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됴타하고
by 송화은율내가 됴타하고
내가 하기 좋다고 하여 남한테 싫은 일을 하지 말 것이며,
또 남이 한다고 해도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거든 따라 하지 말라.
우리는 타고난 성품을 따라서(지키어) 저마다 생긴 그대로 지내리라.
요점 정리
작자 : 변계량(1369 ∼1430)
갈래 : 평시조
성격 : 교훈적, 계세적
제재 : 의(義)
주제 : 의(義)에 따라 천성에 따라 살려는 의지
내용 연구
: 촉한의 소열제인 유비 현덕이 임종 전에 자식에게 한 말인
漢昭烈이 將終에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하고 勿以惡小而爲之하라.
한소열이 장종에 칙후주왈 물이선소이불위하고 물이악소이위지하라.
한소열이 장차 마칠 때에(죽으려 할 때에) 뒤의 임금에게 칙서하여 가로되 선이 작다고 하지 아니하지 말고 악이 작다고 하여 하지 말라.
太公이 曰 見善如渴하고 聞惡如聾하라 又曰 善事란 須貪하고 惡事란 莫樂하라
태공이 왈견선여갈하고 문악여롱하라 우왈선사란 수탐하고 악사란 막락하라
태공이 가로되 선함보기를 목마른 것 같이하고 악함 듣기를 귀먹은 것 같이하라. 또 가로되 선한 일이란 모름지기 탐하고 악한 일이란 즐기지 말라. (명심보감 계선편)
이해와 감상
교훈가, 초장(初章)에서는 자기 정도(自己正道)를 가르쳤고, 중장(中章)에서는 입신유의(立身有義)를, 종장(終章)에 가서는 순천(順天), 순명(順命)의 천리(天理)를 가르치고 있다. 중장에서는 도(道)를 벗어나 남의 주견에 맹종하는 세태를 나무랐으며, 종장에서 착한 천성을 지키려는 유학자의 면모가 엿보인다.
심화 자료
변계량(卞季良)
1369(공민왕 18)∼1430(세종 12).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 주(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찬성사 원(元)이고, 아버지는 검교판중추원사(檢校判中樞院事) 옥란(玉鸞)이다. 어머니는 제위보부사(濟危寶副使) 조석(曺碩)의 딸이다. 이색(李穡)·권근(權近)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네 살에 고시의 대구(對句)를 외우고 여섯 살에 글을 지었다. 1382년(우왕 8)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는 생원시에도 합격하였다. 1385년 문과에 급제, 전교주부(典校注簿)·비순위정용랑장(備巡衛精勇郎將) 겸 진덕박사(進德博士)가 되었다.
1392년 조선 건국과 더불어 천우위중령중랑장(千牛衛中領中郎將) 겸 전의감승(典醫監丞)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의학교수관(醫學敎授官)을 거쳐 1396년(태조 4)에는 교서감승(校書監丞)에 지제교(知製敎)를 겸하였다.
태종 초에는 성균관학정(成均館學正), 사제감소감 겸 예문관응교와 직제학을 역임하였다.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 을과 제1인으로 뽑혀 당상관에 오르고 예조우참의(禮曹右參議)가 되었다. 이듬해 세자좌보덕(世子左輔德)이 되고, 그 뒤 예문관제학·춘추관동지사 겸 내섬시판사·경연동지사 등을 거쳐, 1415년 세자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이 되었다.
이 때 가뭄이 심해 상왕이 크게 근심하자, 하늘에 제사하는 것이 예는 아니나 상황이 절박하니 원단(圓壇)에 빌기를 청하였다. 이에 태종이 그에게 제문을 짓게 하고 영의정 유정현(柳廷顯)을 보내 제사드리게 하니 과연 큰비가 내렸다.
그 뒤 태종 말까지 수문전제학·좌부빈객·예문관대제학 겸 성균관대사성·우빈객·예조판서·경연지사·춘추관지사·의정부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419년에는 대부분의 관료들이 반대한 왜구 토벌을 강력히 주장, 이종무(李從茂)를 앞세운 기해동정(己亥東征)을 성공케 하는 데 공헌하였다.
1420년(세종 2) 집현전이 설치된 뒤 그 대제학이 되었고, 1426년에 우군도총제부판사(右軍都摠制府判事)가 되었다. 특히 문장에 뛰어나 거의 20년 간 대제학을 맡아 외교 문서를 작성하였다. 과거 시관으로 지극히 공정을 기해 고려 말의 폐단을 개혁하였다.
그러나 대제학으로서 귀신과 부처를 섬기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여 ‘살기를 탐내고, 죽기를 두려워 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고려 말 조선 초 정도전(鄭道傳)·권근으로 이어지는 관인문학가의 대표적 인물로서 〈화산별곡 華山別曲〉·〈태행태상왕시책문 太行太上王諡冊文〉을 지어 조선 건국을 찬양하였다. 저서로 ≪춘정집 春亭集≫ 3권 5책이 전한다.
≪태조실록≫·≪국조보감 國朝寶鑑≫의 편찬과 ≪고려사≫ 개수(改修)에 참여했고, 기자묘(箕子墓)의 비문과 〈낙천정기 樂天亭記〉·〈헌릉지문 獻陵誌文〉을 찬하였다.
그 외 역대 신하들의 말이나 행실로써 경계가 되고 본받을만한 것을 모아 쓴 ≪정부상규설 政府相規說≫이 있다. ≪청구영언≫에 시조 2수가 전한다. 거창의 병암서원(屛巖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春亭集, 海東雜錄.(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