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沈黙) / 분석 / 한용운(韓龍雲)
by 송화은율 님의 침묵 (沈黙) / 한용운(韓龍雲)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이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의 시에서 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은 흔히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는 ‘조국’, ‘절대자’, ‘사랑하는 연인’ 등의 어떤 유일한 답을 가져다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 방법은 모두 적절하지 않다. 한용운이 시집 ‘님의 침묵’ 서두에서 말하였듯이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사랑스러운) 것은 다 님”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님은 일단 그 표면적 의미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이면서, 우주 만물의 근원에 있는 참다운 원리이기도 하고, 역사적 의미로는 조국이거나 민족일 수도 있다. 가장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그의 님이란 사람의 삶을 삶답게 하여 주는 모든 가치의 총체를 의인화(擬人化)한 것이라 할 만하다. 다만 그의 생애와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억압된 상황에서 괴로워하던 민족의 삶이었던 만큼 ‘님의 침묵’ 내지 ‘님의 부재(不在)’라는 그의 시의 주제는 이러한 역사적, 현실적 의미를 떠나서는 온당하게 해석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시 ‘님이 침묵’이 노래하는 것 또한 그러한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작품이 말하는 바 ‘님의 침묵’은 작중 인물 ‘나’의 삶에 절대적일 만큼 소중한 어떤 것이 상실된 상태를 가리킨다. 제6행(‘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까지)까지는 그러한 상실의 경험에서 오는 슬픔을 노래한다. 이 부분에서 님은 지극한 사랑의 대상인 연인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님은 ‘나’에게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맹서를 하였고, 님의 입술에 닿았던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았다. 그러나 그 님은 떠나가고 말았다.
제7행 이하의 부분은 이러한 이별에서 오는 절망과 슬픔을 새로운 희망과 기다림으로 극복하는 믿음의 노래이다. 이와 같은 시상의 바탕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끊임없는 생성, 변화를 거듭하며 따라서 영원한 만남과 밝음이 없는 것처럼 영원한 헤어짐과 어둠도 없다는 불교적 깨달음이 놓여 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의 님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님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이 때의 님을 꼭 조국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님을 조국이라는 말로 바꿔 넣으려 하면 여러 가지 해석상의 무리가 생긴다. 그러나 이 시가 노래한 ‘님이 없는 시대’는 분명히 참다운 정의의 원리가 존재하지 않는 어두운 시대이며, 식민지 시대와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러한 시대를 살면서도 꺼지지 않는 참다운 가치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것을 위한 헌신적 사랑과 믿음을 노래한 데에 이 작품의 근본되는 뜻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용운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김소월의 시를 비교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소월의 시에도 ‘님’ 또는 이에 해당하는 존재가 많이 등장한다. 그 님이 현재 ‘나’와 함께 있지 않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성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시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아주 대조적이다.
김소월의 시에 나타나는 님은 죽었거나 아주 멀리 떠나가서 돌아올 가망이 없는 님이다. 그의 시가 대개 애절한 슬픔과 한(恨)의 빛깔을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랑하는 님이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나에게는 기약 없는 기다림만이 있다고 할 때 절망적인 비탄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에 비해 한용운은 비록 지금 여기에 님이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며,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는 믿음을 노래한다. 님의 돌아옴을 믿기 때문에 그의 시는 끝없는 절망에만 빠지지 않으며, 마침내는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슬픔과 절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돌아오고야말 님을 향해 솟아오르는 사랑의 힘을 노래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여러 각도에서 설명될 수 있겠지만, 그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 시인이 가졌던 현실 감각과 역사 의식에서 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韓龍雲(1876-1944): 호는 만해(萬海). 충남 홍성에서 출생. 18세 때에 의병 활동에 가담한 이후 피신하는 생활을 하다가 23세에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되었다.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으며, 감옥에서 쓴 ‘조선 독립 이유서’는 독립의 마땅함과 필연성을 논한 당당한 대문장으로 평가된다. 그는 불교 사상에 식견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상적 조류에도 안목이 있어서, 당대의 침체한 불교를 비판 개혁하고자 ‘조선 불교 유신론’등의 중요한 주장을 제시한 바도 있다. 시집 『님의 침묵』(1926)은 그를 시인으로서도 중요한 인물의 위치에 올려 놓은 우리 현대시상의 한 기념비이다. 그는 이 시집의 작품들을 통해 자신이 살던 당대를 님이 없는 시대로 노래하면서, 그러나 그 님은 영원히 떠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돌아온다는 믿음을 깊은 종교적 바탕 위에서 노래하였다. 근간에 이루어진 ‘한용운 전집’이 그의 여러 저작들을 모아 수록하고 있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