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로 세 몸 되어
by 송화은율동기로 세 몸 되어
형제로서 세 사람의 몸이지만 한 몸처럼 가까이 지내다가
두 아우는 어디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가?
날마다 해 지는 문 밖에 서서 한숨을 못 이겨 하노라.
세 명이 같은 가족이 되어 마치 한 몸 같이 지내다가
두 아우는 어디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가
날마다 석양이 내릴 즈음에 문 밖에 서서 한숨을 못 이기노라.
요점 정리
지은이 : 박인로(朴仁老)
갈래 : 평시조, 단시조
연대 : 조선 전기
성격 : 감상적, 애상적, 도덕적, 교훈적, 망제가(望弟歌)
표현 : 영탄법, 비유법
특징 : 장면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작가의 심정을 표현함
제재 : 형제 간의 우애, 두 아우와의 이별
주제 : 아우들과 헤어진 서글픈 심정, 혈육(血肉)을 그리는 심정, 형제간의 지극한 우애
출전 : 노계집(蘆溪集)
내용 연구
세 명이 같은 가족이 되어 마치 한 몸 같이 지내다가 - 먼 과거
두 아우는 어디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가 - 과거
날마다 석양이 내릴 즈음에 문 밖에 서서 한숨을 못 이기노라. - 현재
동기(同氣) : 형제와 자매, 남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
문외(門外) : 문 밖
계워 : 이기지 못하여
동기(同氣)로 세 몸 되어 한 몸같이 지내다가 : 지극한 형제애(兄弟愛)가 비유적 표현을 통해 나타나 있다. 자신의 3형제가 몸은 비록 셋이지만, 서로의 몸을 제 몸같이 여기며 서로를 보살펴 왔다는 것이다.
두 아운 어디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고. ; 임진왜란의 와중에 헤어져 소식조차 알 수 없게 된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하게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 매일 해 질 때까지 문 밖에 나가 서서, 혹시나 동생들이 돌아올까 기다리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보일 듯이 그려지면서 비극적 시대 상황을 통해 이산(離散)의 아픔을 엿볼 수 있다.
한숨 계워 하노라 : 한숨을 이기지 못하노라. 한숨을 쉬노라.
날마다 석양(夕陽) 문외(門外)에 한숨 계워 하노라. : 시조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구절로, 두 아우와 헤어진 뒤에 오는 깊은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잘 드러나 있다.
이해와 감상
박인로가 지은 오륜가 중의 한 수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 중에 헤어진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표현한 작품으로 유교적 가치관이 반영된 작품이다. '오륜가' 중에 형제 우애에 관한 항목으로 한 부모의 피를 이어 받아 '한 몸같이' 지낸 동생들이니, 그들을 잃은 뒤에 작가는 마치 팔다리를 잃은 것처럼 허전하고 아픈 심정 속에 살아갔을 것이다. 그 같은 아픔과 애타는 기다림이, 종장에서는 날마다 저녁 때가 되면 문 밖에 나가 서서 동생들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터져 나오는 한숨을 막지 못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으로 전쟁으로 인한 동기간의 이별의 아픔을 드러내고 있다.
심화 자료
오륜가
조선 중기에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시조. 25수의 장편 연시조로 ≪노계집 蘆溪集≫에 전한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주제로 한 5수, 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형제우애를 주제로 한 각 5수,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주제로 한 2수에다 작품의 끝에 총론 3수를 덧붙여 마무리한 구성으로 보아 박선장(朴善長)의 〈오륜가〉 형식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제를 표출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오륜을 힘써 실천할 것을 직설적으로 권유하는 교술성이 강한 것에서부터 자신의 의연한 태도와 결의를 스스로 다짐하는 것, 혹은 자신의 심정과 처지를 정감 깊게 노래함으로써 서정성을 강하게 보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가운데 북풍의 찬 바람에 임금을 걱정하는 충정을 담은 작품과, 두 아우를 잃은 작자의 외로움을 처연하게 노래한 작품은 서정성과 형상성이 특히 돋보인다.
≪참고문헌≫ 仙源遺稿, 愼齋全書(周世鵬先生遺蹟宣揚會, 1979), 朴善長의 五倫歌(李相寶, 時調文學硏究, 正音社, 1980), 周世鵬과 道德歌(李東英, 국어국문학 84, 1980), 儒敎道德樂章考(金倉圭, 崔正錫博士回甲紀念論叢, 曉星女子大學校出版部, 198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인로
1561년(명종 16)∼1642년(인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 임진왜란 때는 무인(武人)으로도 활약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 경상북도 영천 출생. 아버지는 승의부위 석(碩)이며, 어머니는 참봉 주순신(朱舜臣)의 딸이다.
그의 82세의 생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전반생(前半生)이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고 한다면, 후반생(後半生)은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한 선비요, 문인 가객(歌客)으로서의 면모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 이미 13세에 〈대승음 戴勝吟〉이라는 한시 칠언절구를 지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31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동래·울산·경주지방을 비롯해 영양군까지 잇따라 함락되자 분연히 붓을 던지고 의병활동에 가담하였다.
38세 때는 강좌절도사(江左節度使)인 성윤문(成允文)의 막하에 수군(水軍)으로 종군하여 여러 번 공을 세웠다. 1599년(선조 32) 무과에 등과하여 수문장(守門將)·선전관(宣傳官)을 제수받았다.
거제도 말단인 조라포(助羅浦)에 만호(萬戶)로 부임하여 군사력 배양을 꾀하고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는 무인의 몸으로서도 언제나 낭중(囊中)에는 붓과 먹이 있었고,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시정(詩情)을 잃지 않았다.
그의 후반생은 독서수행의 선비이며 가객으로서의 삶이었다. 곧, 문인으로서 본격적으로 활약한 것은 은거생활에 든 40세 이후로, 성현의 경전 주석 연구에 몰두하였다.
밤중에도 분향축천(焚香祝天)하여 성현의 기상(氣像)을 묵상하기 일쑤였다. 또한, 꿈 속에서 성·경·충·효(誠敬忠孝)의 네 글자를 얻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자성(自省)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여러 도학자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이덕형(李德馨)과는 의기가 상합하여 수시로 종유하였다. 1601년(선조 34) 이덕형이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영천에 이르렀을 때, 처음 대면하여 지은 시조가 〈조홍시가 早紅枾歌〉이며, 1605년에는 〈선상탄 船上歎〉을 지었다.
1611년(광해군 3) 이덕형이 용진강(龍津江) 사제(莎堤)에 은거하고 있을 때 그의 빈객이 되어 가사 〈사제곡 莎堤曲〉·〈누항사 陋巷詞〉를 지었다.
1612년 도산서원에 참례하여 이황(李滉)의 유풍을 흠모하였고, 그 밖에도 조지산(曺芝山)·장여헌(張旅軒)·정한강(鄭寒岡)·정임하(鄭林下)·정연길(鄭延吉)·최기남(崔起南) 등과 교유하였다. 1630년(인조 8)에는 노인직으로 용양위부호군(龍蚊衛副護軍)이라는 은전(恩典)을 받았다.
1635년에 가사 〈영남가 嶺南歌〉를 지었고, 이듬 해 〈노계가〉를 지었다. 그 밖에 가사 〈입암별곡 立巖別曲〉과 〈소유정가 小有亭歌〉가 전하는데, 가사가 9편이고 시조는 68수에 이른다.
말년에는 천석(泉石)을 벗하여 안빈낙도하는 삶을 살다가 1642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양군 남쪽 대랑산(大朗山)에 안장되었다. 죽은 뒤에 향리의 선비들이 그를 흠모하여 1707년(숙종 33)에 생장지인 도천리에 도계서원(道溪書院)을 세워 춘추제향하고 있다.
그는 비록 후반생부터 문인활동을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풍요로워서 정철(鄭澈)에 버금가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3권 2책으로 이루어진 ≪노계집≫과 필사본 등에 실려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시가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소실되었다.
비록 시조를 즐겨 지어 완전히 생활화했지만, 국문학사상 의의는 가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문학적 재능도 가사에 더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蘆溪集, 원본 노계가사(이준철, 계몽사 영인, 1956), 蘆溪歌辭通解(朴晟義, 백조서림, 1957), 개고 박노계연구(이상보, 일지사, 1962), 蘆溪詩歌硏究(李相寶, 二友出版社, 1978), 노계가사신고(김창규, 경북대학교국어국문학회논문집 6, 1958), 蘆溪立巖曲의 系譜(金思燁, 경북대학교논문집 3, 1958), 노계시조분석고(장광덕, 명지어문학 3, 1966), 노계가사의 특질(박성의, 월간문학 3-4, 1970), 蘆溪歌辭問題點考察(黃忠基, 국어국문학 58∼60합병호, 1972), 蘆溪集의 形成(姜銓瓏, 국어국문학 62·63합병호, 1973), 박노계 오륜가소고(김기평, 공주교육대학논문집 11, 1974), 朴萬戶所唱의 立巖別曲考察(金一根, 국어국문학 81, 1979), 立巖別曲과 立巖二十九曲의 對比考察(黃忠基, 국어국문학 82, 1980), 蘆溪의 小有亭歌考(金文基, 국어국문학 84, 198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륜가(五倫歌(경기체가))
조선 세종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경기체가. ≪악장가사 樂章歌詞≫에 전하며, ≪악학편고 樂學便考≫에도 실려 있다. 이 작품은 ≪악장가사≫에 전하는 것으로 보아 궁중의 연향(宴享)에 쓰인 악장의 하나로 보인다.
형식은 경기체가의 전형적인 율격양식을 준수하고 있으며,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서장에 해당하고, 나머지 5장에서 오륜을 하나씩 노래하였다.
‘오륜가’는 유교윤리의 중추적 바탕이 되는 다섯가지 기본 항목인 오륜을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시켜 함께 향유하기 위하여 노래로 풀이한 작품을 총칭하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경기체가로 된 것은 이 노래뿐이다. 부자·군신·부부·장유(형제)·붕우 사이의 상호존경·상호애정·상호평등·상호질서·상호조화를 지향하면서도 상하·존비·귀천의 차별을 인정함으로써 가부장적인 가정질서 및 사회질서를 확립하려는 의도로 지어졌다. 따라서, 수직적 인간윤리관계를 객관화하여 규범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주제이다.
이 작품은 조선의 건국 초기에 국가의 안정을 다지고 그 질서의 확립을 확인하는 작품으로써, 중기 이후에는 안정과 질서회복을 호소하고 설득하는 작품으로써 왕조의 체제를 굳건히 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제1장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判陰陽 位高下 天尊地卑
판음양 위고하 텬존지비
生萬物 厚黎民 代作聖賢
沂만물 후려민 倨쟉성현
仁義禮智 三綱五常 秉彛之德
인의례디 삼강오샹 병이지덕
위 萬古流行○景 긔엇더悧니잇고
만고류里 경
伏羲神農 皇帝堯舜
복희신롱 황뎨요순
伏羲神農 皇帝堯舜
복희신롱 황뎨요순
위 立極○景 긔엇더悧니잇고 (제1장)
입극 경
음양이 나뉘고 고하가 자리잡으니 하늘은 높고 땅은 낮도다.
만물이 생겨나고 백성은 불어나니 대대로 성현이 나시도다.
인의예지·삼강오상, 영원히 변치 않고 지키는 덕,
아, 만고에 행해지는 아름다움, 그 어떠합니까?
복희씨와 신농씨 요임금 순임금,
복희씨와 신농씨 요임금 순임금,
아, 도를 확고히 세운 아름다움, 그 어떠합니까? (현대어 해석)
1장은 오륜을 지켜나가는 떳떳한 도리가 만고를 통하여 이어져 흐르는 모습을, 2장은 부모를 봉양하고 문안드리는 광경을 노래한 것이다. 3장에서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함으로써 태평성대가 이룩된 모습을 읊었고, 4장에서는 부부가 화합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5장은 형제가 의리로써 사양하는 광경을 각각 노래하였다. 이 노래는 경기체가 특유의 신념에 찬 어법을 통해, 중세의 질서이념인 삼강오륜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하겠다.
≪참고문헌≫ 高麗歌謠의 硏究(李明九, 新雅社, 1974), 鮮初樂章文學硏究(조규익, 崇實大學校出版部, 1990), 儒敎道德樂章考(金倉圭, 崔正錫博士 回甲紀念論叢, 曉星女子大學校出版部, 198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륜가(五倫歌(김상용))
조선 중기에 김상용(金尙容)이 지은 연시조. 모두 5수로 ≪선원속고 仙源續稿≫에 전한다. 1장은 부모에 효도할 것을, 2장은 임금을 바르게 섬길 것을, 3장은 부부간에 공경할 것을, 4장은 형제간에 한 기운으로 태어난 것을, 5장은 벗과 사귐에 있어 신의를 지킬 것을 주제로 담고 있다.오륜가계열 중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어 서정성보다 교훈성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참고문헌≫ 仙源續稿.(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륜가(五倫歌(박선장))
조선 후기에 박선장(朴善長)이 지은 시조. 모두 8수로 된 연시조로 날로 혼탁해가는 인심을 안타깝게 여겨지었다는 작품의 서문과 함께 작자의 문집인 ≪수서집 水西集≫에 실려 전한다.
작자가 1612년(광해군 4)에 구만서당(龜灣書堂)을 짓고 날로 혼탁해 가는 인심을 안타깝게 여겨 동네의 어린 선비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지었다. 작품의 구성은 오륜을 하나씩 차례대로 노래한 다음 3수의 난(亂 : 노래의 끝을 뜻함.)을 덧붙여 마무리한 것이 특이하다.
1장은 부모의 은혜를, 2장은 임금의 덕을, 3장은 부부간의 공경을, 4장은 한 핏줄로 태어난 형제간의 의미를, 5장은 친구간의 신의를, 6장은 세상이 변하여도 오륜은 있음을, 7장은 의식이 부족하여도 예의를 차릴 것을, 8장은 이웃을 미워하지 말 것을 각각 주제로 담았다.
‘오륜’이라는 관념적 주제를 설명적·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유나 환유, 설의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작품의 형상성과 정감성 및 호소력을 한층 강화함으로써 오륜가계열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륜가(五倫歌(송순))
조선 중기에 송순(宋純)이 지은 시조. 정철(鄭澈)의 〈훈민가 訓民歌〉 속에 그대로 인용되어 있어 한 때 정철의 작품으로 오인된 바 있다. 5수로 된 연시조로 작자의 ≪면앙집 潭仰集≫에 한역가(漢譯歌)로만 전하고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으나, 이것을 토대로 각종 가집에 전하는 우리말 노래의 모습을 추적해낼 수 있다.
1장은 부모의 은덕을 어찌 다 갚을까를, 2장은 임금을 하늘처럼 받들고 만수무강을 빌 것을, 3장은 부부간에도 예절을 지키고 서로 사랑할 것을, 4장은 형제간에 화합할 것을, 5장은 신실한 벗을 통하여 인격을 수양할 것을 내용으로 담았다. 쉬운 우리말 문체를 구사하여 백성을 계도하는 훈민가로 적절하기에 정철이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륜가(五倫歌(주세붕))
조선 명종 때 주세붕(周世鵬)이 지은 시조. 모두 6장으로 된 연시조. ≪무릉속집 武陵續集≫에 전한다. 작자가 1551년(명종 6)에 해주에 수양서원(首陽書院)을 짓고 널리 일반에 오륜의 규범을 펴기 위하여 지었다.
1장은 서장으로 이 노래의 내용을 잊지 말고 배워두라는 요청을, 2장은 하늘같은 부모의 은덕을, 3장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 설정하고 임금을 속이지 않는 충직한 신하가 될 것을, 4장은 부부 사이에 공대하여야 함을, 5장은 형제간에 불화하면 짐승과 다름없음을, 6장은 나이든 어른들을 부모처럼 잘 모실 것을 각각 시조형식에 담아 노래하였다.
관념적인 주제를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구체적인 인간의 일상적 삶을 통하여 생동감 있게 비유하여 표현한 점과 순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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