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문가(江上聞歌)
by 송화은율강상문가(江上聞歌)
江頭誰唱美人辭 강두수창미인사
正是孤舟月落時 정시고주월락시
癣璥戀君無限意 추창연군무한의
世間唯有女郞知 세간유유여낭지
강가에서 그 누가 미인사를 부르네
바로 지금 외로운 배에 달이 질 무렵에
슬프도다 연군의 무한한 정을
세상에서 아는 것은 오직 기생뿐이어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이안눌(李安訥)
갈래 : 한시, 칠언절구
주제 : 인생무상의 회포
내용 연구
미인사 : 정송강의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지칭하는 말
연군의 무한한 정을
정송강이 임금(선조)을 그리워한 그지없는 충정을 말함
오직 기생뿐이어라.
달이 질 무렵에 강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인이란 양가집 여인은 아니고 기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랑을 아가씨로 해석하지 않고 기생으로 해석함
이해와 감상
강 위에서 여인이 부르는 송강(松江)의 미인곡을 듣고, 인걸은 가고 노래만 남은 인생 무상의 회포를 읊조린 시이다. 출전 : 성수시화
심화 자료
이안눌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 덕수(德水). 자 자민(子敏). 호 동악(東岳). 시호 문혜(文惠). 1599년(선조 3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형조 ·호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예조좌랑이 되어 서장관(書狀官)으로 진하사 정광적(鄭光積)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다. 안동(安東)부사를 거쳐 1623년 인조반정 때 예조참판이 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일찍이 특진관으로 있다가 조정의 일에 시비를 가려 극언하여 고관들의 미움을 사 사직했으며, 청나라 사신이 사문(査問)하러 왔을 때 실언(失言)한 일로 인해 북변으로 귀양갔다. 정묘호란 때 용서받아 왕의 피란처인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가 되었다가 형조참판 ·함경도관찰사를 지내고 1632년(인조 10) 주청부사(奏請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定遠君)의 추존을 허락받아 원종(元宗)이라는 시호를 받아왔다. 그 공으로 예조판서에 오르고 전장(田莊)을 상으로 받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 죽은 후 청백리에 녹선되고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시문에 뛰어나 이태백(李太白)에 비유되었고, 글씨도 잘 썼다. 문집에 《동악집》이 있다. (두산동아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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