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by 송화은율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시문학 창간호, 1930.3)
* 돋쳐 : ‘돋아’의 힘줌말. 기본형은 ‘돋치다’
* 도도네 : ‘돋우네’의 부드러운 표현
* 도른도른 : 나직하고 정답게 속삭이는 소리. 또는 그 모양.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김영랑의 시는 주로 ‘내 마음’의 세계를 다룬다. 이 시도 외부 현실과 무관한 고요한 내면 세계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강물’이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흐르고 있다는 표현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자유시이지만 사실은 3음보 가락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성격 : 서정적, 낭만적, 감각적
▶ 경향 : 유미주의적
▶ 운율 : 3음보 율격
▶ 어조 : 여성적 목소리
▶ 표현 : 의성법, 반복법, 상징법
▶ 특징 : ① 세련된 감각어의 사용
② 음악성의 추구. (유음, 비음의 사용. 각운. 음성 상징)
▶ 구성 : 수미 쌍관의 구성
①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1,2행)
② 강물의 아름다운 모습(3,4행)
③ 강물의 위치(5,6행)
④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7,8행)
▶ 제재 : 강물
▶ 주제 : 내 마음 속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
<연구 문제>
1. 이 시의 중심이 되는 심상은 ‘내 마음’이다. 이 ‘내 마음’이 지향하는 세계는 어떤 성격의 것인가? 그 이유를 들어 40자 정도로 설명하라.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내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2. 이 시는 마음을 ‘강물’에 비유하고 있다. ㉠을 고려할 때, 화자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20자 이내로 쓰라.
☞ 마음 속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
3. 다음 <보기>는 윤서도의 「만흥(漫興)」이다. 밑줄 그은 ‘먼 뫼’와 이 시의 ‘강물’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한 문장으로 쓰라.
<보기>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리랴
말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노라
☞ 「만흥」은 산(자연)과 화자가 주객 일체가 되는 경지로 나아가고 있는 반면, 「끝 없는 강물이 흐르네」는 실제의 자연이 아닌, 화자의 주관 안에 존재하는 강일 뿐이다.
< 감상의 길잡이 1 >
우리가 영랑의 시를 읽을 때 어떤 감명을 받는다면, 그것은 주로 그의 시가 지닌 음악성에 연유하는 것이기가 쉽다. 이 말은 그가 시에서 구체적인 체험 내용을 진술하기보다는 그것의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인상과 감흥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선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대상을 향해 열려 있기보다는 그 대상을 ‘내’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 시가 겨냥하고 있는 것도 바로 ‘내 마음’이다.
‘끝없는 강물’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흐르고 있고 ‘가슴엔 듯 눈엔 듯 핏줄엔 듯’ 숨어 있다고 화자는 말한다. ‘숨어’ 있다는 말은 마음이 세상을 향해 열려 있지 아니하고 내면 세계로 잦아든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외부 세계의 갈등을 벗어나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구하고 그 속에서 느끼는 그윽한 평화와 안정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율과도 같이 마음 속에 흐르는 ‘끝없는 강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이를 ‘근원적인 생명 자체’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만큼 모호한 것이 이 마음 속의 강물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그의 시가 지향하는 음악성과 관련하여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가슴’과 ‘핏즐’에 연면(連綿)히 흐르는 민족적 정서나 가락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시는 영랑의 등단작이자 순수시라는 새로운 영역을 펼쳐보인 작품으로 원제목은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이다. 남도 사투리가 부드럽게 순화되어 예술적 미를 형성하고 있으며, 생기가 감도는 가락은 짙은 향토색과 감미로운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 또한 동일 어구를 반복함으로써 음악적 리듬을 부여하는 한편, 단순한 형식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막아 주는 시적 효과를 내고 있으며, 특히 의미상 3음보 율격의 시행을 4음보 시형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시인의 내적 충동과 외적 절제라는 이중성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원제목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시인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동백잎을 보는 순간, 은빛으로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볼 때와 같은 어떤 신비로움을 느낀 게 아닌가 한다. 일반적으로 영랑 시는 밖을 향해 시선이 열려 있는 외부 지향의 시가 아니라 외부 세계의 객관적 대상을 ‘나’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내면 지향의 특징을 갖는다. 그런 탓으로 그의 시는 구체적인 체험 내용을 직접적으로 진술하기보다는 그것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인상과 감흥을 드러내는 특성을 갖게 된다. 이 시도 역시 ‘내 마음’에 포착된 동백잎의 인상과 감흥을 ‘나’ 안에서 즐기고 만족하는 내면 지향의 시로 영랑의 정신 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시인이 동백잎에서 발견한 황홀경은 객관적 실체가 아닌 안식과 평화의 세계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부 세계와의 갈등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구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안식과 평화, ‘끝없는 강물’처럼 아름다운 그것은 다만 그의 ‘가슴엔 듯 눈엔 듯 핏줄엔 듯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에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일제 치하라는 현실 상황에서 영랑이 ‘끝없이’ 추구했던 안식과 평화는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내 마음’에서만 가능했으리라 짐작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자폐증 환자와도 같이 외부 세계로 통하는 모든 문을 안에서 잠가 걸고 자기 내면 속에 침잠하여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며 폭압의 어두운 시대를 가슴 졸이며 견뎌내었던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3 >
이 작품에서 김영랑이 노래하는 `끝없는 강물'이란 어떤 장소에 실제로 있는 강물이 아니다. 그것은 노래하는 이 자신의 마음 속 어딘가에 있는 강물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강물이 지닌 아름다움과 은은함에 관하여 노래한다.
제3, 4행은 그 강물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돋아 오르는 아침 햇빛이 잔잔한 물결 위에 반사되어 수많은 은비늘처럼 반짝인다. 얼마나 신선하고 황홀한 순간의 모습인가.
그러나 현실의 땅 위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 강물은 꼭 마음 속 어디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가슴에나 눈에 혹은, 핏줄 속에 있는 듯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고 꼭 가릴 수 없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강물을 노래하면서 그 스스로도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라고만 말한다.
여기서 다시금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이라는 구절이다. 숨어 있다는 것은 마음이 현실 세계로 펼쳐져 나아가지 아니하고 내면의 세계로 물러나 들어옴을 뜻한다. 즉, 그는 현실 속에서의 갈등을 피하여 자기만이 가진 속마음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들어왔을 때 맛보는 그윽한 평화, 안정감 그리고 혼자만의 기쁨의 표현이 바로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흐르는 강물이다. 강물은 이러한 자기만의 평화와 그윽한 아름다움의 이미지이다. [해설: 김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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