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
by 송화은율김춘수(金春洙, 1922 - )
· 시인. 경남 충무생. 경기중학 졸, 일본대학 예술원 창작과 졸업
· 한국시인협회장(1958), 제7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1959)
· 광복 후 <애가(哀歌)> 발표 후, 첫시집 [구름과 장미](1947) 통해 등단.
· 작품경향변화 : 주지적 서정을 독특한 수법으로 형상화. 릴케의 경향과 유사한 상 징시의 경 향 ⇨ 의미적 시(<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 설명, 의미적 요소 배제
· 시집 [구름과 장미](1947), [늪](1949),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 음](1959) 등.
· ‘인식의 시인’ - 시의 목표는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의 파악임
· 연작시 : <꽃>, <꽃을 위한 서시>, <꽃의 소묘>, <꽃 Ⅰ>, <꽃>
--- 시 <꽃>, <꽃을 위한 서시>, <나의 하느님>, <능금>
<나의 문학실험 2> 시인 김춘수씨
40년대 후반은 나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습작기였다고 할 수 있다. 암중모색의 시기다. 남의 시를 모방하면서 어떻게 쓰면 시가 되는가 하는 것을 나대로 습득해가는 과정이었다.
50년대로 접어들자 나에게 비로소 길이 열리는 듯 했다. 나는 남의 시의 압력으로부터 풀려났다. 그러자 내가 시도하게 된 시는 관념적인 색채를 띠게 되고 몹시도 과작이 되어갔다. 1년에 한 편 정도가 고작이었다.
꽃 연작시에 있어서의 꽃은 단지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꽃에 빗대어 관념(사상이나 철학)을 드러내려고 했다. 나는 그때 실존주의 철학에 경도되어 있었고, 학생때 읽은 릴케의 관념시가 새삼 새로운 매력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60년대로 접어들자 시에 대한 또 한번의 회의와 반성이 왔다. 한 3~4년동안 새로운 연습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무렵 시는 관념으로 굳어지기 전의 어떤 상태가 아닐까 하는 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관념을 의미의 세계라고 한다면 시는 의미로 응고되기 전의 존재 그 자체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인식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시에서 관념을 빼는 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그 기간이 한 3~4년 걸렸다.
시에서 관념, 즉 사상이나 철학을 빼자니 문체가 설명체가 아니고 묘사체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존재의 모습)을 그린다. 흡사 물질시의 그것처럼 된다.묘사라는 것은 결국 이미지만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때의 이미지는 서술적이다. 나는 이미지를 비유적인 것과 서술적인 것으로 구별하게 되었다. 서술적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한 이미지다. 말하자면 이미지가 무엇을 비유하지 않는 이미지다. 무엇을 비유한다고 할 적의 무엇은 사상이나 철학, 즉 관념이 된다. 그러나 서술적 이미지는 그 배후에 관념이 없기 때문에 존재의 모습(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즉 그 이미지는 순수하다.이리하여 나는 이런 따위의 이미지로 된 시를 순수시라고도 하고, 무의미의 시라고도 하게 되었다.
무의미한 관념, 즉 사상이나 철학을 1차적으로는 시에서 빼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미지가 아무리 순수하게, 즉 서술적으로 쓰인다 해도 이미지는 늘 의미, 즉 관념의 그림자를 거느리게 된다. 이리하여 이미지도 없애야 되겠다는 극단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내 무의미 시의 둘쨋번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를 없애고 리듬만이 남게 한다. 흡사 주문과 같은 상태가 빚어진다. 음악을 듣듯 리듬이 빚는 어떤 분위기에 잠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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