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김영랑
by 송화은율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붙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시문학 창간호, 1930.3)
* 오매 : ‘어머나’의 전라도 사투리.
* 장광 : 장독대.
* 기둘리니 :‘기다리니’의 전라도 사투리.
* 자지어서 :‘잦아서, 빠르고 빈번하여’의 전라도 사투리.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김영랑의 시는 일반적으로 주제 의식이 약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가락과 섬세한 정서만으로도 훌륭한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운율, 정서, 언어적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 시는 작가가 즐겨 쓰는 4행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4행시는 전통적 시가, 즉 시조의 3행을 변형시킨 것으로 음악적인 효과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투리의 구사는 시어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측면도 있지만, 음악적 효과, 향토적 정서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재인 ‘골 붉은 감잎’을 바라보는 누이의 마음과 시적 화자인 나의 마음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 성격 : 낭만적, 서정적
▶ 경항 : 유미주의적 경향
▶ 심상 : 청각적, 시각적 심상비유와 상징
▶ 운율 : 3음보 중심, 반복
▶ 특징 : ① 반복에 의한 음악적 효과
② 심리 상태를 대조적으로 표현함
③ 토속적인 언어를 시적으로 활용함
④ 관념어를 배제하고 생활어를 사용함
▶ 시상 전개 : 대조에 의한 시상 전개
▶ 구성 : 4행 2연의 대립적 구성
① 감잎을 보는 누이의 감탄(1연)
② 누이의 모습을 본 나의 마음(2연)
▶ 제재 : 골 붉은 감잎
▶ 주제 : 가을을 느끼는 감회(感懷)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단풍을 보는 ‘누이’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60자 내외로 쓰라.
☞ 누이가 자연을 통해서 느끼는 생활인의 마음인 데 비해, 나는 누이에 대해 느끼는 인간적인 감동의 마음이다. (‘누이’는 생활인으로서 단풍을 보고 가을에 할 일을 걱정하지만, ‘나’는 천진무구한 사람으로 단풍을 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란다.)
2. ㉠, ㉡의 발화자는 각각누구인가?
☞ ㉠ 누이
㉡ 나
3. 누이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각각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밝혀 쓰라.
☞ 누이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감잎이고, 나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누이다.
<감상의 길잡이>(1)
첫 연에는 감잎을 보고 놀라는 ‘누이’의 마음과 모습이 그려져 있고, 두 번째 연에는 그러한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이 그려져 있다.
제1연에서 누이는 장광에 오르다가 바람결에 날아오는 ‘감잎’을 ‘놀란 듯이’ 쳐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를 외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봄이 왔는지 가을이 왔는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누이도 가을이 와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그것을 느끼게 된다. 그 놀라움이 그녀의 얼굴을 붉히게 하고 불현 듯 마음까지도 붉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감잎이 ‘단풍 들었네’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단풍 들것네’로 읽혀야 한다. 이 시의 마지막에서 둘째 줄이 ‘누이야 나를 보아라’가 아니고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2연에서, 첫 두 줄은 누이의 심경을 작중 화자인 ‘나’가 짐작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마음을 붉히게 하는 가을을 발견한 놀라움과 기쁨은 잠시이고, 곧 추석이 오고 바람이 모질게 불어올 것이라는 걱정을 하는 누이 ―기쁨의 한순간마저도 생활의 걱정에서 떠날 수 없는 한국의 전형적인 여인― 의 마음을 읽고 ‘나’는 말한다. ‘누이야 나를 보아라. 너를 보는 나의 마음 속에도 단풍 들겠다.’
결국 ‘누이’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감잎이고, ‘나’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누이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감잎→누이→나’로 연결되는 묘한 동화(同化) 관계를 읽어 낼 수 있게 된다. 주제는 다르지만, 낙엽과 누이와 나라는 이 삼자의 관계가 재미있게 설정되어 있는 작품으로서 신라 시대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제망매가(祭亡妹歌)와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좋을 듯하다.
<감상의 길잡이>(2)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듬뿍 배어 있는 이 시의 감상 초점은 ‘골 붉은 감잎’을 바라보는 ‘누이’와 시적 화자의 태도에 있다. 즉, ‘오매, 단풍 들것네’라며 소리치는 두 사람의 탄성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또 어떻게 다른지에 관심을 두고 작품을 파악해야 한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정신 없이 일상사에만 매달렸던 ‘누이’는 어느 날 장독대에 오르다 바람결에 날아온 ‘붉은 감잎’을 보고는 가을이 왔음에 깜짝 놀라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소리지른다. 그 놀라움이 누이의 얼굴을 붉히고 마음까지 붉힌다. 그러므로 ‘단풍 들것네’란 감탄은 ‘감잎’에 단풍이 드는 것이 아니라, 누이의 마음에 단풍이 든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가을을 발견한 놀라움과 기쁨도 잠시일 뿐, 누이는 성큼 다가온 추석과 겨울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추석상도 차려야 하고 월동 준비도 해야 하는 누이로서는 단풍과 함께 찾아온 가을이 조금도 즐겁지 않다.
누이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화자는 누이가 왜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소리쳤는지, 누이의 얼굴과 마음이 왜 붉어졌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둘째 연의 1․2행은 누이의 걱정을 헤아린 화자가 누이를 대신해서 누이가 외치는 탄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며 소리지른다. 호칭의 대상이 ‘누이’가 아닌 ‘누이의 마음’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첫 연의 ‘오매, 단풍 들것네’의 주체가 갈잎이 아니라 누이의 마음임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가 소리친 ‘오매, 단풍 들것네’의 주체도 화자 자신의 마음이 된다. 다시 말해, 누이의 마음이 화자에게 전이됨으로써 누이의 걱정이 화자의 걱정과 하나가 되는 일체화를 이루게 된다.
결국 ‘누이’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한 것은 ‘감잎’이었지만, ‘나’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누이’가 되는 것이다. 첫 연이 누이가 자연을 통해서 느끼는 생활인의 마음을 표현했다면, 둘째 연은 화자는 누이에 대해 느끼는 인간적인 감동의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오매, 단풍 들것네’라는 감탄은 첫 번째 것이 누이가 가을이 왔음을 알고 반가워하는 의미이라면, 두 번째 것은 누이가 가을로 인해 갖게 된 걱정스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며, 세 번째 것은 화자인 동생이 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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