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왕편(東明王篇)
by 송화은율동명왕편(東明王篇)
(전략)
왕이 천제 아들의 비(妃)인 것을 알고 별궁(別宮)에 두었더니, 그 여자의 품 안에 해가 비치자 이어 임신하여 신작(神雀) 4년 계해년 여름 4월에 주몽(朱蒙)을 낳았는데,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상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처음 낳을 때에 좌편 겨드랑이로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닫 되[五升]들이만 하였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하고, 사람을 시켜 마구간에 두었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고, 깊은 산에 버렸더니 모든 짐승이 호위하고, 구름 끼고 음침한 날에도 알 위에 항상 햇빛이 있었다. 왕이 알을 도로 가져다가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하였더니, 알이 마침내 갈라져서 한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낳은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언어가 모두 정확하였다.
어머니에게,
"파리들이 눈을 빨아서 잘 수가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오."
하였다. 그 어머니가 댓가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스스로 물레 위의 파리를 쏘는데 화살을 쏘는 족족 맞혔다. 부여(扶餘)에서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들 한다.
나이가 많아지자 재능이 다 갖추어졌다. 금와(金蛙)왕은 아들 일곱이 있는데 항상 주몽과 함께 놀며 사냥하였다. 왕의 아들과 따르는 사람 40여 인이 겨우 사슴 한 마리를 잡았는데 주몽은 사슴을 퍽 많이 쏘아 잡았다. 왕자가 시기하여 주몽을 붙잡아 나무에 묶어 매고 사슴을 빼앗았는데, 주몽이 나무를 뽑아 버리고 갔다. 태자(太子) 대소(帶素)가 왕에게,
"주몽이란 자는 신통하고 용맹한 장사여서 눈초리가 비상하니 만일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고 하였다.
왕이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하였다. 주몽이 마음으로 한을 품고 어머니에게,
"나는 천제의 손자인데 남을 위하여 말을 기르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 남쪽 땅에 가서 나라를 세우려 하나 어머니가 계셔서 마음대로 못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이것은 내가 밤낮으로 고심하던 일이다. 내가 들으니 장사가 먼 길을 가려면 반드시 준마가 있어야 한다. 내가 말을 고를 수 있다."
하고, 드디어 목마장으로 가서 긴 채찍으로 어지럽게 때리니 여러 말이 모두 놀라 달아나는데 한 마리 붉은 말이 두 길이나 되는 난간을 뛰어넘었다. 주몽은 이 말이 준마임을 알고 가만히 혀 밑에 바늘을 꽂아 놓았다. 그 말은 혀가 아파서 물과 풀을 먹지 못하여 심히 야위었다. 왕이 목마장을 순시하며 여러 말이 모두 살찐 것을 보고 크게 기뻐서 야윈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이 이 말을 얻고 나서 그 바늘을 뽑고 도로 먹였다 한다.
건너려 하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을 두려워 하여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皇天)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
하고,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가 나와 다리를 이루어 주몽이 건넜는데 한참 뒤에 쫓는 군사가 이르렀다.
쫓는 군사가 하수에 이르니 고기와 자라가 이룬 다리가 곧 허물어져 이미 다리에 오른 자는 모두 빠져 죽었다.
주몽이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어미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
하고 오곡 종자를 싸주어 보내었다. 주몽이 살아서 이별하는 마음이 애절하여 보리 종자를 잊어버리고 왔다. 주몽이 큰 나무 밑에서 쉬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다. 주몽이,
"아마도 신모(神母)께서 보리 종자를 보내신 것이리라."
하고, 활을 쏘아 한 화살에 모두 떨어뜨려 목구멍을 벌려 보리 종자를 얻고 나서 물을 뿜으니 비둘기가 다시 소생하여 날아갔다고 한다.
(후략)
요점 정리
지은이 : 이규보(李奎報)/이식 옮김
문체 : 산문체, 역어체, 설화체
성격 : 서사적, 교훈적, 진취적, 신화적
구성 : 발단-전개-절정-대단원의 4단 구성으로 영웅의 일대기 구조
형식 : 5언 282구로 된 영웅시
구조 : 영웅 구조
주제 : 동명왕의 탄생과 고구려 건국
특징 : 북방계 난생설화와 천손하강 모티프를 지녔고,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드러냄. 「동명왕편」은 5언(五言) 282구(句)로 된 영웅 서사시이다. 이규보가 26세 때(1193년) 고구려의 건국 신화인 주몽 신화를 노래한 것으로 체제를 보면 앞에 서문이 있고 본문 속에는 부분부분 『구삼국사(舊三國史)』에 수록되어 있다는「동명왕 본기(本記)」의 신화를 옮겨 놓고 있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 구삼국사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중요하다. 이 작품은 주몽의 영웅적 행적과 위업을 찬미한 작품인 만큼 주몽 신화의 내용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그 갈등의 폭을 넓히고 주몽의 영웅적 포부·의지·지혜 등을 더욱 부각시켰다.
출전 : 동국이상국집,
내용 연구
하백 : 물을 주관하는 신
해모수 : 북부여를 세운 이
웅신산 : 백두산의 별칭으로 보기도 하는데 위치는 미상임
엄수 : '삼국사기'에는 '엄체수'라고 되어 있고, 주에는 '개사수'로 불리며, 지금의 압록강 북동부에 있다고 함.
음침 : 음울하고 의뭉스러움
王知慕 妃(왕지모수비) 왕이 해모수의 왕비인 것을 알고
仍以別室 (잉이별실치) 이에 별궁에 두었다.
懷日生先蒙(회일선생몽) 해를 품고 주몽을 낳았으니
是歲歲在癸(시세세재계) 이 해가 계해년 이었다.
骨表諒最奇(골표량최기) 골상이 참으로 기이하고
啼聲亦甚偉(제성역심위) 우는 소리가 또한 심히 컸다.
初生卵如升(초생란여승) 처음에 되만한 알을 낳으니
觀者皆驚悸(관자개경계)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王以爲不祥(왕이위불상) 왕이 상서롭지 못하다
比豈人之類(비기인주류) 이것이 어찌 사람의 종류인가 하고
置之馬牧中(치지마목중) 마구간 속에 두었더니
群馬皆不履(군마개불리) 여러 말들이 모두 밟지 않고
葉之深山中(엽지심산중) 깊은 산 속에 버렸더니
百獸皆擁衛(백수개옹위) 온갖 짐승이 모두 옹위하였다.
母姑擧而育(모고거이육) 어미가 우선 받아서 기르니
經月言語始(경월언어시) 한 달이 되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自言蠅 目(자언승참목) 스스로 말하되 파리가 눈을 빨아서
臥不能安睡(와불능안수) 누워도 편안히 잘 수 없다 하였다.
母爲作弓矢(모위작궁시) 어머니가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니
其弓不虛 (기궁불허기) 그 활이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年至漸長大(년지점장대) 나이가 점점 많아지매
才能日漸備(재능일점비) 재능도 날로 갖추어졌다
扶余王太子(부여왕태자) 부여왕의 태자가
其心生妬忌(기심생투기) 그 마음에 투기가 생겼다
乃言朱蒙者(내언주몽자) 말하기를 주몽이란 자는
此必非常士(차필비상사) 반드시 범상한 사람이 아니니
若不早自圖(약불조자도) 만일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其患誠未已(기환성미이) 후환이 끝없으리라 하였다.
王令往牧馬(왕령왕목마) 왕이 가서 말을 기르게 하니
欲以試厥志(욕이시궐지) 그 뜻을 시험하고자 함이었다.
自思天之孫(자사천지손) 스스로 생각하니 천제의 손자가
牧良可 (시목량가치) 천하게 말 기르는 것 참으로 부끄러워
心常竊導(문심상절도) 가슴을 어루만지며 항상 혼자 탄식하기를
吾生不如死(오생불여사)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
意將往南土(의장왕남토) 마음 같아서는 장차 남쪽 땅에 가서
立國立城市(입국입성시) 나라도 세우고 성시도 세우고자 하나
爲緣慈母在(위연자모재)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離別誠未易(리별성미역) 이별이 참으로 쉽지 않구나
其母聞此言(기모문차언) 그 어머니 이 말 듣고
潛然 淸淚(잠연문청루) 흐르는 눈물 씻으며
汝幸勿爲念(여행물위념) 너는 내 생각하지 말라
我亦常痛 (아역상통비) 나도 항상 마음 아프다
士之涉長途(사지섭장도) 장사가 먼 길을 가려면
須必憑 (수필빙록이) 반드시 준마가 있어야 한다며
相將往馬閑(상장왕마한) 아들을 데리고 마구간에 가서
卽以長鞭 (즉이장편추) 곧 긴 채찍으로 말을 때리니
群馬皆突走(군마개돌주) 여러 말은 모두 달아나는데
一馬馬幸 色斐(일마성색비) 붉은 빛이 얼룩진 한 말이 있어
跳過二丈欄(도과이장란) 두 길 되는 난간을 뛰어 넘으니
始覺是駿驥(시각시준기) 이것이 준마인 줄 비로소 깨달았다
潛以針刺舌(잠이침자설) 남모르게 바늘을 혀에 꽂으니
酸痛不受飼(산통불수사) 시고 아파 먹지 못하네
不日形甚 (불일형심구) 며칠 못 되어 형상이 심히 야위어
却與駑 似(각여노태사) 나쁜 말과 다름없었다.
爾後王巡觀(이후왕순관) 그 뒤에 왕이 돌아보고
予馬此卽是(여마차즉시) 바로 이 말을 주었다.
得之始抽針(득지시추침) 얻고 나서 비로소 바늘을 뽑고
日夜屢加 (일야루가위) 밤낮으로 도로 먹였다
暗結三賢友(암결삼현우) 가만히 세 어진 벗을 맺으니
其人共多智(기인공다지) 그 사람들 모두 지혜가 많았다
南行至淹滯(남행지엄체) 남쪽으로 행하여 엄체수에 이르러
欲渡無舟艤(욕도무주의) 건너려 하여도 배가 없었다
秉策指彼蒼(병책지피창) 채찍을 잡고 저 하늘을 가리키며
慨然發長 (개연발장위) 개연히 긴 탄식을 발한다
天孫河伯甥(천손하백생) 천제의 손자 하백의 외손이
避難至於此(피난지어차)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소
哀哀孤子心(애애고자심) 불쌍한 고자의 마음을
天地其忍棄(천지기인기) 황천 후토가 차마 버리시리까
操弓打河水(조궁타하수) 활을 잡아 하수를 치니
魚鼈騈首尾(어별변수미) 고기와 자라가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하여
屹然成橋梯(흘연성교제) 높직이 다리를 이루어
始乃得渡矣(시내득도의) 비로소 건널 수 있었다
俄爾追兵至(야이추병지) 조금 뒤에 쫓는 군사 이르러
上橋橋旋 (상교교선비) 다리에 오르니 다리가 곧 무너졌다
雙鳩含麥飛(쌍구함맥비) 한 쌍의 비둘기 보리 물고 날아
來作神母使(래작신모사) 신모의 사자가 되어 왔다
形勝開王都(형승개왕도) 형세 좋은 땅에 왕도를 개설하니
山川鬱 (산천울죄규) 산천이 울창하고 높고 컸다
自坐 上(자좌제절상)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略定君臣位(약정군신위) 대강 군신의 위치를 정하였다.
이해와 감상
성인(聖人)이 태어날 때는 기이한 행적이 따른다. 중국의 여러 성인이 그러했듯 우리 동명왕도 그렇다는 것을 밝힌 글이다.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는 아침에는 인간 세계에 내려와 정사(政事)를 돌보고 저녁에는 하늘로 돌아갔다. 어느 날 하백(河伯)의 세 딸이 웅심 물가에서 놀았는데, 해모수가 세 처녀를 유인했다. 맏딸 유화(柳花)가 해모수에게 잡혔다. 하백이 노하여 해모수와 변신술로 겨루었는데 패배했다. 하백은 해모수를 붙잡아 두려 했으나 해모수는 하늘로 돌아가 버리고 성난 하백은 유화를 우발수(優渤水)로 쫓아버렸다.
동부여의 금와왕(金蛙王)이 유화를 데려갔는데, 유화는 알을 낳았다. 알에서 깬 주몽(朱蒙)은 활을 잘 쏘고 재능이 뛰어나 금와왕의 왕자들에게 시샘을 받았다. 이에 세 어진 벗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 나라를 세웠다. 비류국과 싸워 이기고 궁궐을 세운 뒤 하늘로 올라갔다. 주몽의 아들 유리(瑠璃)가 뒤를 이었다.
심화 자료
동명왕편
고려 후기에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한문서사시. 오언 장편 282구의 장편 인물서사시로 약 4,000자에 이른다. 〈동명왕편〉은 그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 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
〈동명왕편〉은 동명왕 탄생 이전의 계보를 밝힌 서장(序章)과 출생에서 건국에 이르는 본장(本章), 그리고 후계자인 유리왕의 경력과 작가의 느낌을 붙인 종장(終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작동기]
〈동명왕편〉의 서문에서 이규보는 “처음 동명왕의 설화를 귀신(鬼 귀)과 환상(幻 환)으로 여겼다. 그러나 연구를 거듭한 결과 귀신이 아니라 신(神)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시로 쓰고 세상에 펴서 우리 나라가 원래 성인지도(聖人之都 ;성인 세운 나라)임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고 저작동기를 적고 있다. 〈동명왕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용]
해동의 해모수(解慕漱)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다. 고니를 탄 100여 인의 종자(從者)를 거느리고 하늘로부터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채색 구름 속에 떠서 내려 왔다. 성 북쪽에 청하(靑河)가 있고 거기에 하백(河伯)의 세 딸 유화(柳花)·훤화(萱花)·위화(葦花)가 있었다. 해모수가 사냥을 갔다가 이들 세 미녀를 만나서 그 중에 맏딸인 유화와 혼인하도록 해달라고 하백에게 간청하였다.
하백은 해모수의 신통력을 시험한 뒤에 그에게 신변(神變:人智로 알 수 없는 무궁무진한 변화)이 있음을 알고 술을 권하였다. 하백은 해모수가 술이 취하자 유화와 함께 가죽가마에 넣어서 하늘로 보내려 하였다. 그런데 술이 깬 해모수는 놀라서 유화의 비녀로 가죽가마를 찢고 혼자 하늘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백은 유화를 꾸짖으며 태백산 물 속에 버렸다. 유화는 고기잡이에게 발견되어 북부여의 금와왕(金蛙王)에 의하여 구출되었다.
유화는 뒤에 해모수와 관계하여 주몽(朱蒙)을 낳았다. 주몽은 처음에는 되 크기만한 알이었다. 금와왕은 상서롭지 않은 일이라 하여 마굿간에 버렸다. 말들이 이것을 짓밟지 않아서 깊은 산 속에 버렸더니 짐승들이 이것을 보호하였다. 알에서 나온 주몽은 골격과 생김새가 영특하여 자라면서 재주가 뛰어났다. 뒷날에 부여를 떠나 남으로 가서 비류국(沸流國)의 송양왕(宋讓王)의 항복을 받고 나라를 세웠다. 이것이 고구려의 건국이다. 그가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이다. 종장에는 동명성왕의 아들 유리(類利)가 부왕(父王) 동명왕을 찾아서 왕위를 계승한다.
[의의]
〈동명왕편〉은 당시 중화중심(中華中心)의 역사의식에서 탈피하여 ≪구삼국사 舊三國史≫에서 소재를 취하여 우리의 민족적 우월성 및 고려가 위대한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다는 고려인의 자부심을 천추만대에 전하겠다는 의도에서 씌어진 것이다. 이규보의 국가관과 민족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외적에 대한 항거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명왕편〉은 북방대륙에서 한반도의 남단에 이르기까지 넓은 강토와 천상·해상·삼계를 무대로 하여 영웅호걸들의 상호 갈등을 통하여 사건이 전개되고 발전되고 힘과 힘, 꾀와 꾀, 신통력의 대결을 통하여 부족사회적인 힘을 집결하여 고대국가의 건설이라는 역사적인 대업을 완수하는 사실이 작품을 통하여 반영되고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참고문헌≫ 東國李相國集
≪참고문헌≫ 한국문학사상사시론(趙東一, 知識産業社, 1978)
≪참고문헌≫ 英雄敍事詩 東明王(張德順, 國文學通論, 신구문화사, 1960)
≪참고문헌≫ 高麗中期民族敍事詩(李佑成, 한국의 역사상, 創作과 批評社, 1976)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명왕 개국설화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朱蒙)에 관한 설화로 주몽의 설화는 3가지 설이 있다.
① 광개토왕 비문(碑文)과 《위서(魏書)》 <고구려전>에 의하면 주몽은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모친은 하백(河伯)의 딸이었다. 방안에서 이상한 햇빛을 받은 후 알을 낳았는데, 그 알을 깨고 나온 것이 주몽이다. 그가 자라나서 천제의 명을 받고 전국을 순수(巡狩)하러 남하하게 되었는데, 도중에 부여 땅의 엄리수(奄利水)라는 큰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주몽은 나룻터에서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니 나를 위해 다리를 놓아 달라”고 하자, 거북들이 물 위로 떠올라 다리를 놓아주어 강을 건너 졸본(卒本)으로 남하하여 고구려를 건설하였다는 설화이다.
②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 의하면 주몽은 북부여 사람으로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에 왔는데,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는 부여왕이 주몽의 비범함을 알고 둘째딸과 혼인시켜 사위로 삼고, 뒤에 부여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계승하였다는 설화이다.
③ 《삼국사기》의 <고구려기(高句麗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동명왕편주(東明王篇註)> 등에 의하면 주몽의 어머니가 유화(柳花)이며 주몽이 알에서 나왔다는 점과 졸본에서 건국하였다는 내용은 ①의 기록과 같으나, 주몽의 어머니가 햇빛을 받기 전에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에게 유인되어 욕을 당하였다는 점과 유화를 방에 가둔 것이 동부여 금와왕(金蛙王)이라는 점, 그리고 주몽이 자란 곳과 죄를 지은 곳이 동부여였다는 기록이 있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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