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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쓰는 법 -느낌을 쓰는 독후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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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쓰는 법 - 느낌을 쓰는 독후감  /  문재용(오산고등학교 교사)



1. 어렵고 괴로운 독후감

  혹시 학교에서 독후감(독서감상문)을 써 오라는 숙제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은 없습니까?  이런 숙제 때문에 애를 먹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는 책도 읽어야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무엇을 써야 하나? 어떻게 써야 하나?' 등등의 문제로 시달림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원고지를 앞에 놓고 여러가지 생각을 합니다. 남들은 쉽게 쓰던데, 남들은 잘들 쓰던데 하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또 나의 이해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나, 중요한 내용을 빠뜨리고 읽지는 않았나 하고 다시 한 번 책을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과 방법을 다 써 보아도 문제는 조금도 쉬워지지 않습니다. 진도는 나가지 않는데 무엇인가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들의 머리 속은 더욱 혼란스럽고 지끈지끈 아프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되면 숙제가 싫고 책읽기가 싫고 숙제를 내 준 선생님이 싫어집니다.


  독후감을 쓰는 일이 우리들의 생각을 넓혀 주고 깊게 해 주는 좋은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독후감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심지어 책읽기를 좋아하던 학생들조차 책을 멀리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책을 읽는 의욕과 기쁨을 주어야 할 독후감 쓰기가 오히려 책을 멀리하게 한다면 이는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후감이 이처럼 어렵고 괴로운 것으로 자리잡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점들이 고쳐져야만 합니다..

 


  첫째로 독후감은 느낌을 위주로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독후감을 쓰는 일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로서 너무 형식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숙제나 시험 점수를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처지에서 독후감은 어떤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쓰는 대부분의 독후감은 책의 줄거리를 길고 장황하게 나열하곤 합니다.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책의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겠지요.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독후감이란 말의 뜻과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후감이란 글자 뜻 그대로 '글을 읽고 난 뒤의 느낌'입니다. 곧 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었던 재미와 감동의 기록입니다. 아무리 작은 느낌이라도 독후감은 자신의 느낌을 적은 기록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느낌을 통해서 우리는 남과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며, 이런 발견을 통해 우리는 내면적인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한 개인의 내면이 어떻게 발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성장의 기록으로서 받아들여질 때 독후감은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점수를 따기 위해서 혹은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행해지는 책읽기나 글쓰기에서는 솔직하게 표현된 느낌과 생각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독후감의 참된 의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자기 자신의 느낌을 찾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생긴 모습이 서로 다르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연령이나 지식에 따라서, 그리고 자기가 처한 입장이나 관심 분야의 차이에 따라서 사물에 대한 느낌이나 감동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생각이 남과 다르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쓰지는 않았을까, 남들이 웃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글을 쓰기도 전에 친구들의 독후감을 기웃거리고, 책 뒤의 해설을 베끼기도 합니다. 남들과 같이 쓸 수 있는 줄거리는 잘 쓰는데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느낌은 쓰지 못합니다.  자신의 느낌을 정리해 본 경험이 적고 따라서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후감에는 읽어야 할 책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지켜야 할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듯이 느껴야 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남과 다른 생각은 나의 개성을 말해주는 매우 가치있는 생각입니다.  나의 느낌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들의 올바른 성장에는 주위의 확인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점입니다. 느낌이란 처음에는 막연하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웬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하는 정도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느낌에 대한 이유나 근거를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에 대한 느낌이 되풀이되면서 우리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나의 생각이나 판단은 옳은가?하는 등등의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런 의문이 쌓이면서 느낌은 나름대로의 근거와 논리를 갖추게 되고, 이 근거와 논리는 바로 성격과 가치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의문에 대하여 매듭을 짓고 가는 일, 다시말해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로부터 자신의 생각에 대해 검증받는 일은 우리들의 올바른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처럼 중요한 일들을 무척 꺼립니다. 남들과 비교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런 학생들은 독후감이 우열을 가리기 위한 글쓰기 시합도 아니고, 정답이 하나밖에 없는 수학 시험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독후감을 쓰는 목적은 현재의 능력을 평가하려는 것이기보다는 미래의 생활 능력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관심이나 능력을 토대로 하여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형식의 글을 견주는 속에서만 진정한 발전은 이루어집니다.

 




    2. 느낌을 찾아서

  그러면 실제로 무엇을 쓸 것인가? 또 어떻게 쓸 것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독후감을 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인 형식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글을 읽게 된 동기
  담임 선생님께서 나보고 독후감 발표대회에 나가라고 해서 읽은 것도 별로 없고 걱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집에 와선 책장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눈에 띄는 책이 없었다. 그래서 동생 방의 책장에 가보게 되었다. 그런데 먼지에 쌓인 한 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낮도 밤도 없는 곳'이라는 책으로 '김삿갓과 철수, 그리고 바둑이의 천국과 지옥 여행을 그린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워낙 책을 읽기 싫어해서 처음에 독후감을 쓰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막막했다. 하지만 내가 제일 존경하는 세종 대왕을 읽기로 결심했다.

  독후감의 첫머리에 흔히 쓰이는 것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게 된 동기입니다. 이제는 독후감의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잡았지만, 설득력이 있는 동기를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입니다. 대부분 학교의 숙제나 선생님의 권유를 들고 있고, 아니면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로 책을 읽었다거나 우연히 눈에 띈 제목이나 구절이 재미있어서 읽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글인 인용문 역시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특별한 내용이 없습니다. 글쓰기의 괴로움이나 어쩔 수 없이 독후감을 써야만 하는 학생의 어려운 처지를 상상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한두 줄에 그치고 마는 이런 동기는 자신이 쓰려고 하는 주제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이어지는 내용과 동떨어진 이런 이야기들은 글의 전체적 짜임이나 논리 전개상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독후감에서 책을 읽게 된 동기는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동기 부분은 독자의 관심을 끌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도입부분으로서의 의미가 큰 부분입니다. 동기 부분이 없는 훌륭한 독후감이 얼마든지 있으며, 오히려 이런 독후감이 대부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불필요한 동기는 오히려 없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읽게 된 동기나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설득력을 지내기 위해서는 글의 도입부분으로서의 의미는 물론 이어질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쓰려고 하는 내용의 일부를 알려 줌으로써 글의 방향이나 주제를 밝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읽은 책의 중요성이나 가치를 알려 준다든지,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나 감동을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다음 두 편의 글을 봅시다.

  내가 이 책(퇴마록)을 읽은 것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몇 달 지난 후였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 책 내용이 귀신을 물리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저 재미만 있을 그런 책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난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선 난, 형제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를 읽고 느꼈던 것에 대해 쓰려고 한다. ...... 이하 생략 ......

  '사랑하는 나의 연사들'은 얼마 전  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극장'의 사회자였던 작가 고원정씨가 쓴 소설로  TV에서 드라마로 방송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내가 읽던 책들은 추리소설이나 공상과학 소설이었다. 물론 '천국의 열쇠'나 '쿠오바디스' 등도 읽어 보았지만 그저 그런 정도였다. '이제부턴 좋은 책들을 읽어보자'하는 생각으로 누나에게 감명 깊게 읽었던 책 한 권을 선정해 달라하여 읽게 된 책이 '사랑하는 나의 연사들'이다. 이 소설은 한 인물이 어린 시절부터 겪는 인간의 '권력욕'이라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각 단락은 제목이 붙어 있지 않고 연도 순으로 짜여져 있었다. ......이하 생략 ......

  두 인용문 중 앞의 글은 책을 읽게 된 동기와 함께 자신의 감동을 간단히 적고 있습니다. 다분히 흥미 위주일 것으로 생각했던 책에서 느낀 예상치 못했던 느낌, 그리고 자신이 쓰려고 하는 글의 방향(형제간의 사랑)을 알려 줌으로써 글쓴이는 그 책에 대한 자신의 평가나 자신의 관심 분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번째 인용문 역시 누나로부터 추천을 받아 책을 읽게 되었다는 점과 소설의 주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글은 자신의 독서 습관과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를 대비시킴으로써 '과연 어떤 책일까?', '어떻게 썼을까?'하는 독자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두 인용문이 앞서 소개했던 인용문들과 다른 점은 글쓴이의 생각이나 느낌, 더 나아가 삶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곧 글 속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짧지만 글의 동기에서도 이같은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생활 모습과 표정이 묻어날 때 좋은 글이 될 수 있습니다.  

 


  2) 줄거리 및 내용 소개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어떤 학생들은 줄거리만을 나열하곤 합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그 책의 내용을 잘 알 수 있을만큼 자세히 쓰여진 글들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느 독후감을 읽고 난 후에 책의 내용을 잘 알게 되어서 '나도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독후감은 책을 요약하거나 소개하는 글은 아닙니다. 독후감은 느낌을 가장 중요한 근본으로 다루기 때문에 느낌이 없는 글은 좋은 독후감이 될 수 없습니다.  

  홍난파라는 이름 자체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또, 음악시간에 배운 것 중 '봄처녀', '봉숭아' 등을 작곡한 사람이 홍난파이기 때문에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홍난파는 조선말엽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  16세인 1912년에는 YMCA 중학부를 졸업하였다. 그후 음악학교인 조선 정악 전습소의 양악부에 입학하여 성양음악을 접한 뒤 서양 음악에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하였다. 공부하는 데에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잘 안된다. 왜인지는 몰라도 ......


  1918년 음악에 대한 실력을 쌓기 위하여 그는 일본 도쿄로 건너가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2년동안 공부하였다. 그리고 1920년 귀국하여 민족의 설움이 담긴 '봉선화'를 작곡하엿다. 그리고 1926년 다시 일본에 거넌가 도쿄 음악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도쿄 교향악단의 제 1비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1929년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조선 음악가 협회 상무이사를 지내고, 1931년 미굮에 가 셔우드 음악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하다가  1933년에 다시 귀국하였다. 그리고 여러 학교 강사, 책임자가 되었으며, 경성관현악단을 조직하여 서양음악보급에 힘썼다. 그의 작품으로는  '달마중', '낮에 나온 반달', '봉선화', '성불사의 밤' 등의동요와 가곡이 있다.


  홍난파는 한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여 지금까지 알려지는 홍난파가 되었다. 우리들도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학생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독후감의 유형입니다.  줄거리를 길게 쓴 뒤에 자신의 느낌이나 결심을 한두 줄 덧붙이는 형태의 글이지요. 이런 종류의 글은 위인전을 읽은 학생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책에서 소개한 위인들의 훌륭한 점이나 업적을 그대로 나열한 뒤에 '나도 누구처럼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끝납니다. 만일 국민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서 이런 발견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대단히 격려할만한 일입니다. 어떤 책을 읽고 자신이 배워야 할 점을 정리하고, 나도 그렇게 되어보겠다는 다짐을 하기란 저학년 학생들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민학교 고학년이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서 이런 글이 보여진다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지식과 견문, 그리고 생활경험이 쌓인 학생들에게서 이같은 다짐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책을 읽고 얻은 발견의 기쁨이라기보다는 반성문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껏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든지, 혹은 앞으로 살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중대한 암시를 받았다면 책을 읽고 난 우리들의 가슴은 기쁨과 감동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발견의 기쁨은 반드시 구체적인 경험을 동반합니다.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이든 혹은 나와 다른 의견이든, 내가 겪었던 경험이든 혹은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이든, 책을 통해 얻는 감동이란 나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볼 때만 가능합니다. 다시말해 책 속의 내용과 나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도 하고 반대로 나의 생각을 고쳐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는 비교의 대상으로서 내가 가졌던 생각이나 내가 겪었던 경험이 반드시 거론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책의 내용을 긍정이든 부정이든 아무런 수정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책이 자신의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못 끼쳤음을 말하며 다른 의미로는 글쓴이의 책읽기가 다분히 수동적이고 형식적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반성문이란 쓰는 동기부터가 강요된 경우가 많고, 따라서 정해진 요건과 형식만을 갖추려 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을 봅시다.

  이 책(퇴마록)은 꼭 무협지 같다. 하지만 사람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저승에서 이승으로 빠져나온 악령들, 그밖의 여러 영들과 싸우는 것이어서 더욱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은 4명으로 싸움 담당으로 월향검과 태극기공을 쓰는 현암, 애염명왕 라가라쟈의 화신이 몸 안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힘을 보내는 승희, 어려서부터 해동밀교에서 자라나 밀교, 도교의 술수에 능한 준후, 그리고 신부로써 오오라와 성수, 십자가를 주무기로 하는 박신부가 그들이다. 또 세계편에서부터 등장하는 연희와 백호가 이야기에 등장한다.


  이 책을 읽으며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귀신이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지금  내 주위에도 있을까? 없다면 귀신을 봤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일까? 이런 여러 생각들로 인해 혼란스럽다. 하지만 귀신이 있다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라 생각한다. 나는 귀신, 귀신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영혼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책에서 등장하는 즉, 사람을 괴롭히고, 피를 빨아먹고, 죽이는 그런 사악한 종류의 것이 아닌,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승과 저승은 어떤 것에 의해 서로 넘나들 수 없고 이승에서 죽을 경우에만 이승에서 저승으로 영혼이 가는 것이다. 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이승에 사는 사람은 영혼을 볼 수 없으니 귀신이나 영혼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하지만 이런 이유로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 (중   략 ) ......


  이런 신기한 초자연적 세계를 퇴마록을 통해 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고,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또 퇴마록을 꾸준히 읽음과 동시에 독서의 재미를 약간이나마 알게 되어 그 뒤로 <소설 동의보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베니스의 개성상인>, <개미> 등 여러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부분 흥미 위주의 책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여지껏 읽어보지 못한 여러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앞의 글과는 매우 다른 모습(혹은 반대)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구체적인 줄거리가 없이 바로 책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등장 인물들을 간단히 소개함으로써 책의 성격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느낌을 한 가지 문제에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고 하면서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독자는 호기심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곤란하다'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생각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를 일으킨다는 뜻으로 보면 됩니다. 어떤 책을 읽든, 책은 우리에게 무언가 생각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런 문제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눈과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을 가지게 됩니다. 생각과 느낌이 우리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처럼 큽니다.


  줄거리만으로 독후감을 채우는 학생들도 있고,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능력이지만, 독후감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느낌을 위주로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줄거리와 내용 소개는 글의 방향과 관계되거나 논지 전개에 필요한 경우에만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곧 줄거리가 느낌을 쓰기 위한 재료로 사용될 때, 좋은 독후감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은 <개미>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독후감을 쓸 때 제목을 '곤충들의 삶'이라고 붙인 이유는 곤충들 중 대표적인 곤충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개미의 삶이 자세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소설이라서 꾸민 부분도 있을 만하다. 그러나 어떤 작가의 소개말을 보니 이 책의 지은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3년이란 세월을 개미 관찰에 보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이 글을 읽게 된 동기도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는 몰랐지만 읽고 난 후 생각하면 생각해 볼수록 이 책의 내용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개미와 인간의 이야기를 한 단락씩 혼합해서 구성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매력은 처음에는 아무 연관도 없었던 이야기가 뒤에 가면 갈수록 연결되어 사건이 성립된다.


  또한 이 책을 읽고 나면 시각이 달라진다. 그렇게 큰 변화는 아니다. 책에는 개미의 시각으로 인간 세상을 보는 장면이 묘사된다. 그 장면을 읽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하찮은 장난이 개미에겐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장난이 된다. 그리고 이 책의 후반부에 가면 개미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나는 이것을 그냥 이 책에서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개미들이 인간들을 공격한 이유는 자기들의 생명을 위해서였다. 나는 이 작가가 이런 장면을 연출하여 우리에게 환경보호 의식을 한 번 생각하게 하려고 한 것일 것 같다. 개미들의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인간이 계속해서 환경 파괴를 계속하면 언젠가는 자연이 인간들을 처벌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줄거리는 쓰지 않겠다. 왜냐? 줄거리를 쓸 경우 너무 많은 종이와 시간이 낭비된다. 그래서 짧게 쓴다면 이 책의 매력을 다 빼내어버린 덤덤한 글이 되어버린다. 이 책의 줄거리는 자기가 읽고 마음 속으로 생각해 보세요. 독서의 재미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전체적인 줄거리 없이 그때그때 자신의 느낌을 쓰기 위해 책의 부분적인 내용을 들고 있습니다. 단어나 문장의 연결이 유기적이지 못하여 매끄럽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만  글을 읽게 된 동기, 책의 구성상의 특징, 주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 등 글쓴이 자신의 입장이 아주 뚜렷하여 읽는 맛을 주는 글입니다. 길고 지루한 줄거리가 없어도 훌륭한 독후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독후감에서는 줄거리와 느낌이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줄거리와 느낌은 별개의 내용일 수 없습니다. 줄거리 따로, 느낌 따로인 독후감은 책과 글쓴이가 아무런 연결 고리를 갖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의 느낌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모습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면 특히 어느 부분에서 어느 내용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따져보도록 합시다. 줄거리와 느낌이 구체적으로 연결될수록 독후감의 내용은 탄탄해지기 때문입니다.

 



  3) 느낌 쓰기
  독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물을 대할 때 우리가 느끼는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잘 쓰려는 생각보다는 솔직한 느낌을 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 자신의 느낌을 당당히 표현하는 것은 가치관이나 성격 형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유치하다거나 엉뚱하다고 비웃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남들과 견주어 볼 기회를 잃게 되는 셈입니다. 두려움없이 발표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는다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나 자신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더욱 더 적극적인 발표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반대로 자신의 생각이 짧았던 점, 혹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을 지적받는다면 그것은 새로운 발견이자 발전의 계기가 되는 셈이지요.


  다음 4편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계속해 봅시다.

  가) 이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은 '삵'을 통하여 그 시대에 대항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대신하여 만주인 지주에게 대항하게 한 민족적 울분이 이 주제이다.


  여기서 '삵'은 불량배이고 나쁜 사람이지만,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시대의 배경을 잘 알 수 있었고, '삵'의 마음에는 오직 조국만이 전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만약에 이런 현실이 눈 앞에 닥쳐 왔을 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간다.
  이 작품은 민족주의적 저항 의식이 뚜렷이 나타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나는 이 글을 읽고 이해가 안되는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은 같은 민족을 그렇게도 못 살게 굴고 폭행하고 또 처녀까지 겁탈을 하던 그러한 '삵'이' 자기자신만을 알던 '삵'이 송첨지가 죽었다고 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그런 살신성인의 정신이 단 하룻만에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인간의 심성이 과연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까지 변화될 수 있을 까? 이 시대엔 더욱이 한민족이 무척 괄시받아 왔고 송첨지가 죽은 일과 비슷한 일은 숱하게 당해온 일일거라 생각되는데 '삵'이 이렇게 변할 계기가 됐을까 하는 것이다.
  '여'가 한 말 때문이었을까? 그 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익호는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면서 얼굴이 많이 두꺼워졌다고 보인다.


  내 생각으로는 '삵'이 그런 말 몇마디에 성격이 그렇게 바뀔 사람같지는 않다.

  다) 아래 인용문을 참조할 때 이 소설에서 '여'는 송첨지의 죽음을 자신의 삶과 철저하게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자. 내 생각에 방관자적 입장에서 우리 민족의 현실을 바라보는 여라는 인물보다는 비록 착하다거나 똑똑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 민족을 위해 몸으로 부딪칠 수 있는 삵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여(余)는 의사라는 여(余)의 직업상 송첨지의 시체를 검시를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여(余)는 '삵'을 만났다. 키가 작은 '삵'을 여(余)는 내려다 보았다. '삵'은 여(余)를 쳐다보았다.
  "가련한 인생아. 인종의 거머리야. 가치없는 인생아. 밥버러지야. 기생충아!"
  여(余)가 삵에게 말하였다.
  "송첨지가 죽은 줄 아나?"

  라) 이 작품에서 <붉은 산> 이란 헐벗은 국토를 뜻하는 것이며 '흰 옷'은 우리 민족을 뜻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일제 시대 우리 민족의 한을 만주라는 장소에서 재조명해 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보면 '삵'을 마을에서 좆아내자는데 합의를 하면서도 '선착'할 사람이 없어 일을 벌이지 못한다. 송첨지가 죽음을 당했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이 대목을 읽고 '선착'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에도 같은 것 같다. '선착'이 안되어서 다 이루어진 일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 '선착'의 용기를 길러야겠다.

  인용된 4편의 글은 모두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글입니다. 1932년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 소설 '붉은 산'에 대한 독후감들로 느낌 부분만을 모았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작품의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의사인 여(余)가 만주에 퍼져 있는 병을 조사하기 위해 여행을 하던 중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있을 때의 사건이다.


  이 마을에는 '삵'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익호'라는 사람이 있었다. 삵은 생김생김부터 하는 짓까지 모두 마을 사람들의 분노를 사게끔 만들었다. 남의 집을 자기집처럼 드나들고 행패부리고 동네아낙네를 겁탈한다. 한마디로 삵은 이 마을의 암적인 존재였으나 누구도 삵을 쫒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송첨지라는 노인이 그해의 소출을 실어가지고 만주인 지주를 찾아갔다가 소출이 적다는 이유로 얻어맞아 죽어 돌아오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몹시 격분하여 원수를 갚자고 외치나 그저 그뿐, 아무도 나서지를 못한다.  송첨지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여(余)는 삵을 만나 송첨지의 소식을 전하며 욕을 한다. 삵은 비참한 표정으로 사라진 뒤 다음날 아침 피투성이가 된 채 동구 밖 밭고랑에서 발견된다. 삵은 민주인 지주를 찾아갔던 것이다.


  '붉은 산'과 '흰 옷'이 보고 싶다며 삵은 마지막 소원으로 애국가를 불러달라고 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  여(余)와 마을사람들의 애국가 부르는 소리와 함께 삵은 눈을 감는다.


  간략하지만 이 줄거리를 바탕으로 앞에서 인용한  4편의 독후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중요한 점은 사람의 느낌이란 저마다 다르다는 점이며, 글을 쓰는 것은 작가의 마음이자 작가의 권리이듯이, 글을 읽는 것은 독자의 마음이자 독자의 권리라는 점입니다. 느낌과 느낌 사이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개성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흔히 말해지는 좋은 느낌이란 평가도, 알고보면 책을 보는 독자의 시선이 얼마나 개성적인가, 남과 다른 나만의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느낌을 전개하는 과정, 다시말해 자신의 느낌을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면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먼저 글 가)와 글 나)는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인 삵의 인물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삵은 힘과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불량배이지만 송첨지의 소식을 접하고 또 '나  (=余)'의 꾸짖음을 통해 조국에 대해 눈뜨고, 민족에 대해 깨닫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만주인 지주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송첨지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용기와 동포애를 보여 줍니다. 아무리 야비한 삶을 살고 있는 삵이지만 일말의 양심과 함께 조국이나 민족에 대한 사랑이 가슴 밑바닥에 남아 있었다는 생각이지요.


  삵이 보여주는 조국애나 민족애는 작가가 의도한 강조점이면서 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내용입니다. 글 가)는 이러한 점을 잘 드러낸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글 나)는 글 가)와는 아주 다른 의견을 제시합니다. 송첨지의 경우와 같은 억울한 죽음은 그 당시 다른 나라 땅인 만주에서는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닐 것이라는 가정에서 글 나)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일은 충격적인 사건이 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의사인  '나'의 비난 역시 모진 삶을 살아온 삵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으리란 생각입니다.. 짧은 시간에 갑자기 가치관이 바뀐 삵의 변모 과정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습니다. 이는 작품의 전개가 객관성이나  '있음직한 일'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얘기이고 독자에 대한 설득력이 약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나)의 의견은 책을 읽은 다음 조금만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어 보았음직한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쓸 수 있는 느낌은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나 쓸 수 없다는 점은 이 글의 가치를 높여 주는 요인이 됩니다.


  글 다)는 작품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서술자의 태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서술자는 사건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위해 대부분 카메라의 역할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붉은 산'의 서술자는 객관적이다 못해 차갑기까지 합니다.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과 울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삵을 비난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가책이 없는 것은 송첨지의 죽음을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로, 남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짱을 끼고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듯한 서술자가 글쓴이에게는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글쓴이는 애정이 없는 비난은 올바른 충고가 아니며, 좋은 결과를 이룰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리라 봅니다. 글을 쓰는 일은 이처럼 앞날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자 새로운 다짐이기도 합니다.


  글 라)는 이 글의 절정 부분에서 회개한 삵이 보고 말한  '묽은 산'과  '흰 옷'의 의미를 짚어 봅니다. 글의 제목이 된 이 낱말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글쓴이는 쉽게 작품의 주제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뜻이 모호한 단어를 선택한 점이 조금 아쉽지만 글쓴이는 훌륭하게 자신의 의견을 펴 나갑니다. 여기서  '선착'이란 말은 어떤 어려운 일을 '먼저 시작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봅니다. 누구나 필요성과 중요함을 잘 알지만 아무도 앞장서는 사람이 없으므로 생기는 답답하고 무기력한 상황을 우리는 흔히 경험하곤 합니다. 글쓴이는 이점에 시선을 모으고 있습니다. 누구의 앞에 선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때문에 가치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마 이 글을 쓴 학생은 똑똑한 이론가보다는 우직한 실천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은 일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4편의 글을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네 사람을 만나 보았습니다. 가)처럼 작품의 주제나 작가의  입장을 충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나)처럼 이야기 자체의 오류나 잘못을 찾아 지적하는 사람, 또 다)처럼 말하는 사람의 의도나 가치관까지 따져 보는 사람, 라)처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에게 부족한 가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짧은 글 속에도 우리가 느끼고 생각해야 할 점이나 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궁무진한 소재를 통해 생각을 다듬고 정리함으로써 우리의 가치관을 키워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글을 쓰는 목적입니다. 또 여러 사람의 글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바로 글읽기의 즐거움입니다.

 



  4) 제목 달기
  글의 제목은 글을 대표하는 간판과 같은 구실을 합니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우선 그 제목을 보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저 그런 책이려니 하는 추측을 내리기도 합니다. 제목은 이처럼 글에 대한 첫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음 제목들을 봅시다.

  가) '에디슨'을 읽고
  나) 발명왕 에디슨
  다) 노력과 땀이 이룬 발명왕
  라) 99%의 노력

  중학생들이 많이 쓰는 '에디슨'의 독후감 제목들입니다. 학생들의 독후감 중에서 가)와 같은 형태는 아주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 혹은 '<좁은 문>을 읽고'와 같이 책의 제목만을 쓰거나 '무엇을 읽고'와 같은 형태로 쓴 글은 글쓴이가 무엇을 쓸 것인지, 혹은 어떤 관점에서 글을 쓸 것인지 글의 방향을 잡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같은 제목에서 독자는 글쓴이가 읽은 책이 무엇이라는 정도를 알 뿐이지, 글쓴이가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에 대해서 썼는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좋은 글을 쓰고도 가)처럼 제목을 달았다면 제목을 다는 방법이 미숙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글은 제목을 통해 무엇을 썼는지, 어느 관점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 등, 글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려주는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긴장하게 되고 긴장할수록 분위기는 어색하고 딱딱해집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과, 그것도 좋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편안한 속에서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의 방향이나 글쓴이의 입장을 알고 있으며 더욱이 관심과 흥미를 느낀 상태라면 글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글 나)를 봅시다. 나)의 제목 역시 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보다 조금 나은 형태라고 볼 수 있긴 하지만 '발명왕'이라는 수식어는 에디슨을 가리키는 말로 거의 굳어진 표현입니다. 굳어진 표현이란 남들에 의해 너무도 많이 쓰여져서 새로운 맛이나 신선감이 없는, 다시말해 귀에 익숙해진 표현을 뜻합니다. '에디슨'이나 '발명왕 에디슨'이나 어감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뜻이지요. 이런 제목을 달 수밖에 없는 사정은 가)와 마찬가지로 남과 다르게 자기만이 생각하고 느낀 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와 라)는 앞의 것들과는 다릅니다. 비록 창의적이고 재치있는 표현은 아니더라도 그 속에는 글의 방향이 담겨 있으며, 또 독자가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노력과 땀'이라는 다)의 표현 속에서 독자는 글쓴이가 발명왕이라는 업적과 결과보다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리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라)처럼 '99%의 노력'이라는 말을 통해서도 에디슨의 천재성보다는 천재로 불려지기까지의 숱한 노력들이 이야기될 것이라는 점을 짐작케 합니다. 이처럼 좋은 제목은 제목만으로 글쓴이의 입장과 글의 방향을 알려줍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보다 낯설고 기발한 재미가 담긴 제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제목이란 좋은 글을 바탕으로 깔고 있으며, 좋은 글은 글쓴이의 생활 경험과 개성적인 시각에서만 가능합니다.

  3. 나를 바로 세우는 일

  지금까지 독후감을 쓸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독후감은 느낌을 위주로 써야 하며 글을 쓰는 동기는 자신의 새로운 경험과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또 줄거리나 느낌은 별개의 사항이 아니라는 점과 글의 내용을 암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목은 글의 맛을 더해 준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표현상의 세세한 문제들을 비롯하여 다루지 못한 내용이 많지만 자신의 느낌을 써 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해 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며, 우리들의 모든 행동은 더불어 살기 위하여 나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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