 할래? 애기 으따가 뒀어? 응? 어서 말을 해!
구포 댁 : 갔다! 가 부렀어!
곰치 : 믓이? 가?
구포 댁 : 쩌그 뭍으로 갔다! 가 뿌렀어!
곰치 : 배에다 실어 보냈구나! 응?
구포 댁 : 아문! 뭍으로 가야 안 죽어! 지 명대로 살라먼 뭍으로 가야 해! 좋은 사람 좋은 부모 만나서 호강하고 크라고! 그래사 지 명대로 살 텡께! 쩌그 뭍으로 배타고 갔다!
곰치 : 이런 육실헐! (살기 등등한 눈으로 사정 없이 목을 조른다.)
구포 댁 : (숨이 막혀) 오냐아, 오냐, 주 죽여라아――어서어――내 새, 새끼는 갔다! 무, 뭍으로 가 뿌렀어――
곰치 : (목을 조르다 밀어붙이며) 뒈져! 어서 뒈져 뿌럿!
구포댁 : (뚱――나가떨어지며) 히히히――만선인디 내가 으째 죽어? (일어나 마당을 뱅뱅돌며) 슬슬아아―― 너도 범쇠한테 가그라아――범쇠는 배를 부리지야! (닭 쫓는 시늉을 하며) 어서어! 어서어!
성삼 : (얼굴을 감싸 버리며) 후유!
곰치 : (절규하듯) 이 미친 것아! 몇 년 있으면 그물 손질할 내 새끼를 으따가 띄워 보냈어 어엉? (미친 사람처럼 살기 등등해서 구포댁에게 달려든다.)
구포 댁 : (훌훌 도망쳐 다니며) 갔어! 갔어어―― (찢어지듯 날카롭게) 쩌그 뭍으로 갔당께에? (손을 입에 모으고 부르는 시늉) 슬슬어으! 슬슬어으! (우편 방 속을 향해서) 니도 얼른 범쇠한테 시집 가! 범쇠 맘 변하기 전에 싸게 싸게 가랑께? (혼자 샐쭉해선) 바보 같은 가시네, 아 범쇠는 배가 두 척이야, 두 척(훨훨 활개를 치며) 어서 이렇게 걸어가란 말이여! 어서!
곰치 : (살기 찬 눈으로 구포댁을 바라보고 서선) 저 육실헐 것을! 그냥…… (성삼에게 급하게) 성삼이! 얼른 가 보세! 붙잡어사제! 엉? 어서!
성삼 : 이 바람통에 으뜬 미친 놈이 배를 내줘? 코딱지만한 동네 나루로 배가 밀리는 판에?
곰치 : (나가려다) 헛간에 널쭉 있네! 그놈이라도 타고 쫓아가사제!
성삼 : 널쪽? 배가 부서지는 판에 널쪽을 타고 쫓아?
곰치 : 배보다도 널쪽이 더 나어! 널쪽만 안 놓치면 집채 같은 파도 속에서도 널쪽은 안 부서져!
성삼 : 글씨 안 돼!
곰치 : 안 될 것이 믓잉가? 곰치는 해! 어서! 어서! (나간다.)
구포 댁 : (곰치의 가랑이를 쥐어잡고) 못 가! 못 간다! 내버려 둬! 뭍에 가서 지 명대로 살게 내버려 두어 ――못 간다아―― 못 가아――
곰치 : 이것 안 놔? 안 놀 것이여? (사정없이 발로 차버리곤 부리나케 나가 버린다.)
구포 댁 : 못 가! 못 간다는디! 내버려 두어!
(구포 댁, 허겁지겁 곰치를 쫓아 나가 버린다. 무대엔 침통한 얼굴의 성삼이 혼자 한동안 넋을 빼고 서 있다가 불현듯 바삐 헛간 쪽으로 간다.)
성삼 : (처절하게) 기가 막혀! (꺼질 듯) 후유―― (헛간 속에 발을 들여 놓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헛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사이―― 기겁해서 뒷걸음질쳐 나오며) 엉? 스, 슬슬이가 모, 목을 매고 죽었구나! 슬슬이가 죽었어! 슬슬이가 죽어! (신음 처럼) 허어――슬슬이가 죽다니―― (성삼, 감전당한 듯 그 자리에 넋빼고 서 있다간 미친 듯이 달음질쳐 나가 버린다.)
성삼 : 곰치야아――이놈아아――이 만선에 미친 놈아――
단말마의 울부짖음 무대에 번져 온다. 기세 좋은 바람, 마당을 휩쓸고 지나간다. 긴 장대가 건들건들, 널린 보잘 것 없는 생선들이 따라 건들거린다.
―급히 막―
작자 : 천승세(千勝世 1939- )
형식 : 창작 희곡. 비극. 장막극. 사실주의 희극
배경 : 현대 남해안의 어촌
성격 : 사실적, 향토적
주제 : 어부(漁夫)들의 현실과 이상과의 갈등, 또는 삶에 대한 집념과 그 좌절
발표 : 국립 극장 공모 장막 희곡 모집(1964년)
표현 : 사실적 표현, 방언 구사
특징 :
① 가난한 남해안 어민들의 삶을 그들의 사고와 억센 사투리를 통해서 친근감과 향토적 정서, 현실감을 느끼게 그려 사실성을 살리고, 토속성이 두드러지게 표현하였다.
② 인간의 의지와 집념,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 심리와 의지의 대립을 섬세한 심리 묘사에 의해 표현하였다.
③ 인간의 의지와 집념이 패배하는 국면으로 인생의 양면의 양면성을 표출한 비장미가 돋보인다.
구성 : 전 3막 6장
곰치의 굽힐 줄 모르는 집념과 강인한 의지가 오히려 파멸의 원인이 되는 비극의 구성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를 성격 비극이라 한다.
발단(제1막 1장) 부서 떼의 출현과 선주의 빚 독촉
상승(제1막 2장-제2막 2장) 선주와 계약, 도삼과 연철과 함께 출어하는 곰치
절정(제2막 3장) 풍랑으로 도삼과 연철을 잃고 집으로 돌아온 곰치
대단원(제3막) 실성한 구포댁은 막내 아들을 빈배에 띄워 보내고, 슬슬이는 목을 맴
인물 :
곰치 - 만선의 집념을 가진 가난한 어부
구포댁 - 곰치의 아내
도삼 - 곰치의 아들
갈등의 양상
곰치 |
구포댁 |
바다에 대한 집념 |
바다를 벗어나고자 하는 집념 |
어부 생활에 대한 집념 |
후손에 대한 집념 |
자연과 싸우는 부성의 억셈 |
죽음의 숙명에서 벗어나려는 모성의 몸부림 |
줄거리
제1막 제1장 : 칠산 바다에 때아닌 부서 떼가 몰려드는 것으로 시작되는 발단부이다. 대대로 바다만 바라다보고 살아온 우직한 어부 곰치는 며칠만 부서를 더 잡으면 악덕 선주 임제순에게 지고 있는 배삯 빚 이만 원을 갚고 작은 배라도 한 척 장만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푼다. [발단]
제1막 제2장∼제2막 제1장 : 그러나 그의 꿈은, 한껏 자기 이득을 챙기려는 임제순이 배를 묶어 버리려 하기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제1막 제2장) 그리고 슬슬이와 연철이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 제시된다. (제2막 제1장) [전개]
제2막 제2장∼제3장 : 눈 앞에 부서 떼를 두고도 묶인 배 때문에 미칠 듯한 곰치는 임제순이 요구하는 대로 다음 날까지 빚을 갚겠다는 각서에 손도장을 찍고는 바람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간다. (제2막 제2장) 곰치는 그가 갈망하던 대로 만선의 꿈을 이루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배가 뒤집혀 잡은 고기는 물론 아들과 아들 친구인 연철이마저 잃고 자신만 겨우 구조된다. (제2막 제3장) [절정]
제3막 : 임제순은 빚을 갚으라고 곰치를 위협한다. [하강] 곰치의 아내는 미쳐서 마지막 남은 갓난 아들을 배에 실어 육지로 떠나 보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늙은 범쇠에게 팔리다시피 시집가야 할 처지에 놓인 슬슬이마저도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만다. [결말]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곰치는 장년(壯年)에 이르도록 자신의 배 한 척을 가지지 못하고 마을의 부자인 임제순에게 삯 배를 빌려 고기를 잡는다. 그는 언제나 만선(滿船)의 꿈을 지니고 고기를 잡지만 빚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어느 날, 막상 고기 떼가 몰려왔지만 선주(船主)는 빛을 받아 내기 위해 배를 묶어 놓는다. 곰치는 모처럼 찾아온 만선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불리한 조건의 계약서에 손도장을 누르고 배를 빌려 출어(出漁)를 한다. 그러나 거센 풍랑을 만나 넷째 아들 도삼과 딸의 애인인 연철을 잃고 자신만 살아서 돌아온다. 그 동안 여러 아들을 잃은 그의 아내 구포댁은 빚만 갚으면 뭍으로 떠나려던 꿈이 깨지고 아들인 도삼이마저 죽자 정신 이상자가 된다. 그러나 곰치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제 하나 남은 어린 아들이 10살만 되면 그를 어부로 만들리라고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구포댁은 하나 남은 아들마저 바다에서 죽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높은 파도가 치는데도 빈 배에 어린 아들을 태워 육지로 보내 버린다. 곰치는 배를 멈추러 쫓아 나가고 구포댁은 이를 말린다. 이러는 사이에 애인을 잃은 슬슬이는 큰 충격과 함께 집안의 빚 때문에 자신이 부자 노인에게 팔려 갈 처지에 이르게 되자 헛간에서 목을 맨다.
만선[주인공 곰치의 삶의 가치로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욕망이며 지향하는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욕망은 인간에게 또한 비극을 불러 일으키는 요인이 됨]
구포댁 : 그래, 우리 도삼이는 참말로 죽었소? 참말?
곰치 : (비통하게) 아암! 주 죽었어 ―.
구포댁 : 그람 남은 놈은……남은…… (애기를 들어 보이며) 이놈 하나란 말이제?
곰치 : 으음 ― 그놈이 열 살만 되면 그물을 손질할 놈이여!
구포댁 :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놈도 그물을 칠 것잉고? 열 살이먼?
곰치 : 아암! 열 살만 되먼 그물을 치고 말고!
구포댁 : (애기를 들어 눈 앞에다 세우고는 뚫어지게 쳐다본다.)
곰치 : 나한테 남은 것은 그물하고 이놈하고 슬슬이뿐이여! (허탈하게) 다아 잃었어! 다아…….
구포댁 : (불현듯) 오 참! 우리 슬슬이! 아조 범쇠한테 시집 보내!
곰치 : (깜짝 놀라) 믓이라고?
구포댁 : 제 발로 얹어 묵는 놈[자기 몸으로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한테 시집가서는 안 되제! 그래도 범쇠는 배를 부링께…….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슬슬어으―
곰치 : 미친 소리! 나가고 없어!
구포댁 : (애기를 둘쳐 업으며) 그람 찾어사제! 범쇠는 배가 있어!
곰치 : (막아서며) 안 된다! 이 곰치 두 눈이 멀뚱할 때까지는 절대 안 돼! 내일이라도 당장 배 탄다! 으뜬 배라도 타고 만다! 칠산 바다 부서[부세의 방언으로 조기와 비슷하게 생긴 물고기]는 아직도 사태여[사람이나 물건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포댁 : (갑자기 간드러지게) 흐흐흐흐 ― 부서가 사태? 그람 내일도 당장 만선이겠네? 흐흐흐흐―
곰치 : (질려서) 아니? 니가 참말…….
구포댁 : 아암! 미쳤다! 미쳤어! (홱 빠져나간다.)
곰치 : 저런 육실헐['육시를 할'이라는 욕설로 '육시'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다시 목 베는 형벌이다.]…….
(성삼 들어오다 허겁지겁 달려나가는 구포댁의 뒷모습을 의혹에 찬 눈으로 쳐다보다가 불안한 얼굴로 곰치에게 다가선다.) - 아들 도삼의 죽음으로 실성한 구포댁
성삼 : 자네 그 소리 좀 고만 허게! 아짐씨도 오죽허먼 저래? 시상에 한나 남은 도삼이까지 물 속에다 처박었으니…… (손바닥을 털며) 말이 아니여!
곰치 : 일일이 눈물 쏟음시러 살려면 한정 없어! 뱃놈은 어차피 물 속에 달린 목숨이여!
성삼 : 자네도 그만 고집 버릴 때도 됐어!
곰치 : (불만스럽게) 고집?
성삼 : (못을 박아) 아니고 믓잉가?
곰치 : (꼿꼿이 서선) 나는 고집 부리는 것이 아니다! 뱃놈은 그렇게 살어사 쓰는 것이여! 누구는 아들 잃고 춤춘다냐? (무겁게) 내 속은 아무도 몰라! 이 곰치 썩는 속은 아무도 몰라…… (회상에 잠기며) 내 조부님이 그러셨어. 만선이 아니면 노잡지 말라고……. 우리 아부지도 만선 될 고기 떼는 파도가 집채 같어도 쌍돛 달고 쫓아가라 하셨어! (쓸쓸하게) 내 형제가 위로 셋, 아래로 한나 남은 동생놈마저 죽고 말었제…… 어…… (허탈하게) 독으로 안 살먼 으찌께 살어?[운명적으로 바다와 싸우면서 살아야 하는데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뜻]
성삼 : 그래, 조부님이나 춘부장 말씀대로만 하실 참잉가?
곰치 : (단호하게) 내일이라도 당장 배 탈 참이다! 흥! 임 영감 배 아니면 탈 배 없어?
성삼 : 도삼이 생각도 안 나서?
곰치 : (격하게) 시끄럿! (침착하게) 또 있어! 아들은 또 있어…….
성삼 : 갓난쟁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후유 ― 지독한 놈!
곰치 : ……그놈도……그놈도…… 열 살만 묵으면 그물 말어……. - 성삼의 설득에도 완강한 곰치의 만선에 대한 집착
(구포댁 뭐라 중얼대며 들어온다. 그네의 등엔 애기가 없다.[곰치의 꿈이 깨어질 것임을 암시, 사건이 급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고, 구포댁의 모성애가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며, 곰치와 구포댁 사이에 새로운 갈등을 유발])
곰치 : (와락 달려들어) 아니, 으쨌다고 남의 배를 띄웠나? 엉?
구포댁 : (실실 웃으며) 나 배 안 띄웠어! 참말!
곰치 : (목을 움켜쥐고) 말을 햇! 어서! (구포댁의 등을 보곤 기겁해서) 아니, 애기는? 애기는 으따['어디에'의 사투리] 뒀어? 엉?
(중략)
구포댁 : 갔다! 가 부렀어!
곰치 : 믓이? 가?
구포댁 : 쩌그['저기'의 사투리] 뭍[숙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가 뿌렀어!
곰치 : 배에다 실어 보냈구나! 응?
구포댁 : 아문['아무렴'의 사투리]! 뭍으로 가야 안 죽어! 지 명대로 살라먼 뭍으로 가야 해! 좋은 사람 좋은 부모 만나서 호강하고 크라고! 그래사 지 명대로 살 텡께[아들의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 구절로 갓난 아들이 바닷가에서 자라 어부가 되면 바다에 나가 죽게 될 것이므로 뭍으로 보내야 오래 살 것이라는 뜻]! 쩌그 뭍으로 배타고 갔다!
곰치 : 이런 육실헐! (살기 등등[살기가 얼굴에 잔뜩 올라 있음]한 눈으로 사정 없이 목을 조른다.) - 구포댁이 애기를 배에 태워 뭍으로 보내버림
- 한 여인의 운명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난 비극적인 삶, 삶에 대한 집념과 그 좌절
함성 : 여러 사람이 함께 지르는 고함.
사색 : 다 죽어가는 얼굴 빛
반공 : 그리 높지 않은 공중,
수신 : 물의 신
기진 : 기운이 다함. 기진맥진(氣盡脈盡)
으디 : '어디'의 사투리
모실 : '마을'의 방언. '모실 가다'라는 말은 '특별한 볼일 없이 이웃에 놀러 가다'의 뜻
청승 : 궁상스럽고 처량한 듯한 태도
당겼제 : '다녔지'의 사투리
처절 : 참혹하리만큼 구슬픔
만선 : 배가 가득 참.
산발 : 머리를 풀어 해침.
뱃놈은 물 속에서 ~ 그것이 팔짜니라아- : 어부는 바다에서 열심히 일하다 물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며,그것이 운명이니라. 체념적 운명관(運命觀)이 엿보인다. 어부의 삶의 모든 의미를 바다에 둔 표현으로 곰치의 '만선'에 대한 집념과 함께 좌절을 모르는 강인한 인간 의지가 나타나 있다.
나는 안 죽어 ! ~ 반드시 있고 말고 ! : 곰치의 만선에 대한 집념과 우직한 성격이 잘 드러난 표현이다. 이 작품에서의 만선은 단순히 '풍어(豊漁)를 거둔다'는 의미보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끝없는 싸움과 집념을 상징한다.
흥 ! 그 꼴로 에미를 ~ 연철이 옷이등가 ? : 구포댁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과 그녀의 강한 모성애를 엿볼 수 있다.
흔들어 댐시러는 믓시러고 해쌓드만은 : 흔들어대면서 무어라고 하더니마는.
이 매정스런 - 아 도삼어으 : 아들의 환상이 사라짐에 대한 안타까움, 구포댁이 실성했음을 분명히 제시한 대목으로 곰치와의 갈등과 대립이 더 깊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시상에 : '세상에'의 사투리.
청대 : 메어 낸 뒤 마르지 아니하여 아직 푸른 대
아짐씨 : '아주머니'의 사투리.
쏟음시러 : 쏟으면서의 사투리
시상에 청대 같은 - 죽는단 말이여 : 세상에 한창 젊은 나이인 내 아들이 어찌 죽는단 말이여?
자네까지 - 안단 말이여 : 여기서 '죽어 나자빠지다'의 표현은 곰치의 만선에 대한 집념이 그의 목숨과도 비교될 만큼 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곡절 : 자세한 사연이나 까닭.
춘부장 : 살아 계신 남의 아버지에 대한 존칭.
갓난쟁이 : 갓난아이,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아이.
안사람 : 자기의 아내를 낮추어 이르는 말.
독으로 안 살면 으찌께 살어? : 운명적으로 바다와 싸우면서 살아야 하는데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뜻.
연방 : 연달아 곧.
엄두 : 감히 무엇을 하려는 마음.
판 : 일이 일어난 자리
기겁 : 깜짝 놀라거나 겁에 질리어 까무러치는 듯한 소리를 지름
으따 : '어디에'의 사투리
봐사제 : 봐야지의 사투리
쩌그 : 저기의 사투리
뭍 : 육지
아문 : 아무렴의 사투리
호강 : 호화롭고 편안한 삶을 누림
육실헐 : '육시(戮屍)를 할'의 준말. 육시는 죽은 시체를 다시 벰
살기등등(殺氣騰騰) : 살기가 얼굴에 잔뜩 올라 있음
그래사 지 명대로 살 텡께 ! : 아들의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 구절이다. 갓난 아들이 바닷가에서 자라 어부가 되면 바다에 나가 죽게 될 것이므로 뭍으로 보내야 오래 살 것이라는 뜻이다.
오냐아, 오냐, 주 죽여라아 : 남편의 행동에 대한 구포댁의 반발이 폭발한 대사로, 곰치를 더욱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아놓고 있다. 자신의 행위에 일말의 뉘우침도 없다는 뜻의 역설적 표현이다.
이 작품은 전 3막 6장으로 이루어진 창작 희곡으로, 제1막은 2장, 제2막은 3장, 제3막은 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직 바다를 운명으로 알고 만선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한 어부(곰치)를 통해서 인간의 삶에 대한 강인한 집념과 끈질긴 도전 의지를 그린 이 작품은, 억센 사투리로 된 절묘한 대사가 인물의 우직한 성격과 잘 결합되어 짙은 향토성을 보여 줌으로써 한국적 비극성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제목인 '만선'은 인간이 이루고자 하는 삶의 목표이자 가치를 상징한다. 따라서, 곰치와 그의 아내 구포댁을 중심으로 한 인간과 자연의 대결, 부성과 모성의 갈등 속에는 인간의 도전과 한계, 희망과 비극을 그려 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은 곰치라는 독특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개성 창조에 성공하고, 그로 인한 인생의 비극을 형성화하는 데 어느 정도 수학을 거둔 희곡이다. 작품의 제목 '만선(滿船)'은 우리들의 삶의 욕망이며,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를 상징한다. 여기서 곰치는 이러한 욕망 성취를 위해 행동하고 의지를 발하는 인간의 실존적 초상(肖像)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 작품은 바다를 운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어민들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강인한 집념, 그들의 욕망과 일상, 그리고 비극적 한(恨)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천승세(千勝世 1939- )
소설가. 극작가. 전남 목포 출생. 호는 하동(河東). 짙은 토속성을 바탕으로 가난한 서민들의 끈질긴 의지를 그린 희곡을 많이 썼다. 작품으로 "물꼬", "봇물은 터졌어라우" 등이 있다. 작품 경향은 인정주의를 바탕으로 가난한 서민들의 끈질긴 삶과 생의 의지를 서정적 묘사와 토속성 강한 필치로 그려냈다.
희곡과 소설의 비교
⑴ 공통점 : 소설의 일반적 요소인 플롯의 전개, 성격의 묘사, 대화의 사용, 배경 설정, 주제 등은 희곡에서도 대체로 나타난다.
⑵ 차이점
희곡 |
소설 |
① 말과 동작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 한 문학 ② 주·객관을 겸한 문학 형식 ③ 시간적, 공간적 제약받음. ④ 등장 인물의 수가 제한되고 인물의 성격적 대립이 뚜렷함. ⑤ 흥미의 연속성에 제한을 받음. ⑥ 대사에 의한 문학 ⑦ 현재 시제를 씀. |
① 사건을 이야기로 꾸며 독자로 하여금 읽게 하기 위한 문학 ② 주관과 객관을 겸한 문학 형식 ③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없음. ④ 인물의 수나 성격에 제약이 없음. ⑤ 길이에 제한이 없음. ⑥ 서술, 묘사 및 대화로 표현 ⑦ 시제의 제한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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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의미
어촌을 무대로 하여 자연과 대결하는 어민들의 강인한 의지와 비극적 삶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곰치는 바다에 모든 의미를 둔 인물이다. 여러 대를 바다에서 생활 근거를 마련하며 살아 오면서, 근원적인 한(恨)을 쌓아 온 인물이다. 가난에 찌들면서도 늘 만선에서 꿈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풍랑이 심한 날에도 바다에 나가 그물질을 하는 억센 사나이다. 그러다가 아들도 바다에서 잃고, 아내까지 실성해 버린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바다에 도전한다.
이와 같이 '만선'은 대자연과 싸워 나가는 어민들의 비극을 그린 작품으로, 싱그의 '바다로 가는 기사(騎士)'를 연상시키는데, 싱그의 작품과는 달리 의지의 한국인을 그린 점에서 뛰어나다. 사실 주인공인 곰치는 호한(浩瀚)한 바다 그 자체라 할 만큼 끈질기고 억세고 순수하다. 곰치는 독특한 인물로서 돋보인다. - (출처 : 유민영, '한국 현대 희곡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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