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학 탐구
by 송화은율[신문학사 탐구] 제1부 근대문학
(전략)
주 : 구인회(1933)와 삼사문학(1934)을 일단 떠올릴 수 있지요. 김기림, 이태준, 박태원, 정지용, 김유정, 이상 등이 만든 <구인회>란 통칭 순문학파라 부르지 않습니까. 후퇴하는 카프문학에 뒷발을 걸며 등장한 세력권이라고나 할까. 이시우 한천등 소장파들의 모임이 <삼사문학>인데, 이상도 여기에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준 것은 제국의 수도 도쿄의 문화풍토였지요. '시와 시론'지를 비롯, '세르팡' 등의 잡지들이 제1차대전 이후 세계(서양)의 사상 및 예술의 신사조를 아낌없이 소개해 주고 있었으니까.
객 : 그러한 사조들과 관련시켜 최재서 김기림 박태원을 조명해 본다면? 이들이 이른바 모더니즘의 기틀을 놓은 챔피언들 아닙니까.
주 : '울창한 삼림 속을 진종일 헤매이고 끝끝내 하나의 인상을 훔쳐오지 못한 환각의 인간, 무수한 표정의 말뚝이 공동묘지처럼 똑같이 보이기만한 인간'('동해'의 일절)이 다름 아닌 작가 이상임을 알아차린 최초의 평론가가 <최재서>였지요. 식민지에 세워진 경성제대(1926) 영문학과에서 낭만주의의 상상력을 공부한 그가 당대의 영국평단에 주목하고, 이를 철저히 소개하기 시작했지요.
객 : 카프문학이 퇴조하는 틈을 타서 등장한 주지주의 소개. 더 정확하게는 T. E. 흄의 '불연속적 세계관'(실재론)에 근거한 T. S. 엘리어트, H. 리드, I. A. 리처즈등의 이론들.
주 : 연속적 세계관에 기초를 둔 사상이 <낭만주의 및 휴머니즘>이라면, 그리고 르네상스 이래 인류사가 이런 사상으로 밀어 붙였고, 그 결과 세계가 혼돈으로 빠져 들었다면, 이를 구출할 20세기스런 사상은 무엇인가. 흄의 처방이 단순하나 그럴 법했지요. 불연속의 세계관이 그것. 인간은 유한하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 질서가 요망된다는 것. 사조상 <고전주의>. 시에서의 <이미지즘>, 비평상의 <주지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생명적 예술에서 기하학적 예술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인간스러움을 깡그리 제거한 예술, 그러니까 추상적이고, 분명하고, 메마르고, 당초무늬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 객관적 상관물이어야 한다는 것.
객 : 공감각을 내세운 김광균의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외인촌')에서 보듯, 선명한 이미지의 시겠군요. 새롭기는 하나 너무 단세포적이라 할 수 없겠는가. 대체 무엇에 대한 새로움인가.
주 : 상징파 시의 애매몽롱함에 대한 비판이었기에 새롭지요. 프랑스 상징시에 조예깊은 엘리어트가 '황무지'를 쓴 것은 이 점에서 우리의 경우와 다르겠지요.
객 : 김기림의 '기상도'(1936)와 '태양의 풍속'(1939) 등을 '황무지'와 견주어 논하는 연구자도 많은데, 어떻습니까?
주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럴만한 근거가 충분하지요. 김기림이 주지주의 이론에 썩 밝았으며 그 한계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니까. 1935년에 이미 그는 시의 발전사를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1) 사물을 통하여 시인의 마음을 노래하기
(2) 사물에 대하여(부딪쳐서) 시인의 마음을 노래하기
(3) 사물의 인상
(4) 시 자체의 구성을 위한 사물의 재구성.
객 : (1) 표현주의(낭만적 상징파 포함), (2) 인상주의(이미지즘), (3) 초현실주의, (4) 객관주의에 각각 대응되겠는데, 문제는 (4)에 있겠군요.
주 : 김기림은 물론 (4)의 경지에 나아간 것은 아니지요. 장차 나아가야 될 시의 혁명단계라고나 할까.
객 : 그러고 보니, 모더니즘이란 나올 수 있는 가능성 대부분을 탐색해 보인 시험장이었겠는데요. 자본주의의 발달과 연계된 현상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주 : 자본주의 발달과 직결된 것이 도시화라 볼 수 없겠는가. 서울의 도시화가 대대적으로 진행된 것이 1924년. 조선의 총인구는, 1925년 현재 1,952만2,945명(조선인 1,902만, 일본인 44만3,402, 외국인 5만9,513명). 1930년 현재 서울의 인구는 39만4,240(부산 14만6,098, 평양 14만703명). 다방, 카페가 생기고 극장에선 할리우드 배우들이 판을 치며, 마침내 백화점이 현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모단(모단)걸이 거리를 누비게 되고. 폐병장이 이상이 다방과 카페를 자영하기도 했고....
객 : 소설가 구보씨(박태원)가 대학노트를 끼고 종로에서 서울역과 화신 앞을 걸으며 다방도 들르고 카페에서 목 축이기를 일삼을 수 있었겠군요. 그렇지만 과연 그 구보씨는 에펠탑과 백화점 '오 봉마르세'와 유리천장의 아케이드에 몰려드는 군상들, 샹젤리제거리 가득 돌진하는 군중들의 발견에 놀란 우수의 시인 보들레르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을까.
주 : 날카로운 질문이군요. 모더니즘이 지닌 천박성(낙관주의)이랄까 방향성 부재라고나 할까. 탈이데올로기적 성격이라고나 할까.
객 : 이상은 죽었고, 최재서는 신체제문학으로 달려갔고, 박태원은 중국고전 수호지 번역으로 나아갔던 것. 가치중립성이랄까. 그러고 보니 김기림은 예외적으로 보이는데요.
주 : 모더니즘의 역사적 종언을 1939년에 이미 발견한 장본인이었으니까. 철저하지는 못했으나 그만이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모더니즘을 보았던 까닭.
객 : 있지도 않은 근대를 창출해 내고, 그것을 이번엔 초극하고자 하다가 날개는커녕 두더지가 되어, 멜론(레몬)을 달라며 외치다 죽은 이상문학이 지금도 빛나는 까닭도 이제 조금 알만 합니다. (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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