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고전문학의 흐름과 감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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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의 흐름과 감상

 

* 고전 문학사 시대구분

 

1. 국문학의 여명기

(918년 고려건국 이전) - 고대국가, 삼국, 통일신라

2. 한문 문학과 국문 문학의 갈등기

(1392 조선 건국 이전) - 고려

3. 국문 문학의 정착과 시가의 난숙

(1592 임진왜란 이전) - 조선 전기

4. 평민 의식의 성장과 산문 문학의 발달

(1894 갑오경장 이전) - 조선 후기

 

 

1. 국문학의 여명기(상고시대의 문학)

 

· 지역 : 만주 일대와 한반도 전역

· 문화 : 청동기 시대 이후

· 국가 : 고대 국가. 통일 신라

 

1. 국중 대회와 건국 신화

(1) 건국 신화(건국 서사시)

: 민족의 이동과 천신족의 우월감, 건국과정 및 원초적인 세계관의 집약적 반영

고대
국가
신 화 기 타
고조선 단군신화 우리 나라의 건국 신화, 선택된 땅에 천손(天孫)에 의해 건국됨. 홍익 인간의 이념 제시
고구려 주몽신화 동명왕의 출생에서부터 건국의 성업까지를 묘사한 본장의 주석에 나오는 설화
가 야 가락국 신화 알에서 태어난 6명의 아이들 중 가락국의 왕이 된 김해 김씨의 시조 설화
신 라 박혁 거세, 김알지, 석탈해 *박혁거세 신화(신라)-나정 근처에서 발견한 알에서 태어나 6촌 사람들의 추대로 임금이 됨. 박씨의 시조 설화
*석탈해 신화(신라)-알에서 나와 버려진 뒤 남해왕의 사위가 되고 나중에 임금으로 추대된 석() 씨의 시조 설화
*김알지 신화(신라)-시림의 나무에 걸렸던 금궤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경주 김씨의 시조 설화
백 제 온조, 비류 발굴 진행중

* 신라의 시조 이야기 "박혁거세.석탈해.김알지"

 

[ 신라의 시조 이야기 "박혁거세.석탈해.김알지" ]

신라는 박씨, 석씨,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왕이 되었다. 진한의 한 작은 나라 사로국은 여섯 촌장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알천 강가에 모여 임금을 구하려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양산촌의 나정이라는 우물 옆 숲속에서 찬란한 광채가 나고, 그 곁에 흰 말이 절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나온 아이가 바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이다. 박 같은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박씨로 삼고 동방을 밝히라는 뜻으로 불구내(한자로 혁거세)라는 이름을 지었다.

또 석탈해는 동쪽 나라에서 알로 태어나 바다에 버려졌는데, 그가 발견된 때 그 배 위에는 까치가 따라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한자로 까치 작()자에서 새 조()자를 빼고 석()씨로 성을 삼았으며, 스스로 플고 나왔다 하여 탈해로 이름을 지었다.

또 김알지는 탈해왕 때, 계림이라는 숲속에서 흰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발견하였다. 금궤짝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씨로 삼았다 한다. 신라는 이들 세 성씨가 번갈아 임금을 했는데, 17대 내물 마립간 때부터는 김씨만이 임금이 되었다.

 

* 백제(百濟)의 개국전설(開國傳說)

 

백제의 개국전설은 북방계의 우리 겨레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하한 과정과 그들이 새로운 땅에 정착하여 새 나라를 이룩한 사실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국사기}는 백제의 건국 과정에 대해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설화를 전한다. 하나는 본문으로 기록하였고 또 하나는 세주(細註)로 소개하였는데, 전자는 백제의 시조가 온조(溫祚)라고 한 반면 후자는 비류(沸流)가 시조로 되어 있다

 

온조 중심의 개국전설에서는,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 건국자인 아버지 주몽과 어머니 졸본왕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주몽의 원자인 유리(琉璃)가 아버지를 찾아와 태자가 되자 둘이 함께 남하하여 형 비류는 습하고 짜서 지리가 좋지 않은 미추홀(彌鄒忽), 동생 온조는 천험지리(天險地利)의 하남 위례성(慰禮城)에 각각 도읍하여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그 뒤에 비류가 편안히 살 수가 없어 참회하고 죽자 온조가 이를 통합하여 국호를 십제(十濟)에서 백제(百濟)로 고쳤다는 것이다 [자료1]. 한편 비류 중심 설화에서는, 비류와 온조는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인 아버지 우태(優台)와 졸본인 연타발(延陀勃)의 딸인 어머니 소서노(召西奴) 사이에서 태어났고, 우태가 죽은 뒤 주몽이 졸본으로 망명해 오자 소서노는 그에게 개가(改嫁)하여 고구려 건국을 도왔으며, 결국 원자인 유유(孺留)가 내려와 왕위를 계승하자 비류는 동생을 이끌고 남하하여 미추홀에 정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백제의 시조에 대해서는 이 외에 또 구태설(仇台說)이 있다. 북사(北史)}{수서(隋書)}에는 동명(東明)의 후예인 구태가 대방(帶方)의 고지(故地)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백제라 했다고 전한다. {주서(周書)}에도 백제는 부여의 별종(別種)이라면서 구태가 세운 나라라 하였다. 이처럼 백제의 개국 시조가 온조, 비류, 구태로 다르게 전하는 까닭은 백제왕의 혈통이 중간에 바뀌었거나 국가로서의 면모가 일신된 데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 초기사를 이해하는 지금까지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연속설(連續說)이고 또 하나는 단절설(斷絶說)이다. 연속설에서는 백제가 처음부터 북방에서 남하한 부여족에 의해 삼한(三韓) 제국(諸國)의 한 나라로 건국되어 순조로운 성장 발전을 지속한 것으로 파악한다. 반면 단절설에서는 처음에 백제는 한인(韓人) 토착세력에 의해서 건국되었으나 4세기 초에 이르러 남쪽으로 이동해 온 부여족에 의해서 왕권을 탈취당한 결과 새로운 백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이해한다. 어느 쪽 견해가 옳은 지는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백제국의 발전은 초기의 성읍국가 단계와 후기의 중앙집권국가 단계로 구분하여 파악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백제의 왕계(王系)와 관련해서는 7대 사반왕(沙伴王)에서 8대 고이왕(古王)으로의 왕위계승 관계가 주목되고 있는데, 이를 온조왕계 내부의 직계에서 방계로의 변화로 보는 견해와 온조계에서 비류계로의 왕실교체로 파악하는 견해가 대립되어 있다. 또 근초고왕(近肖古王)은 고이왕계가 아닌 온조왕계였다고 보아 그의 즉위는 또 한번의 왕실교체가 있었음을 뜻한다고 파악하기도 한다. 이처럼 백제 초기사의 진상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2) 국중 대회(제천의식)

- 농사를 잘 되게 하고 국가의 번영을 꾀하는 제천의식에서 집단 가무가 행해졌는데 여기서 문학의 모태인 원시 종합 예술이 행해짐

 

- 원시 종합 예술(Ballad Dance)의 집단가무는 문학, 음악, 무용, 연극의 미분화 상태의 종합 예술임

 

분화상태 분화이전
문학 노래 가사
음악 노래
무용
연극 가무(노래와 춤)
고대 국가 제천의식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무천
마한 오월제, 시월제

 

 

2. 고대 가요

(1) 고대 가요의 정의

원시 종합 예술에서 분화된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내용을 노래한 시가(詩歌)

 

(2) 고대 가요의 형성

원시 종합 예술에서 분화된 고대 가요는 집단적이고 서사적인 시가에서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시가로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한역(漢譯)되거나 구전(口傳)되어 오다가 훨씬 후대에 기록 문학으로 정착된 것이 많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이나 연대는 알기가 어렵다.

향가(鄕歌) 문학이 고대 가요의 다채로운 형식과 달리 정형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삼국 시대 중엽의 일 것으로 추측된다.

 

(3) 고대 가요의 특징

1) 고대 가요는 집단의 활동이나 의식(儀式)과 관련된 측면이 많아 의식요, 노동요의 성격을 지니고 집단적인 가무의 형태로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2) 시대가 지날수록 개인적 서정에 중점이 놓여지게 됨에 따라 점차 서정성 짙은 개인적 서정시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3) 고대 시가에는 설화가 삽입되어 전하는데, 이는 시가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4) 당시에는 기록의 수단이 없었으므로 구전되다가 후대에 한자, 이두, 한글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형태가 많이 변용(變容)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5) 우리 시가의 기본적 형식으로 두 토막씩 넉 줄 또는 네 토막씩 두 줄로 된 노래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4) 고대 가요의 문학사적 의의

1) 고대 가요는 우리 국문학 사상 최초의 서정 시가 형태로 기본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2) 고대 가요는 집단적 서사시에서 개인적 서정시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3) 고대 가요의 주된 내용은 사회적 갈등, 노동, 종교적, 개인의 애정 문제 등 고대 사회가 지니고 있었을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5) 고대 가요 작품

1) 작품이 전하는 고대 가요

작 품 명 작 자 연 대 형 식 성 격 주 제 및 내 용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백수광부의 처 고조선 44구체 개인적
서정시
물에 뻐져 죽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함.
구 지 가
(龜 旨 歌)
구간 등 신라
유리왕
한시
(이두)
집단적
서사적
왕의 출현을 기원함-영신군가
황 조 가
(黃 鳥 歌)
유리왕 고구려
유리왕
44구체 개인적
서정시
아내를 잃은 실연의 슬픔을 노래함.
해 가
(海 歌)
백성들 신라
성덕왕
44구체 집단적
서사적
용왕에 납치된 수로부인을 구출함.
정 읍 사
(井 邑 詞)
어느 행상의 처 백제 36
속악
개인적
서정시
행상 나간 남편을 염려하는 마음.
한글로 표기되어 전함.

 

2) 삼국(三國)의 부전 가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학 특성

고 구 려 백 제 신 라

환경 유목이 가능한 평원 농경평야 농경평야

문화 유목민(기마민족)특성 고구려에서 남하한 유목 농경문화

민족과 토착 농경민족의

이중문화

예술 단순 복잡,화려 단순

언어 부여어 (알타이 북방어와 남방어의 남부 韓族語

공통 조어에 가까움) 이중 언어 생활

문학 서사문학 발달 서정적 가요문학 발달 서정적 가요문학

발달

동명왕,온달, 정읍사 (不傳:무등산 향가(균여전11

미천왕설화+황조가 선운산,방등산,지리산) 삼국유사14)

 

* 삼국(三國)의 부전(不傳) 가요(歌謠)

작 품 명 작 자 연 대 성 격 출 전 내 용
내원성가
(來遠城歌)
미상 고구려
고려사 악지
문헌비고
항복한 오랑캐를 내원성에 정착시키고 지어 부른 노래
연양가
(延陽歌)
미상 고구려
고려사 악지
증보문헌비고
연양현의 한 머슴이 충성을 다짐한 노래임.
명주가
(溟洲歌)
미상 고구려
고려사 악지 공부하러 갔던 청년이 그 곳 처녀와 헤어진 뒤 다시 만남을 노래함.
지리산가
(智異山歌)
미상 백제
고려사 악지 구례현의 한 여인이 지조를 노래한 것임.
선운산가
(禪雲山歌)
미상 백제
고려사 악지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매 선운산에 올라가 부른 노래임.
무등산가
(無等山歌)
미상 백제
고려사 악지 무등산에 성을 쌓고 그 기쁨을 읊은 노래임.
도솔가
(率歌)
미상 신라
유리왕
최초의
정형시
삼국사기
삼국유사
민속환강(民俗歡康)을 노래함.
원사
(怨詞)
천관녀
(天官女)
신라
진평왕

동국여지승람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기생 천관이 부른 노래임.
회소곡
(會蘇曲)
미상 신라
유리왕
노동요 삼국사기 길쌈내기에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대접하며 부른 노래임.
치술령곡
(鵄述嶺曲)
미상 신라
눌지왕
망부석 증보문헌비고 망부석의 슬픈 사연을 애도하여 부른 노래임.
대악
(碓樂)
백결선생
(百結先生)
신라
자비왕
노동요 삼국사기 섣달 그믐날 떡방아를 찧는 소리로 아내를 위로한 노래임.
목주가
(木州歌)
미상 신라 효도가 고려사 악지 목주에 사는 한 효녀가 불렀다는 효심의 노래임.

 

 

1. 高句麗不傳 歌謠

 

(1) 내원성(來遠城)

압록강변의 고을인 靜州 의 성 이름이다. ‘오랑캐가 멀리서 귀순해오는 성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고구려 때에 북쪽 오랑캐들이 귀순해 오면 내원성에 머물러 정착하게 했으며 노래를 지어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때 이미 궁중악으로 채택되고, 이어 통일신라로 전해졌다. 무력 시위의 행렬 음악에 사용하여 오랑캐 정벌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귀순해 오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노래했으리라 추측된다.

원래는 군사들이 지어부른 민요였겠는데 나라의 위엄을 자랑하는 데 소용되기 때문에 무력 시위의 행렬음악에 편입되지않았던가 상상해 본다. 그런데 오랑캐 정벌을 자랑하기보다 오랑캐가 귀순해 오는것을기념했으니,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승리라는 생각을 나타냈다고 보아도 좋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88)

 

 

(2) 연양(延陽)

평안북도 영변의 옛 이름인 연산부(延山府)의 지명이다. 남에게 쓰여져 죽기를 무릅쓴다는 내용을 나무에 비유해 노래했다. 신세타령조의 노동요가 충성을 내용으로 했기에 나라에서 채택했다고 보아진다.

나무가 불을 도우노라면, 그야 스스로를 해치는 화를 불러오지만, 긴요하게 쓰이는 것이나 다행으로 여기면서, 재가 되어 다 없어질망정 사양하지 않으리라고 한 대목은 노래말의 번역이라고 보아도 좋다. 남에게 쓰이는 바 되었다는 것은 노비의 신세로 떨어졌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원래는 그런 처지에서 신세타령을 하면서 부른 노동요일 것 같은 이 노래를 충직하게 주인을 섬기는 사설이 들어 있다고 평가했음인지 고구려 때 나라에서 채택했을 듯하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88)

 

2. 百濟不傳 歌謠

산이름의 제목이 많아 산으로 들어가거나 산에 올라가서 원통한 사연을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던 독특한 경향을 보인다. 또한 여인이 지었다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여성에게 가중되는 고난의 모습을 엿보게도 하기도 하며, 모두 배경설화가 있는 점이 흥미있다.

 

(1) 무등산

산성을 쌓자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축성 작업에 동원되었던 백성들의 애환을 담았을 노래 가사를 통치자들의 구미에 맞게 개작되었으리라 추측된다.

 

(2) 지리산

구례현 사람의 딸이 미모가 뛰어나자 백제 왕이 차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인은 죽기를 다해 따르지 않았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궁중악에서는 왕의 횡포보다는 여인의정절을 내세웠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와 동일한 사건인 도미의 아내를 겁탈하려던 개루왕의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아니었던가 추측하기도 한다.(이병기,백철, “국문학전사”, 신구문화사, 1957 ; 조재훈, ‘지리산가소고’, “백제문화”11, 공주사범대 백제문화연구소, 1978)

이 노래에 따르는 사연은 도미(都彌)라는 사람의 아내가 개루왕의 겁탈에 항거하다 가까스로 살아났다는 이야기와 자못 상통해 같은 사실에 대한 두가지 전승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88)

 

(3) 방등산

신라말 방등산 도적에게 잡혀간 여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여 부른 노래라고 한다. 그러나, 아마도 남편을 그리워하는 노래였으리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 옳으리라 본다.

이 노래는 후백제의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도적이라고 일컬는 무리는 후백제의 군사일 수 있다. 고려의 입장에서 후백제의 정권이야말로 도적 같은 짓이나 이런 노래가 생겼다고 하면 명분이 선다. ...도적떼가 성한 판에 남편인들 어쩔 도리가 없다. 오히려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하면 어울린다. 백성의 민요를 채택하면서 사연이나 사설을 바꾸어 놓을 때 다소 무리가 생겼을 수 있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88)

 

(4) 선운산

민요 본래 모습의 내용이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고창군 사람이 부역을 나가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산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리며 부른 노래이다.

노래말을 남아 있지 않으나, 후대까지 길쌈을 하면서 신세타령을 늘어놓는 데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연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88)

 

3. 新羅不傳 歌謠

(1) 목주(木州) [목주는 현재 청주에 속한 고을]

목주는 효녀가 지은 노래이다. 딸이 부친과 계모에게 효성한 것으로 소문났다. 그러나 부친이 계모의 참소에 혹하여 딸에게 나가라고 하였는데 딸은 차마 가지 못하고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모 봉양을 더욱 근면하고 태만하지 않았으나 그럴수록 부모는 더욱 노하여 드디어 내쫓았다. 딸은 부득이 하직하고 떠나갔다. 딸이 어떤 산중에 이르러 석굴 속에 사는

노파를 만나서 그런 사정을 말한 후 그 곳에 있을 것을 청하니 노파가 그의 곤궁한 사정을 불쌍히 여기고 허락하였다. 처녀는 그를 자기 부모 섬기듯이 섬겼다. 그래서 노파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의 아들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 부부는 한 마음으로 근면 절약하여 부자가 되었다.

그 후 딸은 친정 부모가 매우 가난하게 지낸다는 말을 듣고 시집으로 모셔다가 지극히 잘 봉양하였으나 그 부모는 오히려 기브게 생각하지 않았다.

효녀가 이 노래를 지어 자기의 효성이 부족하다고 원망하였다.

 

 

(2) 명주(溟州)

강릉의 옛 지명이다.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을 성취한 설화의 모티브를 지니고 있는 노래이다.

고려사 악지에는 고구려의 노래로 실려 있으나, 이 노래의 창작 연대와 국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고구려에는 과거제도가 없었다는 것과 명주와 왕래가 잦았던 곳은 서라벌이라는 점이 그 이유이다. 통일신라 때 생겨 궁중악으로 채택되고 고려로 전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김선풍, ‘명주가’, “한국 시가의 민속학적 연구”, 형설 출판사, 1977)

또한 허균의 성소부부고’, 增補文獻備考, 二十一都懷古詩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당연히 신라 노래로 분류되어야 한다. (윤원식, 임치균, 조동일 등의 견해)

문학 교과서나 기타 참고서에서는 고구려 노래로 분류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간의 학문적 성과에 힘입어 신라 노래로 분류하고자 한다.

어느 선비가 과거를 보러가다가 명주에서 규수를 만난다. 사랑을 하게 되고 청혼할 것을 약속하고 서울로 가게 된다. 그러나 처녀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갈 위기에 접한다. 물고기 뱃속에 편지가 들어가고, 그 편지를 받은 선비가 급히 와 <명주>라는 노래를 부른다. 처녀의 부모는 이 노래를 듣고 선비와 결혼을 시킨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을 성취한 설화이다. 노래 또한 사랑의 노래일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서생이 지어 불렀다면서 민간에서 전승되던 사랑노래인 민요를 궁중악으로 채택했다면, 그런 것은 잔치 때 흥을 돋우자고 불렀을 법하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1988)

 

 

3. 향가의 발전

(1) 정의와 형성

1) 정의 : 향가는 신라 가요로서 우리의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 향찰로 표기된 노래

좁은 의미 ; 사뇌가(詞腦歌)로서 삼국 통일(6세기경)부터 고려 중기인 13세기까지 존재한 문학 장르이다.

넓은 의미 ; 기원전 후기부터 있었던 노래로서 중국 한시에 대한 우리 고유의 가요를 일컫는 문학 장르이다.

현전하는 신라 노래들은 모두 사뇌가 중심이기 때문에 향가를 곧 사뇌가(詞腦歌)라고도 일컫는다. 사뇌가라는 말은 특히 10구체 향가를 일컫는 말로 향가라는 한자어 명칭이 생기기 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형성 : 삼국사기에 의하면 유리왕 5(A.D 28)에 도솔가가 지어진 것이 가악(歌樂)의 시초라 하였으나, 오늘날 전해지는 신라 가요는 6세기 통일 신라 이후의 것들이다. 따라서, 신라 26대 진평왕 전후(67C)부터 시작되어 고려 광종 때까지 계속되었다.

 

(2) 향가의 표기

향가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쓴 향찰(鄕札)로 표기되었다. 이는 신라 시대의 우리말 표기법이다. 특히 향가의 표기에 이용되었기 때문에 향가식 표기법이라고도 하고, 또 향가 문학을 향찰 문학이라고 한다. 신라인들이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문화에 예속되지 않고, 우리 고유 문화를 확립시키려했던 강력한 주체 의식(主體意識)의 발로로서 이 때부터 국문학의 주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향찰(鄕札)이란?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서 우리말의 문장 전체를 그대로 적던 방법이다. 향가에 사용되어 향가식 표기라고도 한다. 대개 실사(實辭){의미가 담긴 부분]는 훈차(訓借)하고 허사(虛辭){조사 등과 같이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부분]는 음차(音借)하였으며, 고유 명사는 음과 훈을 섞어서 사용하였다. ) 他密嫁良置(타밀지가량치고) 그 지 얼어두고 <서동요>

 

이두(吏讀)?

향찰과 비슷하나 한문을 전제로 하고 향찰식 표기를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한문을 국어의 어순으로 배열하기 위하여 주로 조사, 접미사, 부사, 동사 등에 사용하던 문자이다. ) 必干 七出乙 犯爲去及 三不出有去乙

비록 을 하거나 잇거늘

 

(3) 향가의 특징

1) 형식 : 향가의 형식에는 4구체, 8구체, 10구체 등이 있는데 10구체가 가장 정제(整齊)된 형식

4구체 - 전래(傳來)의 민요(民謠)가 정착된 노래이다.

)서동요, 풍요, 헌화가(獻花歌), 도솔가

8구체 - 경주(慶州)가 아닌 지방에서 유행된 노래이다.

)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처용가(處容歌)

10구체 - 가장 정제된 형태로서, 특히 낙구(落句)아으(阿也, 阿邪, 阿耶)’ 등의 감탄사를 상투적으로 배치한 부분은 후대에 발생한 시조(時調)의 종장(終章) 첫 구에 흔히 나타나며, 가사(歌辭)의 낙구에도 나타난다.

 

(4) 향가의 성격

향가의 장르적 성격은 단순하지 않다. ‘풍요(風謠)’ 같은 작품은 민요이고, ‘처용가(處容歌)’는 무가(巫歌)인 듯하나, 대부분이 서정적이다. 특히 10구체는 격조(格調) 높은 서정시로서 세련된 수사와 투철한 시 정신을 갖추고 있다.

 

(5) 향가의 내용

향가는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민요와 동요

축사(逐邪)의 노래

연군(戀君)의 노래

설도(說道)의 노래

안민 치국(安民治國)의 노래

신불(神佛)에의 발원(發願)을 나타내는 불교 신앙

추모(追慕)의 노래 등으로 나타난다.

 

(6) 표현 방법

향가의 표현은 명랑하고 신비롭고 숭고한 기개가 넘친다. 수사는 소박하고 원숙하며 평화롭다. 따라서, 저속하거나 침울하거나 예리하고 정적(靜的)인 면이 없는 점에서 고려 가요와는 대조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7) 작자

향가 작자로는 승려(僧侶), 화랑(花郞), 여류(女流), 무명씨 등으로 여러 계층에 걸쳐 있는데, 현전하는 향가의 작자로는 승려가 가장 많다.

 

(8) 향가집

신라 진성여왕 2(888)에 각간(角干) 위홍(魏弘)과 대구 화상(大矩和尙)에 의하여 편찬된 삼대목(三代目)’이 있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삼대(三代)’란 상(), (), ()의 삼대를 뜻하는 것으로 신라 일대의 향가가 수집 기록되어 있으리라 생각되나 정확한 것은 알 길이 없고, 현재 삼국유사14, ‘균여전11가 전하고 있다.

 

(9) 향가의 소멸

향가는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를 마지막으로 소멸하였으나, 고려 16대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悼二將歌)’와 의종 때 정서(鄭敍)가 지은 정과정곡(鄭瓜亭曲)’에서 향가의 잔영(殘影)을 엿볼 수 있다.

 

(10) 현전하는 향가 일람표

작 품 명 작 자 연 대 형 식 내 용
서동요
(薯童謠)
백제 무왕
(百濟武王)
진평왕
(579632)
4구체 서동이 선화 공주를 사모하여 아내로 맞기 위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동요
풍요
(風謠)
만성 남녀
(滿城男女)
선덕여왕
(632647)
4구체 양지가 영묘사 장육존상을 주조할 때 장안의 남녀들이 진흙을 나르며 불렀다는 노동요
헌화가
(獻花歌)
실명 노인
(失名老人)
성덕왕
(702737)
4구체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수로 부인(水路夫人)에게 꽃을 꺾어 바치며 불렀다는 노래. 민요.
도솔가
(率歌)
월명사
(月明師)
경덕왕 19
(760)
4구체 두 해가 나타나므로 괴변을 없애기 위해 부른 산화공덕(散華功德)의 노래. 일명 산화가(散花歌)
모죽지랑가
(慕竹旨郞歌)
득오
(得烏)
효소왕
(692702)
8구체 죽지랑을 사모하여 부른 만가. 추모가
처용가
(處容歌)
처용
(處容)
헌강왕 5
(879)
8구체 아내를 침범하는 역신에게 관용을 베풀어 역신을 감복시키는 주술적인 노래. 축신가.
혜성가
(彗星歌)
융천사
(融天師)
진평왕
(579632)
10구체 이 노래를 지어 내침한 왜구와 큰 별을 범한 혜성을 물리쳤다는 축사(逐邪)의 노래.
원왕생가
(願往生歌)
광덕
(廣德)
문무왕
(661681)
10구체 죽음을 당해 극락 왕생을 바라는 불교 신앙의 노래.
원가
(怨歌)
신충
(信忠)
효성왕 원년
(737)
10구체 효성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매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였다는 주가. 일명 원수가(怨讐歌). 8구만 전함.
제망매가
(祭亡妹歌)
월명사
(月明師)
경덕황
(742765)
10구체 죽은 누이를 추모하여 제()를 올리어 부른 노래. 일명 위망매영재가(爲亡妹營齋歌)라고도 함.
안민가
(安民歌)
충담사
(忠談師)
경덕왕
(742765)
10구체 ()()()이 알 바를 노래한 치국의 노래. 치세 안민(治世安民)의 노래를 지으라는 왕의 요청을 받고 지음.
찬기파랑가
(讚耆婆郞歌)
충담사
(忠談師)
경덕왕
(742765)
10구체 기파랑을 찬양하여 부른 노래. 추모시. 문답식으로 된 최초의 노래.
천수대비가
(千手大悲歌)
희명
(希明)
경덕왕
(742765)
10구체 희명이 실명한 아들을 위해 부른 노래. 분황사 관음보살에게 아들이 눈을 뜨게 해 주기를 빈 기도의 노래.
우적가
(遇賊歌)
영재
(永才)
원성왕
(789798)
10구체 영재가 대현령에서 도둑을 만나 도둑을 회개시킨 설도(說道)의 노래.
보현십원가
(普賢十願歌)
균여 대사
(均如大師)
신라 말
고려 초
10구체 불교의 교리를 대중에게 펴기 위해 지은 노래. 예경제불가, 칭찬여래가, 광수공양가, 참회업장가, 수희공덕가, 청전법륜가, 청불주세가, 상수불학가, 항순중생가, 보개회향가, 총결무진가 등

 

 

서동요(薯童謠)

 

善 化 公 主 主 隱 善化公主니믄

他 密 只 嫁 良 置 古 그 지 얼어두고 시상의 발상(원인)

薯 童 房 乙 맛둥바

夜 矣 卯?乙 抱 遣 去 如 몰 안고 가다. 서동과의 밀애(결과)

 

 

<작품 해제>

작자 ; 서동(薯童)

연대 ; 신라 진평왕 때(599년 이전), 백제 무왕의 젊은 시절

갈래 ; 4구체(전래되어 온 민요가 정착됨)

성격 ; 참요(讖謠-예언, 암시하는 노래.), 풍자적(諷刺的)

주제 ; 선화 공주에 대한 연정(戀情), 선화 공주의 은밀한 사랑, 선화 공주의 비행 풍자, 결혼 계략

의의 ; 현전하는 가장 오래 된 향가 작품이다.

민요가 4구체 향가로 정착한 유일한 노래이다.

향가 중 유일한 동요(童謠)이다.

서동 설화가 노래의 배경 설화가 되고 있다.

 

<시어시구 풀이>

善化公主니믄 - 선화 공주님은. 선화 공주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임.

그 지 - 남 모르게

얼어 두고 - 정을 통하고, 정을 맺고, 시집가 놓고. ‘얼다시집가다, 혼인하다, 정을 통하다의 뜻임.

맛둥바- 맛둥 도련님을, 서동이를. ‘감자’, ‘아이맛둥薯童이다(마를 파는 아이). ‘은 접미사로 오늘날 ‘-뱅이’(주정뱅이, 게으름뱅이 등)과 같은 것이다. ‘사람[男子]에 쓰이던 말임.

[夜矣] - 밤에. [卯乙] - 몰래. 안고 가다[抱遺去如] - 안고 가다.

 

<핵심 노트>

1. 현전하는 최고의 향가로 민요가 4구체 향가로 정착된 것이다.

2. 일종의 참요(讖謠)로 주객(主客)이 전도되어 있다.

3.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애정관과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는 사랑의 세계가 담겨 있다.

4. 4구체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대 가요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다.

 

 

 

<감상의 길라잡이>

이 노래는 일종의 참요(讖謠)로 서동의 잠재적 갈망을 선화 공주란 상대편에 전가시킨 것이다. 따라서, 주객을 전도시킨 데 수사적 특징이 있다. 국경을 뛰어 넘고 신분의 귀천을 초월한 낭만적인 한 소년의 사랑이 이 노래에 응집되어 있으며,그 꿈이 장애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는 어떤 깊은 문학적 배경은 의식하기 어렵다. 다만, 설화의 내용에서처럼 한 영웅의 일대기가 차지하는 에피소드로 이해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서동이 앙숙인 신라의 선화 공주를 연모하여 감자 캐는 아이로 변장하여 신라에 잠입, 이 노래를 아이들에게 퍼뜨려, 부모의 질책을 받고 쫓겨난 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었으며, 그 후 서동은 자라서 백제 무왕이 되었다고 한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고대인들의 강한 정열과 순진하고 소박한 노래로서 고대 동요(童謠)의 전형적 형식을 띠고 있다.

<배경 설화>

백재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이다. 그의 어머니가 과부로, 백제의 서울 남쪽에 있는 연못가에 살고 있었는데, 그 못 속의 용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가 뒷날 무왕이다. 워낙 위인이 그릇이 크고 도량이 넓어 장차 큰 인물이 될 바탕을 갖추고 있었으나, 어려서는 마를 태어 팔아 생계를 이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마동[薯童]이라 불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 공주가 세상에 다시 없는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마동은 중의 행색으로 차리고 신라의 서울 경주로 몰래 들어가, 마를 가져다가 그 곳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노래(서동요)를 지어서 아이들이 부지런히 부르게 하였다. 얼마 후, 이 노래는 경주 일대에서 모르는 이가 없게 되고, 드디어 궁궐에까지 퍼져 들어가자, 진평왕은 몹시 노여워했고, 만조 백관들도 공주의 비행을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왕은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대궐을 쫓겨나는 공주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왕비는 딸을 그냥 떠나 보낼 수 없어서 순금 한 말을 왕이 모르게 주어 보냈다. 공주가 귀양살이 길에 올랐을 때, 마동이 나타나 공주에게 인사를 올리고 함께 모시고 가겠다고 하니, 슬픔에 잠긴 공주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믿어지고 기뻐서 동행하도록 했다. 날이 가고 길이 가까워질수록 공주는 마동이 미덥고 좋아져서 두 사람은 급기야 결혼을 했다. 그제서야, 그가 마동임을 알고 자기가 쫓겨나게 된 까닭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삼국유사(三國遺事) 2>

<서동요에 대한 이설(異說)>

이 노래에 대한 사연으로 보아 이는 무왕 시대의 것이라는 설[이병도]과 백제가 망할 무렵에 신라 군졸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하여 퍼뜨린 연기설화(緣起說話)라는 설[황수영] 등이 있다.

 

처용가(處 容 歌)

東 京 明 期 月 良

夜 入 伊 遊 行 如 可

入 良 沙 寢 矣 見 昆

脚 烏 伊 四 是 良 羅 역신의 침범

二 肹 隱 吾 下 於 叱 古

二 肹 隱 誰 支 下 焉 古

本 矣 吾 下 是 如 馬 於 隱

奪 叱 良 乙 何 如 爲 理 古 처용의 관용

 

<작품 해설>

서울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마는(내 아내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양주동 해독)

<작품 해제>

작자 ; 처용(處容)

연대 ; 신라 헌강왕(875-885)

갈래 ; 8구체 향가(44조의 민요조로 됨)

표현 ; 향찰로 표기, 직서적(直敍的)인 표현

성격 ; 주술적 무가(巫歌), 축사(逐邪)의 노래

제재 ; 아내, 역신(疫神)

주제 ; 귀신을 쫓아냄[축사(逐邪)]

의의 ; 벽사 진경(辟邪進慶-간사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함)의 소박한 민요에서 형성된 무가이다.

의식무(儀式舞), 또는 연희의 성격을 띠고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계속 전승되었다.

출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2

<시어시구 풀이>

- 서울. 여기서는 경주 - 밝은 달()

밤 드리 - 밤 들게, 밤이 늦도록 노니다가 - 노닐다가, 놀며 지내다가

드러 - 들어와 - 다리가, 가랑이가 가[] + (주격조사)

네히어라 - 넷이로구나. - 빼앗겼음을, 빼앗긴 것을.

내해엇고 - 내 것이어니와, 내 아내의 것이어니와. ‘내 것이라는 직접소유로 표현하여 강조함.

엇디릿고 - 어찌 할 수 있으리오?

드러 자리리 네히어라 - 역신이 아내를 범하고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엇디릿고 - 이미 다른 사람의 여인이 되어 버린 상황에 대한 체념으로 보기도 하며, 자신의 아내까지도 대상에게 바치는 관용적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요점 노트>

1. 벽사 진경(辟邪進慶)의 민속에서 형성된 무가(巫歌)이다.(무가-처용은 무신으로 볼 수 있다.)

2.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의식무, 또는 연희로 계승되었다.

3. 체념과 관용을 바탕으로 무가의 성격을 띠며, 무속적으로 전승되었다.

4. 해가, 원가, 도솔가, 혜성가 등과 함께 주술성(呪術性)이 깃들어 있다.

5. 귀신이 감복한 것은 처용의 관용적 태도 때문이다.

 

<감상의 길라잡이>

이 노래는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처용랑이 역신(疫神)을 쫓기 위해 지어 부른 8구체 향가이다. 이 노래의 변형이 고려 시대 처용가로서, <악학궤범(樂學軌範)><악장가사(樂章歌詞)>에 실려 있으므로 향찰(鄕札)로 표기된 어려운 향가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를 얻은 것이다.

이 노래의 내용에 대해서 민속학적 관점에서 처용을 무속과 관련지어 보려는 견해와 정치사의 관점에서 처용을 지방 호족(豪族)의 아들로 보려는 견해, 신라 시대에는 멀리 서역(西域) 지방과도 교역이 있었다고 보아 처용을 이슬람 상인으로 보려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러나 민족학적 관점에서 처용을 무속과 관련지어 보려는 견해가 우수하다. 그 까닭은 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자고 있는 것을 보고도 노래를 부르며 춤추며 물러났다고 하는 것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무격(巫覡) 사회에만 있는 풍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악신(惡神)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낸다는 풍습에서 한국인의 여유에 찬 생활의 예지를 볼 수 있다.

이 노래의 절정은 7행과 8행이다. 이는 체념적인 주사(呪詞)로 볼 수 있으나 오히려 처용의 시황(초극적인 이미지)을 부각시킨 것으로 후대로 오면서 벽사(辟邪)의 위력으로 발전한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이를 무가의 일종으로 보아 악신을 보내는 뒷전풀이로 이해하지 않고는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무속에서는 악신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내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

 

<처용 설화>

헌강왕 시대는 태평 세월이었다. 왕이 어느날 개운표에 나가 놀고 있는데, 구름과 안개가 끼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신하에게 물으니 이것은 동해(東海) ()의 조화이므로 좋은 일을 행할 것을 아뢰었다. 왕이 근처에 절을 세우라 하니, 구름과 안개가 개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을 개운포 (開雲浦)라 이름지었다.

한편, 동해 용은 매우 기뻐하여 아들 일곱 명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타나서 인사를 하고, 그 중 한 아들을 두고 갔는데, 그가 처용으로서, 왕이 미녀를 아내로 삼아 같이 살게 하였다. 그 아내가 매우 아름다워서, 역신(疫神)이 탐을 내어 사람으로 변하여 처용이 없는 사이에 몰래 동침하였다. 밖에서 돌아온 처용이 이를 보고 처용가의 내용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처용이 역신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 것에 탄복한 역신은 그에 감격하여, 앞으로는 처용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이 때 처용이 처음 부른 노래를 처용가라 하고, 그 춤을 처용무라 한다.

 

 

<참고 사항>

처용희(處容戱)

신라고려조선 시대에 걸쳐 계속 전승되어 온 구나 의식무(驅儺儀式舞)이면서 연극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가면을 쓰고 잡귀를 물리치는 것은 구나 의식의 보편적인 방식의 하나이며, 부락 굿에서도 그러한 예를 흔히 찾을 수 있다. 처용은 신()인 동시에 인간이며, 인간적인 감정을 지니고 역신(疫神)과 대결한다는 점에서는 처용희를 연극이라고 말한다. 긋에서 연극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이 처용희의 근본적 성격이겠으나,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이 복합되어 실제 공연하던 처용희를 이루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의 처용희는 용신(龍神), 산신, 불교 의식의 복합이고, <악학궤범>에 전하는 처용희는 처용이 오방(五方) 처용으로 되어 연화무학무(蓮花舞鶴舞)와 복합되어 있으며, 여기(女妓)가 처용가에 있어서 봉황음 삼진작(鳳凰吟三眞勺) 등의 다른 노래를 하도록 되어 있다.

고려와 조선의 처용희는 주로 궁중에서 거행되는 세말(歲末)의 나례(儺禮)에서 공연되었으나, 민간의 처용희도 있었다. 의식무(儀式舞)로서의 기능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놀이로서의 성격이 확대되었다. 영조 이후에는 중단되었다가 1920년대에 <악학궤범>에 의거해서 다시 시작해 오늘날에 전한다.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咽 鳴 爾 處 米

露 曉 邪 隱 月 羅 理

白 雲 音 遂 于 浮 去 隱 安 攴 下

沙 是 八 陵?隱 汀 理 也 中

耆 郞 矣 皃 史 是 史 藪 邪

逸 烏 川 理 叱 磧 惡 希

郞 耶 持 以 攴 如 賜 烏 隱

心 未 際?叱 肹 遂 內 良 齊

阿 耶 栢 史 叱 枝 次 高 攴 好

雪 是 毛 冬 乃 乎 尸 花 判 也

 

열치매 열어 젖히니

나토얀 리 나타난 달이

구룸 조초 안디하 흰구름 쫒아 떠가는 것이 아닌가

작자가 달에게 묻는 말

새파나리여새파란 냇물에

耆郞(기랑) 이슈라 기랑의 모습이 있어라

일로 나릿  지금부터 냇물의 조약돌에

()디니다샤온 기파랑이 지니시던

  좇누아져 마음 끝을 따르고자

달이 대답하는 내용

아으 잣가지 노파 아아, 잣나무 가지 높아

서리 몯누올 화반(花判)이여 서리 모르는 화랑의 장이시여

작자의 독백

 

<작품 풀이> (구름을) 열어 젖히매 나타난 달이 흰구름을 따라 (서쪽으로) 떠 가는 것이 아니냐? 새파란 냇가에 기랑의 모습이 있구나 이로부터 냇가 조약에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따르련다. 아아, 잣가지 높아 서리를 모를 화랑이시여.

 

 

 

<작품 해제>

작자 ; 충담사

연대 ; 신라 경덕왕(742765)

갈래 ; 10구체 향가

표현 ; 은유법, 상징법, 문답법

성격 ; 추모가, 예찬가, 서정시

제재 ; 기파랑의 인격

주제 ; 기파랑의 고매한 인품을 추모, 기파랑의 이상과 절조(節操)에 대한 찬미

의의 ; 향가의 백미(白眉)-‘제망매가와 더불어 표현 기교와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없는 순수한 서정시이다.

출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2

 

<시어시구 풀이>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 기파랑의 찬미하는 노래. ‘()’은 찬미, ‘()’은 화랑, ‘()’는 노래라는 뜻이고 기파(耆婆)’는 범어이다.

열치매 - 열어 젖히매, 여니까. ‘열치매의 주어를 작자로 보면 목적어는 창문이 되고, 주어를 바람으로 보면, 목적어는 구름이 된다.

- 떠나가는, 흘러가는 안디하 - 아닌가?(의문형), 아니여.

나리 - 시내, . 신라어 나리>나이(탈락)>(축약) 이슈라 - 있도다. 있구나.

일로 - 이로부터, 이로 해서, 이러므로, 이제부터  - 조약돌에.  - 마음의

 - 한계를, 자취를. 여기서는 기파랑의 훌륭한 인품, 이상(理想)을 가리킴.

좇누아져 - 따라 가고자. 쫓아 가고 싶구나, 따르고 싶구나.

가지 - 잣나무 가지. 여기서는 높은 인격, 고매한 절개, 강직한 성품을 상징하고 있다.

서리 - 여기서는 시련, 역경 등의 세속적 유혹을 비유. 몯누올 - 모르실, 모르올

화반 - 화랑의 우두머리, ‘으로 읽힘은 음차임. 존칭의 뜻인 ()’ 또는 의 뜻이다.

열치매안디하 - (바람이 구름을) 열어 젖히매 나타난 달이 흰구름 쫓아서 떠 가는 것이 아닌가?. ‘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존재로 광명혹은 염원을 상징한다. 달은 서정적 자아가 바라보는 광명의 달이며, 그를 통하여 기파랑의 고결한 자태를 그려볼 수 있는 존재이다. =기파랑, 구름=기파랑을 따르는 무리로 해석되기도 한다.

새파이슈라 - 냇물에 비친 달이 기랑의 모습처럼 아름답구나. ‘나리는 기파라의 인품을 상징한다.

13행에서는 천상적인 것으로 읊고, 45행에서는 지상적인 것으로 연관시키고 있다.

일로 나리ㅅ~좇누아져 - 이로부터 냇물의 조약돌에 깃들인 것과 같은 기파랑의 원만한 인품의 한구석이나마 따르고 싶구나. 달이 작자에게 답하는 형식을 취한 답사로서, 작자가 기파랑을 사모하는 정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냇물조약돌은 기파랑의 원만한 인품을, ‘마음의 끝은 기파랑의 훌륭한 인품을 비유한 말이다.

아으 잣가지화반이여 - 높은 이상과 굳은 절개로 어떠한 시련이나 유혹도 물리치실 화랑의 우두머리여. 작자의 독백인 결사(結辭) 부분으로 신라의 이상적인 남성상인 기파랑의 인격을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의 정신적 숭고함을 찬양하고 있다. ‘잣가지는 기파랑의 고매한 인품을, ‘서리는 고난과 역경을 각각 은유하는 말이다.

구성과 소재의 상징성

<요점 노트>

기파랑의 고매한 인품을 추모하여 부른 노래로 숭고미(崇高美)가 잘 표현되어 있다.

대상과의 문답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정신적인 의미가 자연물(냇물, 조약돌, 잣가지)을 통해 표상되고 있다.

수평적인 시선과 수직적인 시선이 교차되고 있으며, 영원한 것과 찰라적인 것,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흰색과 푸른색의 대조를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

 

구 분 소재(보조관념) 속성(원관념)
문사 작자가 달에게 물음(13)
답사 달이 작자에게 답함(48) 냇물 맑고 깨끗한 모습
조약돌 원만하고 강직한 인품
결사 작자의 독백(910) 잣나무 고결한 절개

 

<감상의 길라잡이>

이 노래는 기파랑이 화랑으로서 평소에 지녔던 인품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자연물인 달과의 문답의 형식을 통하여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 이 노래는 달과의 문답을 통하여 기파랑의 인품을 찬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흰색과 푸른색의 대조를 통하여 기파랑의 인품을 표상하고 있다. 새파란 내와 달과 조약돌의 흰색이 이루는 대조, 서리가 내린 땅과 푸른 색의 잣나무가 그것이다. 공간적으로도 수평적인 것들인 구름, 시내, 냇가, 지상 등과 수직적인 달, 시내 속의 달, 마음의 끝, 잣나무 등이 꽉 짜인 공간적 조형미를 구축하고 있다.

냇물, 조약돌, 서리, 잣나무 등 찬기파랑가가 지닌 이러한 고도의 상징적 표현은 향가의 문학성이 매우 높았음을 짐작하게 하며, 고려 시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상적인 면이 전혀 없고 미래 지향적이고 진취적인 기상과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모죽지랑가(慕 竹 旨 郞 歌)

 

去 隱 春 皆 理 米

毛 冬 居 叱 沙 哭 屋 尸 以 憂 音

阿 冬 音 乃 叱 好 支 賜 烏 隱

皃 史 年 數 就 音 墮 支? 行 齊

目 煙 廻 於 尸?七 史 伊 衣

逢 烏 支 惡 知 作 乎 下 是

郞 也 慕 理 尸 心 未 行 乎 尸 道 尸

蓬 次 叱 巷 中 宿 尸 夜 音 有 叱 下 是

 

간 봄 그리매 간 봄을 그리워함에

우리 시름 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구나

지나간 젊음에 대한 회한

나토샤온 아름다움 나타내신

 살쯈 디니져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 하는구나

늙음의 안타까움

눈 돌칠 이예 눈 깜짝할 사이에

맛보디 지리 만나 뵈올 기회를 지으리라

그리움에 대한 충동

이여 그릴  녀올 길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

다봊  잘 밤 이시리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까

만날 수 없음에 대한 탄식

 

 

<작품 풀이>

(지나간) 봄 그리매 / 모든 것사 설어 시름하는데 / 아름다움 나타내신 / 얼굴이 주름살을 지니려 하옵내다. / 눈돌이킬 사이에나마 / 만나뵙도록 지으리이다. / 낭이여 그릴 마음의 녀올 길이 /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 있으니까? <양주동>

지나간 / 봄 돌아오지 못하니 / 살아계시지 못하여 우올 이 시름. / 전각(殿閣)을 밝히오신 /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 가도다. / 눈이 돌음 없이 저를 /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 / () 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 / 다북 굴헝에서 잘 밤 있으리. <김완진>

 

<작품 해제>

작자 ; 득오

연대 ; 신라 효소왕

형식 ; 8구체 향가

성격 ; 추모시, 추념시(追念詩)

제재 ; 죽지랑의 인품

주제 ; 죽지랑에 대한 사모, 연모의 정

의의 ; 뛰어난 인품의 화랑의 세계를 보여주는 서정적인 작품이다.

여성적인 감정 표현을 보여주는 순수 서정시이다.

출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2

 

<시어시구 풀이>

간 봄 - 지나간 봄. 그리매 - 그리워함에, 그리워서

우리 시름 - 울어 시름, 슬피 울면서 시름(하고 있는데)

- 아름다움. ‘아름답다의 명사형(名詞形) 나토샤온 - 나타내신

- 모양이, 용모가. >(전설 모음화)-용모, 모양

살쯈 - 주름살. 디니져 - 지니려 하는구나, (주름살이) 잡히려 하는구나.

눈 돌칠 - 눈을 돌릴, 눈 깜박할. 이예 - 사이에, 동안에

맛보- 만나 보기를, 만나 뵙도록. - 지으리, 되오리.

그릴 - 그리워하는, 그리운. 녀올 길 - 갈 길이

다봊 굴허헤 - 다북쑥 굴헝에, 쑥이 무거진 마을에, 험한 구렁에, 무덤에.

잘 밤 - 잘 밤이 이시리 - 있을까?

간 봄우리 시름 - 지나간 봄은 죽지랑이 살아 있을 때로서,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슬퍼한다.

나토샤온살쯤 디니져 - 아름답던 얼굴은 눈에 선한데, 주름살이 생기고 결국은 죽었구나.

눈 돌칠- 사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을 것인즉, 나도 저 세상에서 만나 뵈옵기를 지오리(만들 것이다).

다봊 굴허헤 잘 밤 이시리 - ‘다봊 굴허무덤또는 저 세상으로, 거기에서 함께 잠들 밤이 있을 것이다. 죽어서 다시 만날 것이다는 의미이다.

<요점 노트>

여성적인 감정 표현을 보여 주는 순수 서정시로 죽지랑에 대한 연모의 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감상의 길라잡이>

득오는 자기를 도와 준 일이 있는 죽지랑의 인격이 뛰어나고 고매하여 늘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가 죽자 이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고 전한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행여 무심치 않게 된다면 저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함께 잠들 날이 있으리라는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이 시간이 흘러 갈수록 더욱 짙어짐을 나타낸 순수 서정시이다. 이 노래는 신라 향가 중, ‘찬기파랑가와 함께 화랑을 그린 시의 쌍벽으로서 시의 감정 표현이 여성적 발상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으며 이런 점에서 후대의 정과정이나 정철의 양미인곡과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 작품에는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과 인생 무상을 느끼는 서정만이 나타날 뿐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다른 작품에 비해 적다는 점에서 시가의 순수 서정화에 진전을 보인 작품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4. 설화의 이해와 감상

 

(1) 설화

: 설화는 이야기 문학의 하나이다.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를 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설화는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이야기에 대한 믿음이나 인식의 정도에 따라 신화 전설 민담으로 구분된다.

 

(2) 신화

: 모든 자연 현상을 인격화하거나 주력(呪力) 또는 마술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의 하나, 세계의 기원과 본체에 관한 천지 창조의 신화, 건국 신화, 시조 신화, 부락 신화 등으로 구분되는데, 주인공은 영웅적인 활동을 통하여 목적한 과업을 수행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영웅 소설의 주인공에게 계승된다.

 

*건국 신화의 기본 구조

 

고귀한 혈통을 타고 난다. 비정상적으로 태어난다. 비범한 자질을 지닌다. 버림을 받고 고난을 겪는다. 구출자, 양육자를 만나 살아난다. 위기를 극복한다. 투쟁에서 승리하여 영광을 차지한다.

 

(3) 전설

: 신화가 형성된 시기보다 훨씬 후에 형성되었고, 신화보다 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이야기로서, 실재하는 장소, 시대, 인물들을 구체적 내용으로 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전설은 특정한 지역에 한정되어 전승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집되어 전하는 것이 많지 않다. 사찰의 건립이나 역사적 인물의 일화와 관련된 전설이 대부분이다. 전설은 신화에 비해 개인적이고 특수한 정황에 중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4) 민담

: 흥미를 위주로 엮어지는 이야기로서, 뚜렷한 시간과 장소가 없으면서도 체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 생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어서 쉽게 기억 구연되며 재창조된다. 사건에 대한 아무런 증거물이 없는 창조적인 이야기, 즉 허구의 세계이다. 민담에 나타나는 제재나 내용은 범세계적이다. 일반적으로 민담에는 일상적 인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성취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이러한 민담의 성격 때문에 그 전승의 주체는 일반 서민인 경우가 많다. '혹부리 영감', '콩쥐팥쥐' 등의 내용과 유사한 이야기가 여러 나라에 퍼져 있는데, 이는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이 보편성을 띤다는 점의 증거가 된다.

 

 

(5) 설화의 유형 비교

구분 신화 전설 민담
전승자의 태도 신성성 인식 진실성을 믿음 흥미와 교훈 위주
시간 및 장소 태초의 시간, 신성한 장소 구체적 시간, 장소 서사적 과거, 불특정장소
증거물 포괄적 증거물 특정의 개별 증거물 없거나 포괄적 증거물
주인공 신 중심
(성씨의 시조 포함)
인간 중심 일상적 인물
주인공의 행위 신적 능력 발휘 예기치 않는 사태에 좌절 인간적 행동, 초월자의 도움
결구의 특징 숭고함, 종교적 비극적, 운명론적 희극적, 낙천적
전승 범위 민족적, 씨족적 지역적 범세계적
자아와 세계의 관계 자아 = 세계
(동질성시대)
자아 < 세계
(자아의 좌절 )
자아 > 세계
(자아의 우위)

 

 

6) 공통적 특징

 

: 한민족의 생활 감정과 풍습을 드러냄. 상상적, 공상적, 서사적임. 개성미가 없으며 예술성이 높지 않음. 전기적(傳奇的), 우화적인 요소를 지님. 구전되는 문학임.

 

(6) 특징

: 설화의 가정 큰 특징은 구전(口傳)된다는 점이다. 설화는 반드시 화자가 청자를 대면하여 청자의 반응을 의식하며 구연(口演)된다. 따라서, 구전에 적합하도록 단순하면서도 잘 짜여진 구조를 가지며, 표현도 복잡하지 않다. 그리고 구전되기 때문에 보존과 전달 과정은 유동적이며 가변적(可變的)이다. 이러한 구비 전승되는 설화를 문자로 정착시키면 문헌 설화가 되고, 설화를 정착시켜 기록 문학적 복잡성을 가미하면 소설이 된다. 설화에서 소설로의 이행은 기록 문학적 복잡성을 가미하면 소설이 된다. 설화에서 소설로의 이행은 구비 문학이 기록 문학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설화 중 민담의 일부는 전래 동화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5. 한시의 이해와 감상

 

(1) 개념 : 한시(漢詩)는 원래 중국의 전통시를 말하는데, 중국 문학사에서 시가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당()나라 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민요의 정착에서 비롯되었으리라고 보이는 한시는 시대의 변천과 함께 그 형식을 갖추어 오다가 당나라 때에 이르러 엄격한 규칙을 수반하는 전형(典型)이 확립되었다. 이 엄격한 규칙을 수반하는 당나라 이후의 한시를 근체시(近體詩)라 하고, 그 이전의 시를 고체시(古體詩)라고 나누는데, 근체시에는 기본적으로 음수율, 시행율, 음위율, 음성률이 적용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의 엄격한 규칙이 따른다.

 

(2) 특징 : 시체(詩體)의 종류는 한 구()의 잣수와 한 편의 구수(句數)에 의하여 나누어진다.

1) 고체시(古體詩)

고시(古詩)-사언 고시, 오언 고시, 칠언 고시

악부(樂府)-장구(長句), 단구(短句)

2) 근체시(近體詩)-당나라 때부터 발달한 시체(詩體)로 심전기, 송지문 등에 의해 수립되었으며 구수(句數)에 따라 4구로 이루어진 것을 '절구(絶句)', 8구로 이루어진 것을 '율시(律詩)'라 한다. 또 구수에 별 제한이 없이 자유로운 것을 '배율(排律)'이라 한다.

절구-한 수가 4구로 된 것. 오언 절구(1구가 5×4) 칠언 절구(1구가 7×4)

율시-한 수가 8구로 된 것. 오언 율시(1구가 5×8) 칠언 율시(1구가 7×8)

배율-한 수의 구수가 제한이 없는 시형. 오언 배율(1구가 5×12구 이상) 칠언 배율(1구가 7×12구 이상)

 

한시구의 명칭-절구에서는 제1구를 기구(起句)[발상 단계;시상을 불러 일으킴], 2구를 승구(承句)[전개 단계;기구를 이어받아 시상을 확대 발전시킴-서경], 3구를 전구(轉句)[전기비약 단계;시상에 변화를 주어 전환시킴], 4구를 결구(結句)[총괄 단계;전체의 시상을 주제 속에 담아 마무리 지음-서정]라 하고, 율시에서는 12구를 수련(首聯), 34구를 함련( ), 56구를 경련(頸聯), 78구를 미련(尾聯)이라 부른다.

 

압운법-한자는 초종성의 세 가지 소리로 갈라 초성을 '자모(字母)'라 하고, 종성을 합해서 운모(韻母)라 한다. 이 운모를 같은 계통의 글자로 맞추는 것을 '압운(押韻)'이라 하고 한 수의 시 안에서 압운된 글자를 '운자(韻字)'라 한다. 그런데 이 운자는 옛 운서에 따라 고음(古音)대로 쓰므로 현대음과 다른 것도 있다. 압운(押韻)하는 자리는 다음과 같다.

 

절구 오언 절구 - 2()4()구의 끝 자

칠언 절구 - 1()2()4()구의 끝 자

율시 오언 율시 - 2, 4, 6, 8구의 끝 자

칠언 율시 - 1, 2, 4, 6, 8구의 끝 자

(3) 형식 : 한시는 그 음률(音律)의 아름다움을 특히 중히 여겨서 일정한 형식과 규칙(중국어의 특성에 맞게 이루어짐)에 따라 짓게 되어 있다.

각 구()는 일정한 낱말 수를 갖추어야 한다.[음수율]

정해진 구의 끝 글자는 운()에 딸리는 글자를 넣어야 한다.[음위율]

구 속의 각 글자는 평측에 맞게 배정되어야 한다.[음성률]

한 수()의 시는 일정한 구수를 따라야 한다.[시행률]

 

(4) 주요 한문학 작품 일람표

여수장우중문시(고구려 영양왕, 을지문덕)-수나라 장군 우중문을 비웃은 오언 시로, 살수 대첩과 함께 고구려인의 기상이 엿보인다.

치당태평송(신라 진덕여왕, 진덕여왕)-진덕여왕이 당나라 태종에게 바친 당나라의 태평을 기린 시로 굴욕적인 외교의 대표적인 시.

화왕계(신라 신문왕, 설총)-꽃을 의인화하여 정치를 풍자한 단편 산문으로서 국문학사상 창작 설화의 효시.

왕오천축국전(신라 성덕왕, 혜초)-혜초가 인도의 다섯 나라를 여행하며 견문한 것을 기록한 기행문. 돈황에서 발견.

토황소격문(신라 헌강왕, 최치원)-최치원이 당에 가 있을 때 황소가 난을 일으키자 이 글을 지어 문명(文名)을 날림.

계원필경(신라 헌강왕, 최치원)-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지은 글을 귀국하여 문집으로 엮은 책.

제가야산독서당(신라 헌강왕, 최치원)-상징적인 시로 물소리에서 속세의 시비를 연상하고 이를 떨쳐 버리고 은거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함.

추야우중(신라 헌강왕, 최치원)-세상이 자신을 알아 주지 않는 울적한 마음을 표현함.

 

 

 

6. 연극의 자취

(1) 발생 : 원시종합예술의 놀이나 굿에서 분화, 후대 민속극의 원류

(2) 자취

삼 국 내용
고구려 꼭두각시 놀음
백 제 미마지가 중극에서 기악을 배워 일본에 전합
신 라 처용설화
최치원<향악 잡영 5>오기 금환
월전
대면
속독
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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