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 / 요점정리 - 유현종
by 송화은율작자소개
유현종(劉賢鐘: 1941- )
전북 전주 출생.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61년 <뜻 있을 수 없는 돌맹이>로 <자유문학> 신인상에 뽑혀 등단함. 주제와 형상화의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데뷔작 <뜻 있을 수 없는 돌맹이>는 한 개의 조그만 돌멩이에 의해 이 땅의 분단 상황과 그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는 문제작이다.
그의 작품은 대개가 저변 인간의 부조리에 대한 투쟁과 그 현실 의식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장편 <불만의 도시>에서도 밀수 재벌을 통한 사회악의 통속적인 상황을 고발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거인>, <섬진강>, <연개소문> 등이 있다.
요점정리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근대사의 큰 흐름인 동학 혁명.
인물 : 임여삼 - 주인공. 유순하고 일 잘하는 무식한 상민. 동학 혁명
속에서 새롭게 눈을 뜬 민중으로 성장해 가는 인물.
곽무출 - 여삼의 친구. 왜놈 앞잡이 노릇을 하는 전도사.
전봉준 - 동학군의 지도자. 녹두 장군.
주제 : 근대 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에서의 민중의 의식 각성.
이해와 감상
동학 농민 전쟁은 우리 나라 근대 민중 항쟁사에 있어서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따라서, 역사학계에서도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따져서 그 진실과 역사적 실체를 파악하고자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동학 혁명은 아직도 많은 미해결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사건에서 20-50만 명이 죽었고, 청 일 두 나라가 이 땅에 들어와 전쟁을 벌이는 구실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선의 봉건 제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 시, 희곡 등 많은 문학 작품들도 동학 혁명을 주제로 다루었고, 이를 소재로 삼는 그림 판소리도 나왔다. 그런데 그러한 작품들에는 그 실상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채 형상화한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한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본다면, 조정의 부정 부패에만 초점을 맞춘다든지 농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리는 데만 열중한다든지 동학 교단을 전적으로 다룬다든지 하는 등의 경향을 띠고 있어서 동학 혁명 자체의 전개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작품화 하는 미숙함을 보이고 있다.
현재 동학 농민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들도 이 같은 미숙함으로 인해서 역사소설로서 실패하고 있다. 적어도 역사 소설은 일반적 현대 소설과는 어떤 제약을 받는다. 그것은 그 역사적 사건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서 거기에 픽션을 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활, 풍속, 언어가 생생히 살아나야 할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어우러져야 비로소 역사 소설이라고 할 것이다.
조선 말 고종조(朝)를 배경으로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조선 농민들의 통한의 삶을 다룬 유현종의 <들불>은 역사 소설의 이런 요건을 제대로 갖추었다는 점에서 그 소설적 가치가 있다.
줄거리
이웃 농민이 받는 관폐(官弊)의 학정을 못 이겨, 순박한 농민이자 씨름꾼인 임호한은 민란을 일으켜 현감을 죽이고 재물을 나눠 준 후 도망을 치게 된다. 그로 인해 임호한의 아들인 임여삼과 딸 상녀, 아내는 관노(官奴)가 된다.
여삼은 신관 사또 최동진에게서 개돼지 취급을 받으면서도 잘 길들여 진 짐승처럼 아무런 저항감도 느끼지 못한 채 사또의 명령에 순복하는 충실한 관노로 살아간다. 그 후, 여삼의 어머니는 시체 방치장에서 굶어 죽고 누이 상녀는 사또 최동진의 몸종 겸 첩이 된다.
한편, 사또의 심부름으로 왜싸전에 비단, 금 등의 물품 구입 청구를 위해 달려간 여삼은 그 곳 주인 전풍과 교분을 맺은 후 다시 관아로 돌아온다. 관내(官內)에는 또다시 변화를 겪는데, 여삼의 친구 곽무출이 관내로 침입하여 사또 암살을 기도하다가 잡히고 누이를 만난 여삼은 방화를 일으켜 곽무출을 구출한다. 여삼은 무출을 도피시킨 죄로 태장을 맞고 옥에 갇히지만, 옥을 부수고 궐기하여 관아를 뛰쳐나와 왜싸전으로 가서 나락(볏섬) 나르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돌연한 최동진의 출현으로 쫓기게 되자 강을 헤엄쳐 도주하여 율치 고개로 간다. 여기에서 여삼은 이진악과 김개팔, 원소공 일당을 만나게 된다. 이진악은 대원군의 밀서를 김병순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고, 원소공 무리는 동학 교도가 아닌 화룡산 패였다. 이들과 친하게 된 이진악은 대원군의 동학도(東學徒) 옹호와 포섭의 취지를 전하기 위해 녹두 장군 전봉준을 만나고자 한다. 그래서 이진악은 화룡산 패의 요구 대로 곽무출을 통해 총기 40정을 구입하게 된다. 곽무출은 당시 야소교(예수교)의 성서 매서인(賣書人) 겸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동학교 소탕을 위해 군산 앞바다에 청국 군함 '평원호'와 '창룡호'를 이끌고 경군과 함께 정박한 홍계훈은 먼저 전주성에 입성한다. 단숨에 전주로 진격하자는 동학도(東學徒) 부관 김계남의 강론이 있자 전봉준은 그들의 신식 화포에 대한 두려움과 더 많은 교도 포섭을 위해, 또 교도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전주성 남쪽을 들이쳤다. 그로부터 홍계훈의 경군과 숨바꼭질을 벌인 후, 경군이 성을 비운 틈을 타서 전주성을 공략하게 된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홍계훈이 지연 작전을 벌이는 사이에 초토사의 관군이 밀어닥친다. 3만의 동학 교도들은 산비탈을 의지하여 대포를 가진 홍계훈의 관군과 접전을 벌이게 되지만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봉준은 패배에 대애 의국심을 갖는 교도들 앞에서, 저렇게 교도들이 숱하게 죽어 누운 것은 '시천주 조화정 영제 불망 만사지'란 13자 부적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음 전투에서 여삼은 신들린 듯 주문을 외면서 적진을 향해 혈혈 단신으로 달려가 바위를 들어 기관 포수와 조수를 쳐죽이고 기관포 총구를 대포 쪽으로 돌렸다. 이리하여 전투는 동학군의 대승으로 끝나고 여삼은 보졸 기총으로 특진된다. 이어 동학군은 호남의 제1 성인 전주성을 탈환하고 탐관오리들에 대한 과감한 숙청을 단행한다.
이 때 조정에서는 동학란으로 인한 민영준의 반청 반명격으로 청국을 끌어들이게 되고 '통지 후 진격'이란 조약에 따라 일본군도 진입하게 된다. 이에 동학군은 전주성 북부의 검두봉 탈환 작전을 위하여 성문을 열고 반격을 개시한다. 청 일 양국의 내란 간섭으로 위기감을 느낀 전봉준은 '녹두 장군은 죽었다'라는 헛소문을 낸 후, 심복에게 일시 해산(解散)을 명한다. 그러나 전봉준은 신화 속에 다시 부활하고 전라 좌 우도에 집강소를 설치하게 된다.
한편 여삼은 옥이와 단꿈에 젖게 된다. 이진악은 훈련장에 있는 전봉준을 찾아와 동학 교도의 서울 진입을 원하는 대원군의 뜻을 전한다. 이 때 일본은 내정 간섭을 위해 대원군을 허수아비 삼아 정계에 끌어들이고 그의 손자 이진용 역시 내무대신 서리가 된다. 이에 경악한 이진악은 이진용을 찾아가지만 이진용은 이진악을 가두어 버린다.
동학군 남접의 두목 전봉준은 북접의 교주 최시형에게 밀사를 보내어 거사를 위한 양측 합거(合擧)를 요청한다. 약속대로 다음날 새벽 출진한 이들은 삼례에서 만난 남 북접 10만 대군은 공주성을 공략할 준비를 한다.
양반 차림을 하고 공주에 이른 여삼은 상노의 강권으로 색주가에 들게 되지만 거기에서 누이 상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기다려 달라는 여삼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상녀는 자살한다. 여삼은 상녀가 만난 일이 있는 곽무출을 만나게 되는데, 무출은 왜놈 첩자의 브로커가 되어 있었다.
여삼이 본진에 합류한 후, 동학군은 왜병에게 처참히 무너진다. 여삼은 절룩이며 걷지만 옥이는 여삼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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