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여행기 / 채만식
by 송화은율1938년 어느 여름날, 채만식은 <군산 여행기>를 써달라는 잡지사의 청탁을 받았다. <錦江滄浪 굽이치는 群山港의 今日>이라는 제목으로 들려주는 군산이야기.
튜리스트․뷰로의 엑스트라가 된 요량으로 경성서 군산항까지 주말소 여행의 안내를 맡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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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일 토요.
밤 열한 시 십 분 경성발 목포행 직통 열차를 잡아탄다. 직통 열차라니 이름은 좋아도 실상 부산행 제 1열차의 꽁무니에 매달려서 간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섭섭한 것은 그러나 열차뿐만이 아니겠으니 미리서 몇 가지 다져두어야 하겠다.
첫째, 이 안내자가 군산 부근의 태생이요, 오랫동안 군산에다가 집안의 한 살림을 배포했었고, 그래 조석 왕래에 고향이나 별반 다름이 없어서 인정 풍속이며 바닥을 소상하게 알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가장 가까운 인상으로 사 오년 전의 기억이라 그 동안 많이 변했을 시방의 군산과는 더러 외창이 날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다음 항구라고 하면 우선 무엇보다도 타국 냄새가 떠도는 음침한 거리와 원양 항로로부터 하룻밤 물에 오른 마도로스들의 거친 육체와 그네들을 맞는 ‘그늘’의 여인들과 야릇한 국제 사투리와, 그리고 술 도박 스파이 자살 싸움 실사, 이러한 것들이 함께 뒤섞여 거기서부터 빚어지는 인간 미추의 가지가지 파노라마, 이것이라야만 항구의 정조로는 상승일 것이다. 가령 마르세이유라던가 나포리라던가 상해라던가 샌프란시스코라던가 바로 저기 요꼬하마라던가 하는 국제항구처럼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 군산항은 그렇듯 타국 정조가 나지 않는 곳이요, 그런 원양 항해의 항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애틋한 로맨스나 드릴에 찬 기화(奇話) 같은 것이 발효될 바닥이 아닌 곳이다. 호떡에 탕수육 잡채에 ‘비단’(단 인조견)을 도맡아 파는 대륙의 누런 친구들이 아니면 ‘요후꾸 야스꾸 으루 아리마스’의 터어키 유민이나 ‘경건’한 약간의 성조기 별동대 등이 도통 눈에 뜨이는 외국인이다.
기선이며 어선들이 빽빽이 들어닿아 부두가 잡담하고 구슬픈 육선의 기저도 울리고 하기는 해도, 보면은 선부들이라야 다 같은 조선사람으로 된 뱃사공과 어부들의 천지요, 간혹 대판(大阪) 등지나 왕복하는 화물선의 마라도스가 있어도 그분들은 점잖게 신사행세를 한다.
하고, 그밖에는 대구나 광주나 함흥이나 그런 내륙의 조그마한 도시와 다름없는 시가지가 있을 뿐, 하니 필경 군산항은 항구는 항구라도 항구다운 숨은 풍취는 없고 오히려 규모 큰 포구라고 하는 게 적절할는지 모른다.
미상불 포구로 여기고서 가보기로 한다면 아닌게 아니라 더운 여름의 하루를 소일하기에 그다지 무료친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근대적인 국제 항구의 그놈 괴상스런 정취를 맛보자는 심사이거든 시방이라도 몸을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 한 이 차로부터 얼른 뛰어낼 다른 항구로 가는 일행에 참예함이 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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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사이에 대전은 몰랐고, 차창으로 날이 휘엿이 밝을 무렵이면 벌써 강경 함열 황등-황등 장터로 유명하던 황등을 언뜻 지나 이리에.... 이리에서 비로소 군산선으로 갈아 탄다. 차를 갈아 타면 꾸역꾸역 올라오는 촌양반들이, ‘위지왈 경까락’(京語)는 씻은 듯이 없어지고, 이 둘레의 알짜 사투리 판이다.
「짐생원(金生員) 어지 개겨라우?」
「어-이 나 군산 조깨 댕기러 가네, 자네두 군산 가녕가?」
이 편으로 여인네들을 보라. 머리가 삼십 이상의 중년 여인이면 쪽이 아니고 언뜻 평야머리 비스하게 앞으로 따아 늘였다. 그리고 그 말은 더욱 알아듣기 어렵다.
「아이고매! 이게 누구대여! 쇠똥이네 아지미 아니대여?」
「얼레에! 꼬망네네 어매 참 오래감만의 보것네.」
「그리서 시방 어지럴 가니라구?」
「나! 나넌 군창(群山)가서 살지라우....」
「으으응! 그리여잉? 그런종언 또 몰랐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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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으로 기름진 만성리 벌을 바라보면서 조그만씩한 정차장을 네 개를 지나 군산역에 내리면 일곱 시 팔 분이다. 바로 여관에 들어, 아침 세수와 조반을 마친 후 자동차를 세내 타고 대접삼아서 우선 시내를 한바탕 돈다. 촌양반들처럼 왜 시내 일주냐고 하겠지만 그러니까 대접상으로 하는 체만 한다는 것이다.
자아... 이 길이 요새 새로 생긴 소화통. 여기가 동녕 고개라는 전주통. 저기 들믓들믓한 집들이 경성에 본점을 둔 각 은행의 지점들. 여기가 집은 이렇게 케케묵었어도, 충남과 전북 일대의 허욕난 잔 부자들이 선산 뒤꼭지까지 붙어먹은 미두장(米豆場). 저것들이 모두 그 중매점. 저 산이 월명산. 여기 월명산 밑으로 바둑판 같이 가지런한 구역이 양반들의 주택지. 그렇지만 한 편으로 유랑이 무더기져서 박혀있는 것은 신통치 못하고. 여기가 공설 운동장, 그리고 저 산이 지금 우리가 올라갈 공원. 공원 밑에서 자동차를 내린다.
하기야 이대로 저 터널을 빠져나가 강안(江岸)을 달리면서 조선 제일이라는 불이농촌(內地人이민부락)도 구경하고 은적사도 들러보고 또 웬만하면 명사십리 몇 로기 안 되나마 해당화도 잠깐 보고 했으면 좋겠지만, 오늘 하루의 행정인 걸, 거기까지는 시간이 없겠으니 섭섭한대로 그만둔다.
칙칙한 솔과 약간의 잡목이 섞여 아담스럽게 우거진 야트막한 산이 강안에 우뚝 멈춰선 게 이 공원이다. 송림 사이로 닦아 놓는 주회 도로를 천천히 애둘러 꼭대기에 발을 올려 놓자, 시야가 확 퍼지면서 뱃속까지 시원한 바람이 아낌없이 몰려 온다. 이 바람이면 간밤에 불편한 차간에서 흘리던 땀과 또 그동안 시달리던 서울의 더위를 넉넉 씻고도 남을 것이다.
남원 광한루에 올라간 이몽룡이 아니라도 해망정으로 다가서서 두루두루 살피겠다. 눈 아래로는 범범한 금강이 발밑을 씻으면서 자취 없이 흐른다. 사주(沙洲)에 갈매기가 조는지 몰라도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물은 탁하나 하구란 어디고 일반, 탄해야 쓸데 없고.
돗단배에 노젓는 배에 발동기선에 모두 강상(江上)을 바쁘게 오고가는 강 건너로 눈을 들면 풍경은 일변하여 충청도의 산과 들이 가까운 곳은 지도의 모형같이 분명하고 먼 곳은 그림같이 암암하다. 조금 왼쪽으로 강안 바로 앞에 들어 앉았는 시가지가 신흥의 장항. 경남 철도의 종점이요, 방금 저 뒷산에서 연기를 뿜는 대연돌이 황금을 낳는 제련소다.
이 장항이 번창해감에 따라 군산이 그 반비례로 쇠잔해 진다던가? 그러거나 말거나 하룻길의 바쁜 나그네가 알 바 아니니 막설하고. 왼편으로 강이 훨씬 퍼진 하구는 전망산이 가리어 황해는 보이지 않는다. 바른편으로 올려다보면 강줄기가 아득하니 멀어가다가 역시 산에 가리어 산 뒤에 숨는다. 그대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의 옛꿈이 잦아진 부여와 그 백마강인 것은 설명할 것도 없다. 바람이 상쾌하고 조망이 또한 그럴 법하니 앉은 자리에서 맥주라도 몇 병 깨뜨림직하다. 그러나 아직 아침이요 또 앞으로 운치있는 자리가 있겠으니 섭섭하지만 그대로 공원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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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선창이다. 공원 밑에서부터 저편 ‘스래’ 앞까지 뻗쳤으니 오 리가 넘는다. 그리고 이 가운데 ‘뜬 선창’(부잔교)이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명물이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여 착선(着船)이 불편해서 그것을 막느라고 물이 밀리면 떠오르고 물이 켜면 가라앉고 하도록 해 논 것이 뜬 선창이다. 헌데 그 용재(用材)가 철이요 건설이 근대 공업의 첨단을 자랑하는 것이어서 한 개의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체구가 커다란 기선은 강심에 가서 꿈쩍 않고 드러누워 크레인만 들었다 놓았다 짐을 삼키고 있다. 안벽으로는 수면이 안 보이게 목선들이야 발동선들이야 쌈판이야 거룻배야 꽉 들어찼다.
짐을 푸는 배, 짐을 싣는 배, 사공들의 고함을 치는 소리, 흥정꾼의 지껄이는 소리, 똑딱선의 통통거리는 쇠, 장사들의 외치는 소리, 게다가 등 뒤에서는 조차(操車)질을 하느라고 기관차까지 덩달아 쿵쿵 소리를 질러 아찔하게 정신이 없다.
저기서는 배로부터 생선을 푼다. 철이 지났다지만 준치의 은린(銀鱗)이 아침 햇볕에 싱싱하게 번뜩인다. 훌훌 뛰는 살찐 도미. 순검의 칼같은 칼치의 미끈하니 긴 맵시. 그리고 이름 모를 뭇 생선들.... 모두 구미가 당긴다. 그러나 오후로 미루고서, 밀 세 얻어 둔 발동선에 올라 하구로 내려간다. 사람들 가득가득 실은 똑딱선이 여러 배가 하구로 향해 나가고 있다. 옳거니! 오늘이 일요일, 저 밖에 있는 비응도 해수욕장으로 나가는 패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시간을 빌어서 잠깐 가보기로 하고 우선은 ‘장암’ 앞에다가 배를 세운다.
장항이 대처(大處)로 되기 전에는 이곳을 통틀어 ‘장암’이라고 불렀는데 역시 장황의 와(訛)이겠다. ‘장암’은 굴로 이름이 난 곳이다. 맛도 좋거니와 굴 한 개가 어찌도 큰지 한 잎에 넣고 먹기엔 넘치는 놈도 있다. 데리고 온 잠수부가 잠수질을 시작한다. 알몸에 전집 하나만 차고 삼태기를 앞가슴에 걸고 장갑(?)을 끼고, 차림새는 이것뿐, 물로 풍덩실 땅재주 넘듯 가라앉는다. 일분, 이분, 삼분, 이윽고 삼태기로 반이나 넘게 굴을 담아가지고 올라온다. 그놈을 일번 까고 일변 바닷물에 씻고 해서 우리의 술안주로 내놓는다. 마늘씨를 싸서든지 초고추장을 찍어서든지, 또 술은 늘 쏘는 소주든지 시원한 맥주든지, 제가끔 식성대로 한 잔 마시고 굴로 안주를 하고, 이 맛은 아마도 루이 십사세의 궁중 요리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몇 차례의 잠수질로 따올린 생굴을 안주삼아 주안을 배푼 체로 배를 죽도(竹島)로 달린다. 철은 좀 지났어도 명물이니 죽도에서 오징어를 낚는다. 배를 거기 어디 멈추고 배에서 그대로 낚시줄인데 낚시질이야 또 한 별것이 아니요 여느 철사 끝에다가 중새우를 꿰어 바다속으로 드리운다. 낚시가 들어가기 무섭게 줄이 흔들린다. 사알살 잡아들인다. 보인다. 뜰그물을 밑으로 넣어서 담방 떠올린다. 오징어다. 그야말로 그물 안에 든 고기다. 뼈를 뽑고 먹주머니를 흝어버린 후에 별다른 요리법이 업이 없고 수웅숭 썰어 용자표 간장에다가가 찍어서 그대로 술안주다. 달고 고솝고, 그리고 싱싱하고 먼저 ‘장암’서 딴 굴의 보드랍고 향긋한 맛과 한가지로 정히 쌍벽이다. 안주가 소박하되 천하별미겠다. 술이 넉넉하겠다, 바닥 또한 시원하겠다, 그야말로 간을 떠난 주안을 즐기면서 배를 비응도의 해수욕장으로!
황해라고는 하지만 바다에 비해서 물이 누르단 말이지 결단코 탁한 바다가 아니다. 하구가 멀수록 바다는 끝없이 오고 술이 또한 거나한 참에 목적한 비응도에 당도한다. 조그마나 고도(孤島)다. 허나 군산으로부터 뱃길이 소원한 게 흠이지, 해수욕장으로서 그리 어설프진 않는 곳이다. 섬 언덕으로 천막이 펄럭거리고 수면에는 콩나물 대가리 같은 사람의 머리들. 누구 없이 모두들 희희락락 즐거운 풍경이다. 사장은 알록다록 비치 파라솔에 은어같이 살진 몸집 유방의 소유자들. 여인들은 그런가 하면, 검게 탄 늠름한 육체들이 물속에서 모래 위에서 뛰놀고 있다. 이 철없는 벌거숭이 떼 속에 섞여 한 시간쯤 같이 놀다가 오후 세시에 다시 뱃길을 재촉한다. 배의 속력과 호수의 컨디션이 좋아 여섯 시 안에 낙조를 뒤로 바라보면서 군산항에 돌아와 닿는다. 아직 회정까지에는 사오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에 할일이 긴히 있다.
선창에서 아까 아침에 침을 삼키던 도미와 준치와 칼치 등을 흥정한다. 선창에서 살 수가 없으면 생선 곳간으로 간다. 생선 곳간에는 방금 풀풀 뛰는 도미 민어 준치 칼치 농어, 그밖에 무엇무엇 산같이 쌓여 있다.
옛 시인은 유지에 옥린을 꿰어 들고 행화촌으로 주모를 찾아 갔다거니와 우리는 생선을 사서 들고 이 바다 친구들을 앞장세워 개복동 등지의 ‘미인’의 문을 두드린다. 서울의 ‘미인’집에서는 이런 고풍의 활량을 반겨하지 않지만 이 곳는 크게 환영한다.
쑥갓을 고기섞어 다져넣고 찐 도미찜에 그리 많은 가시를 말끔하니 뽑고 회를 친 준치회에 민어 구이에 얼큰한 칼치국.... 이 안주를 중심으로 소주가 되었든 맥주가 되었든 거기다가 다시 남방 본바닥의 산타령까지 들어가면서, 한 잔 또 한 잔 기울이는 동안 아깝게도 밤은 간다.
다정하여 이 밤을 이곳에 처지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나 그 놈을 떨치고 일어서는 것도 또한 정미없지 않다. 밤 열 시 삼십 오 분 군산발 최종 열차를 잡아타고 이리에서 경목선으로 갈아타면 잠이 든 동안 이튿날 아침 일곱 시에 무사히 경성역에 내린다. 집으로 다 각기 돌아가서 세수와 조반을 마치고 출근하기 꼭 알맞은 시간이다. 이것으로 삼십여 시간 맡아보던 까이더는 퇴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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