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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의 귀신 신호 / 방정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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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中[공중] 鬼神[귀신] 信號[신호]

 달아나는 급행 열차 앞에 

 

이십 년 전 실지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북아메리카 캐나다에 있는 캐나다 태평양 철도 회사의 밴쿠버 정거장에서

여러 100명의 남녀 손님을 태운 기차가 이제(이 쪽 태평양 가를 떠나) 여러

날 두고 달음질하여, 저 쪽 대서양 가까이 먼 길을 다녀오려고 모든 준비를

마치었습니다.

몇천 리, 만여 리를 떠나는 손님들과 또 그를 작별하는 손님들이 기차와

기차 밖에 가득 서서 와글와글 떠들고 역장과 역부 들은 자주 시계를 꺼내

보고 섰고, 몇만 리 먼 길을 갔다 오려는 기관차는 연기만 토하면서 떠날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백 명 손님과 또 수없이 많은 물건 짐과 여러 채의 수레를

끌고 여러 날 걸리는 먼 길을 갔다 올 젊은 기관수 앤더슨은 시간이 닥쳐

오건마는 아직도 자기 집 방문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없고, 아주머니나 누이도 없고, 아내도 동생도 없는 몸이 식구라

고는 다만 한 분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셋방살이 가난한 살림을 하는 터

에 늙은 아버지 병환이 위독하여 암만하여도 여러 날 걸릴 길을 떠날 수 없

어서 조 비비듯하는 마음으로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에에,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못 가겠다고 회사에 통지하리라!”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혼자 중얼거릴 때 잠을 이루지 못

하는 아버지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이 애야, 네가 오늘 기차를 가지고 떠날 날인데 왜 가지않고 있느냐?”

합니다.

아버님 병환이 이렇게 위중하시니 어떻게 떠날 수가 있습니까? 안 가기

로 작정했습니다.”

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말씀이,

이 애야,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그렇게 너의 직무에 불충실하여서야

쓰겠느냐? 너 한 사람이 안 가면 수백 명 손님이 갈 곳을 못 가고 낭패가

대단할 것 아니냐? 나는 나의 병 때문에 네가 세상에 충실치 못한 사람이라

듣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내 병은 아무 염려 없으니 어서 시간 늦기 전에 가

거라.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마!”

하고, 간절하게 말씀하는 품이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앤더슨은

 

억지로 일어나 옆에 셋방 마나님께 아버님의 병 간호를 부탁해 두고 모자를

들고 서서,

아버지,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오냐, 내 병은 조금도 염려 말고 잘 다녀 오너라. 내가 너 없는 새, 

을 리도 없지만 만일 내가 불행히 죽더라도 내 정신은 네 옆을 떠나지 않고

너의 일을 도와 줄 것이다.”

하는 말씀을 앤더슨은 몹시 불길한 말씀으로 들어(왜 저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고) 가슴이 선뜻하였으나, 시간이 급한지라 내키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급히 걸어가서 기관차에 몸을 싣고 기계를 잡아 그 많은 손님, 그 큰 기차

를 끌고 머나먼 길을 떠났습니다.

때는 여름이라 그 먼 길을 떠나던 날 저녁부터 비가 몹시 큰 비가 오기 시

작하더니, 그칠 줄을 모르고 쏟아지는데 기차는 바다에서 나온 마귀와 같이

비 오는 속을 소리소리 지르면서 그대로 그대로 돌진하여 나아갈 뿐이었습

니다.

기차는 달아나기만 하고 비는 쏟아지기만 하고, 이튿날 낮이 되어도 그치

지 않고 또 그 밤이 되어도 그치지 않고 점점 더 무서운 기세로 땅덩이를

모두 두들겨 부술 듯이 무섭게 쏟아졌습니다.

그러니까, 기차는 달아나기는 하지만 몰고 나가는 앤더슨이나, 옆에서 석

탄만 지피고 있는 화부나, 차장이나, 타고 가는 수백 명 손님이나 다같이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걱정이 대단합니다.

비가 이렇게 여러 날 두고 몹시 오시니 이렇게 우중에 뚫고 나가는 기차

에 무슨 탈이나 생기지 아니할까? 이 기차가 달음질해 나가는 앞길에 혹시

산이나 무너지거나 길이 떠내려가서 위험하지나 않을까?’하고 가지각색으

로 모든 사람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흘이 되던 날 그 기차가 어느 조그만 정거장을 지날 때에 그 정거장 사

람들에게 들으니까, 그 곳에는 비가 오기 시작한 지 벌써 닷새째 되었다 하

므로 타고 가는 모든 사람들의 근심 걱정은 갑자기 더하여졌습니다.

그러나, 기차는 연해 석탄을 넣어 가면서 기적 소리를 삐이삐이 지르면서,

그 날 밤새도록 비를 맞으면서 달아나고만 있었습니다.

사흘 밤째 지난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새벽인지 아침때인지 모르고 기차

는 달아나기만 하는데 비는 간신히 그치려는지 가느른 이슬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비 뒤의 자욱한 안개가 내리는 것 같기도 하여 비는 그친 것

같으나 역시 천지가 캄캄한 때이었습니다.

 

비 속에 기차를 몰아 나가면서 마음은 집에만 달아나,

비는 이렇게 오시는데 그 동안에 아버지 병환이 어찌나 되었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앤더슨이 흘낏 들창 밖을 내다보니까 큰일 났습니다. 

차가 나가는 앞에 거무스름하고 커다란 사람의 그림자가 높다란 허공 중에

나타나더니, 한편 손을 번쩍번쩍 자꾸 듭니다. 기차나 전차가 나가는 앞에

서 손을 드는 것은 가지 말고 서라.’하는 정거 신호이므로 어느 때든지

어디서든지 기차의 나가는 앞에서 손을 드는 것을 보면 혹시 사람이 치었거

나 또는 혹시 앞에 무슨 탈이 생긴 줄 알고 기차는 우뚝 서는 법인데 이제

그렇게 무섭게 큰비가 6, 7일 온 터이고 또 앞에는 안개가 자욱한데 허공

중천에 도깨비 같고 귀신 같은 헛그림자가 나타나서 기차를 정지하라 하니,

어째 놀라지 않겠습니가? 앤더슨은 얼른 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다시

내다보니까 이상도 하지요. 기차는 지금 자꾸 달아나는 중인즉 그 동안에도

끔찍히 많은 거리를 달아 나왔는데 그 귀신 같은 그림자는 여전히 달아나는

기차보다도 더 앞서서 여전히 손을 번쩍번쩍 들고 있었습니다.

바로 왜 정거를 안 하느냐.”

하고 꾸짖는 것 같지요! 앤더슨은 가슴이 덜컥 하였습니다. 겁도 나려니와

언뜻 생각나는 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나 보다!’

하는 것과 또,

그리고, 저것이 아버지의 영혼인가 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앤더슨은 굵다란 몽둥이로 머리를 후려맞은 것처

럼 정신빠진 제웅같이 되어 자기 정신없이 기계를 틀어 기차를 세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아무 변이나 나지 않았으면!’

하고, 조마조마해 앉았던 수백 명 손님과 차장이 별안간에 기차가 우뚝 서

니까, 이크! 기어코 큰일이 났구나! 하고 눈이 둥그래져서,

웬일이오? 웬일이오?”

하고, 모두 쏟아져 내려서 기관차로 우루루 몰려왔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차장이 뛰어올라가서 앤더슨에게 그 이야기를 듣더니 깔깔 웃으면서,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어리석은 소린가. 아무 염려 말고 어서 가세. 

중에 나타나긴 뭣이 나타난단 말인가? 어서 가세, 어서 어서.”

하고 이번에는 자기가 기관실에 앤더슨을 옆에 지키고 서서 같이 나아가기

로 하였습니다.

그래 간신히 손님들의 마음을 진정시켜 가지고 기차는 다시 나아가는데 한

 

참 가다가 앤더슨이 또 흘낏 내다보니까, 그대로 여전히 앞에 공중에서 그

이상한 그림자가 손짓을 몹시 자주 들고 있습니다.

그래 앤더슨이 옆에 섰는 차장을 보고,

저것 저것 좀 내다 보시오.”

하였습니다. 그래 차장도 얼른 창 밖을 내다보니까, 참말 이상도 하지요.

차장이 볼 때는 공중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 차장은 또 웃으면서,

보이기는 무엇이 보인단 말인가? 공연한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가세.”

하고, 기계를 틀게 하였습니다. 참말로 이상도 한 일이지요. 차장이나 화부

와 같이 내다볼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앤더슨이 혼자서 내다볼 때는

여전히 그것이 나타나서 손짓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앤더슨의 생각에는 이것은 분명히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라

고 믿게 되었습니다. 내다보면 내다볼 때마다 자기의 눈에만 그 그림자가

어디까지 기차보다 앞서 가면서 손짓을 몹시 바쁘게 하는 것이 보이므로 앤

더슨은 그만 기계를 틀어 기차를 딱 세우고,

나는 죽어도 더 못 가겠소.”

하였습니다. 그 때 깜짝 놀란 차장이 창밖을 내다보더니,

으앗! 보인다, 보인다.”

하고, 미친 사람같이 소리쳤습니다. 석탄을 퍼붓고 있던 화부가 그 말을 듣

고 전기에 찔린 사람같이 뛰어와 내다보더니 그도,

보인다, 보인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이제는 자기들도 기차를 더 몰고 나가잘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 웬일인

가 웬일인가 하고 눈이 둥굴하여 뛰어내린 손님들께 그 이야기를 하여 들렸

습니다. 그러니까 듣는 사람마다,

어이고! 그러면, 이 앞길에 무슨 불길한 까닭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

.”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이렇게 되면 못 가지요. 무슨 변이 생길 줄

알고 가겠습니까?”

하고 수선거릴 뿐이었습니다.

과연 과연 그 뒤에 그 다음 정거장에서 보낸 급한 통지가 이미 지나온 정

거장을 들러서 이 기차에까지 온 것을 받아보니,

이 앞에 있는 큰 철교가 무너졌으니 기차는 오지 말라.’하는 것이었습

니다.

이 때까지 궁금해 하면서 마음만 졸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통지를 보

 

고 얼마나 신기해 하고 기뻐하였겠습니까.

손님들은 차장에게 절을 하는 사람,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리는

사람, 서로 껴안고 죽을 운수를 면한 기쁨에 춤추는 사람, 형형 색색으로

기뻐함을 마지 아니하고 차장과 화부는 그 여러 백 명 목숨을 물 속에 빠치

지 아니하게 된 기쁨을 참지 못하여 앤더슨에게 달려들어 껴안고 잡아 흔들

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 모든 사람이 기뻐하면 기뻐할수록 이번 일이 신기하다

면 신기할수록 앤더슨만은,

분명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영혼이 이렇게 자기와 또 수백 명을 살

려 준 것이다.’

생각하게 되어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눈에는 눈물까지 고여 울음이 터

질듯 터질 듯하였습니다.

앤더슨은 잡담 제하고 기차를 몰고 뒤로 뒷걸음을 하여 와서 지나온 정거

장에 다시 들어가서 다른 차를 바꿔 타고 곧 본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른 돌아가서 아버님 장례나 치르려고요. 정거장에 차가 닿자마자 곤두박질

을 쳐서 자기 집으로 뛰어가 아버지의 시체가 누워 있을 방문을 열 제 앤더

슨의 눈에는 눈물이 펑하게 쏟아졌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방문을 고요히 열고 들어가니까, 이게 또 웬일이겠습니까.

꼭 돌아가셨을 아버지가 침상 위에 누운 채 얼굴을 들더니,

오오 앤더슨아? 네가 어째 벌써 오느냐?”

하십니다.

앤더슨은 꿈 같기도 하고 하도 이상하여,

아버지! 아니 돌아가셨습니까?”

하고 달려들어 손목을 잡았습니다. 아버님은 분명히 살아 계셨습니다. 그래

앤더슨이 기차를 가지고 가던 날부터 비가 온 일과 그림자가 나타났던 일,

그래 기차를 정거시키고 있었더니 앞에 철교가 무너져서 그냥 갔더라면 모

두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 그래 꼭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영혼이 그렇

게 공중에 나타나서 위험한 것을 일러 주신 것인 줄 알았던 일을 자상히 말

씀하여 드렸습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난 후였습니다. 꾸물거리던 장마 일기도 아주 깨끗이

개이고 아버지의 병환도 많은 차도가 있어서 앤더슨은 오래간만에 상쾌한

마음으로 정거장에 나가니까, 정거장 역장이 앤더슨을 자기 방에 청하여 손

목을 잡고 하는 말이,

여보게, 그래 그 기차 앞에 공중에 나타났던 이상한 그림자가 무언지 우

 

리는 자세히 알았네! 자네도 그것이 자네 아버지의 영혼인 줄 알았고, 

누구든지 무슨 귀신이 나타난 것이라고 꼭 알고 있지 않았었나! 그러나, 

후 그 기관차가 하도 몹시 비를 맞고 달린 것이니까 역부들을 시켜서 소제

할 겸 기계 검사도 하게 하였더니, 그 기관차 맨 앞에 전등(기관차 이마에

달린 것)이 있고 그 앞에 돋보기 유리가 끼어 있지 않은가. 그 유리 속에

손톱만한 딱정벌레가 한 마리 들어가 있더라네. 그래 생각해 보니까, 그 딱

정벌레가 기관차 위의 어딘가 있다가 비가 하도 몹시 오니까, 비를 피하여

그 전기 장명등 유리틈 속으로 기어들어간 것이데그려. 그래 그놈이 돋보기

유리에 붙어서 발짓을 하니까, 그놈이 전깃불에 크게 비춰서 사람의 그림자

같이 보였데그려. 그런데 그것이 허공에 비치는 법이 없는데 그 날은 마침

비가 오고 그친 끝에 안개가 자욱하게 내리던 때이므로 안개 벽이라 할까,

안개 담이라 할까, 어쨌든 그 안개 장막에 활동 사진같이 흐릿하게 비치기

시작한 것이 발짓을 하는 대로 손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데그려. 

! 그제 그럴 듯한 일이 아닌가.”

앤더슨은 그제야 그 괴상한 허깨비의 실상을 알고 깔깔 웃었습니다.

 

〈《어린이 4 6, 1926 6월호,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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