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종이수염 / 소설 일부 / 하근찬
by 송화은율흰 종이수염 / 하근찬(河瑾燦)
<앞부분 생략>
2
“오-이는 십, 오-삼 십오, 오-사 이십,…….”
동길이는 중얼중얼 구구단을 외면서 신작로(新作路)를 걸었다. 이마에 맺힌 땀이 뺨을 타고 까만 목줄기로 흘러내렸다.
“아아, 덥다.”
동길이는 손등으로 아무렇게나 땀줄기를 훔쳤다. 읍 들머리에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 밑에 깔린 자갈들이 손에 잡힐 듯 귀물스럽게 떠올라 보이는 맑은 시내였다. 그 위로 인도교(人道敎)와 철교가 나란히 지나가고 있었다.
다리에 이르자, 동길이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히야, 용돌이 짜식 벌써 멱감고 있대이. 학교는 그만두고 짜식 참 좋겠다.”
그리고 쪼르르 강둑을 굴러 내려갔다.
동길이를 보자, 용돌이는 물 속에서 배꼽을 내밀며,
“동길아! 임마, 니 핵교는 안 가고, 히히히…….”
웃어 댄다.
“갔다 왔다, 짜식아.”
“무슨 놈의 핵교를 그렇게 빨리 갔다 오노?”
“돈 안 가져 왔다고 안 쫓아 내나.”
“뭐, 돈?”
“그래, 사친회비 안 냈다고 집에 가서 어무이를 데려오라 안 카나.”
“지랄이다, 지랄. 그런 놈의 핵교 뭐 할라꼬 댕기노? 나같이 때리챠 버리라구마.”
“그렇지만 임마, 학교 안 댕기면 높은 사람 못 된다. 아나?”
“개똥이다 캐라, 흐흐흐…….”
그리고 용돌이는 개구리처럼 가볍게 물 속으로 잠겨 버린다. 동길이는 물 기슭에 서서, 때에 전 러닝 셔츠와 삼베 바지를 홀랑 벗어던졌다. 이 때,
“꽤애액!”
기적 소리도 요란하게 철교 위로 기차가 달려들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기차였다. 동길이는 후닥닥 철교 쪽으로 뛰었다. 용돌이란 놈도 물에서 뿔뿔 기어 나왔다.
커더덩커더덩……. 철교가 요란하게 울리고, 그 위로 시커먼 기차가 바람을 일으키며 신나게 달려간다. 차창마다 사람들이 이 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어떤 창구에는 철모를 쓴 국군 아저씨가 담배 연기를 ‘푸우’ 내뿜고 있는 것이 보인다. 동길이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만세이!”
그리고 용돌이를 돌아보았다. 용돌이란 놈은 까닭도 없이 대고 주먹으로 감자를 내지르고 있다. 고약한 놈이다.
동길은 웬일인지 기차만 보면 좋았다.
‘울 아부지도 저런 차를 타고 척 돌아올 끼라. 울 아부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사라져 가는 기차 꽁무니를 바라보며 동길이는 잠시, 노무자로 나간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뻐근했다. 그러나 얼른
“용돌아, 임마, 내기할래?”
고함을 지르면서 후닥닥 몸을 날렸다. 풍덩! 물소리와 함께 까만 몸뚱아리가 미끄러이 물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 용돌이도 뒤따라 풍덩! 물 밑으로 잠긴다.
물고기들 부럽지 않게 얼마나 놀았는지 모른다. ‘뚜우’하고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왔을 때에야 동길이는 물에서 나왔다. 배가 훌쭉했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주워 걸치며,
“짜식아, 그만 안 갈래?”
용돌이를 돌아보았다. 용돌이란 놈은 무슨 물고기 삼신인 듯 아직도 나올 생각을 않고 풍덩거리며 벌쭉벌쭉 웃고만 있다.
“배 안 고프나?”
“배사 고프다. 그렇지만 임마, 집에 가야 밥이 있어야지. 너거 집에 오늘 점심 있나?”
“몰라. 있을 끼다.”
“정말이가?”
“짜식아, 있으면 니 줄까 봐.”
그리고 동길이는 타박타박 자갈밭을 걸었다. 다리를 지날 때 후끈한 바람결에 난데없이 노랫소리가 흘러 왔다. 극장에서 울려 나오는 스피커 소리였다. 이 무더운 대낮에 누가 극장엘 가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아리랑 시리랑…….’하고 악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동길이는 배가 고파서 그런 건 도무지 흥이 나질 않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장기가 치미는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오래 멱을 감은 탓일까? 타박타박 옮기는 걸음이 자꾸 무거워만 갔다.
3
집 사립문 앞에 이르자, 동길이는 흠칫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도 아니었다. 남자였다. 동길이는 조심조심 사립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머니는 부엌문 앞에서 무엇을 북북 치대고 있었다. 인기척에 후딱 뒤를 돌아본 어머니는 마루에 누워 있는 사람을 눈으로 가리켰다. 어머니의 두 눈에는 슬픈 빛이 서려 있었다.
동길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루에 누워 있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부지!”
동길이는 얼른 누워 있는 아버지 곁으로 가까이 갔다. 아버지는 자고 있었다. 그러나 동길이는 아버지를 향해 꾸벅 절을 했다.
‘아까 그 기차를 타고 오신 모양이지. 헤 참, 그런 줄 알았으면 얼른 집에 올걸…….’
꼬빡 2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 동길이는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시꺼멓게 탄 얼굴에 움푹 꺼져 들어간 두 눈자위, 그리고 코 밑이랑 턱에는 수염이 지저분했다. 목덜미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입 언저리에는 파리 떼가 바글바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줄도 모르고 ‘푸푸’ 코를 불면서 자고만 있었다. 동길이는 파리란 놈들을 쫓았다.
어머니가 조심스러운 눈길로 동길이를 힐끗 돌아본다. 집에 와서 갈아 입었는지 아버지의 입성은 깨끗했다. 징용에 나가기 전, 목공소(木工所)에 다닐 때 입던 누런 작업복 하의에 삼베 상의……. 그런데
“에?”
이게 웬일일까? 동길이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동길이의 놀라는 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후유’ 한숨을 쉴 따름이었다.
동길이는 떨리는 손으로 한쪽 소맷부리를 들추어 보았다. 없다. 분명히 없다. 동길이는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어무이, 아부지 팔 하나 없다.”
“…….”
“팔 하나 없어, 팔!”
“…….”
“잉?”
“…….”
말없이 돌아보는 어머니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흥건히 괴어 있었다. 동길이는 아버지가 슬그머니 무서워지는 것이었다. 어머니 곁으로 가서 부엌문에 붙어 서서도 곧장 아버지의 한쪽 소맷자락을 힐끗힐끗 건너다보았다.
어머니는 또 한 번 한숨을 쉬면서 함지박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밀가루 수제비를 뜨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손 끝에서 떨어져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물 속으로 들어가는 수제비를 보자, 동길이 배에서 ‘꼬르르’ 소리가 났다. 꿀꺽 침을 삼켰다. 아버지의 팔뚝 생각 같은 것은 이미 없었다.
수제비를 떠서 두 그릇 상에 받쳐 들고 어머니가 부엌을 나오자, 동길이는 앞질러 마루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아직 쿨쿨 자고 있었다. 아버지의 한쪽 소맷자락이 눈에 띄자, 동길이는 다시 흠칫했다.
“보이소예, 그만 일어나이소. 점심 가져왔구마.”
어머니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아버지는
“으으윽.”
한 개밖에 없는 팔을 내뻗어 기지개를 켜며 부스스 일어났다. 동길이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얼른 아버지를 향해 절을 하기는 했으나, 겁을 집어먹은 듯이 눈이 둥그래졌다. 아버지는 동길이를 보더니,
“으으……, 핵교 잘 댕기나? 어무이 말 잘 듣고?”
그리고 ‘아아욱!’ 커다랗게 하품이었다. 점심상을 가운데 놓고 아버지와 동길이가 마주 앉았다. 그 곁에 어머니는 뚝배기를 마룻바닥에 놓고 앉았다.
물씬물씬 김이 오르는 수제비……. 동길이는 목젖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후딱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 뜨끈뜨끈한 놈을 푹 한 숟가락 떠올리기가 무섭게 입을 짝 벌렸다.
아버지도 숟가락을 들었다. 왼쪽 손이었다. 없어진 팔이 하필이면 오른쪽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자 이마에 슬픈 주름을 지으며 얼른 외면했다. 그러나 동길이는 수제비를 퍼 올리기에 바빠서 아버지의 남은 손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그런덴 도무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돼지 새끼처럼 한참을 그렇게 퍼먹고 나서야 좀 숨이 돌리는 듯 동길이는 힐끗 아버지를 거들떠보았다. 아버지의 숟가락질은 도무지 서툴기만 했다.
‘아부지 팔이 하나 없어져서 참 큰일났제. 저런! 오른쪽 팔이 없어졌구나. 우짜다가 저랬는고이?’
그러고 동길이는 남은 국물을 훌훌 마저 들이마셨다. 콧등에는 맺힌 땀방울이 또르르 굴러 내린다. ‘아아.’ 이제 좀 살겠다는 것이다.
4
이튿날 아침.
“동길아, 학교 가자아!”
사립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이웃에 사는 창식이었다.
“동길아, 학교 안 갈래?”
동길은 가만히 마루로 나와 신을 찾았다.
이 때, 뒷간에서 나온 동길이 아버지가 한 손으로 을씨년스럽게 고의춤을 여미면서,
“누구냐? 이리 들어와서 같이 가거라.”라고 했다.
창식이가 들어섰다. 창식이는 동길이 아버지를 보자 냉큼 허리를 꺾었다. 그리고 동길이 아버지의 팔뚝이 없는 소맷자락으로 눈이 가자 희한한 것이라도 발견한 듯 두 눈이 번쩍 빛났다.
동길이는 신을 신고 조심조심 마당으로 내려섰다. 아버지는 동길이를 보고,
“길아! 니 책보 우쨌노?”
“…….”
동길이는 얼른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마치 저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
“응? 책보 우쨌어?”
그러자 옆에서 창식이란 놈이 가벼운 조동아리를 내밀었다.
“빼앗깄심더.”
“빼앗기다니, 누구한테?”
“선생님한테예.”
“뭐, 선생님한테?”
“예.”
“와?”
“사친회비 안 낸 아이들은 다 빼앗고 집으로 쫓았심더. 사친회비 안 가져온 사람은 방학도 없답니더.”
동길이 아버지는 입술이 파랗게 굳어져 갔다.
“아부지!”
동길이가 입을 떼었다.
“아부지, 나 학교 안 댕길랍니더.”
“뭐?”
“때리챠 버릴랍니더.”
“음.”
아버지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왈칵 성이 복받치는 듯,
“까불지 말고 빨리 갓!”
하고 고함을 질렀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어머니가 눈을 휘둥그레져서 바라본다.
동길이와 창식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창식이가
“동길아, 너그 아부지 팔 하나 없어졌제?”
했다.
“…….”
“노무자로 나가서 그랬제?”
“…….”
“팔이 하나 없어져서 어떻게 묵수질 하노? 인제 못하제, 그제?”
“몰라! 이 짜식아.”
동길이는 발끈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곧 한 대 올려붙일 기세였다. 창식이는 겁을 집어먹고 한 걸음 떨어져 섰다. 그리고 두 눈을 대고 껌뻑거렸다. 창식이는 내빼듯이 똑바로 학교로 갔으나, 동길이는 다리를 건너자 강둑을 굴러 내려갔다.
용돌이가 아직 보이지 않았으나, 그런대로 동길이는 옷을 벗었다.
대낮이 가까워졌을 무럽, 동길이는 아이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를 듣고, 다리 위를 쳐다보았다.
“외팔뚝이.”
“하나, 둘, 셋!”
“외팔뚝이.”
다리 난간에 붙어 서서 이쪽을 내려다보며 소리를 모아 고함을 질러 대는 아이들은 틀림없는 자기 학급 아이들이었다. 동길이는 귀뿌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동길이가 쳐다보자, 이번엔 한 놈씩 차례차례 고함을 질러 나간다.
“동길이 즈그 아부지 외팔뚝이.”
“외팔뚝이 새끼 목욕하네.”
“학교는 안 오고 목욕만 하네.”
맨 마지막으로,
“외팔뚝이 오늘 학교 왔더라.”
하는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리고 살금 아이들 뒤로 숨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창식이란 놈이 틀림없었다.
동길이는 온몸에 쥐가 나는 듯했다. 치가 떨렸다. 부리나케 밖으로 헤엄처 나온 동길이는 후닥닥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돌멩이는 다리 난간을 향해서 핑핑 날았다. 그러나 한 개도 거기까지 가서 닿지는 않았다.
다리 위에서는 ‘와아!’ 환호성을 울리며 좋아라 하고 웃어댄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동길이는 두 손에 돌멩이를 힘껏 쥐고 그냥 막 자갈밭을 내달았다. 강둑을 뛰어올라 다리를 향해 마구 달리는 것이었다. 빨간 알몸뚱이가 마치 다람쥐 같았다.
욕지거리를 퍼부어 쌓던 아이들은 큰 소리로 웃어 대면서 우르르 도망들을 친다. 도저히 따를 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팔매가 가서 닿을 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동길이는 손에 쥔 돌멩이를 힘껏 내던졌다.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짜식들, 어디 두고 보자. 창식이 요놈 새끼, 죽여 버릴 끼다. 요놈 새끼…….”
5
그 날 저녁, 동길이는 아버지에게 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아버지는 어디에서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익어 가지고 비칠비칠 사립문을 들어서더니 대뜸,
“길이 이놈 어디 갔노, 응?”
하고 소리를 질렀다. 손에 웬 책보 하나와 흰 종이를 포개 쥐고 있었다. 마루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동길이와 어머니는 눈이 둥그레졌다.
“아, 이놈 여기 있구나. 니 오늘 어딜 갔더노? 핵교 안 가고 어딜 싸돌아 댕기노. 응?”
마루에 올라와 덜커덩 엉덩방아를 찧으며 눈알을 부라렸다.
“아이구, 어디서 저렇게 술을…….”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밥상을 가지러 일어선다.
“아, 오늘 김 주사가 한턱 내더라. 우리 목공소 주인 김 주사가 말이지, 징용 나가서 고생 많이 했다고 한턱 내더라니까. 고생 많이 했다고……. 팔뚝을 하나 나라에 바쳤다고……. 으흐흐흐흐…….”
그러고는 또,
“이놈! 너, 오늘 와 핵교 안 갔노, 응? 돈이 없어서 안갔나, 응? 응? 이 못난 자식아! 뭐, 핵교를 안 댕기겠다고?”
하고 마구 퍼부어 댄다.
“이놈아, 오늘 내가 핵교에 갔다. 핵교에 갔어. 너거 선생 만나서 다 얘기했다. 이봐라, 이놈아! 내 팔이 하나 안 없어졌나. 이것을 내보이면서 다 얘기하니까 너거 선생 오히려 미안해서 죽을라 카더라. 죽을라 캐. 봐라, 이렇게 책보도 안 받아 왔는강.”
아버지는 책보를 동길이 앞에 불쑥 내밀었다. 동길이는 책보와 흰 종이를 한꺼번에 받아 안으며 모가지를 움츠렸다.
“이놈아, 아버지가 징용에 나갔다고 선생님한테 와 말 못하노. 아부지가 돌아오면 다 갖다 바치겠다고 와 말을 못하노 말이다. 입은 뒀다가 뭐 할라 카는 입이고?”
“아부지 노무자 나갔다고 캤심더.”
동길은 약간 뾰로통해졌다.
“뭐, 이놈아? 니가 똑똑하게 말을 못 했으니까 그렇지. 병신 자식 같으니…….”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와서 아버지 앞에 놓으며,
“자아, 그만하고 어서 저녁이나 드이소.”
했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밥을 떠올릴 생각은 않고 연방 떠들어 댄다.
“내가 비록 이렇게 팔이 하나 없어지긴 했지만, 이놈아, 니 사친회비 하나를 못 댈 줄 아나? 지금까지 밀린 것 모두 며칠 안으로 장만해 준다. 방학할 때까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장만해 준단 말이다. 오늘 너거 선생님한테도 그렇게 약속했다. 문제 없단 말이다. 애비의 이 맘을 알고 니가 더 열심히 핵교에 댕기야지, 나 핵교 때리챠 버릴랍니더가 다 뭐꼬? 이눔으 자식! 그게 말이라고 하는 기가?”
동길이는 그만 울먹울먹해졌다. 그러나 한사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밥을 몇 숟갈 입에 떠 넣다가 별안간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이번에는 어머니에게,
“이봐, 나 오늘 취직했어, 취직, 손이 하나 없으니까 목수질은 못 하지만 그래도 다 써먹을 데가…….”
정말인지 거짓부렁인지 알 수는 없는 소리를 대고 주워섬긴다.
“아니, 참말로 카능교? 부로 카능교?”
“허, 부로 카긴 와 부로 캐. 내가 언제 거짓말 하더나?”
“……”
“극장에 취직이 됐어. 극장에…….”
“뭐, 극장에요?”
“그래, 와. 나는 극장에 취직하면 안 될 사람이가? 그것도 다 김 주사 덕택이란 말이여, 팔뚝을 한 개 나라에 바친 그 덕택이란 말이여, 으흐흐흐……. 내일 나갈 적에 종이로 쉬염을 만들어 갖고 가야 돼. 바로 이 종이가 쉬염 만들 종이앙이가.”
동길이가 책보와 함께 받아 가지고 있는 흰 종이를 숟가락으로 가리켰다.
때마침 저녁 손님을 부르는 극장의 스피커 소리가 우렁우렁 울려 왔다.
“을씨고, 저 봐라, 우리 극장 선전이다. 이래 봬도 나도 내일부턴 극장 직원이란 말이여, 직원. 으흐흐…….”
그러고는 벌떡 일어서서 흘러오는 노랫소리에 맞추어 우쭐우쭐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나밖에 없는 팔을 대고 내저으며 제법 궁둥이까지 흔들어 댄다. 꼴불견이다. 동길이는 낄낄낄 웃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아이구, 무슨 놈의 술을 저렇게도 마셨노.?쯧쯧쯧…….”
하고 혀를 찼다.
‘아리아리랑 시리시리랑…….’하며 돌아 쌓던 아버지는 그만 방 아랫목에 가서 벌떡 드러누우며
“아으흐.”
하고 괴로운 소리를 질렀다.
“밥 그만 잡숫능교?” 어머니가 묻자
“안 먹을란다.”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는 훌쭉훌쭉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두 눈에서 솟구친 눈물이 양쪽 귓전으로 추적추적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동길이는 도무지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덩달아 코끝이 매워 왔다.
6
부엌에서 달그럭거리는 소리에 동길이는 눈을 떴다. 어느 새 아버지는 일어나서 윗목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을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동길이는 발딱 몸을 일으켰다. 모기에 물려 부르튼 자리를 득득 긁으면서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아버지는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두 발로 종이를 밟고, 왼쪽 손에 든 가위로 을씨년스럽게 그것을 오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부지, 그거 뭐 합니꼬?
“쉬염 만든다 안 카더나. 어젯밤에 안 카더나.”
“쉬염 만들어서 뭣 하는데예?”
“넌 알 끼 아니다.”
“…….”
“요렇게 좀 삐져나 도고.”
동길이는 아버지한테 가위를 받아 쥐고 종이를 국수처럼 가닥가닥 오려 나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그것을 실로 꿰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을 때는 한 다발의 흰 종이 수염이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다. 어머니는 밥상을 놓으며,
“그걸로 대체 뭐 하는게? 광대놀음하는게?”
했다.
“광대놀음? 흐흐흐…….”
아버지는 서글피 웃었다.
창식이란 놈이 부르러 올 리 없었다. 그러나 동길이는 밥숟갈을 놓기가 바쁘게 책보를 들고 일어섰다. 아버지도 방구석에 걸린 낡은 보릿짚 모자를 벗겨서 입으로 푸푸 먼지를 부는 것이었다. 책보를 옆구리에 낀 동길이가 앞서고, 종이로 만든 수염을 손에 든 아버지가 뒤따라 집을 나섰다.
아버지와 동길이는 삼거리에서 헤어졌다. 헤어질 때 아버지는 동길이에게
“걱정 말고 꼭 핵교에 가거래이. 응?”
다짐을 했고 동길이는
“예!”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동길이는 선생님을 대하기가 매우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선생님을 별로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없이,
“결석하면 안 된다. 알겠나?”
예사로 한 마디 던질 뿐이었다.
학급 아이들이야 뭐라건 그건 조금도 두려울 게 없었다. 감히 동길이 앞에서 뭐라고 빈정거릴 만한 아이도 없기는 했지만……. 그만큼 동길이의 수박씨만한 두 눈은 반짝거렸고, 주먹은 야무졌던 것이다.
동길이가 등교를 하자, 창식이는 고양이를 피하는 쥐새끼처럼 곧장 눈치를 살피며 아이들 뒤로 살금살금 돌아가는 것이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창식이란 놈을 당장 족쳐 버렸으면 싶었으나, 동길이는 웬일인지 오늘은 얼른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친회비를 못 가져와서 아무래도 선생님의 눈치가 보이는 탓인지, 혹은 어제 팔 하나 없는 아버지가 학교에 왔었다는 그 때문인지, 아무튼 어깨가 벌어지지 않았다.
동길이는 얌전히 앉아서 네 시간을 마쳤다. 동길이네 분단이 청소 당번이었다. 시간이 끝나자 창식이네들은 우르르 집으로 돌아갔고, 동길이네는 빗자루를 들었다.
청소가 끝나자, 동길이는 책보를 옆구리에 끼고 교실을 뛰쳐나왔다. 운동장에는 뙤약볕이 훅훅 쏟아지고 있었다. 찌는 듯 무더웠다.
‘시원한 아이스 케이크라도 한 개 먹었으면…….’
동길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배도 고파왔다. 이마에 맺히는 땀을 씻으며 타박타박 신작로를 걸었다. 냇물로 내려갈까 했으나, 아침에 먹다 남겨 놓은 밥사발이 눈 앞에 어른거려 그냥 똑바로 다리를 건넜다.
7
삼거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동길이는 눈이 번쩍 뜨였다. 참 희한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만큼 먼 거리였으나 얼른 보아 그것이 무슨 광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마니 한 장만이나 한 크기일까? 그런 광고판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움직이는 광고판을 따라 우르르 아이들이 떠들어 대며 몰려오고 있었다.
동길이는 저도 모르게 뛰고 있었다. 차츰 가까워지면서 보니 그것은 틀림없는 광고판이었다. 그러나 그 광고판에는 다리가 두 개 달려 있고, 머리도 하나 붙어 있었다.
사람이었다. 사람이 가슴 앞에 큼직한 광고판을 매달고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등에도 똑같은 광고판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
머리에는 알롱달롱하고 쭈뼛한 고깔을 쓰고 있었고, 얼굴에는 밀가룬지 뭔지 모를 뿌연 분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턱에는 수염이 허옇게 나부끼고 있었다. 아주 늙은 노인인 것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그렇지 않은 듯도 했다.
이 희한한 사람이 간간이 또 메가폰을 입에다 갖다 대고 뭐라고 빽빽 소리르르 질러 대는 것이 아닌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아아, 오늘 밤의, 아아, 오늘 밤의 활동 사진은 쌍권총을 든 사나이. 아아, 쌍권총을 든 사나이. 많이 구경하러 오이소! 많이많이 구경하러 오이소!”
그러고는 쑥스러운 듯 얼른 메가폰을 입에서 떼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럴라치면 이번에는 아이들이 제가끔 목소리를 돋우어,
“아아, 오늘 밤에는 쌍권총을 든 사나이.”
“아아, 오늘 밤에는 쌍권총을 든 사나이, 구경하러 오이소.”
“아아, 오늘 밤에 많이많이 구경하러 오이소.”
하고 떠들어 댔다. 동길이는 공연히 즐거웠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우뚝 멈추어 서서 우선 광고판의 그림부터 바라보았다.
시커먼 안경을 낀 코쟁이가 큼직한 권총을 두 자루 양쪽 손에 쥐고 있는 그림이었다. 노란 머리카락과 새파란 눈깔을 가진 여자도 하나 윗도리를 거의 벗은 것처럼 하고 권총을 든 사나이 등 뒤에 납작 붙어 있었다. 괴상한 그림이었다.
“아아, 쌍권총을 든 사나이, 아아, 오늘 밤의 활동 사진은 쌍권총을 든 사나이. 많이 구경 오이소! 많이많이 구경 오이소!”
그리고 메가폰을 입에서 뗀 그 희한한 사람의 시선이 동길이의 시선과 마주쳤다.
순간, 동길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뒤통수를 야물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희한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동길이와 눈이 마주치자 약간 멋쩍은 듯했다. 그러고는 얼른 시선을 돌려 버리는 것이었다. 동길이는 코끝이 매워 오며 뿌옇게 눈앞이 흐려져 갔다. 아이들은 더욱 신명이 나서 떠들어 댄다.
“아아, 오늘 밤에는 쌍권총입니다.”
“아아, 쌍권총을 든 사나이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소리에 섞여 분명히,
“동길아! 너그 아부지다. 너그 아부지 참 멋쟁이다.”
하는 소리가 동길이의 귓전을 때렸다. 용돌이란 놈의 목소리에 틀림없었다.
동길이는 온몸의 피가 얼굴로 치솟는 듯했다. 주먹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뿌리쳤다. 뿌옇던 눈앞이 확 트이며 얼른 눈에 들어온 것은 소리를 지른 용돌이가 아닌 창식이란 놈이었다. 요놈이 나무 꼬챙이를 가지고 아버지의 수염을 곧장 건드리면서,
“진짜 아이다야. 종이로 만든 기다. 종이로.”
하고, 켈켈 웃어 쌓는 것이 아닌가?
동길이는 가슴 속에 불이 확 붙는 것 같았다. 순간 동길이의 눈은 매섭게 빛났다. 이미 물불을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삵괭이처럼 내달을 따름이었다.
“으악!”
비명 소리와 함께 길바닥에 나가떨어진 것은 물론 창식이었다. 개구리처럼 뻗었다. 그러나 동길이는 그 위에 덮쳐서 사정없이 마구 깔고 문댔다.
“아이크, 아야야야……, 캥!”
창식이의 얼굴은 떡이 되는 판이었다. 아이들은 덩달아서 ‘와아와아’ 소리를 지르며 떠들어 댔다.
동길이 아버지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손에서 메가폰을 떨어뜨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창식이는 이제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윽! 윽!’ 넘어가고 있었다.
“와 이카노? 와 이카노? 잉! 와 이캐?”
동길이 아버지는 후닥닥 광고판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하나 남은 손을 대고 내저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턱에 붙였던 수염의 실밥이 떨어져서 흰 종이 수염이 가슴 앞에 매달려 너풀너풀 춤을 춘다.
“이 놈으 자식이 미쳤나, 와 이카노? 와 이캐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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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