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대중 사회 대중 문화

by 송화은율
반응형

 

대중 사회 대중 문화 / 민경배  

대중 문화는 곧 저질 문화라고 말해지던 때가 있었다. 대중 가수나 배우들은 '딴따라'라고 불렀으며, 클래식 음악이나 발레 같은 것들만 가치 있는 '문화'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젊은 세대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대중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대중 문화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심지어 학문적으로 연구한다. 시대가 그만큼 바뀐 것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대중 문화에 대해, 소비 지향적이라거나 지나치게 대중의 입맛에 맞는 것들만 만들어 낸다는 등 설득력 있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대중 문화의 역사와 의의를 알아보고, 대중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생각해 보자.

      1. 대중 사회의 출현

  현대 사회를 흔히 '대중 사회'라고 말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대중(mass)이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구별을 두지 않는 단순한 사람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대중이라는 용어는 원래 유럽 사회에서 귀족이 아닌, 교육받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또한 오늘날에는 사회에서 다수를 이루고 있는 중류 이하의 사회 계층을 가리킨다. 따라서 대중 사회는 소수의 귀족이나 엘리트 계층이 주도하던 귀족 사회와 대치되는 개념으로, 대중들이 정치, 문화, 경제 활동에 폭넓게 참여하게 된 사회를 말한다.

  대중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등장하였다. 기계 공업의 발달과 함께 전통적인 귀족이 몰락하고, 생산직 노동자ㆍ화이트 칼라(white color, 사무직 노동자)ㆍ자영업자(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일하는 사람)ㆍ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 등을 포함하는 대중이 사회의 새로운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각종 보통 선거제(학식ㆍ재산ㆍ납세ㆍ계급 등을 제한적 요건으로 하지 않는 평등 선거)의 확대는 대중정치의 실현을 가능케 하였다. 그리고 교통 통신의 비약적 발달과 함께 지식과 정보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각종 대중 매체가 급속하게 신장, 보급되었다.

  특히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경제 매체가 나타나면서 이전까지 극소수의 특권층만 누릴 수 있었던 물질적 풍요를 대중들이 함께 누리게 되었다. 예를 들면 중세 시대 향료(오늘날의 후추)는 소수 왕족이나 귀족들만 향유할 수 있는 귀중품이었지만,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사회인 오늘날 후추는 아주 흔해 빠진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가깝게는, 한때 부(富)의 상징이었던 자가용이 이제는 보편화된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모두 대중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현상이다.

  이렇듯 대중사회의 도래는 신분 중심의 봉건주의적 속박으로부터 대중이 해방됨과 동시에 '대중' 이라는 새로운 사회 계층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주역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대중 사회는 또 다른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분, 혈연 등에 의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인간 관계가 약해지고, 사회 규모가 커지면서 사람들은 일종의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인간 소외 현상). 대중은 가치관의 혼란에 직면하고, 무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여 무기력하게 방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중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대신해 생각하고 판단해 주기를 바라는 '우매한 대중'의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2. 대중 문화의 형성과 의의                                

  오늘날 대중 문화는 대중들의 삶을 좌우하며 현대 사회를 특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대중 문화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대중 매체에 의해 제공되고 형성되는 사회의 보편적 문화를 말한다. 그러면 현대인들은 대중 문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을까? 빠른 리듬의 랩과 현란한 춤을 따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H.O.T라는 그룹 이름은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또 아직 극장에서 관람할 기회는 없었다고 해도 우리 영화 <쉬리>가 할리우드의 대작 <타이타닉>의 돌풍을 잠재우고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모습이야 말로 대중 문화의 위력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대중 문화는 근대 산업 사회에 들어서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통 사회에서는 계층마다 자신들 고유의 문화 활동이 정해져 있었으며, 사람들은 신분에 맞는 문화 활동을 즐겼다. 신분이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문화적 접촉이란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 나라만 해도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양반 문화와 서민 문화가 엄격히 구별되어 있었다.

  그러나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경제 활동으로 부(富)를 쌓아 일정한 사회적 지위까지 얻게 된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귀족 문화와 서민 문화 사이에 문화적 접촉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제적 풍요를 통해 늘어난 여가 시간, 기술의 급속한 발전, 교육의 대중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 취향에 맞는 문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여기에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새롭게 대두한 중산층의 문화·오락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작품들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대중 문화가 형성되었다.

  한편 대중 문화가 형성되면서 이것이 고급 문화의 대중적 보급을 이끌어 내는가 아니면 오히려 사회 전반의 문화 질을 떨어뜨리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대중 문화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일부 상류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문화가 발달한 대중 매체를 통해 확산된 것은 곧 자유와 평등의 확대라고 본다. 더욱이 이들은 대중 문화를 고급 문화에 대비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대중 문화는 상업성을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지고 전파된다는 특징이 있으므로, 전통 사회에서 엘리트층이 누렸던 소위 고급 문화와는 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돈과 높은 신분을 가진 소수 엘리트들이 특정 공간에서 즐겼던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의 음악이나 미켈란젤로(B. Michelangelo, 1475~1564)의 그림이 대중 매체를 종해 많은 대중들에게 들려지고 보여진다고 해서 갑자기 질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고급 문화가 대중에게 전파된다는 이유로 저급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 문화의 확산은 '고급 문화의 대중화'를 통해 사회전체의 평균적인 문화 수준을 향상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3. 현대 대중 문화의 문제점                                  

그러나 대중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대중문화는 대중 주체가 되어 만들어 낸 문화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대중 문화는 이윤(利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그 생산과 전파에 개입하므로, 문화 발전에 대한 관심보다 상업적·경제적 고려에서 생산되고 보급된다는 것이다.

댄스 음악 일색인 방송국의 가요 프로그램, 미니 스커트나 힙합 바지 일색인 젊은이들의 옷에서 읽을 수 있듯이, 상품으로서의 대중 문화는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규격화된 제품으로 만들어지기 쉽다. 게다가 대다수의 문화 상품들은 가벼운 오락물이나 음란물, 폭력성을 옹호하고 부추기는 내용들로 채워진다. 이러한 내용들이 쉽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이윤을 얻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중 문화는 저질 문화를 양산하여 대중의 문화적 수준을 떨어뜨린다고 비판받는다.

한편 대중 문화는 대중 매체를 장악하고 있는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해(利害)를 선전하거나 대중을 조작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2002년 월드컵을 유치했던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 보자, 언론이 쉴새없이 "월드컵을 유치해야 한다."고 떠들어대자, 월드컵 유치와 관련된 실익(實益) 계산이나 사회적으로 공개된 논의도 없이 전 국민이 거의 '집단 마취' 상태에서 월드컵 유치에 열을 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대중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파되는 메시지는 대중들에게 무조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따라서 지배층이 대중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선전하는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파한다면 대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생각을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중 문화는 대중의 관심을 현실로부터 유리시켜 대중의 현실 도피를 유도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3S 정책 은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정치 권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자주 이용된다.
나아가 대중 문화가 모든 사람들을 획일화·평준화시킨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텔레비전에서 본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을 따라 하면서 자신이 개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중 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같은 것을 좋아하게 되는 획일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3S 정책: 영화(Screen),스포츠(Sports),성(Sex)과 관련된 산업을 의도적으로 확산시켜 대중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는 정책   

            4. 우리 나라 대중 문화의 현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중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서구의 대중 문화는 중산층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이와 다른 과정을 거쳐 대중 문화가 전개되었다. 우리 나라는 20세기에 이르러 일제 시대와 해방, 6.25 전쟁 등을 거치며 전통 문화가 급격히 붕괴되었다. 이렇게 전통 문화가 무너진 뒤, 그 문화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중 매체에 의해 생산, 보급된 문화가 바로 우리의 대중 문화이다.


즉 우리 나라의 대중 문화는 갑자기 외부에서 들어와 미처 그 정체를 깨닫기도 전에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 들어와 버렸던 것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들어온 미국식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으면서 상업적인 대중 매체에 의해 형성된 우리 나라의 대중 문화는 그 출발부터 대외 종속적이며 퇴폐적. 향락(享樂)적, 소비 지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해방과 뒤이은 미군정(美軍政)시기(1945∼1948), 6.25 전쟁, 1960년대 이후의 대외 의존적 경제 개발 정책과 최근의 수입 개방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과 일본의 문화는 보이지 않게 우리의 대중 문화를 지배하게 되었다. 영화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내 영화 산업은 제대로 육성되지 못한 채 할리우드 영화들이 영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상당한 자본력을 가진 세계적인 영화 배급 회사들이 국내에 직접 영화를 공급하면서 종속의 정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한 1970년대의 <마징가Z>를 비롯해서 최근에 크게 인기를 끈 <슬램 덩크>나 <세일러 문>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들의 의식 세계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화 영화는 대부분 일본에서 제작된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 광고, 가요, 패션 분야에서 마구잡이로 벌어지는 일본 문화 베끼기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화 종속이라는 측면과 함께 오늘날 우리의 대중 문화가 비난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소비 지향의 문화라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 나라의 대중 문화는 퇴폐. 향락적이며 소비 지향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의해 문화 상품이 생산되고 보급되는 경향이 가속화되면서, 대중들의 문화 소비를 높이기 위해 성(性)이나 폭력 등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호소하는 문화 상품들이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다. 성을 상품화하는 외설적인 잡지나 영상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단란 주점이나 러브 호텔과 같은 향락 업소들은 IMF 체제 이후에도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대중 문화의 퇴폐. 향락적인 성격은 곧바로 소비 지향적 성격과 연결된다. 근검 절약을 미덕으로 여기던 전통이 사라진 자리에, 소비를 부추기고 새로운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쾌락주의적 생활 양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것은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시장을 확대하고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대중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 체계에 들어선 사회는 반드시 대량 소비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각종 대중 매체를 통해 젊음과 아름다움, 사치와 부유함을 칭송하고 쉴새없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 대중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상품 소비를 유도한다. 그 결과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까지 변화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자신이 생산하는 것에 의해 자신이 누구인가가 판단되었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은 농민, 제조품을 만드는 사람은 노동자, 소설을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불렸다. 각자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기만 하면 거기에 알맞은 사회적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비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소비하는 것에 의해 자신이 누구인가가 정해진다. 더 이상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무슨 차를 타는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가, 몇 평짜리 아파트에서 살며, 휴가 때 어디로 여행을 가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결정된다. 이 같은 문제점 때문에 대중 문화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을 바보로 만드는 폐해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무조건 대중 문화를 거부하거나 비난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문제점을 안다면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바로 우리의 대중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5. 맺음말

  대중 문화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오락의 기회를 제공하며, 일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준다. 또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여 대중들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고, 대중들이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 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 문화가 지나치게 오락성과 향락성을 추구하고 상품으로서의 이윤 추구에만 집착한다면 오히려 대중들의 건전한 의식을 마비시키고 인간 소외를 불러오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대중 문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중 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역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중 문화의 소비자로서 대중 문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독서평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