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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動動)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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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動動)

 

 

 

 

덕은 뒤에(뒷 잔에, 신령님께) 바치옵고, 복은 앞에(앞 잔에, 임에게) 바치오니,
덕이며 복이라 하는 것을 진상하러 오십시오.  
정월 냇물은 아아, 얼려 녹으려 하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이 몸이여, 홀로 살아가는구나. 
2월 보름에 아아, 높이 켜 놓은 등불 같구나.
만인을 비추실 모습이시도다. 
3월 지나며 핀 아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태어나셨구나. 
4월을 잊지 않고 아아, 오는구나 꾀꼬리새여.
무엇 때문에(어찌하여) 녹사님은 옛날을 잊고계시는구나.  
5월 5일(단오)에, 아아 단옷날 아침 약은
천 년을 사실 약이기에 바치옵니다 
6월 보름(유두일)에 아아, 벼랑에 버린 빗같구나.
돌아보실 임을 잠시나마 따르겠나이다. 
7월 보름(백중)에 아아, 여러 가지 제물을 벌여 놓고
임과 함께 살고자 소원을 비옵니다. 
8월 보름(가위)은 아아, 한가윗날이지마는,
임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늘이 뜻 있는 한가윗날입니다. 
9월 9일(중앙절)에 아아, 약이라고 먹는
노란 국화꽃이 집 안에 피니 초가집이 고요하구나. 
10월에 아아, 잘게 썰은 보리수나무 같구나.
꺾어 버리신 후에 (나무를) 지니실 한 분이 없으시도다. 
11월에 봉당 자리에 아아, 홑적삼을 덮고 누워
임을 그리며 살아가는 나는 너무나 슬프구나
(슬픔보다 더하구나. 사랑하는 임과 갈라져 제각기 살아가는구나). 
12월에 분지나무로 깎은 아아, (임께 드릴) 소반 위의 젓가락 같구나.
임의 앞에 들어 가지런히 놓으니 손님이 가져다가 뭅니다. 

 

 요점 정리

 작가 : 미상

 연대 : 고려시대

 형식 : 고려 속요

 형태 : 전 13연, 달거리(월령체 : 한 해 열두 달의 순서에 따라 노래한 시가의 형식)

 구성 : 달에 따라 구성으로 서사 1연과 본사 2연~ 13연

1연

서사

임에 대한 송축

2연

1월령

자신의 외로운 처지(나릿물)

3연

2월령

임의 빼어난 모습 찬양(등ㅅ불)

4연

3월령

임의 아름다운 모습 찬양(달욋곳 = 진달래꽃)

5연

4월령

자신을 찾지 않는 임에 대한 원망(곶고리)

6연

5월령

임의 장수에 대한 기원(단오 : 아침약)

7연

6월령

임에게 버림받은 처지 비관(유두절 : 빗)

8연

7월령

임을 따르고자 하는 염원(백종)

9연

8월령

임없는 한가위의 쓸쓸함(한가위)

10연

9월령

임의 부재로 인한 고독(중앙절 : 황화)

11연

10월령

버림받은 사랑에 대한 회한(바랏 = 보리수나무)

12연

11월령

임없이 살아가는 슬픔 - 독수공방의 외로움(한삼)

13연

12월령

임과 맺어지지 못하는 인연의 기구함(져 = 나무젓가락)

 

 시적 화자를 비유한 표현으로 6월령의 별해 버린 빗과 10월령의 져미연 바랏은 임에게 버림받은 화자의 신세를 형상화한 것이고, 12월령의 반잇 져는 임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선택받은 자신의 신세를 형상화함

 표현 : 영탄법, 직유법, 은유법

 성격 : 상징적, 비유적, 서정적, 민요적, 송축적, 월령체, 이별의 노래, 민요풍, 송도가

 내용 :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남녀의 이별의 정한과 임을 그리는 한 여인의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제재 : 달마다 행하는 민속

 주제 : 송축과 고독의 비애 또는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각 연마다 주제가 다르다)

 의의 : 고려 가요 중에서 유일한 우리 문학 최초의 달거리 노래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월령체이다.

 특징 : 영탄법, 직유법, 은유법을 사용하고, 여음구 '동동'은 북소리의 의성어이고, '다리'는 ㅇ악기 소리의 의성어를 나타내고, 세시 풍속에 따라 사랑의 감정을 읊고, 임에 대한 송축과 연모의 정이 어우러짐

 참고 : 고려와 조선을 통하여 궁중에서 연주되었고, 나례(궁중에서 악귀를 쫓기 위해 베풀던 의식) 뒤에도 처용지희 속에 동동무가 있었으나, 중종 때에 와서 남녀상열지사라 하여 정읍사와 함께 폐지되었다.

 

 

 

 

내용 연구



덕일랑은 뒷 잔(신령님께)에 바치옵고
복일랑은 앞 잔(임금님께)에 바치옵고
덕이여 복이라 하는 것을
드리러(진상하러) 오십시오
아으 동동다리

덕은 뒤에(뒷 잔에, 신령님께) 바치옵고,
복은 앞에(앞 잔에, 임에게) 바치오니,
덕이며 복이라 하는 것을 진상하러 오십시오.(드리러 오십시오)

'고려사 악지"에서 '다유송도지사(多有頌禱之詞 : 경사스러움을 찬양하고 축복하는 송도의 노래)'라고 한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 임에의 송도(頌禱)이다. 이 때의 임은 '임금'과 같은 공적인 임이라는 의미가 짙다.

주제 : 송도(頌禱) - 덕과 복을 빎



정월의 냇물은
아! 얼었다 녹았다 정다운데
누리(세상) 가운데 나고는
이 몸은 홀로 지내누나
아으 동동다리 

정월 냇물은 아아, 얼려 녹으려 하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이 몸이여, 홀로 살아가는구나.



정월령으로 생의 고독과 임에의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정월의 냇물이 얼려 녹으려 한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임으로 하여금 녹게 하고 싶다는 의미와 정을 녹여 줄 사람도 없이 홀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진 중의적 또는 우의적 표현이다. 

주제 : 고독(孤獨) - 생의 고독과 아련한 그리움 또는 연모와 애끓는 외로움 



이월 보름에
아! (내 님은) 높이 켠 등불 같아라
만인 비치실 모습이로다
아으 동동다리

2월 보름에 아아, 높이 켜 놓은 등불 같구나.
만인을 비추실 모습이시도다.



2월 연등절(燃燈節)에 높이 켜 놓은 등불에서 서정적 자아는 만인이 우러러볼 만한 임의 모습을 발견한다.

주제 : 송축(頌祝) - 임의 인품 찬양



삼월 나면서 핀 아! 늦봄 진달래꽃(혹은 오얏꽃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음)이여
남이 부러워할 자태를 지니고 나셨도다
아으 동동다리

3월 지나며 핀 아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태어나셨구나.



꽃 피는 3월, 거기에도 아름다운 임의 모습은 있다. 늦봄에 핀 진달래꽃에서 임의 모습을 조영(照影)해 보는 것이다.

주제 : 송축(頌祝) - 임의 아름다움을 찬양



사월 아니 잊고
아! 오셨네 꾀꼬리여
무슨 일로 녹사님은 옛날을 잊고 계신가
아으 동동다리

4월을 잊지 않고 아아, 오는구나 꾀꼬리새여.
무엇 때문에(어찌하여) 녹사님은 옛날을 잊고 계시는구나. 

꾀꼬리는 잊지 않고 찾아왔지만, 녹사(綠事)님은 옛날의 나를 잊었는가. 상사(想思)에 몸부림치는 여인의 임에 대한 원망과 한탄이 서려 있는 연이다. 대조적 표현

주제 : 애련(哀戀) - 무심한 임에 대한 애끓는 정



오월 오일에
아! 수릿날 아침 약은
천 년을 길이 사실 약이라고 받치옵니다
아으 동동다리 

5월 5일(단오)에, 아아 단옷날 아침 약은
천 년을 사실 약이기에 바치옵니다.

 

 

이 수릿날(단오) 아침에 먹는 약은 천 년을 장수하는 약이라 한다. 그러나 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혼자 임의 모습을 그리며, 약을 받들어 드릴 뿐이다. 

주제 : 기원(祈願) - 임의 만수무강을 빎



유월 보름에
아! 벼랑가에 버린 빗 같구나
돌아보실 님을 잠시나마 따르겠습니다.
아으 동동다리

6월 보름(유두일)에 아아, 벼랑에 버린 빗같구나.
돌아보실 임을 잠시나마 따르겠나이다.

주제 : 애련(哀戀) - 버림받은 신세를 참고 견딤



칠월 보름에 아! 갖가지 제물 벌여 두고
님과 함께 지내고자 소원을 비옵니다
아으 동동다리

7월 보름(백중)에 아아, 여러 가지 제물을 벌여 놓고
임과 함께 살고자 소원을 비옵니다.

7월 보름 백중날, 온갖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기원을 올릴 적에, 임과 함께 살아보겠다는 애절한 소망을 기도했음을 노래한 것이다.

주제 : 연모(戀慕) - 임을 영원히 따르고 싶어 하는 염원 



팔월 보름은
아! 한가윗날이건마는
님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늘이 뜻있는 한가윗날입니다.
아으 동동다리

8월 보름(가위)은 아아, 한가윗날이지마는,
임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늘이 뜻 있는 한가윗날입니다.

8월 보름은 한가위라 하여 땀 흘려 가꾼 곡식과 풍성한 과일을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는 때로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명절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임이 있어야만 진정한 한가위다운 날이 되련만, 홀로 임을 그리는 고독과 그리움만이 있다는 노래이다.

주제 : 연모(戀慕) - 임 없이 쓸쓸하게 맞이하는 한가위 



구월 구일에
아! 약이라 먹는 노란 국화꽃이
집 안에 피니 초가집이 고요하구나.
아으 동동다리 

9월 9일(중앙절)에 아아, 약이라고 먹는 노란 국화꽃이
집 안에 피니 초가집이 고요하구나.

9월은 중양절이 있는 달이다. 중양절에는 황화전(黃花煎)을 해 먹는 풍습이 있다. 황화전의 재료인 국화꽃이 집 안 가득 피어 나니, 임이 안 계시는 초가가 더욱 적막하게 느껴진다. 적막한 가운데 고독과 한을 간직한 노래이다. 

주제 : 적요(寂寥) - 사랑에 버림 받고 물러나는 쓸쓸함



시월에
아! 잘게 썰은 보리수나무 같구나
꺾어 버린 뒤에 (나무를) 지니실 한 분이 없으시도다
아으 동동다리

10월에 아아, 잘게 썰은 보리수나무 같구나.
꺾어 버리신 후에 (나무를) 지니실 한 분이 없으시도다.



10월에 산에는 보리수가 열린다. 그 붉은 열매를 따먹은 위에는 누구든 다시 처다볼 사람이 없다. 버림받은 가련한 신세, 체념과 애상(哀傷)이 한데 엉긴 애련(哀戀)을 노래하고 있다.  

주제 : 애련(哀戀) - 버림받은 사랑에 대한 회한과 고독



십일월 봉당 자리(흙바닥)에 아! 홑적삼 덮고 누워
임을 그리며 살아가는 나는 너무나 슬프구나
아으 동동다리

11월에 봉당 자리에 아아, 홑적삼을 덮고 누워
임을 그리며 살아가는 나는 너무나 슬프구나
(슬픔보다 더하구나. 사랑하는 임과 갈라져 제각기 살아가는구나).

11월 추운 겨울 밤, 맨 바닥인 봉당 자리에 홑적삼 하나를 덮고 누워 생각하니 임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앞을 가리고, 홀로 살아가는 자신의 신세가 참으로 기가 막히다는 비애를 그리고 있다.

주제 : 비련(悲戀) - 독수공방의 외로움



십이월 분지나무로 깎은 아! 차려 올릴 소반의 젓가락 같구나.
님 앞에 들어 가지런히 놓으니 손님이 가져다 입에 뭅니다
아으 동동다리

12월에 분지나무로 깎은 아아, (임께 드릴) 소반 위의 젓가락 같구나.
임의 앞에 들어 가지런히 놓으니 손님이 가져다가 뭅니다.



귀한 손님 같으신 임께 올릴 진짓상을 차려, 임께서 쓰시라고 가지런히 젓가락을 올렸더니, 생각지도 않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 써 버렸다는 것이다. 이루지 못할 사랑, 뜻하지 않은 사람에게 시집가게 된 비련(悲戀)의 주인공인 나의 신세를 노래한 마지막 연이다. 

 

주제 : 애련(哀戀) - 헤어져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분절체 형식과 후렴구 사용 등에서 고려 가요의 형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나, 월령체 (月令體)라는 점이 이색적이다. 남녀의 이별을 제재로 하여,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새로워지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내용은 축도(祝禱)와 사랑이자만, 12개월의 특성에 맞추어 송축과 찬양, 떠나버린 임에 대한 원망과 한스러움, 그리움 등을 표현하고 있어서 한 여인의 슬픈 마음을 체험케 하고 있다.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것은 송도와 연모이지만, 이 노래에는 송축과 찬양이 있는가 하면 원망과 한이 있고, 고독의 몸부림이 있는가 하면 애절한 상사가 있고, 체념과 자조가 있는가 하면 해행(함께 감) 에의 간절한 기원이 있어 가히 사랑의 일대 파노라마요, 여인 애사의 축도를 보는 듯한 감이 있다.

 

이해와 감상1

이 노래는 분절체 형식과 후렴구 사용 등에서 고려 가요의 형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나, 월령체 (月令體)라는 점이 이색적이다. 남녀의 이별을 제재로 하여,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새로워지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내용은 축도(祝禱)와 사랑이자만, 12개월의 특성에 맞추어 송축과 찬양, 떠나버린 임에 대한 원망과 한스러움, 그리움 등을 표현하고 있어서 한 여인의 슬픈 마음을 체험케 하고 있다.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것은 송도와 연모이지만, 이 노래에는 송축과 찬양이 있는가 하면 원망과 한이 있고, 고독의 몸부림이 있는가 하면 애절한 상사가 있고, 체념과 자조가 있는가 하면 해행(함께 감) 에의 간절한 기원이 있어 가히 사랑의 일대 파노라마요, 여인 애사의 축도를 보는 듯한 감이 있다.

 

 우리 문학 최초의 월령체인 이 노래는 분연체 형식과 후렴구 사용 등 형태적인 면에서 속요의 일반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이 노래는 일 년 열두 달에 맞춰 한 여인의 정감을 노래하고 있는 연가풍(戀歌風)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서사(1연)는 공적인 임(임금)에 대한 송도(頌禱)의 성격이 짙어 이 노래가 궁중에서 불려졌던 의식가(儀式歌)였음을 보여 준다.

 

 이런 형식의 노래로는 "동동" 외에 "관등가(觀燈歌)"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가 있고, 민요에 "청상요(靑孀謠)"가 있다. 또, 조선 성종 때의 문인 성현(成俔)이 지은 "전가사십이수(田家詞十二首)"와 같은 한시도 있다. 달거리의 특징은 농경 생활이 반영되어 있으며, 세시기(歲時記)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전 13연으로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제1연만은 임을 송도(頌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달이 바뀜에 따라 연으로 구분되고, 한 연이 끝날 때마다 여음이 나타난다. 서정적 자아는 여성이며, 임은 남성이다.

 

 각 연별로 나누어 정리해 보기로 한다.

 

 1연 : 임에 대한 송도(頌禱)를 내용으로 하는 이 노래의 서사(序詞)로서, 이 노래가 궁중에서 불리어졌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의식가(儀式歌)의 절차를 갖추기 위해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등장하는 '임'은 개인적 정서와 관계된 '임'으로 볼 수 있지만, '임금'과 같은, 공적인 존재로서의 '임'이라는 의미를 짙게 풍긴다. 이는 일 년 열두 달에 맞추어 한 여인의 정감을 노래하고 있는 연가풍(戀歌風)의 나머지 연에 등장하는 '임'과 구별되는 점이다.

 2연 : 달거리의 정월령으로 생의 고독과 임에의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정월과 냇물이 얼다가 녹으려 한다는 표현은 자신과 임과의 관계와 연결시켜,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우의적(寓意的)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3연 : 2월 연등절(燃燈節)에 높이 켜 놓은 등불에서 서정적 자아는 만인이 우러러볼 만한 임의 모습을 발견한다.

 4연 : 꽃 피는 봄을 배경으로 하는 삼월령에서는, 늦봄에 핀 진달래꽃을 통해 아름다운 임의 모습을 찾고 있다.

 5연 : 계절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꾀꼬리와 자신을 찾지 않는 녹사 임을 대조시키면서, 임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 서정적 자아의 임에 대한 원망과 한탄을 표현하고 있다.

 6연 : 5월 5일 수릿날(단오) 아침에 장수를 기원하며 약을 드는 풍습을 통해, 소중한 존재로서의 임을 나타내고 있다.

 7연 : 6월 보름,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유두(流頭) 풍습을 배경으로, 임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액땜을 위해 '벼랑에 버린 빗'에 비유하여 한탄하고 있다.

 8연 : 7월 보름 온갖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기원을 올리는 백중날, 임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서정적 자아의 간절한 소망을 빌고 있다.

 9연 : 8월 보름 한가위는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명절이지만, 임 없이 홀로 지내야 하는 서정적 자아는 자신의 고독과 그리움을 더욱 깊게 확인할 수밖에 없다.

 10연 : 9월 황화전(黃花煎)을 해 먹는 중양절(重陽節) 풍습을 배경으로, 서정적 임이 부재(不在)한 상태의 적막한 초가집에서 느끼는 자아의 고독과 한(恨)을 표현하고 있다.

 11연 : 임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가련한 모습을 '보리수 나무'에 비유하면서 체념과 애상이 한데 엉긴 애련(哀戀)을 노래하고 있다.

 12연 : 임에 대한 그리움에서 오는 서정적 자아의 괴로움을 '봉당 자리'와 '홑적삼'에 대비시키면서, 사랑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13연 : 진짓상 위에 놓인 '젓가락'에 서정적 자아 자신을 비유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임과 현실적으로 맺어질 수 없는 비극적 정황을 노래한 마지막 연이다.

 이 노래는 시상이 일관된 흐름을 보여 주지 않을 뿐더러, 각 연마다 나타나는 주제도 통일되어 있지 않아 한 작가의 일관된 정서의 표출이라고 보기 힘들다. 서사와 2,3,5월령은 임에게 순수한 송도(頌禱)이다. 이 때의 '임'은 임금이거나 임금처럼 높이 추앙된 공적인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정월, 4월령은 개인적 정서, 즉 구체적인 '나의 고독'이며, '나의 임'에 대한 원망적(願望的) 호소이다. 6,7,8월령은 공적 정서와 개인적 정서의 애한(哀恨)이 함께 융합된 중간적 정감의 노래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원래 연가적(戀歌的) 민요가 궁중으로 흘러 들어가 궁중 연악(宮中宴樂)으로 쓰이면서 변형되었으리라 추측된다. 형식은 민요풍으로서 시어의 구사가 뛰어나며, 현실적으로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성을 내포한 서정시다. '동동'은 '농가월령가' 같은 후대의 월령체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이해와 감상2

 우리 문학 최초의 월령체인 이 노래는 분연체 형식과 후렴구 사용 등 형태적인 면에서 속요의 일반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이 노래는 일 년 열두 달에 맞춰 한 여인의 정감을 노래하고 있는 연가풍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서사(1연)는 공적인 임(임금)에 대한 송도(頌禱)의 성격이 짙어 이 노래가 궁중에서 불려졌던 의식가(儀式歌)였음을 보여 준다.

 

 이런 형식의 노래로는 '동동' 외에 '관등가(觀燈歌)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가 있고, 민요에 '청상요(靑孀謠)'가 있다. 또, 조선 성종 때의 문인 성현(成俔)이 지은 '전가사십이수(田家詞十二首)'와 같은 한시도 있다. 달거리의 특징은 농경 생활이 반영되어 있으며, 세시기(歲時記)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전 13연으로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제1연만은 임을 송도(頌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달이 바뀜에 따라 연으로 구분되고, 한 연이 끝날 때마다 여음이 나타난다. 서정적 자아는 여성이며, 임은 남성이다.

 

 13연으로 된 달거리 노래이다. 계절의 바뀜과 임과의 사랑의 추이-얽히고 헤어지고 만남이라는-에 따른 정감의 변이가 아울러 짜였다. 자연의 순환과 인정의 바뀜이 질서 있게 잘 정리되어 있다. 임을 여윈 여인의 슬픔이 어떻게 진행되어 끝맺고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동동'은 북소리를 흉내낸 것으로 본다. 달거리 형식의 무곡(舞曲)이다. '악학궤범'의 '아박(牙拍)'이란 항목에 노랫말이 그 춤의 형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실려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노래가 젊은이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해와 감상3

 작자·연대 미상의 고려속요의 하나. 고려 시대에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조선 시대에 문자로 정착된  듯하다. 가사는 한글로 <악학궤범>에, 작품 해설은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각각 실려 있다. 내용에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것이 많다 하여 고려시대의 속요(俗謠)로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노래 형식은 전편 13장으로 된 연장체로, 첫머리의 서장(序章)을 제외하고는 달거리(月令體)로 되어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 노래는 아박(牙拍: 고려시대 궁중무용의 하나)의 반주가로 불리었다. 민요의 달거리는 달마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을 노래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데 보통 1월은 답교(踏橋), 2월은 연등(燃燈), 5월은 단오(端午)를 노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점은 <동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동>은 세시 풍속이 달마다 설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달은 확실히 드러나 있고 어떤 달은 무엇을 노래하는지 불확실한 것도 있다. 이 작품에서 2월은 연등, 5월은 단오, 6월은 유두(流頭), 7월은 백중(伯仲), 8월은 추석, 9월은 중양(重陽)을 각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1월은 답교, 3월은 산화(散花), 12월은 나례(儺禮)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동동>은 본디 정초에 그 해 매달의 운수를 점쳐 보는 달불이(月滋: 콩에 일년의 각 달을 표시하고 수수깡 속에 넣어 우물 속에 집어넣은 뒤 대보름날 새벽에 건져 그 불은 정도로 그 해 매 달의 운수를 점치는 민속)처럼 월운제의(月運祭儀)였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고려 때 해마다의 국가 행사였던 팔관회(八關會)에서 월운제의를 하며 <동동>을 불렀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월운제의의 목적이 풍요의 기원에 있었으므로, 한편은 신에게 기도하는 송도(頌禱)·송축(頌祝)의 내용이 주가 되었을 것이다. <고려사>에 "동동에는 송도의 말이 많다."(권 71), "선풍(仙風)은 용천(龍天)을 기쁘게 하고 민물(民物)을 안녕하게 한다."(권 81)라고 한 두 기록은 이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제 1장에서는 '곰배·님배'를 대상으로 덕(德)과 복(福)을 송축하고 있다. 제 2장 이하의 달거리에서는 '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제 2장에서는 정월이 되어 얼었다 녹았다 하는 변화를 겪고 있는 냇물과 변함 없이 님이 없어 고독하기만 한 자신을 대조시키고 있다. 제 3장에서는 님을 연등의 등불에 견주어 '만인(萬人) 비치실 모습이로다'라고, 제 4장에서는 님을  진달래에 견주어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나셨다.'라고 하면서 님의 아름다움을 찬송하고 있다. 제 5장에서는 여름이 시작되는 4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꾀꼬리와 님을 견주어, 님아 찾아주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였다. 제 6장에서는 단옷날 아침에 빚은 약을 님에게 바치면서 '천년토록 오래 사시게 할 약이라 바치옵니다.'라고 님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 제 7장에서는 유두날 님을 따라가면서 '돌아보실 님을 적곰(넘어지며 엎어지며) 좇아가옵니다'라고, 제 8장에서는 백중날 여러 음식을 차려 놓고, '님과 함께 살아가고자 소원을 비옵니다'라고 제 9장에서는 한가위를 님과 함께 맞이하면서 '님을 모시고 가서 노니 오늘이 한가위로다'라고 님과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 11·12장에서는 제 2·5장과 마찬가지로 님을 잃은 고독을 노래하고 있다. 제 11장에서는 꺾이어 버려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보로쇠에다 자기 신세를 견주어 외로움을 울고 있다. 제 12장에서는 그 울음이 한층 처절해진다. 동짓달 봉당자리에 한삼을 덮고 누워 추위에 떨면서도 '고운 님 생각하며 살아가네'라고 하며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있다. <동동>의 성격에 대해서는 민요, 벽사진경( 邪進慶)의 제의가,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가 등 여러 견해가 엇갈려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작품이 지닌 복합적 성격에서 오는 것이다. 본디 민속과 관련된 단순한 민요 혹은 제의가였던 것이 궁중음악으로 채택되면서 서정적인 노래로 변모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동동'이라는 제목은 매장마다 되풀이되는  후렴구 "아으 동동다리"에서 따온 것이다. '동동'은 북소리의 구음(口音) '동동'을 표기한 것이라는 견해와 '다리'·'두리' 등과 같이 '영(靈)'을 뜻하는 주술어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심화 자료

  '동동'의 배경 설화

 고려가요. 지은이·연대 미상. 고려시대부터 구전(口傳)되어 왔으며, 조선시대의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한글로 가사가 실려 있다. “덕(德)으란 곰에 받고 복(福)으란 림에 받고 덕이여 복이라 흐 나라 오소이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정월(正月)ㅅ 나릿 므른…”. ‘동동’이라는 곡명은 후렴의 ‘아으 동동 다리’에서 따온 듯하며, 이익(李瀷)의 말과 같이, ‘동동’은 북소리를 모방한 ‘둥둥’일 것이다. 노래의 형식은 전편 13장으로 초장은 서사(序詞)이고, 남은 12장은 정월부터 12월까지 남녀의 사랑을 월령체(月令體)로 엮었다. 고려·조선시대에 조정에서 연주·가창되었고, 특히 연중나례(年中儺禮) 뒤에 동동무(動動舞)라 하여 노래에 수반하는 독특한 무용이 있었다.

 
'동동'은 <악학궤범>에 전하며, <문헌비고(文獻備考)>와 <임하필기(林河筆記)>에 의하면 합포만호유탁(合浦萬戶柳濯)>이 자못 위엄이 있었는데, 왜군이 장생포에 침입하였을 때 유탁이 바라보매 왜군이 싸우지 못하고 물러갔으므로 군사들이 기뻐서 노래를 지어 찬미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군사적으로 관계 있는 어구는 찾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군사적으로 관계 있는 어구는 찾아볼 수 없고, 생활 풍속과 관련시켜 정서를 노래한 시가이다.

 동동의 내용상 특징

 이 노래는 시상(詩想)의 일관된 흐름을 보여 주지 않을뿐더러, 각 연마다 나타나는 주제도 통일되어 있지 않아 한 작가의 일관된 정서의 표출이라고 보기 힘들다. 서사와 2,3,5월령은 임의 순수한 송도(頌禱)이다. 이 때의 '임'은 임금이거나 임금처럼 높이 추앙된 공적(公的)인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정월, 4월령은 개인적 정서, 즉 구체적인 '나의 고독'이며, '나의 임'에 대한 원망(願望)적 호소이다. 6, 7, 8월령은 공적 정서와 개인적 정서의 애한(哀恨)이 함께 융합된 중간적 정감의 노래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원래 연가(戀歌)적 민요가 궁중에 흘러 들어 궁중 연악으로 쓰이면서 변형되었으리라 추측된다. 형식은 민요풍으로서 시어의 구사가 뛰어나며, 현실적으로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성을 내포한 서정시다. '동동'은 '농가월령가' 같은 후대의 월령체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고려 속요의 형태적 특성

 고려 속요는 3·3·2, 혹은 3·3·3조의 3음보 연장체(聯章體)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연은 후렴구를 중심으로 전후절(前後節)이 나뉘는, 분절체(分節體) 형식을 취한다. 특히 다양한 후렴구는 민요적 성격을 반영하며,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매끄러운 리듬을 살리고 있다.

 

 

 단오(端午)와 아침 약(藥)   

 단오는 4대 명절의 하나로서, 이를 '수리, 중오절(重五節), 천중절(天中節)'이라 일컫기도 한다. 민속 놀이로서는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그네뛰기, 씨름, 가면무, 사자무 , 가면극'등의 행사가 행해지며, 중·북부 지방에서 성행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詩記)>의....午時 採益母草(오시 채익모초)'라는 구절로 보아 이 날 익모초 (益母草)즙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었으니, 단오의 '아 樂'은 익모초인 듯하다.

 

 월령체 

 1년 열두 달로 나뉘어 구성된  형식의 시가를 달거리 또는 월령체라고 한다. 고려 가요인 '동동',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하는 '관등가'처럼 임을 여읜 여자가 열두 달 명절마다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것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전승되어 왔다. 현존 민요에도 이러한 달거리는 많이 있는데, 그 내용에 따라 '청상요(靑孀謠)'라고도 한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처럼 열두 달에 하는 농사일을 서술한 달거리도 있다. 이러한 달거리의 가사 작품을 일명 '십이월령가'라고도 한다.

 

 동동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고려시대에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조선시대에 문자로 정착된 듯하다. 가사는 한글로 ≪악학궤범≫에, 작품해설은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각각 실려 있다. 내용에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것이 많다 하여 고려시대의 속요(俗謠)로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고려시대부터 이 노래는 아박(牙拍 : 고려시대 궁중무용의 하나)의 반주가로 불리었다. 노래 형식은 전편 13장으로 된 연장체(聯章體)로, 첫머리의 서장(序章)을 제외하고는 달거리〔月令體〕로 되어 있다.

 

민요의 달거리는 달마다 세시풍속을 노래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보통 1월은 답교(踏橋), 2월은 연등, 5월은 단오가 그 배경이다. 이 점은 〈동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동〉은 세시풍속이 달마다 설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달은 확실히 드러나 있고 어떤 달은 무엇을 노래하는지 불확실한 것도 있다.

 

이 작품에서 2월은 연등, 5월은 단오, 6월은 유두, 7월은 백중, 8월은 추석, 9월은 중양을 각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1월은 답교(踏橋), 3월은 산화(散花), 12월은 나례(儺禮)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동동〉은 본디 정초에 그해 매달의 운수를 점쳐보는 달불이〔月滋 : 콩에 일년의 각 달을 표시하고 수수깡 속에 넣어 우물 속에 집어넣은 뒤 대보름날 새벽에 건져 그 불어 있는 정도로 그해 매달의 운수를 점치는 민속〕처럼 그 달의 운수를 점치는 월운제의(月運祭儀)였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고려 때 해마다의 국가행사였던 팔관회에서 월운제의를 하며 〈동동〉을 불렀으리라는 것이다.

 

이 월운제의의 목적은 풍요를 기원하는 데 있었으므로, 한편으로는 신을 찬송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에게 기도하는 송도(頌禱)·송축(頌祝)의 내용이 주가 되었을 것이다. ≪고려사≫에 “동동에는 송도의 말이 많다.”(권71), “선풍(仙風)은 용천(龍天)을 기쁘게 하고 민물(民物)을 안녕하게 한다.”(권18)라고 한 두 기록은 이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제1장에서는 ‘곰배·님배’를 대상으로 덕(德)과 복(福)을 송축하고 있다. 제2장 이하의 달거리에서는 ‘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정월이 되어 얼었다 녹았다 하는 변화를 겪는 냇물과 변함없이 임이 없어 고독하기만 한 자신을 대조시키고 있다. 제3장에서는 임을 연등의 등불에 비유하여 ‘만인(萬人) 비치실 모습이로다’라고, 제4장에서는 임을 진달래에 비유하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나셨다’라고 하면서 임의 아름다움을 찬송하고 있다.

 

제5장에서는 여름이 시작되는 4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꾀꼬리와 임을 비유하여, 임이 찾아주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였다. 제6장에서는 단옷날 아침에 빚은 약을 임에게 바치면서 ‘천년토록 오래 사시게 할 약이라 바치옵니다’라고 임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

 

제7장에서는 유둣날 임을 따라가면서 ‘돌아보실 임을 적곰(넘어지며 엎어지며) 좇아 가옵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제8장에서는 백중날 여러 음식을 차려놓고 ‘임과 함께 살아가고자 소원을 비옵니다’라 노래하고 있다. 제9장에서는 한가위를 임과 함께 맞이하면서 ‘임을 모시고 가서 노니 오늘이 한가위로다’라고 임과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11·12장에서는 제2·5장과 마찬가지로 임을 잃은 고독을 노래하고 있다. 제11장에서는 꺾이어 버려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보로쇠에다 자기 신세를 견주어 외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제12장에서는 그 외로움이 한층 처절해진다. 동짓달 봉당자리에 한삼을 덮고 누워 추위에 떨면서도 ‘고운 임 생각하며 살아가네’라고 하며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있다.  〈동동〉의 성격에 대해서는 민요,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진경(陽邪進慶)의 제의가로 보는 견해,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가로 보는 견해 등 여러 견해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작품이 지닌 복합적 성격에서 오는 것이다. 〈동동〉은 본래 민속과 관련된 단순한 민요 혹은 제의 때 부르던 노래였던 것이 궁중악으로 채택되면서 서정적인 노래로 변모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동동’이라는 제목은 매장마다 되풀이되는 후렴구 “아으 동동 다리”에서 따온 것이다. ‘동동’은 북소리의 구음(口音) ‘동동’을 표기한 것이라는 견해와 ‘다리’·‘두리’ 등과 같이 ‘영(靈)’을 뜻하는 주술 용어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참고문헌≫ 麗謠箋注(梁柱東, 乙酉文化社, 1947), 鄕歌麗謠新釋(池憲英, 正音社, 1947), 古歌謠注釋(金亨奎, 一潮閣, 1968), 國文學과 自然(崔珍源, 成均館大學校出版部, 1981), 高麗歌謠 動動攷(林基中, 高麗歌謠硏究, 正音社, 1979), 動動의 解釋(任東權, 高麗時代의 歌謠文學, 새문社, 1982), 抒情的 脈絡 속의 動動 正月謠(金烈圭, 高麗時代의 歌謠文學, 새문社, 1982), 어우름의 抒情과 엇갈림의 抒情(김동욱, 成大文學 24, 成均館大學校國語國文學會, 198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4절기(節氣)

태양의 황경(黃經)에 맞추어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해서 계절을 구분한 것.

 

봄 :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여름 :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가을 :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겨울 :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한 달에서 5일을 1후(候), 3후인 15일을 1기(氣)라 하여 이것이 기후를 나타내는 기초가 된다. 1년을 12절기와 12중기로 나누고 이를 보통 24절기라고 하는데, 절기는 한 달 중 월초(月初)에 해당하며, 중기(中氣)는 월중(月中)에 해당한다.

태양력에 의하면 절기는 매월 4~8일 사이에 오고, 중기는 19~23일 사이에 온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0°인 날을 춘분으로 하여 15° 이동했을 때를 청명 등으로 구분해 15° 간격으로 24절기를 나누었다. 따라서 90°인 날이 하지, 180°인 날이 추분, 270°인 날이 동지이며, 춘분에서 하지 사이를 봄, 하지에서 추분 사이를 여름, 추분에서 동지 사이를 가을, 동지에서 춘분 사이를 겨울이라 하여 4계절의 기본으로 삼는다.

24절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입춘(立春):

24절기의 하나.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15°에 와 있을 때이다. 봄으로 접어드는 절후로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정월은 새해에 첫번째 드는 달이고, 입춘은 대체로 정월에 첫번째로 드는 절기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이날 여러가지 민속적인 행사가 행해진다.

 

그 중 하나가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춘축(春祝)·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며, 각 가정에서 대문기둥이나 대들보·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말한다.

한편, 옛날 대궐에서는 설날에 내전 기둥과 난간에다 문신들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사대부집에서는 흔히 입춘첩을 새로 지어 붙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쓴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심방〔首神房:큰무당〕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 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옥황상제·토신·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한다. ≪참고문헌≫ 洌陽歲時記, 東國歲時記.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②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③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잡절(雜節)은 입춘날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된다. 밭에 씨앗뿌리기가 시작되는 88야(夜), 태풍시기인 210일, 220일 등은 각각 입춘날로부터 88일, 210일, 220일째 날이다.

 

우수(雨水):

24절기의 하나. 입춘과 경칩 사이에 들며, 입춘 입기일(入氣日) 15일 후인 양력 2월 19일 또는 20일, 음력으로는 정월 중기이다. 태양의 황경이 330°의 위치에 올 때이다.

흔히 양력 3월에 꽃샘추위라 하여 매서운 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이미 우수 무렵이면 날씨가 많이 풀리고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튼다. 우수는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날이니, 곧 날씨가 풀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수·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말도 생겨났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우수 입기일 이후 15일간씩 세분하여 그 특징을 나타내었다. 즉, 첫 5일간은 수달(水獺)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다음 5일간은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마지막 5일간은 초목에 싹이 튼다고 하였다.

한편, 우수 무렵이 되면 수달은 그동안 얼었던 강이 풀림과 동시에 물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한다.

원래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되면 봄은 어느새 완연하여 마지막 5일간, 즉 말후(末候)에는 풀과 나무가 싹이 튼다. ≪참고문헌≫ 四時纂要.

 

 옛사람은 우수입기일 이후 15일간의 기간을 3후(三候)로 5일씩 세분하여 ①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②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③ 초목에는 싹이 튼다고 하였다.

 

경칩(驚蟄):

계칩(啓蟄)이라고도 한다. 24절기의 하나. 우수와 춘분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에 해당될 때이다. 음력으로는 2월 중에, 양력으로는 3월 5일경이 된다.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이 된다.

 

개구리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아 물이 괸 곳에 알을 까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아픈 데 좋을 뿐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해서 경칩일에 개구리알을 먹는 풍속이 전해 오고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도롱뇽알을 건져먹기도 한다. 또,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한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한편, 경칩날에 보리싹의 성장을 보아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할 수 있다고도 한다. 또한,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를 베어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마시면 위장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참고문헌≫ 韓國歲時風俗(任東權, 瑞文堂, 1976),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文化財管理局, 1969∼1981).

 

춘분(春分 : vernal equinox):

24절기의 하나.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春分點) 위에 왔을 때이며,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경이다.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

춘분을 전후하여 철 이른 화초는 파종을 한다. 그리고 아울러 화단의 흙을 일구어 며칠 남지 않은 식목일을 위하여 씨뿌릴 준비를 한다. 춘분을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준비에 바쁘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음력 2월중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꽃샘’이라고 한다.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는다. ≪참고문헌≫ 韓國民俗大觀 4-歲時風俗·傳承놀이-(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2), 韓國歲時風俗硏究(任東權, 集文堂, 1985).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이라 하여 극락왕생의 시기로 본다. 옛날 중국에서는 춘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①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오고, ② 우뢰소리가 들려오며, ③ 그 해에 처음으로 번개가 친다고 하였다.

 

청명(淸明):

24절기의 하나. 춘분과 곡우 사이에 들며, 음력 3월, 양력 4월 5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15°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때로는 한식과 같은 날이 된다. 동시에 오늘날의 식목일과도 대개 겹치게 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을 기하여서 봄일을 시작하므로 이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둑의 손질을 하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작업이 된다. 다음 절기인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판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많이 짓는 경우에는 일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청명·곡우 무렵이면 서둘러 일꾼을 구하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 청명조에 “대궐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주는데, 이것은 중국의 주나라 이래 당나라·송나라에서도 행하여지던 예로부터의 제도이다.”라고 하였다. ≪열양세시기≫에서는 이와 같이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에 기록하고 있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불은 한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한식조에 기록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최남선J58651(崔南善J58651)은 한식의 풍속을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여, 해마다 봄에 신화(新火)를 만들어 구화(舊火)를 금지하던 예속(禮俗)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으나, 청명은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하나이므로 농사관계사항을 기록하는 것이 옳다. ≪참고문헌≫ 洌陽歲時記, 東國歲時記, 韓國常識-風俗篇-(崔南善, 東明社, 1947).

 

곡우(穀雨):

24절기의 하나. 청명과 입하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0°에 해당할 때이다. 음력 3월, 양력 4월 20일경이 되며, 그때부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다. 곡우 때쯤이면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 즉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하기 위하여 볍씨를 담갔는데, 이때 볍씨를 담가두었던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며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하였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는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곡우 무렵은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이다. 그래서 전라남도나 경상남북도·강원도 등지에서는 깊은 산이나 명산으로 곡우물을 먹으러 간다. 곡우물은 주로 산다래나 자작나무·박달나무 등에 상처를 내어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말하는데, 그 물을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먹는다. 곡우물을 먹기 위해서는 곡우 전에 미리 상처낸 나무에 통을 달아두고 여러날 동안 수액(樹液)을 받는다.

 

강진이나 해남 등지에서는 곡우물을 먹으러 대흥사(大興寺)로 가고, 고흥 등지에서는 금산으로, 성주 등지에서는 가야산으로 가서 먹는다. 거자수(자작나무 수액)는 특히 지리산 아래 구례 등지에서 많이 나며, 그곳에서는 곡우 때 약수제까지 지낸다. 특히, 신병이 있는 사람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그 물을 마시는데, 그것은 외지 사람들에게 더 약이 된다고 한다.

경칩 무렵에 나오는 고로쇠물은 여자물이라 하여 남자들에게 더 좋고, 거자수는 남자물이라 하여 여자들에게 더 애용되고 있다. 또, 곡우 때가 되면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북상하여 격렬비열도 부근에 올라온다. 그때 잡는 조기를 특히 ‘곡우살이’라 한다. 곡우살이는 살은 아주 적지만 연하고 맛이 있어서 서해는 물론 남해의 어선들도 모여든다. ≪참고문헌≫ 韓國의 歲時風俗(崔常壽, 弘人文化社, 1960), 韓國民俗大觀 4-歲時風俗·傳承놀이-(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2).

 

입하(立夏):

 양력 5월 5·6일경으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45°에 있을 때이다. 음력으로는 4월에 해당하며,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든다. 이때부터 여름이 시작된다. 농작물이 자라기 시작하며, 해충과 잡초가 많아져 농가 일손이 바빠진다. 여름에 들어섰다고 하여 입하라 한다. 예로부터 입하 15일 동안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해 청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왕과(王瓜:쥐참외)가 나온다고 하였다.

 

음력에서는 보통 4∼6월 석 달을 여름이라고 부르지만, 엄격히 구분하면 입하 이후 입추(立秋) 전날까지를 여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입하 무렵이 되면 농작물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몹시 바빠지는데, 해충도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병충해 방제는 물론, 각종 잡초를 제거하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특히 이 시기부터 들판의 풀잎이나 나뭇잎이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찻잎을 채취하는 손길도 분주해진다. 보통 곡우 때 채취해 만든 차를 우전차(雨前茶)라 하여 최상품으로 여기지만 입하 무렵에 만든 차도 이에 못지 않다. 입하까지 채취한 찻잎으로 만든 차를 삼춘차(三春茶)·삼첨(三尖), 입하 후에 만든 차를 사춘(四春)·난청(爛靑)·장대(長大)라 하여 통칭 입하차로 부른다.

 

또 세시풍속의 하나로 이 즈음에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려 시루에 쪄 먹는 떡, 이른바 쑥버무리를 절식(節食)으로 먹기도 하고, 집안에 따라서는 색다른 음식을 마련해 농사꾼들의 입맛을 돋우기도 하였다.

 

 그래서 입하가 되면 농작물도 자라지만, 아울러 해충도 많아지고 잡초까지 자라서 이것들을 없애는 작업도 많다. 송파지역에서는 세시행사의 하나로 입하 무렵 쑥무리를 절식(節食)으로 마련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韓國民俗大觀 4-歲時風俗·傳承놀이-(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2).

 

소만(小滿):

양력 5월 21일경, 음력 4월, 태양의 황경이 60°이며, 햇볕이 충만하고 만물이 자라서 가득차게 된다는 뜻으로 초여름 모내기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한다. 소만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진다. 이른 모내기, 가을보리 먼저 베기 작업들에, 여러 가지 밭농사의 김매기들이 줄을 잇게 된다. 모판을 만들면 모내기까지 모의 성장기간이 옛날에는 45∼50일이 걸렸으나, 지금의 비닐모판에서는 40일 이내에 충분히 자라기 때문에 소만에 모내기가 시작되어 1년 중 제일 바쁜 계절로 접어들게 된다. 옛날 중국에서는 소만 입기일(入氣日)로부터 망종까지의 시기를 다시 5일씩 삼후(三候)로 등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씀바귀가 뻗어 오르고, 중후(中候)에는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말후(末候)에는 보리가 익는다고 했다. 씀바귀는 꽃상추과에 속하는 다년초로서 뿌리나 줄기, 잎은 이 무렵 식용으로 널리 쓰인다. 또, 초후를 전후하여 즐겨 시식하는 냉잇국도 늦봄 내지는 초여름의 시절식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보리는 말후를 중심으로 익어 밀과 더불어 여름철 주식을 대표한다. 소만 무렵 심하게 가무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여 물 준비를 부지런히 해두기도 한다.

 

 

망종(芒種):

양력 6월 6일경, 음력 4·5월, 태양의 황경이 75°이며, 논보리나 벼 등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의 씨를 뿌리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끝날 때까지 밭보리는 베어 햇보리를 먹게 되며,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므로 농사일이 가장 바쁜 시기이다. 아이들은 보리이삭 줍기와 보리 그스르기에 바쁘다. 밤이슬을 맞은 보리를 먹으면 1년 동안 허리가 아프지 않고,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배탈이 없다는 풍습이 있다. 망종이 일찍 들면 보리농사에 좋고 늦게 들면 나쁘다 하여 망종의 시기로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음력 4월중에 망종이 들면 좋다고도 한다.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옛 중국에서는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모내기와 보리베기를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옛날에는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은 때였다. 그래서‘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이라는 말도 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듯이 망종까지는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 망종을 넘기면 바람에 쓰러지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닐 모판에서 모의 성장기간이 10일 정도 단축되었기 때문에, 한 절기 더 앞선 소만 무렵에 모내기가 시작된다. 특히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겹치는 이 무렵의 바쁜 농촌의 상황은 보리농사가 많았던 남쪽일수록 더 심했고, 보리농사가 거의 없던 북쪽은 상황이 또 달랐다. 남쪽에서는 이 때를‘발등에 오줌싼다’고 할만큼 1년 중 제일 바쁜 때였다.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망종날 ‘보리 그스름’이라 하여 아직 남아 있는 풋보리를 베어다 그스름을 해 먹으면 이듬해 보리 농사가 잘 되어 곡물이 잘 여물며 그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 다음날 먹는 곳도 있다. 이렇게 하면 허리 아픈 데 약이 되고 그 해를 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또 망종보기’라 해서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들음에 따라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음력 4월내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되어 빨리 거두어들일 수 있으나 5월에 망종이 들면 그해 보리농사가 늦게 되어 망종내에도 보리 수확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전라남도와 충청남도, 제주도에서는 망종 날 하늘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치면 그 해 농사가 시원치 않고 불길하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지방에서는 망종이 늦게 들어도 안 좋고 빠르게 들어도 안 좋으며 중간에 들어야 시절이 좋다고 한다. 특히 음력 4월 중순에 들어야 좋다고 하며, 또 망종이 일찍 들면 보리농사에 좋고, 늦게 들면 나쁘다는 말도 있다.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와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후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채로 쳐 그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망종이 일찍 들면 그 해 보리가 좋고 늦게 들면 보리가 좋지 않다고 하며 또 이날 우박이 내리면 시절이 좋다고 한다.

 

하지(夏至):

양력 6월 21일경, 음력 5월, 태양의 황경이 90°이며 12시에 태양이 가장 높게 있어 북반구에서는 낮시간이 1년중 가장 길고, 일사량과 일사시간도 가장 많다. 햇감자가 나오고, 이 시기가 지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마을마다 기우제를 올렸다. 하지 때는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므로,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 중국에서는 하지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②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③ 반하(半夏)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한국의 농사력에서는 모내기가 끝나는 시기이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천문학적으로는 1년 중 태양의 적위가 가장 커지는, 6월 21일경을 말한다. 태양은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한다.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태양의 남중(南中)고도가 가장 높아진다. 특히, 하지점이 적도면에서 북쪽으로 23° 27'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북위 23° 27'인 지점에서는 이 날 태양이 천정(天頂)에서 남중한다. 그러나 남반구에서는 북반구와 반대로 하지에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소가 된다. 또한 동지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대가 되고, 낮이 가장 긴데, 북반구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서울(북위 37° 30 ')에서 태양의 남중고도는 하지 때에는 75° 57 '이고, 동지 때에는 29° 03 '이다.

 

남부지방 농촌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이면 모두 끝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파삭한 햇감자를 캐어 쪄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먹는다. 옛날 농촌에서는 흔히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의 예를 들면, 하지까지 기다려도 비가 오지 않을 때 이장이 제관이 되어 용소(龍沼)에 가서 기우제를 지낸다. 제물로는 개나 돼지 또는 소를 잡아 그 머리만 물 속에 넣는다. 그러면 용신(龍神)이 그 부정함을 노하여 비를 내려 씻어내린다고 믿는다. 머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삶아서 기우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함께 먹는다. 충청북도 중원군 엄정면 목계리의 경우, 이장이 제관이 되어 한강지류의 소(沼) 속에 있는 용바위에서 소를 잡아 용바위에 피를 칠하고 소머리만 소 속에 넣는다. 이때 흔히 키로 물을 까불어서 비가 내리는 듯한 유사 주술적인 동작도 한다.

 

 

 

소서(小暑):

양력 7월 7일경, 음력 6월, 태양의 황경이 105°이며 차츰 더워진다. 한국은 장마전선이 걸쳐 있어 습도가 높고, 비가 많이 온다. 농사에 쓸 퇴비를 준비하고 논두렁에 잡초를 뽑는다.이 시기에는 장마전선이 우리나라에 오래 자리잡아 습도가 높아지고, 장마철을 이루는 수가 많다. 예전에는 한 절기 앞선 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끝내고, 모를 낸 20일 뒤 소서 때는 논매기를 했으나, 지금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김은 매지 않는다. 팥, 콩, 조들도 가을보리를 한 하지 무렵에 심고, 소서 무렵에 김을 매준다. 또, 이때 퇴비 장만과 논두렁의 잡초깎기도 한다. 소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므로 온갖 과일과 소채가 풍성해지고 밀과 보리도 먹게 된다. 특히, 음력 5월 단오를 전후하여 시절식으로 즐기는 밀가루음식은 이맘 때 가장 맛이 나며, 소채류로는 호박, 생선류는 민어가 제철이다. 민어는 조림, 구이, 찜이 다 되지만 이 무렵에는 애호박을 넣어 끓인다. 특히, 민어고추장국과 회의 맛이 두드러진다. 애호박에서 절로 단물이 나고 민어는 한창 기름이 오를 때여서 그 국은 고추장 특유의 매운 맛이면서도 단물이 흥건히 괴어 맵고 달콤한 맛이 첫 여름의 입맛을 상큼하게 돋우어준다. 옛 중국에서는 소서 15일간을 3후(三侯)로 나누어서, ①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② 귀뚜라미가 벽에 기어다니며, ③ 매가 비로소 사나워진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이 시기가 장마철로, 장마전선이라는 불연속전선이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장기간 머무르므로 습도가 높아지고 많은 비가 내린다

 

대서(大暑):

양력 7월 23일경, 음력 6월, 태양의 황경이 120°이며, 더위가 극도에 달한다. 대부분 중복이 겹치며, 장마전선으로 비가 자주 온다.

 

옛 중국에서는 대서 기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하였는데, 제1후에는 썩은 풀이 화하여 반딧불이 되고, 제2후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제3후에는 때때로 큰 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이 시기가 중복(中伏)으로, 대개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해지는 때이다. 그러나 때때로 장마전선이 늦게까지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있으면 큰 비가 내리기도 한다. 이 무렵에는 몹시 더우며, 소서 때로부터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큰 장마를 이루는 때가 자주 있다. 또한, 참외나 수박 등이 풍성하고 햇밀과 보리를 먹게 되고 채소가 풍족하며 녹음이 우거지는 시기로, 과일은 이때가 가장 맛이 난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과실의 단물이 없어지는 반면 가물었을 때 과실맛이 난다고 한다. 특히 수박은 가뭄 뒤에 가장 제맛을 낸다.

 

입추(立秋):

양력 8월 7일경, 음력 7월, 태양의 황경이 135°이며, 가을이 시작되어 서늘한 바람이 분다. 농촌에서는 다소 한가하며, 김장용 무·배추를 심는다. 여름의 토용(土用)막이도 입추 전날까지로서 아침 저녁의 바람은 가을 소식을 알려 준다.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칠월칠석을 전후하므로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채비를 시작하여야 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 배추를 심고 9, 10월 서리가 내리고 얼기 전에 거두어서 겨울김장에 대비한다.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하니‘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거의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발등에 오줌싼다.”는 말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추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②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③ 쓰르라미가 운다고 표현하였다.

 

처서(處暑):

양력 8월 23일경, 음력 7월 중순, 태양의 황경이 150°이며, 더위가 멈춘다는 뜻으로 쓸쓸해지기 시작하고 논벼가 익는다. 이때 조상의 묘를 찾아가서 벌초하며, 여름 동안에 습기찼던 옷가지와 이불 등을 햇볕에 말린다. 이 시기가 지나면 아침과 저녁으로 서늘해 일교차가 심해진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한다.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도 이무렵에 하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파리 모기의 성화도 사라져 가는 무렵이 된다. 또한 백중의 호미씻이도 끝나는 무렵이라 그야말로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농촌은 한가한 한때를 맞이하게 된다. 한편,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고 하여 곡식이 흉작을 면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영남, 호남, 제주 등 여러 지역에서 전하여지고 있다.

 

옛날 중국에서는 처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②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③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백로(白露):

양력 9월 8일경, 음력 8월, 태양의 황경이 165°이며, 가을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데, 이슬 맺힌 것이 하얗게 보인다는 뜻이다. 장마가 끝나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때로는 늦은 태풍과 해일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때 우리나라에는 장마도 걷히고 중후와 말후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된다.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의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백로가 음력 7월중에 드는 수도 있는데 제주도와 전라남도지방에서는 그러한 해에는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 지방에서는 백로에 날씨가 잔잔하지 않으면 오이가 다 썩는다고 믿는다. 경상남도의 섬 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고된 여름 농사를 다 짓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이므로 가까운 친척을 방문하기도 한다. 옛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5일씩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날아오고, ② 제비가 돌아가며, ③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海溢)을 일으켜 피해를 주는 수가 있다.

 

추분(秋分):

양력 9월 23일경, 음력 8월, 태양의 황경이 180°이며, 춘분으로부터 꼭 반년째 되는 날로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며,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므로 계절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각종 여름 채소들과 산나물 등을 말려두기도 한다. 추분도 다른 24절기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만 춘분과 더불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므로 이 날을 중심으로 계절의 분기점 같은 것을 의식하게 된다. 즉,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므로 비로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무렵의 시절음식(時節飮食)으로는 버섯요리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또한, 추분 즈음이면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를 따고 고추도 따서 말리는 등 잡다한 가을걷이 일이 있다. 호박고지·박고지·깻잎·호박순·고구마순도 이맘때 거두어들여야 하지만 산채를 말려 묵은 나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四時纂要.

 

한로(寒露):

양력 10월 8일경, 음력 9월, 태양의 황경이 195°이며,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여 농촌에서는 추수로 바쁜 시기이다. 예전에는 이때를 전후해 국화전을 지져 먹고, 국화술을 담갔으며, 수유(茱萸)를 머리에 꽂아 잡귀를 쫓았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말뜻 그대로 찬이슬이 맺힌다, 세시명절인 중양절(重陽節: 重九)과 비슷한 때이다.

 

중양절에는 특별한 민속행사가 있으나 한로에는 이렇다 할 행사는 없고, 다만 24절기로서 지나칠 따름이다. 하지만 한로를 전후하여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며, 온갖 모임이나 놀이가 성행한다.

 

한편, 이무렵 머리에 수유(茱萸)를 꽂거나, 높은 데 올라가 고향을 바라본다든지 하는 내용이 한시에 자주 나타난다.

두보(杜甫)의 “내년 이 모임에 누가 건재할 지 아는가, 얼근히 취한 눈으로 수유를 쥐고 자세히 들여다보네(明年此會知誰健 醉把茱萸仔細看).”라는 시가 유명하다.

 

이무렵 높은 산에 올라가 수유열매를 머리에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색이 벽사력(陽邪力)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로 즈음에는 찬 이슬이 맺힐 시기여서 기온이 더욱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시기이다. ≪참고문헌≫ 四時纂要,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文化財管理局, 1969∼1981).

 

상강(霜降):

양력 10월 23일경, 음력 9월, 태양의 황경이 210°이며,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밤 기온은 서리가 내릴 정도로 매우 낮아져서 춥다. 이 때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지므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옛날의 중국사람들은 상강으로부터 입동 사이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승냥이가 산 짐승을 잡고, 중후(中候)에는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며, 말후(末候)에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말후에 가서 벌레가 이미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계절적으로 추울 때이다. 이는 농경시필기(農耕始畢期)와도 관련된다.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가꾸어서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나는 것이 농본국(農本國)인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생활인 것처럼, 9월 들어 시작된 추수는 상강 무렵이면 마무리가 된다.  〈농가월령가〉도 9월령에서는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마침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로 율동감있게 바쁜 농촌생활을 읊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기술의 개량으로 이러한 행사들이 모두 한 절기 정도 빨라지고 있다. ≪참고문헌≫ 四時纂要, 農家月令歌(丁學游).

 

입동(立冬):

양력 11월 7일경, 음력 10월, 태양의 황경이 225°이며,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다. 입동을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겨울 동안의 김치를 장만하는 김장은 입동을 기준해서 하기 때문이다. 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하여야 제맛이 난다. 입동이 지난 지가 오래면 얼어붙고, 싱싱한 재료가 없으며,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가 되면 시장에는 무·배추가 가득 쌓이고, 또한 옛날에는 냇가에서 부녀자들의 무·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전라남도지방에서는 입동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날씨를 점친다.

 

즉, 입동날 추우면 그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며, 밀양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씨점을 본다. 즉,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독하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이른바 고사를 지낸다.

 

그해의 새 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토광·터줏단지·씨나락섬에 가져다 놓았다가 먹고,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참고문헌≫ 四時纂要,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文化財管理局, 1969∼1980).

 

소설(小雪):

양력 11월 22일경, 음력 10월, 태양의 황경이 240°이며, 땅이 얼기 시작하고 살얼음이 얼며 차차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입동과 대설 사이에 들며, 이 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린다.

 

옛날부터 중국사람들은 소설로부터 대설까지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구분하여, 초후(初候)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천기(天氣)가 올라가고 지기(地氣)가 내리며, 말후(末候)에는 폐색되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갑다. 이 날은 손돌(孫乭)이 죽던 날이라 하고 그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해서, 외출을 삼가고 특히 뱃길을 조심한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에 왕이 배를 타고 통진과 강화 사이를 지나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왕은 사공이 고의로 배를 흔들어 그런 것이라고 호령을 하고 사공의 목을 베었다. 사공은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그 사공의 이름이 손돌이었다.

 

그래서 그 손돌이 죽은 곳을 손돌목이라 하고 지나갈 때 조심한다. 해마다 그 날이면 강풍이 불고 날씨가 찬데, 이는 손돌의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강화에서는 이 날 뱃길을 금한다. 매년 이맘때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하고 김포지역에서는 매년 손돌제를 올린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대설(大雪):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들며, 음력 11월, 양력 12월 7, 8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25。에 도달한 때이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大雪)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원래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며 기준지점인 중국의 화북지방(華北地方)의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꼭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을 다시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서,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치며, 말후(末候)에는 여지(旣枝 : 여주. 박과에 속하는 식물)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참고문헌≫ 穡經.

 

동지(冬至):

24절기의 하나. 대설과 소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1월 중, 양력 12월 22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70°위치에 있을 때이다.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도달하고,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 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천지신과 조상의 영을 제사하고 신하의 조하(朝賀)를 받고 군신의 연예(宴禮)를 받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 하였다고 한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 가는 작은 설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유풍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祀堂)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축귀(逐鬼)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축귀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팥떡·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동짓날 궁 안에 있는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아, 여기에 백강(白薑)·정향(丁香)·계심(桂心)·청밀(淸蜜) 등을 넣어서 약을 만들어 올렸다.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동짓날에는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나라에서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 : 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다.

 

각사(各司)의 관리들은 서로 달력을 선물하였으며, 이조(吏曹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란 달력을 선사하였다. 동짓날이 부흥을 뜻하고 이 날부터 태양이 점점 오래 머물게 되어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 달력을 만들어 가졌던 것이다. 매년 동지 무렵이 되면 제주목사는 특산물로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대묘(大廟)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그 공로를 위로하는 사찬(賜餐 : 임금이 음식을 내려줌)이 있었으며, 또 포백(布帛 : 베와 비단) 등을 하사하였다.

 

멀리에서 왕은에 감화되어 진기한 과일을 가져온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해서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그 밖에 민간에서는 동짓날 부적으로 악귀를 쫓고, 뱀 ‘蛇(사)’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다. 또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韓國의 女俗(張德順, 培英社, 1969).

 

소한(小寒):

24절기의 하나.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2월, 양력 1월 5일경이다. 태양이 황경 285°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 때가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은 우리 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가장 춥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속담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옛날의 중국사람들은 소한으로부터 대한까지의 15일간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고, 중후(中候)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꿩이 운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穡經.

 

대한(大寒):

24절기의 하나.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절후(節候)이다. 양력 1월 20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00°되는 날이다. 대한은 음력 섣달로 매듭을 짓는 절후이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立冬)에서 시작하여 소한(小寒)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께이므로 다소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었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즉, 소한 무렵이 대한 때보다 훨씬 춥다는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간(新舊間)에 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다. 이때의 신구간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1주일이 된다고 한다. ≪참고문헌≫ 穡經,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濟州篇-(文化財管理局, 1974).

 

 이와 같은 24절기는 중국의 계절현상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한국의 기후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또한 날짜가 경도에 따라 변하므로 양력은 매년 같지만, 음력은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음력의 날짜가 계절과 차이가 많이 날 때는 윤달[閏月]을 넣어 계절과 맞게 조정하는데, 태양력을 사용하는 오늘날에도 농촌에서는 관습적으로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는 데 널리 쓰이고 있다. 그밖에도 한식(寒食)·단오(端午)·삼복(三伏)·추석(秋夕) 등은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해오던 절기이다. 한식은 음력 4월 5·6일경,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인데, 이날 국가적인 행사로 종묘와 능원(陵園)에 제향을 올리고, 각 가정에서도 성묘를 한다. 한식에 대한 유래는 중국의 풍습 가운데 하나로 매년 이날은 풍우가 심하기 때문에 불을 금하고 찬 밥을 먹게 되었다는 설과 진나라의 현인(賢人) 개자추(介子推)가 산에서 타 죽자 이를 애도하는 뜻으로 이날만은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는 2가지 설이 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이며 명절의 하나로 단양(端陽)·중오절(重午節)·천중절(千中節)·수릿날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로 수리취 잎을 넣어 만든 절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를 하고 남자는 씨름을 하던 풍습이 있다. 삼복은 더위가 시작되는 날로 소서 뒤에 초복(양력 7. 20경), 대서 뒤에 중복(양력 7. 30경), 입추 뒤에 말복(양력 8. 9경)이 온다. 말복이 지나야 더위가 완전히 지났다고 하며, 복날은 더위를 이기는 음식인 삼계탕이나 개고기 등을 먹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이며 중추절(仲秋節) 또는 한가위라고도 한다.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유래하며, 햅쌀로 송편을 빚어 차례를 올리고 벌초와 성묘를 한다. (출처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아대백과사전,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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