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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의 ‘무진 기행’ - 해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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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의 무진 기행’ - 해설

 

작가 : 김승옥(1941 )

김승옥은 1941 12 23일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귀국하여 전남 진도, 광양을 거쳐 순천에서 성장하였다. 48년에 여순반란사건이 발발해 아버지가 사망한다. 52년에 월간 <소년세계>에 동시를 투고하여 게재되었다. 1954년 순천중학교에 입학해 교지편집, 학생회장, 배구선수 등으로 활동했는데 순천고등학교 시절에도 마찬가지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1960년 서울대 문리대 불문학과에 입학해 교내신문 <새세대> 기자로 활동했으며 <서울경제신문>에 연재만화를 아르바이트로 그려 학비를 조달했다. 당시 서울대의 김광규, 김주연, 염무웅, 이청준, 박태순, 김치수, 김 현, 김지하 등과 친교를 맺었다. 재학중인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1965년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많은 소설들을 발표하고 1970년엔 김지하가 구속되자 구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샘터>사에서 근무했다. 1980년 광주사태의 충격으로 절필했다. 현재 세종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960년에 대학에 입학, 4.19세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1962년 단편 <생명연습>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같은 해 김현, 최하림 등과 더불어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하고 이 동인지에 <>, <환상수첩>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학 재학시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환상수첩>(1962), <>(1962),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1963) 등의 단편을 동인지에 발표했다. 이후 <역사(力士)>(1964), <무진기행>(1964), <서울, 1964년 겨울>(1965), <염소는 힘이 세다>(1966), <내가 훔친 여름>(1967) 등의 단편을 1960 -7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10여 년간 작품 발표를 거의 하지 않다가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서울의 달빛 0>을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1979) 등을 간헐적으로 발표했을 뿐 사실상 절필 상태에 들어 갔다. 1980년 동아일보에 <먼지의 방>을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광주사태로 인한 집필 의욕 상실을 이유로 소설 창작을 중단하고, 81 <나는 이제 허무주의자가 아니다>라는 글을 발표하고 기독교에 심취해 전도 활동에 전념하였다.

 

김승옥은 1960년대적인 특징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50년대 작가들이 견지하고 있었던 엄숙주의, 교훈적인 태도, 도덕적 상상력 등을 뿌리째 흔들어 버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것을 동시대의 비평가들은 감수성의 혁명이라 불렀다. 김승옥의 소설은 대체로 개인의 꿈과 낭만을 용인하지 않는 관념체제, 사회조직, 일상성, 질서 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성의 관념체계, 허구화된 제도, 내용 없는 윤리감각이라는 일상적인 질서로부터 일탈하려는 열망, 곧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이 김승옥 소설의 중심적이고 일관된 내용인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김승옥의 초기소설은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이 현실을 압도하는 바, 낭만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환상수첩>, <확인해 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생명 연습> 등의 초기소설은 환각이나 환상을 좇는 삶 혹은 현실을 초월한 삶에 대한 강렬한 동경이 두드러진다.

 

김승옥의 소설은 <무진기행> 이후 현실의 엄정한 법칙성을 인정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여, 그의 후기 소설은 초기의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 대신에 꿈이나 환상을 잃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환멸과 허무의지로 가득찬다. <서울 1964년 겨울>, <야행>, <차나 한잔>, <염소는 힘이 세다>, <1960년대식>, <서울 달빛 0> 등 김승옥의 후기 소설은 산업사회의 한 기호로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상실감을 주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로스적 열정으로 기성의 질서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의도를 담은 <보통여자>, <강변부인> 등에서는 김승옥 소설이 지녔던 문제적인 성격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빛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일상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타락한 윤리와 무책임성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러나 1960년대에만 유효할 수 있다. 7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왜곡된 근대화의 모순, 그리고 이에 대한 응전 방식으로 발화하는 새로운 엄숙주의 앞에서는 무력하게 좌초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조응력, 배경과 인물의 적절한 배치, 소설적 완결성 등 소설의 구성원리면에서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4.19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문학적 언어로 환치시키면서 전후세대 문학의 무기력증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높다.

 

줄거리

 

<1> 무진으로 가는 버스

나는 아내의 권고도 있고, 현실에서 실패를 맛볼 때의 의례적 습관으로, 이번에도 무진에 내려가게 되었다. 짙은 안개는 무진의 명물이었다. 그러나 무진은 나에게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득한 장소일 뿐이며 어둡던 청년 시절을 보낸 그러한 곳이다.

 

<2> 밤에 만난 사람들

순박한 후배 박 선생을 만나서 세무서장이 되어 거들먹거리는 중학교 동창 조가의 집에 밤중에 같이 가게 된다. 거기서 성악 공부를 했다는 하인숙이라는 여선생이 주위의 청에 못 이겨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것을 보고는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을 다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서글픔에 잠기기도 한다. 그것은 곧 나의 젊은 시절 방황하는 모습의 편린(片鱗)이었다고 생각하고 하인숙에게 연민을 느낀다.

 

<3> 바다로 뻗은 방죽

하인숙은 나를 서울로 데려다 줄 구원의 존재로 보고 접근하였고, 무료한 나는 곧 하인숙과 깊은 관계에 빠지지만, 결코 사랑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순간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4>

서울로부터 아내의 전보를 받고는 과거의 의식에서 깨어나게 되었고, 하인숙에게는 이별과 함께, 다시 만날 기약의 편지를 쓰지만 곧 찢어 버리고, 무진을 영원 속에 묻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상경한다. 순간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감상의 길잡이 (1)

 

이 작품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바탕에 깐 인간의 보편적 심성을 뛰어난 감수성으로 잘 그려 낸 작품으로 1960년대 문학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주인공인 는 일상의 틀에 박힌 삶에 싫증을 느끼던 중, 아내의 권유로 서울을 떠나서 무진으로 갔으나 허무를 느끼면서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는, ‘떠남추억의 공간복귀의 기행(紀行) 구조이다.

 

작자의 표현을 빌리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는 되뇌이지만, 이것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이라는 조건으로 인하여 실상은 무진과 그 체험을 부정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특히,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인숙에게 쓴 편지를 떠나기 직전에 찢어 없애 버리는 것은 그러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로 그와 동시에 무진은 또다시 추억의 공간으로 사라지고 는 현실로 회귀한다.

 

감상의 길잡이 (2)

무진 기행 1964 10 󰡔사상계󰡕 139호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김승옥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현실주의적 전통의 일탈이라는 1960년대 소설의 고유한 형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무진 기행에서 무진(霧津)이란 안개 나루란 뜻으로, 안개가 자욱하여 무엇하나 뚜렷한 것이 없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닌 4.19의 좌절에서 오는 허무 의식과 세속적 출세주의를 암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1960년대, 아침이면 짙은 안개로 덮이는 무진이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주인공이 일상의 삶에 대한 부정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는 과정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형상화하고 그렸다. 자기 세계의 확립을 위해 현실에서 끊임없이 탐색하는 모습과, 자아를 상실한 인산의 모습을 풍속의 차원에서 묘사한 이 작품은 두 세계를 한꺼번에 다룸으로써 그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상의 날개속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윤희중은 서른셋의 나이로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다. 첫 결혼에 실패를 한 후, 젊고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을 해서 제약회사의 전무가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어린 시절을 보낸 무진으로 내려간다. 잠시 동안의 휴가인 셈이다. ‘에게 있어 무진의 의미는 각별하다. 무진은 수심이 얕은 바다와 연접해 있어 안개의 고장이며, 그것은 권태와 단조로움 속에 졸음이 오는 죽음의 마을 풍경과 흡사하다. 그 무진은  가 자라온 고향으로 동시에의 어둡던 청년시절의 참담한 경험이 도사린 의식의 공간이다/

 

무진에 온 첫날, 나는 중학교 교사인 후배 박을 만난다. 그는 회사 전무로 승진하게 된 나와 세무서장이 된 동창 조를 출세자로 꼽았다. 조를 방문하였을 때 그 곳에서 동석한 하인숙이란 음악 선생을 소개받았다. 하인숙은 나에게서 풍기는 서울 냄새를 즐기며 나를 유혹한다. 이튿날, 어머니 산소를 다녀오는 길에 방죽 밑에서 자살한 여인의 시체를 보고 이상스럽게 정욕마저 끓어오른다. 약속 시간이 되자 하인숙을 만나 바다로 뻗은 긴 방죽을 걸으며 개구리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급기야 나는 폐병으로 요양했던 바닷가의 옛집에서 그 여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 여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사랑을 고백하고자 한다. 다음날, 나는 급상경을 요구하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갈등을 겪고 나서 서울로 가겠다고 작정한다.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쓰나 곧 찢어버린다. 나는 무진을 떠나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무진 기행 서울무진서울의 귀향 모티프를 통하여 작가의 세계관이 가장 잘 응축되어 있는 작품이다. 출세한 촌놈인 주인공 윤회중이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가치의 중심인 서울의 괴로운 일상을 벗어나(떠남),추억과 옛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만남을 경험한 다음(체험),다시 서울로 귀향한다는 것(회귀)이 작품의 골격을 이룬다.

 

주인공이 갖는 의식이 추이는 서울로 표상되는 일상의 현실적인 공간과 그로부터의 일탈이라는 두 가지의 내면적 갈등이 존재한다. 그의 의식 속에는 언제나 고향으로부터의 탈출, 전쟁의 상처, 고통의 성장 과정, 일상인으로 안주 등이 겹쳐있다. 그는 이와 같이 내면에 겹쳐 있는 장면들을 확인하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진에 귀향한다. 그러나 안개 덮힌 무진은 항상 쓸쓸하고 괴로웠던 청춘의 편린이었으며, 그 가운데 하인숙이란 여인을 만난다. 그 여인 역시 시존의 사회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그녀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존재였다. 그 여인에게서 자신 과거를 되살려내듯 의식을 조작해낸다. 그리하여 그는 서둘러 무진을 떠나 자기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주인공의 귀향은 결코 고양된 자기인식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즉 과거의 부끄러운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생활인으로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 역시 최인훈의 웃음소리처럼 떠남경험복귀의 과정을 통하여 자기 세계를 확립해 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무진 기행 1950년대 전후 문학이 보여준 인생 낙오자들의 자학이라는 무거운 주제 의식에게 벗어나 1960년대적 삶을 일목요연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무의지적이고 수동적인 주인공의 의식이 점차 깨어나 자기 환경과 상황을 뚜렷이 인식하여 그 상황을 극복하려 자세이다. 특히 작가 김승옥이 무진 기행에서 소시민적 개인의 일상성과 함께 참신한 감각적 언어를 구사하여 감수성의 혁명이란 새로움 장을 연 것은 경이로운 수확으로 평가된다.

 

감상의 길잡이 (3)

무진기행에는 뚜렷한 중심적 사건이 없다. 제목에서 보여준 바처럼 일종의 기행문과 같이 주인공이 오랜만의 무진행에서 겪고 보았던 일들 이 시간의 진행에 따라 나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전혀 지루하지 않으며 독자를 한껏 작품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을 품어 낸다. 어떤 점이 독자들을 이 작품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일까. 무엇보다 작가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감수성으로 비추어질 때 사물들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며 우리의 상투화된 인식을 충격하고 각성시킨다. 작품 첫머리에 나오는 안개의 묘사부터 그러하다. 그것은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이라는 이미지로 제시되는데 이는 자연히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는' 성격으로 유도된다.

 

비단 안개만이 아니다. 어둡던 청년 시절의 기억들, 무진 읍내의 풍경 묘사 어머니 산소에 성묘갔다 돌아오는 길에 맞닥뜨린 어떤 술집 작부의 죽음, 하인숙과의 데이트와 섹스 장면 등에서 우리는 작가의 빛나는 감수성에 의해 새롭게 포착되는 사물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새로운 감수성으로 비추어 봄으로써 사물을 새롭게 감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사실 소설적이기보다는 시적인 특성이다. 이 작품도 그런 만큼 시적인 정취로 휩싸여 있다. 그러나 작가의 감수성은 단지 주인공이 맞닥뜨린 사물들을 시적으로 조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 혹은 주인공의 감수성으로 포착된 무진이라는 세계는 분명히 시적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산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무진이란 곳을 어딘지 혐오스러운 곳으로 인식하며, 옛날 무진에서의 생활에 대한 주인공의 추억도 고통을 동반한다. 미칠 것 같아 하는 하인숙이나 술집 작부의 죽음도 숨막힐 것 같은 무진의 분위기를 암시한다. 이처럼 인간다운 삶을 허용하지 않는 공간이 시적인 분위기만으로 그려질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안개, 외롭게 미쳐가는 것, 유행가 술집 여자의 자살, 배반, 무책임' 등이 바로 무진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압축적으로 성격짓는다. 그곳은 또한 세무서장 조와 같은 속물들이 판치는 세상이며, 주인공이나 하인숙같이 좀더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쓸쓸하기 그지없는 곳, 환멸스럽기 짝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무진은 우리가 고향하면 상투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공동체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무진은 공동체적인 분위기가 사라진 곳이다. 그러면서도 그곳은 또한 개개인의 분명한 책임하에서 삶이 이루어지는 서울과는 또 거리가 있다. 서울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어정쩡한 곳, 무진은 바로 그런 곳이다.

 

지방의 소도시라고 할 수 있는 무진의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 외세의 개입과 거듭된 독재정치 아래에서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우리의 불구적인 근대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으로는 공동체적인 유대가 파괴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한 개성의 발현도 억압되는 상태, 무진은 바로 그와 같은 당시 우리 사회 전반의 어정쩡한 모습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가상의 지명인 무진은 한 지역의 명칭임을 넘어서 당시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양상을 담지하는 일종의 보통명사가 된다. 따라서 주인공이 느끼고 작가가 묘사하는 환멸 역시 왜곡된 근대화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무진에서 끊임없이 환멸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진의 분위기로 빠져들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특히 자살한 술집 여자와 하인숙에게서 주인공은 강한 연민과 아울러 자신과의 동일성을 느끼며, 아내에게서 귀경하라는 전보를 받고서도 서울을 뜻하는 그 전보와 무진 사이에서 오래 갈등하다가 마지막으로 한번 무진을 긍정해보자고 타협을 한다.

 

사실 무진을 그처럼 숨막히는 곳으로 만드는, 그래서 절망과 환멸의 분위기로 만드는 주범은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무진에 어울리는 사람' 이라고 평가하는 조와 같은 속물들인데, 속물들에게 의해 지배되는 것은 서울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주인공 역시 그러한 철저한 이익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주인공을 끝내 하인숙과 무진으로부터 떼어놓는 것도 결국은 서울의 논리와 힘일 것이다. 속물들에 의해 근대화가 주도됨으로써 좀더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절망과 환멸을 선사하는 주범. 그것은 사실 서울에서 횡행하는 이익추구의 논리가 아닐까 주인공이 무진에서 동일성을 갖는 대상인 자살한 술집 작부나 하인숙은 그러한 속물들에 의해 지배되는 이익추구의 세계에 의해 좌절된 인간상들인 셈이며, 주인공은 이들에게 연민과 동일성을 느낌으로써 환멸'이라는 인간적인 가치를 잠시나마 되찾은 것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서울로 되돌아가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고 주인공 역시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환멸을 자아내는' 비인간적인 속물의 세계(속물들은 그러나 환멸을 느낄 리가 없다.) 와 그 세계로부터 좌절하여 환멸을 느끼는' 인간적인 세계 사이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으며, 후자의 패배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그림으로써 환멸의 분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안개처럼 부우옇고 분명한 책임도 없이 삶이 이루어지며 그래서 미칠 것 같은 분위기를 자마내는 ()근대적'인 무진이지만, 이곳이 한정된 책임 속에서 살아가는 분명한 도시 근대'의 서울보다는 아직 인간적인 사람을 머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지만 우리의 주인공이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이미 처해졌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가 될 것이다.

- 감수성의 역명을 통해 포착된 환멸의 세계 - 신승엽 (문학평론가. 아주대 강사)

 

핵심 정리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배경 : 1960년대, 안개로 유명한 무진 마을.(공간적 배경은 어린 시절의 허무를 물씬 풍기는 무진과 현실적 타락의 공간인 서울이며, 시간적 배경은 현재의 시간에서 출발하여 과거를 회상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일시적 시간이다.)

분위기 : 서정적, 몽환적

작품의 기조 : 자유주의, 개인주의

서사 구조 : 떠남추억의 공간복귀(순환 구조)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주제 : 일상적 삶의 통한 새로운 삶의 추구.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

인물

(윤희중) ­제약 회사 전무로 승진할 예정이며, 이 작품의 주인공. 허무의 심연에서 벗어나고자 하인숙이라는 여인과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지만 결국 자신의 부끄러운 삶을 부정하고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정적 인물.

하인숙 ­‘의 고향인 무진 중학교 음악 선생. 윤희중을 만나 현실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무진을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현실의 타락한 삶을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정적 인물.

 ­‘ 의 시골 학교 동창생이며, 세무서장. 속물적 인간의 전형

 - ‘ 의 중학 후배. 교사. 하인숙을 사랑하는 순정적 인물. 등장 인물 중 가장 순수한 인물로서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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