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나의 하루 - 조그마한 학원(學院)에서 / 박아지

by 송화은율
반응형

나의 하루 - 조그마한 학원(學院)에서 / 박아지

 

 

애기에게만 찬밥을 주고

아내와 마주앉아 멀거니 바라보는 아침!

조반(朝飯)도 못 먹고 교실(敎室)에 들어서며

어느 아이가 수업료(授業料)나 가져왔나?

은근히 눈치만 보는 쓰디 쓴 심사(心思)!

󰡒내일(來日)은 수업료(授業料)를 가져오라󰡓

이 말을 할까 말까? 설레이는 감정(感情)을 아드득 깨물고

묵연(黙然)히 돌아서는 하학시간(下學時間)

 

태연(泰然)히 돌아오는 나의 모양을

안보는 듯 은근히 살피는 아내의 표정(表情)!

󰡒저녁을 어떡하나?󰡓

혼자말같이 나의 주머니를 엿보는 그의 심사(心思)!

나는 또 묵연(黙然)히 돌아 나와

시름 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심화(心火), 우리문화사, 1946>


 

작가 : 박아지(1905-?) 본명 박일(朴一). 함북 명천 출생. 1926년 일본 동경 도요[東洋]대 수학. 1927년 귀국 후 카프에 가담. 같은 해에 경향시 농부의 선물을 발표하면서 등단. 잡지 우리문학 편집에 간여하다가 월북.

사회주의 선전문에 가까운 사회주의 경향의 시를 썼다.

시집 심화(心火)(우리문학사, 1946)가 있음.

 

 

<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는 광복 직후 궁핍하던 시절의 서글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 선생님으로 짐작되는 시인은 쌀이 없어 아침을 굶는다. 그는 학생들의 수업료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모양인데 학생들이 수업료를 내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의 가족이 굶을 지경이니 학생들의 처지도 그보다 나을 까닭이 없었으리라.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업료를 재촉하지 못하고 태연히 집으로 돌아오나 식구들의 저녁 끼니가 막연하다.

 

이 시인은 1946년에 간행된 시집 심화에서 해방을 맞이한 기쁨과 희망을, 밝고 절실하게 표현한 바 있다. 이 작품은 그와 같은 활기에 찬 시대의 이면에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시인은 기아 상태에 이른 가계를 이야기하면서도 처절한 신세타령에 이르지 않고 해학과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는 시인의 천성탓이기도 하려니와, 이 무렵의 겨레가 나라를 되찾은 기쁨으로 정신적 포만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지나친 생각일까. 어려운 시절을 지내며 오늘의 여유를 준비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축복을. [해설: 이희중]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