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땀은 떨어질 대로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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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은 떨어질 대로

 

셔산의 도들벗셔고 구움은 느제로내다

비뒷 무근풀이 뉘밧시 짓터든고

두어라 차레지운 닐이니 매는다로 매오리라

 

서산에 아침 햇볕이 비치고 구름은 낮게 떠 있구나.

비가 온 뒤의 묵은 풀이 누구의 밭에 더 짙어졌는가

아아! 차례가 정해진 일이니 묵은 풀을 매는 대로 매리라

 

도롱이예 홈의걸고 뿔곱은 검은쇼 몰고

고동플 뜯머기며 깃믈갓 나려갈제

어디셔 픔진볏심 함께가쟈 하난고

 

도롱이에 호미를 걸고 뿔이 굽은 검은 소를 몰고

고동풀을 뜯어먹게 하며 깃물가로 내려갈 때

어디서 품진 볏심은 함께하자 하는가

 

둘너내쟈 둘러내쟈 긴차골 둘너내쟈

바라기 역고를 골골마다 둘너내쟈

쉬짓튼 긴사래 마조잡아 둘너내쟈

 

쳐 내자 쳐 내자 꽉 찬 고랑 쳐내자

잡초를 고랑고랑마다 쳐 내자

잡초 짙은 긴 사래는 마주 잡아 쳐 내자

 

 

 

 

(일을 하다 보니) 땀은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볕은 쬘 대로 쬔다.

맑은 바람에 옷깃을 열고 쉬면서 긴 휘파람을 멋들어지게 불 때

어디서 길 가던 손님이 (이 소리를, 우리를, 혹은 우리의 생활을) 아는 듯이 발걸음을 멈추는가?

 

행긔예 보리마오 사발의 콩닙쳐라

내밥 만할셰요 네반찬 젹글셰라

먹은뒷 한숨 잠경이야 네오내오 다할소냐

 

행기에 보리밥이요 사발에 콩잎을 채워라

내 밥 많을세라 네 반찬 적을세라

먹은 뒤 한 숨 잠을 자는 즐거움이야 너나 나나 다르겠느냐

 

돌아가쟈 도라가쟈 해지거단 도라가쟈

계변의 손발싯고 홈의메고 돌아올제

어듸셔 우배초젹이 함께가쟈 배아난고

 

돌아가자 돌아가자 해지거든 돌아가자

시냇가에서 손발을 씻고 호미 메고 돌아올 때

어디서 소를 타고 가면서 부는 피리소리가 함께 가자고 재촉하는가

 

면홰난 세다래 네다래요 일읜벼난 피난모가 곱난가

오뉴월이 언제가고 칠월이 반이로다

아마도 하나님 너희 삼길제 날위하야 삼기샷다

 

면화는 세 다래 네 다래로 듬뿍 피고 이른 벼는 피는 이삭이 곱더라

오뉴월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가고 벌써 칠월중순이로다

아마도 하늘이 너희(면화, 벼)를 만드실 때 바로 나를 위해 만드셨구나

 

아해는 낙기질 가고 집사람은 저리채 친다

새밥닉을 따예 새술을 걸러셔라

아마도 밥들이고 잔자블따여 호흠계워하노라

 

아이는 낚시질 가고 집사람은 절이 채(겉절이 나물) 친다

새 밥 먹을 때에 새 술을 거르리라

아마도 밥 들이고 잔 잡을 때 호탕한 흥에 겨워 하노라

 

취하노니 늘그니요 웃는이 아희로다

흐튼슌배 흐린술을 고개수겨 권할 때여

뉘라셔 흐르쟝고 긴노래로 차례춤을 미루난고

 

취하는 사람은 늙은이요 웃는 사람은 아이로구나

잔 돌리는 흐린 술(막걸리)을 고개 숙여 권할 때에

누가 장구소리 긴 노래로 춤 차례를 미루는가

요점 정리

지은이 : 위백규(魏伯珪, 1727-1798)

갈래 : 평시조, 연시조 9수로 농가(農歌)

성격 : 사실적, 현실적, 전원적, 묘사적

구성 : 9수

1수

해가 떠오르는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는 모습

2수

도롱이를 입고 호미를 가져 농사일을 하는 모습과 소을 이용해 농사짓는 모습

3수

논매기하는 모습

4수

정오 무렵의 짧은 휴식을 묘사 -초장의 동적인 이미지에서 중장, 종장에서는 정적인 이미지로 시상이 변환됨.

5수

점심을 먹는 모습을 묘사

6수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용

7수

초가을의 정취가 드러남

8수

햇음식을 먹는 기쁨이 드러남

9수

음주의 흥취가 드러남

표현 : 대구법

주제 : 농사일을 하는 즐거움 / 농민의 삶과 소박한 삶의 흥취

특징 :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설의적인 어법으로 삶의 흥취를 나타냄 / 묘사적, 사실적인 표현 기교가 두드러지고,여름부터 가을까지의 계절의 변화를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루 농사일의 상황으로 병치시키고 있다

출전 : 위문가첩(魏門歌帖)

내용 연구

 

셔산의 도들벗셔고 구움은 느제로내다

비뒷 무근풀이 뉘밧시 짓터든고

두어라 차레지운 닐이니 매는다로 매오리라

 

서산에 아침 햇볕이 비치고 구름은 낮게 떠 있구나.

비가 온 뒤의 묵은 풀이 누구의 밭에 더 짙어졌는가

아아! 차례가 정해진 일이니 묵은 풀을 매는 대로 매리라

 

도롱이예 홈의걸고 뿔곱은 검은쇼 몰고

고동플 뜯머기며 깃믈갓 나려갈제

어디셔 픔진볏심 함께가쟈 하난고

 

도롱이에 호미를 걸고 뿔이 굽은 검은 소를 몰고

고동풀을 뜯어먹게 하며 깃물가로 내려갈 때

어디서 품진 볏심은 함께하자 하는가

 

둘너내쟈 둘러내쟈 긴차골 둘너내쟈

바라기 역고를 골골마다 둘너내쟈

쉬짓튼 긴사래 마조잡아 둘너내쟈

 

쳐 내자 쳐 내자 꽉 찬 고랑 쳐내자

잡초를 고랑고랑마다 쳐 내자

잡초 짙은 긴 사래는 마주 잡아 쳐 내자

 

 

(일을 하다 보니) 땀은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볕은 쬘 대로 쬔다.

맑은 바람에 옷깃을 열고 쉬면서 긴 휘파람을 멋들어지게 불 때

어디서 길 가던 손님이 (이 소리를, 우리를, 혹은 우리의 생활을) 아는 듯이 발걸음을 멈추는가?

 

 

: 대구법을 사용해서 햇볕 속에서 검게 그을린 채 열심히 일하는 농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농부를 중심 소재로 삼아 농촌의 실생활을 노래한 구절이다.

쳥풍 : 밝은 바람

파람 : 휘파람 / 노동 후 휴식하며 느끼는 만족감

흘리 : 멋들어지게

불 제 : 불 때

 

: 농부가 일하다 잠시 쉬고 있는데, 길 가던 나그네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 농부 옆에서 가만히 쉬고 있는 모습을 조용하게 읊고 있다.

 

행긔예 보리마오 사발의 콩닙쳐라

내밥 만할셰요 네반찬 젹글셰라

먹은뒷 한숨 잠경이야 네오내오 다할소냐

 

행기에 보리밥이요 사발에 콩잎을 채워라

내 밥 많을세라 네 반찬 적을세라[안빈낙도하는 삶의 모습]

먹은 뒤 한 숨 잠을 자는 즐거움이야 너나 나나 다르겠느냐[설의적 표현을 통해 즐거움을 강조]

 

돌아가쟈 도라가쟈 해지거단 도라가쟈

계변의 손발싯고 홈의메고 돌아올제

어듸셔 우배초젹이 함께가쟈 배아난고

 

돌아가자 돌아가자 해지거든 돌아가자[a-a-b-a구조]

시냇가에서 손발을 씻고 호미 메고 돌아올 때

어디서 소를 타고 가면서 부는 피리소리가 함께 가자고 재촉하는가[일을 하고 돌아오는 농부의 소박한 흥취가 제시됨 / 의문형 종결어미로 끝이 나지만 흥겨운 분위기가 느껴짐]

 

면홰난 세다래 네다래요 일읜벼난 피난모가 곱난가

오뉴월이 언제가고 칠월이 반이로다

아마도 하나님 너희 삼길제 날위하야 삼기샷다

 

면화는 세 다래 네 다래로 듬뿍 피고 이른 벼는 피는 이삭이 곱더라

오뉴월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가고 벌써 칠월중순이로다

아마도 하늘이 너희(면화, 벼)를 만드실 때 바로 나를 위해 만드셨구나

 

아해는 낙기질 가고 집사람은 저리채 친다

새밥닉을 따예 새술을 걸러셔라

아마도 밥들이고 잔자블따여 호흠계워하노라

 

아이는 낚시질 가고 집사람은 절이 채(겉절이 나물) 친다

새 밥 먹을 때에 새 술을 거르리라

아마도 밥 들이고 잔 잡을 때 호탕한 흥에 겨워 하노라

 

취하노니 늘그니요 웃는이 아희로다

흐튼슌배 흐린술을 고개수겨 권할 때여

뉘라셔 흐르쟝고 긴노래로 차례춤을 미루난고

 

취하는 사람은 늙은이요 웃는 사람은 아이로구나

잔 돌리는 흐린 술(막걸리)을 고개 숙여 권할 때에

누가 장구소리 긴 노래로 춤 차례를 미루는가

이해와 감상

 

위백규(魏伯珪)의 '농가구장' 제4장으로 햇볕에서 땀흘리면서 일하는 농부를 통해 노동의 고귀함을 간접적으로 일깨우는 작품이다. 초장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농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말하고, 중장에서는 일한 뒤의 잠깐 동안의 휴식을, 그리고 종장에서는 길가는 손님이 농부가 쉬고 있는 옆에서 가만히 쉬고 있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종자의 '손님'의 신분과 '아는듯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손님'에 대한 평가가 달라 질 수 있다. 만약 손님이 농부가 아닌 사대부 양반이고, 그런 그가 농부의 삶을 이해하는 듯이 옆에 앉아 있다면 종장의 손님은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손님이 일반 평민이고, '농부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듯한' 사람이었다면, 종장의 손님과 농부는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농촌의 일상적인 삶을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으며, 초장의 역동적인 모습과는 달리 중장과 종장은 정적(靜的)인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위의 시조는 단순히 농촌과 자연을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즐김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벗어나, 땀 흘리며 일하는 생활의 터전으로 그려냄으로써 전원(田園)을 노래한 시조의 새 경지를 열고 있다. 이 시조는 여타의 시조들과 약간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시조들 중 많은 작품들이 자연을 단순하게 즐기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꾸려 나가는 식의 노래로 부르고 있는 데 반해, 이 노래는 자연을 땀 흘리며 일하는 농가(農家)로서, 전원을 노래한 시조의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였다 하겠다.

심화 자료

위백규(魏伯珪)

 

1727(영조 3)∼1798(정조 22). 조선 후기의 실학자.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자화(子華), 호는 존재(存齋)·계항(桂巷)·계항거사(桂巷居士). 장흥 출신. 할아버지는 세보(世銅)이며, 아버지는 진사 문덕(文德)이다.

 

처음에 증조부에게 수학했으나 유년기를 지난 뒤에는 자수면업(自修勉業)하였다. 어려서부터 제가서(諸家書)를 탐독해 학문적 자세를 굳힌 그는 향리의 장천재(長川齋 : 장흥의 관산면 방촌리)에 기거하면서 면학과 교화의 일익을 담당했고, 1750년(영조 26) 학행으로 향천(鄕薦)을 받기도 하였다.

 

1751년 스승 윤봉구(尹鳳九)를 만나 그 뒤 1766년까지 경서·의례·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에 관한 논의를 통해 학문적 계도를 받았다.

 

과거에 계속 응시했으나 떨어졌고, 그 뒤 1794년(정조 18) 68세 때 서영보(徐榮輔)의 천거로 저술과 덕행이 정조에게 알려져 선공감부봉사(繕工監副奉事), 기장(機張)·태인·옥과현감, 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경기전령(慶基殿令) 등을 차례로 지냈다.

 

학통은 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윤봉구로 이어지는 노론계이나, 향촌 생활을 통해 형성된 강한 현실 비판 의식이 저술에 나타나고 있어 학문적 성격은 경세적 실학의 색채가 짙다.

 

경전의 이해나 심성론·이기론에서는 전통 성리학자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정현신보 政鉉新譜≫나 봉사류(奉事類)에서 당시의 현실을 세세하고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어 실학자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주장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향촌사회 개선론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지방 교육 개선을 통해 향촌 질서의 유지와 교화뿐만 아니라 관리 선발, 지방 관리의 경제 기능까지도 담당할 것을 주장하였다.

 

둘째 정치 기강의 해이와 이에 따라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관제 축소, 향촌의 자율적 공평 부세론, 지방 관리 선도책 등을 구상하고, 셋째 견실한 향촌 방위 체제를 주장한 점이다.

 

이 향촌사회 개선론을 일관하는 기본 구상은 향촌의 자율성 모색과 공의(公議)의 구현으로 집약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향촌 사회의 지식인들이 자율성과 공의 창달의 주도자나 중간 계층으로서, 사회의 견제 및 비판과 민중 옹호라는 양면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경세론 외에도 경학·지리·역사·의학 등에 관한 저술이 문집 ≪존재집 存齋集≫ 22권 안에 망라되어 있어 학문 폭이 매우 넓고 다양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에 대한 후인의 인물평이나 저술과는 달리 교우 관계나 후학은 매우 소략하고 묘연해 밝히기가 힘들다. 이것은 그가 호남의 벽지에서 무명의 선비로 거의 전생애를 보냈기 때문이다.

 

1805년(순조 5) 향리 유생들의 발의로 죽천사(竹川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존재집≫·≪정현신보≫·≪사서차의 四書箚義≫·≪환영지 渶瀛誌≫·≪본초강목 本草綱目≫·≪고금 古琴≫·≪격물설 格物說≫·≪원류 原類≫·≪연어 然語≫ 등이 있다.

 

≪참고문헌≫ 司馬榜目, 存齋集, 屛溪先生文集(尹鳳九), 梅山集(洪直弼), 朝鮮儒學史(玄相允, 民衆書館, 1949), 魏伯珪의 生涯와 思想(河聲來, 實學論叢, 湖南文化硏究所, 1975), 李朝實學派의 性理學觀(金敬琢, 高麗大學校 文理論集 7, 1963), 存齋 魏伯珪의 社會改善論-18C末 鄕村의 自律性摸索을 中心으로-(李海濬, 韓國史論 5, 서울大學校, 1979).(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존재집(存齋集)

 

조선 후기의 학자 위백규(魏伯珪)의 시문집. 24권 12책. 목활자본. 1875년(고종 12) 후손 병석(炳錫)과 족손 영복(榮馥)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저서는 본디 90여 권이었다 하는데, 정조의 명으로 24권을 내각(內閣)에 들여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많은 양의 저작이 유실된 듯하다. 1974년 후손에 의해 종가에 전해 오던 정초본(正草本)에 〈환영지 渶瀛誌〉를 합해 ≪존재전서 存齋全書≫로 영인되었다. 권두에 임헌회(任憲晦)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권1에 시, 권2에 만언봉사(萬言封事), 권3에 소(疏), 권4에 장(狀)·서(書), 권5∼10에 독서차의(讀書箚義), 권11∼20에 잡저, 권21에 서(序)·기·발, 권22에 명(銘)·잠(箴)·제문·축문·비명·묘갈·묘표, 권23에 묘지·행장·유사·전(傳), 권24에 부록으로 연보·행장·묘지명·위유사계목(慰諭使啓目)·경기수계(京畿繡啓)·별단이조계(別單吏曹啓)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만언봉사〉는 1796년(정조 20) 정조에게 올린 것으로, 입성지명성학(立聖志明聖學)·간보필거현능(簡輔弼擧賢能)·여염치진기강(勵廉恥振紀綱)·정사습억분경(正士習抑奔競)·율탐장금사치(律貪贓禁奢侈)·유구장혁폐정(由舊章革弊政) 등 6개 항목으로 나누어 논하였다. 이 책은 성학(聖學)을 밝힘으로써 사도(邪道)를 물리치는 것을 근본 사상으로 하여 폐정을 광정, 정치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으로, 저자의 경세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대황사간봉사 代黃司諫封事〉는 학교·문체(文體)·용인(用人)·군현·노비·무선(武選)·관직 등의 폐단을 들어 시정을 확립할 것을 주장한 내용이다. 〈독서차의〉는 사서를 공부하면서 경문과 전문(傳文)의 훈고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축장(逐章)해 상세하게 주석을 가하였다. 저자의 학문적 심오함을 살필 수 있음은 물론 사서를 공부하는 데 훌륭한 참고서가 되는 저작이다.

 

〈차의발 箚義跋〉에서는 ‘수기이사천(修己以爐天)’이라는 말은 천고성현(千古聖賢)이 대대로 전하는 묘결임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서는 과거 공부보다 경서의 자구를 깊이 연구, 이를 음미하고 사색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격물설 格物說〉과 〈원류 原類〉는 유교 철학 사상을 찾아볼 수 있는 자료이며, 〈기해의례변 己亥議禮辨〉과 〈절휴변 絶頊辨〉은 노론학통(老論學統)에 속하는 송시열(宋時烈)의 설을 옹호하는 논변이다. 〈잡술변 雜術辨〉과 〈오황해 五荒解〉는 실학적 사고에 대한 논설이며, 〈사약강령 社約綱領〉 및 〈완의 完議〉는 사회사 연구에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

 

〈정현신보 政絃新譜〉는 저자의 정치 철학과 실학 사상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으로, 학교·공거·용인·군현·관직·전제(田制)·노비·군제(軍制)·무선·조운·궁둔(宮屯)·전결(田結) 등 13조에 달하는 시폐를 설정, 당시의 사회 현상과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조목조목 피력하고 있다.

 

이는 스승인 윤봉구(尹鳳九)에게 개진하였던 것인데, 윤봉구는 시폐만을 논하지 말고 구폐(舊弊)도 함께 연구하라고 일렀다. 이에 시폐 13조 외에 인리(人吏)·벌열(閥閱)·호장(戶帳)·승니(僧尼)·관복(冠服)·전포(錢布)·봉수(烽燧)·금도(禁盜)·제언(堤堰)·목장(牧場)·포호(捕虎)·시전(市廛)·해도(海島)·어염(魚鹽)·우주송금(牛酒松禁)·총지(塚地)·공물(貢物)·공의(工醫)·기술(技術) 등을 합해 32조목에 걸쳐 폐단을 구하는 방법을 논하고 있다.

 

그는 〈정현신보 총론〉과 〈후서 後敍〉에서는 법(法)은 화민(和民)하는 데 있어서 마지막 수단임을 지적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자신이 30세 때 쓴 만록(漫錄)을 보면서 그 폐해를 말하고, 구폐순말(救弊循末)하려 함에 있어서는 구차한 규절(規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순화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규장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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