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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시사적 의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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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시사적 의미

 

  6·25는 정신사적인 면에서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의 심화라는 부정적 측면과 함께 민족과 개인의 재발견이라는 소중한 측면을 제시함과 아울러 문학사에도 커다란 충격파를 형성하였다. 을유 해방 이래 문학적 이념에서보다는 다분히 정치적 현실에 기인하여 분리되었던 남과 불의 문학인들은 전쟁 수행에 따른 민족 이동과 함께 월남 혹은 월북하여 문단의 재편성이라는 결과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6·25는 이러한 문단사적 변화 외에도 문학 내적인 면에서 다양한 변모를 초래하였다. 먼저 6·25는 서구적 문학 양식의 유입으로 한국어의 문학적 특히 시적 가능성을 개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하 일본어의 기미에서 벗어나려던 한국어의 투쟁은 영어라는 또 다른 외국어와 정면으로 맞부닥뜨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시는 서구시의 새로운 감수성과 기법에 직접 충돌함으로써 전통 단절론의 대두와 함께 새삼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이에 부수되는 시사적 문제점들을 제기하도록 강요당하였다. 전쟁의 테러리즘에 의한 언어와 상상력의 파괴와 함께 문화의 복잡다기화에 따른 사조의 혼류는 전후의 한국시가 훨씬 혼란되고 난삽성을 지닐 수밖에 없게 하는 요인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6·25는 전쟁의 거대한 폭력 속에서 한국시의 자생적 응전력을 길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상황에 대한 치열한 대응 자세를 보여줌과 함께 상황을 존재속에 수용하여 정신적인 에너지로 내면화함으로써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파산을 극복할 수 있는 시적 응전력을 길러주었기 때문이다.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이라는 지정학적 불리한 여건하에서 험난한 역사를 살아온 한국인들은 6·25는 분단의 비극하에서나마 1960년대 및 1970년대로 이어지는 한국시의 기본 의미망을 형성해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후시는 해방 전의 시적 질서를 해체하여 목적시로서의 참여시와 이에 대응하는 고전주의시, 풍자와 역설의 사회시와 이에 대응하는 존재론적 탐구의 시, 그리고 센티멘탈리즘과 휴머니즘 및 소시민 의식의 시를 형성함으로써 이후의 현대시를 심화하고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 것이다.

 

김재룡, 「현대시와 역사 의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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