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논술31 - 한국 건축의 미학 - 문화․예술
by 송화은율한국 건축의 미학 - 문화․예술
※ 아래 글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우리는 ‘유교’ 하면 보통 규율이나 법도를 떠올린다. 실제로 유교는 유달리 규범이나 예를 강조한 학문이다. 그런 까닭에 유교적인 건축들은 확고한 질서 의식 속에서 건축되었다. 여기서 유교적 건축이라 함은 궁궐, 서원, 향교, 사당 등을 말한다. 특히, 서원은 성리학적 고급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조선 중기에 주로 설립되었던 조선조 최고의 학당이므로 엄격한 유교적 질서에 따라 건축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서원의 전체적 인상을 살펴보면 답답할 정도로 엄숙하고 경건하다. 서원은 밖에서 볼 때 볼품이 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밖에서 보는 건축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원은 긴장을 놓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는 곳이기에 마당 안에 서 있어도 답답하다. 그런데 답답하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강당 가운데 위치한 원장 자리다. 여기서 밖을 보면 그제야 시야가 확 트이고 숨통이 열린다. 방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이 곳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즉, 서원과 같은 유교식 건축은 밖에서 보기에 장엄한 건축이 아니라 안에서 밖이 유장하게 보이는 건축이다. 성리학에서는 외부 세계보다는 사단이 있는 인간의 내면을 중시하듯 건물도 안이 중요하고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을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건축 원리에 의거해 봐도 서원은 법도가 있다. 대칭 구조라든가, 전학후묘의 형식 등이 그것이다. 대칭 구도가 엄격히 지켜진 곳은 서원 기능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사당과 강당이다. 전학후묘란 전면에 강학 구역을 두고 후면에 제향 구역을 두는 배치 형식을 말하는데, 도동 서원은 이 원리가 잘 지켜져 있다. 도동 서원의 경우 사당과 강당의 축이 일치하고 대지의 형태도 사선이 없어 반듯반듯하다. 이 건축물에 사용된 것은 남성적인 직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병산 서원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강당과 사당은 축을 중심으로 일치하는 형태가 아니라 비스듬한데, 서원 전체의 모습도 그러하다. 도동 서원이 장방형의 담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반해, 병산 서원은 정확한 사각형 꼴이 아니라 사선으로 된 부분이 더 많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인들의 조형 의식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도동 서원조차도 유교적인 예법만 가지고 전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강당으로 향해져 있는 도동 서원의 돌길은 거칠고 투박하기 짝이 없다. 자연석을 주춧돌로 쓴 사찰 건물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그 투박성은 여전히 돋보인다. 이를 통해 사람의 손으로 다듬은 인위적인 것을 꺼리는 한국인의 성정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이 돌들은 정문에서 강당 밑까지 계속해서 깐 것이 아니라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 강당 밑에 닿게 하였다. 규범에 따랐다면 처음부터 깔거나 아니면 아예 깔지 않거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돌길이 끝나는 부분에 용머리를 하나 박아 놓아 익살을 떨었다. 근엄한 유교의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도동 서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용머리처럼 해학적으로 보이는 돌조각들이 구석구석에 많이 발견된다. 이런 작품들은 물론 장인들이 만든 것이지, 선비들의 미의식을 반영한 것은 아니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선비들의 미의식을 수용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이 수용 못 하는 것을 장인들이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사단(四端) :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씨. <맹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을 이른다.
1> 위 글을 바탕으로 건축물에 반영된 한국인의 조형 의식에 대해 5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2> 마지막 단락을 통해 글쓴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시오.
회화와 재현 - 문화․예술
※ 아래 글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회화에 대한 아주 오래 된 오해 중의 하나는 그것이 어떤 대상이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물과 똑같이 그린 그림에 감탄하고,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그림에 친밀감을 느낀다. 그러나 전자의 역할은 사진이 대신하게 되었고, 후자의 역할은 이전부터 삽화가 해 오던 것이었다. 대상을 모사해 내는 것도, 이야기를 보여 주는 것도 아니라면, 대체 회화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회화의 본질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클레는 예술가를 나무에 비유한다. 땅 밑을 흐르는 어떤 거대한 흐름을 뿌리로 빨아들여 가지를 키우는 나무처럼, 거대한 흐름의 힘에 자극된 예술가는 그 흐름을 빨아들여 그 속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주조한다. 즉, 뿌리와 나뭇가지를 관통하는 수액과도 같이 예술 작품에는 예술가에 의해 전달된 다양한 흐름들이 관류하고 있다. 그리고 예술가의 신체를 관통한 그 흐름과 힘은 예술가에 의해 변이된 이미지로 생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최종적 완성품으로서의 작품보다는 그 작품을 형성하는 힘이며, 그림으로 표출되는 것은 어떤 이미지이기 이전에 그리는 행위 자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예술 작품은 생성이다. 회화는 가시적인 것의 재생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작업이다. 즉,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회화가 어떤 진실을 추구한다면,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화가는 결코 자신이 본 대상을 그 대상에 대한 관념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단순성과 명확성, 세심함으로 대상 자체를 응시한다. 그 순간 존재하는 것들은 거인과도 같은 모습으로 그의 눈에 포착되며, 그의 손에 주조된다. 즉, 화가는 대상의 본질을 자기 식의 이미지로 구체화하여 보여 준다는 것이다.
어떤 그림 앞에 섰을 때 돌연 몸이 휘청하는 순간들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관통하는 어떤 에너지, 즉 전율을 감지한다. 마치 어둠 속에 있다가 강한 햇빛을 보게 될 때의 ‘눈멂’과도 같은 이런 마비의 순간에, 우리의 감각은 이전과 다르게 배치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그림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성이며 사건이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를 눈멀게 하고 우리의 굳은 감각을 동요시키는 그런 힘들을 만난다는 의미이지, ‘해바라기’라는 관념의 구현물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블랑쇼에 의하면 모든 예술은 작품이라는 유일무이한 사건 속에 그 기초적인 원소의 어둠을 우리들 틈에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현’은 가장 진실되게 사물을 보존하는 방법인 것 같지만, 실은 사물로부터 사물의 존재성을 거세시키는 가장 잔혹한 방법이다. 우리의 관념대로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무슨 감응이 일어나겠는가? 예술가의 눈과 손에 의해 변형되어 존재하는 것들만이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부여한다. 다음과 같은 고흐의 말은 이를 정확히 드러내 준다. “대상을 변형하고 재구성하고 전환해서 그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 ‘부정확성’을 배우고 싶다. 그걸 거짓말이라 부르겠다면, 그래도 좋다. 그러나 그 거짓말은 있는 그대로의 융통성 없는 진실보다 더 ‘진실한 거짓말’이다.”
1> 이 글의 주제문을 찾아 쓰시오.
2> 위 글을 읽고 사진이나 삽화와 구별되는 회화만의 특징과 본질이 무엇인지 5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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