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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살아난 하느님 / 동화 / 방정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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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살아난 하느님

 한 비행가의 이야기에서 

 

가린은 비행기를 잔뜩 높이 띄어 가지고 캄차카 반도에 있는 페트로파블로

프스크 시로 향하여 갔습니다. 떠난 지 얼마 못되어 벌써 목적지에 이르러

비행기가 점점 땅에 내리기를 시작할 때에 별안간 큰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바람도 어찌 모질었던지 기계가 전 속도를 다하여 돌아갔으나 끝내 이기지

못하여서 비행기는 높이 높이 떠 그냥 휩쓸려 날아갔습니다.

가린은 하릴없이 바람 그칠 때를 기다릴 예산만 하고 무엇이나 크게 잘못

됨이 없도록만 단단히 주의할 뿐이었습니다.

바람은 퍽 오랫만에야 잠잠하여졌습니다. 이제는 다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시로 향하여야 될 터인데 어디까지나 왔는지 가린은 퍽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래를 자세히 내려다보니 일생에 처음으로 보는 눈과 얼음의 세계

가 보였습니다. 여기가 어떤 곳이며 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사는지 잘 알고

싶은 생각이 불붙듯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속히 땅에 내려 붙여 놓고 자기도 내렸습니다. 사방이 모

두 반듯하고 한없이 넓은 눈이 꽉 덮어 놓은 벌판이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

에 눈으로 쌓아 만든 집들이 여러 개가 널려 있었습니다. 그 중에 혹 어떤

것은 풀로도 조금씩 덮어 놓았었습니다. 문 대신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

습니다.

비행기가 내리는 것을 보더니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우루루 쓸

어 왔습니다. 모두 키가 작고 또 짐승의 가죽을 입었었습니다. 가린은 이제

야 축지(극지방) 인종이 사는 곳인 줄을 알고 혼잣말로   왔구나! 

지인들이 사는 곳이면 서북 지방의 가장 끝이로구나.’ 하였습니다. 기계

옆으로 거의 오더니 그들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대고 가린에게 절을 하였습

니다.

가린은 가죽 저고리를 입고 붉은 별을 커다랗게 하여 붙인 가죽 모자를 썼

었습니다. 일변 춥기도 한데 또 배까지 심히 고팠습니다. 허나 누구와든지

말해 볼 데가 없었습니다. 모두 하느님에게처럼 절만 꿉적꿉적하고 있었습

니다. 가린은 우습기도 하였고 갑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뚱뚱하고 키가 큼직한 축지인 하나는 가린의 옆에 와서 북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춤추고 소래(노래)하면서 굿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조

선에서 무당이라 이름하는 것이었겠습니다. 그 무당이 춤을 그치고 축

 

지인들에게 향하여 무엇 무엇이라고 몇 마디간 말을 하더니 모두 기어와서

가린의 팔을 조심스러히 잡아가지고 곱다랗게 제일 큰 집으로 모셔 갔습니

. 그 집은 무당의 집이었습니다.

가린은 일변 재미있는 일을 당한 듯도 싶고 또 일변으로는 무섭기도 하였

습니다.

무당은 가린에게 몰래 가죽을 씌우고 각가지 노리개 돌작이 고기뼈들을 잔

뜩 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또 춤을 추며 굿을 하였습니다.

가린은 그대로 견디다 못하여 입을 벌리면서 손짓으로 먹고 싶다는 뜻을

표하였습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축지인들은 눈이 둥그레지면서 어찌할 줄

을 모르다가 나중에는 알아맞혔습니다. 몇이 밖으로 나가더니 물개 고기와

또 재가 가득히 발린 무슨 떡 같은 것을 많이 들여왔습니다. 주린 즈음에

음식이 입에 맞든지 아니 맞든지 그냥 자꾸 먹었습니다. 무당이 무엇이라고

또 말을 몇 마디 하더니 축지인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무당은 마음

이 매우 상쾌한 모양인지 얼굴에 기쁜 빛을 띠고 가린을 보면서 제 손을 쓰

다듬었습니다. 그 후로는 축지인들이 날마다 와서 절하며 기름, 고기, 가죽

별별 것을 다 가져다 바쳤습니다. 가린은 자기가 하느님으로 된 줄을

알았습니다. 날마다 가져오는 물건은 매우 많았습니다.

무당은 처음에는 물건을 고르게 나누어 가지더니 차차 자기가 좋은 것을

골라 가지고 또 더 많이 가지었습니다.

나중에는 아주 대접을 박하게 하였습니다. 무엇이나 가져오면 절은 절대로

하나, 먹을 것은 입에 발라 주기만 하였습니다. 모두 저 혼자 먹어 버리고

나머지는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는 절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옆에 있을 때에만 굿하고 절하고 하였습니다.

한 번은 어느 축지인에게 고기를 잘 잡게 하여 달라고 무당이 가린에게 청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별로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무당은 가

린을 한 대 때려 보았습니다. 만약 기운이 튼튼한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매

맞는 노름까지 늘 생길 뻔하였습니다. 때리려고 들던 손목을 한 번 단단히

잡아 주니까 다시는 그런 버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당의 집 문 어귀에는 축지인이 몇 사람씩 늘 교대하여 파수를 보았습니

. 파수는 매우 단단히 보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되니 가린은 도망을 하든

지 무슨 별일을 하든지 하지 않으면 그 곳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한 번은 무당이 비행기 옆에 가서 빙빙 둘

러 다니다가 가솔린(기계 돌리는 기름) 통을 보고 술인가 하여서 취하도록

잔뜩 마셨습니다. 축지인들은 본래 술을 매우 좋아합니다.

 

파수 보는 자들까지 얼른 뛰어가서 무당이 하던 대로 하였습니다.

가린은 기쁜 즈음에 몸에서 얼른 하느님의 거룩한 옷을 다 벗어 버리

고 달음박질하여 나아가 기계에 올라 앉았습니다. 급히 기계를 풀어 떠나기

시작하니 축지인들은 울며 또 무어라 소리를 치면서 비행기에 매달렸습니

.

하느님이 저들을 버리니까 겁이 났던 모양입니다.

비행기가 점점 떠오르자, 매달렸던 축지인들은 하나씩 둘씩 다 떨어졌습니

. 그리 높이 뜨지 않았을 때에 모두 떨어졌으므로 죽은 자는 하나도 없었

습니다.

이렇게 우연히 왔던 하느님은 고생의 며칠을 몇 해 같이 지내다가 비

행기 신세에 겨우 살아갔답니다.

 

〈《어린이 4 2, 1926 2, 길동무


출처 : 공유마당

이용조건 :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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