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확률의 한계(맹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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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의 맹점

 

구술면접 문제로 출제되는 것 가운데 상당수는 과목별로 분류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과학적 방법에 관련된 문제다. 공통과학의 '과학의 탐구과정'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대표적 예가 어떤 실험설계나 연구자료를 주고 이에 대해 과학적 비판성과 엄밀성을 갖춘 결론을 요구하는 문제다. 둘째는 통합교과적 개념을 묻는 문제다. 대표적 예로 피드백이나 디지털아날로그 개념에 대한 문제 등이 있다. 마지막은 과학연구에 필요한 기초적 개념이나 방법을 묻는 문제다. 여러 물리량의 정의나 단위에 대한 문제 등이 그 예다.

 

원자력발전의 사고는 확률이 낮다 해도 일단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파장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진다. 이와 관련된 논의는 필연적으로 사건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결부된다. 이와 똑같은 논의를 인간복제를 비롯한 생명공학연구의 규제 문제에 적용해볼 수도 있다. 생명체의 탄생과 관련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논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번째는 확률이 낮다는 것이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른바 󰡐무지에 의한 논증󰡑에 대한 비판, 즉 잘 모르니까 초월적 존재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논리적 비판이다.

 

: 원자력 발전소에서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1만분의 1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해 평가해 보시오.

: '1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1만분의 1이나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전세계 원자력 발전소가 1천기 있다면, 10년에 한번씩 심각한 사고가 일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1986년 옛소련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사고의 경우에는 유출된 방사성 물질에서 나온 방사선으로 인해 약 3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확률이 낮다 해도 일단 사건이 터지면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므로, 그러한 주장으로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창조론자들 가운데 일부는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날 확률이 약 백만분의 일(1,064,480분의 1)밖에 안 된다며 진화론을 비판한다. 그런데도 진화론을 믿어야 하는가?

: 진화론은 어느 날 갑자기 생명체가 생겼다는 주장이 아니라 본격적 의미의 생명체가 되기 전에 오랜 동안 이른바 󰡐화학적 진화󰡑가 이뤄진 끝에 생명체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입니다. 주사위를 99번 던지고 또 한 번 던질 때 6이 나올 확률은 1/6이지만, 1백 개의 주사위를 한꺼번에 던져서 모두 6이 나올 확률은 1/6100입니다. 아까의 주장은 전자로 생각해야 할 것을 후자로 뒤바꿔놓은 것입니다.

 

: 화학적 진화를 통해 생명체가 탄생했을 확률이 상당히 낮다면 창조론이 뒷받침되는 것이 아닌가?

: A가 아니라고 해서 꼭 B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유를 잘 모르겠으니까 신이 한 일'이라는 식의 논증은 논리적으로 허점이 있습니다. 그런 논리를 사용한다면 지구에서 진화되지 않았으니까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무리 잘 모르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자연적 현상'의 결과로 해석하려 하지 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를 끌어들여 설명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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