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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아실 이- 김영랑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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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아실 이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시문학 3, 1931.3)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타인과 함께 나눌 수 없는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는 안타까운 내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시는 음악성과 심상도 매우 중요시한 작품이다. 음악적 효과를 위하여 어떤 언어를 선택했으며 어떤 기법으로 심상화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성격 : 낭만적, 유미적, 서정적

어조 : 여성적 호소의 어조

표현 : 비유와 상징

특징 : 가정(假定)과 자문자답의 형태

구성 : : 임의 존재 가정(假定)(1)

: 임에게 바칠 나의 마음(2)

: 임의 존재에 대한 회의(3)

: 임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4)

제재 : 내 마음

주제 :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연구 문제>

1. 이 시의 중심 심상을 찾아 쓰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하였는지 설명하라.

중심 심상은 내 마음이고, 그것을 비유(직유와 은유)로 형상화하고 있다.

 

2. 이 시에서 운율적 효과를 위해 변형시킨 시어를 모두 찾아 쓰라.

날같이, 어리우는, 하오련만, 희미론

 

3. 은 화자의 어떤 심리 상태를 나타낸 말인가? 30자 내외로 쓰라.

내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없어서 혼자 안타까워하는 마음

 

4. 1930년대 <시문학파>의 문학사상의 의의를 순수시의 특징 몇 항목을 들어서 설명하라.

시를 언어의 예술로 보고서 언어의 조탁, 정서의 순화, 미묘한 음악성 등을 살려 시를 예술의 위치에 올려 놓았다.

 

 

<감상의 길잡이>(1)

김영랑은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등과 함께 <시문학>(1930)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전개한 시인이다. 시에서 일체의 이념적, 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감각과 그윽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순수시의 본령이라고 생각한 결과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 세계에만 편중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의 순수시 운동에 의하여 우리 나라의 현대시가 시의 언어와 형식에서 좀더 세련된 차원으로 발전되었다는 시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감상할 󰡔내 마음을 아실 이󰡕도 그와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나의 마음을 알아 주실 임에게 간절한 그리움과 슬픔이 응결된 결정체를 보배처럼 간직했다가 내어드리겠다는 연가(戀歌)이다.

 

· · · 결의 네 연은 가정(假定)과 응답, 음과 대답으로 짜여져 있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있다면, 나는 그에게 보배처럼 간직했던 순결한 마음을 내어드리고 싶다고 화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런 가정과 응답은 세상에 진실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줄 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리움은 더 간절해지고 속에서나마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지만 그것도 헛일이 되고, 그럴수록 안타까움이 그를 더욱 달아오르게 한다.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듯이 보이지 않는 임을 향한 사랑은 타오르지만, 끝내 내 마음 속의 사랑을 아실 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슬픈 결론에 이르고 만다. 이 시는 자문자답의 형태를 통해 기대와 좌절의 갈등 구조를 보여 주는 시라고 하겠다.

 

 

<감상의 길잡이>(2)

김소월 이후 우리말 구사에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김영랑은 북도에 소월, 남도에 영랑이란 말에 어울리게 섬세하고 은은한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었다. 그는 박용철과 함께 주도한 󰡔시문학󰡕으로 KAPF 중심의 비문학적 정치주의를 배격하고, 20년대 중반부터 확산되어 오던 순수시의 서정 세계를 열어 놓았다. 시문학파가 주장한 순수시는 일체의 이념적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윽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시를 뜻한다. 시문학파는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 세계에만 빠져 역사 의식을 상실한 채 시어의 조탁에만 열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 시가 언어나 형식면에서 한 차원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그들의 공적이라 하겠다.

 

교훈적 계몽이나 정치적 목적 의식을 버리고 언어의 기교와 순수한 서정을 중시한 영랑의 시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주제로 하여 여성적 화자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남도 특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섬세한 시어를 구사하여 밝은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결 형식의 네 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나의 마음을 알아 주실 임에게 간절한 그리움과 슬픔이 응결된 결정체를 보배처럼 간직했다가 내어 드리겠다는 내용의 연가이다. 네 연의 짜임을 살펴 보면, ‘내 마음을 아실 이가 계시다면이라는 첫째 연의 가정(假定)’, ‘보배인 듯 그 마음을 드리겠다는 그 가정에 대한 응답을 보여 주는 둘째 연에 이어, ‘꿈에서라도 내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있다하는 셋째 연의 자문(自問)’에 이어 마지막 연에서 그 임은 자기의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라며 추측에 의한 결론을 내려 버린다. 이런 가정과 응답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시적 자아는 꿈에서라도 그런 임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헛일이 되고, 그럴수록 그의 안타까움은 달아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시적 자아는 자신의 의식 세계에 고립되어 더욱 고독해질 뿐이다. 이렇게 사랑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속으로 감내하며 괴로워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은 전통 의식 구조에 비추어 본다면 충분히 헤아릴 수 있지만, 내 마음을 아실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정을 내려 놓은 상태에서, 더구나 폐쇄시킨 자신의 의식 세계는 열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을 알아 주지 못한다며 임을 원망하는 것은 그야말로 지나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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