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견(杜鵑)- 김영랑
by 송화은율두견(杜鵑) - 김영랑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
너는 너른 세상에 설움을 피로 새기러 오고,
네 눈물은 수천(數千)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南)쪽 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 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젓한 이 새벽을
송기한 네 울음 천(千) 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 별들 버르르 떨리겠구나.
몇 해라 이 삼경(三更)에 빙빙 도는 눈물을
씻지는 못하고 고인 그대로 흘리웠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 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
무섬증 드는 이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
저기 성(城) 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 찬 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 어둘 저 흰 등 흐느껴 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 마음마저 가고지워라.
비탄의 넋이 붉은 마음만 낱낱 시들피느니
짙은 붐 옥 속 춘향이 아니 죽었을라듸야
옛날 왕궁(王宮)을 나신 나이 어린 임금이
산골에 홀로 우시다 너를 따라 가시었느니
고금도(古今島) 마주 보이는 남쪽 바닷가 한 많은 귀향길
천리 망아지 얼렁 소리 쇤 듯 멈추고
선비 여윈 얼굴 푸른 물에 띄웠을 제
네 한된 울음 죽음을 호려 불렀으리라.
너 아니 울어도 이 세상 서럽고 쓰린 것을
이른 봄 수풀이 초록빛 들어 풀 내음새 그윽하고
가는 댓잎에 초승달 매달려 애틋한 밝은 어둠을
너 몹시 안타까워 포실거리며 훗훗 목메었느니
아니 울고는 하마 지고 없으리, 오! 불행의 넋이여,
우거진 진달래 와직 지우는 이 삼경의 네 울음
희미한 줄 산(山)이 살풋 물러서고
조그만 시골이 흥청 깨어진다.
▶ 「영랑시집」(1935)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영랑이 즐겨 쓰던 4행이나 8행의 서정 소곡(抒情小曲)과는 달리 상당히 길다는 것부터가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영랑의 ‘두견’은 키츠의 ‘나이팅게일에게(두견부)’와 그 뉘앙스나 분위기, 그 내용의 일부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촉나라 망제의 넋이 두견이 되었다는 전설을 통하여 노래하고자 한 시심을 알아보자.
두견이 토해내는 음향이 저승까지 울린다는 것은 두견의 음향 구조와 영혼 구조의 동질성을 승인함으로써 비로소 성립됨을 이해하자.
▶ 성격 : 낭만적, 감상적
▶ 심상 : 시각적, 청각적 심상
▶ 어조 : 영탄적 어조
▶ 표현 : 감정 이입
▶ 구성 : ① 원한과 슬픔에 지친 두견(1연)
② 저승의 노래를 토해 내는 두견(2연)
③ 비탄의 넋에 대한 한(恨)(3연)
④ 삶의 고뇌에 대한 설움(4연)
▶ 제재 : 두견의 울음
▶ 주제 : 삶의 비탄
<연구 문제>
1. 이 시의 지배적 정서를 드러낸 두 어절의 시구를 찾아 쓰라.
☞ 서럽고 외롭고
2. 이 시의 제2연에서 두견의 울음 소리를 은유로 형상화한 시구 둘을 찾아 쓰라.
☞ (1) 저승의 노래 (2) 죽음의 자랑찬 소리
3. 두견의 전설과 관련된 꽃 이름을 쓰라.
☞ 진달래꽃. (두견화,杜鵑花)
4. 이 시에서 죽음을 시각화하여 표현한 시구를 찾아 쓰라.
☞ 흰 등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소재가 전통적인 점이 특징이다. 두견은 슬픈 전설을 간직한 새다. 봄밤에 끊임없이 울어대는 두견새. 그 새의 울음 속에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이고 전통적 정서인 설움, 눈물, 슬픔, 그리움, 한(恨) 등이 서려 있다.
이러한 감상적, 낭만적 정서를 지닌 두견의 울음 소리를 통하여 시의 화자는 희망과 꿈의 계절인 봄의 흥겨움을 노래하는 대신 어둡고, 암담하고, 쓰라린 삶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설움과 한을 간직해 왔다. 춘향이 그러하고, 왕궁을 떠난 나이 어린 임금(단종)이 그러하고, 먼 섬으로 귀양 간 선비들이 그러하고, 그들을 보내고 맞는 백성들 또한 그러하였다. 이 시의 화자 역시 현실의 암당함과 쓰라림 속에 그러한 삶의 고뇌를 저 두견처럼 밤을 지새우며 비탄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볼 때, 이 시는 특히 화자가 처한 현실적 상황이, 계절적 배경인 봄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마저도 제시할 수 없는 정도의 어려운 상황이었음이 짐작된다.
옛날 중국 촉(蜀)나라 망제의 넋이 화하여 된 새, ‘두견’. 그 새의 울음 소리를 통하여 현실적 삶의 비탄을 노래한 이 시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인 한(恨)의 정서와 접맥되어 있다 할 것이다.
◀참고▶ 두견새는 뻐꾸기와 비슷하나 밤에 우는 접동새와는 다른 새이다. 아마도 시인이 두견새를 접동새와 같은 종류의 새로 잘못 알고 이 시를 쓴 듯하다. 접동새는 올빼미과의 소쩍새를 달리 이르는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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