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강의 / 해설 / 박홍규
by 송화은율박홍규의 '형이상학 강의'
〈이정우 서강대 철학과 교수〉
한국에서 서구 철학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서구인들 못지않게 해명한 소은(素隱) 박홍규(朴洪圭)선생은 한평생을 「사유의 세계」에서 살다 간 철학자 그 자체였다.평생 글을 잘 쓰지 않아 남긴 글이라곤 한 권 분량의 논문들이 고작이다.그러나 그의 「소크라테스적인」 대화가 마침내 책으로 나와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주머니에 송곳이 있으면,언젠가는 그 끝이 드러나는 법.대중적인 인기와는 담을 쌓았던 선생이지만,그 강의록들이 출간되기 시작함에 따라 그 사유의 모습이 환한 빛 아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아리스토텔레스를 강의하면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를 간단하게 말했다고 한다.『그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 철학자에게 그의 일상사는 큰 의미가 없다.다시 말해 철학 이외의 「뒷이야기」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오직 학문적인 내용이 문제일뿐이다.칸트는 한 인간으로서 극히 평범한 사람이지만,그의 사유는 온 우주를 붙들고 격투해서 얻어낸 위대한 경지인 것이다.박홍규 선생의 「생애」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오직 그가 사유한 내용이 우리에게 중요할 뿐이다.
서구 철학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아니 인간이 행하는 모든 담론들에서 가장 핵심적인 측면은 어디일까.아마도 그것은 「존재론(ontologie)」일 것이다.`철수는 웃는다'라는 간단한 언표를 생각해보자.우리는 「철수」를 주어에 놓고 「웃는다」를 술어에 놓았다.이 언표는 이미 「철수」가 「웃는다」보다 더 실체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주어에 놓은 것이다.우리의 모든 사고와 언어에는 이런 존재론적 전제들(ontological commitments)이 깔려 있다.따라서 우리가 행하는 담론들의 토대를 계속 파내려가면 결국 우리는 어떤 존재론적 전제들에 닿는다.이 점에서 존재론이야말로 모든 담론들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담론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보자.민주주의란 어디에 있는가.민주주의의 색깔은 무엇이고 무게는 얼마인가.민주주의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이런 물음들은 우스꽝스러운 물음이다.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것의 장소도 색깔도 모양도 무게도… 알 수 없다면,도대체 이 말은 의미가 있는 말인가.하지만 우리는 늘 자연스럽게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가.다시 말해,「민주주의」라는 존재의 「존재론적 위상(ontological status)」은 무엇일까.이런 물음 또한 근원적인 물음이다.이런 종류의 물음은 점차적으로 발전해 궁극적으로는 존재와 무(無),시간과 공간,우연과 필연,하나와 여럿,연속과 불연속,… 등등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이런 존재론적 사유를 고도로 발달시킨 것은 물론 서구다.따라서 서구 존재론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모든 학문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다루는 것이다.소은 선생은 바로 이 서구존재론사를 붙들고 한평생 사상적 격투를 벌인 분이다.
소은 선생은 철학의 궁극 목표는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없는가』에 답하는 것이라고 보았다.다시 말해 우리의 사유를 끝까지 밀어붙여 그 마지막에 결코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이 사유의 의무라고 본 것이다.이런 난제(難題)들을 그리스어로 「아포리아」라 한다.이런 아포리아들을 드러낸 대표적 철학자는 플라톤이다.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유심히 보면 많은 대화편에 결론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즉,플라톤은 결론을 내기 힘든 문제에 억지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다만 왜 결론이 나올 수 없는가를 치밀하게 보여주는 것이다.평생 플라톤을 연구한 소은 선생의 학문태도 역시 플라톤적이다.그리고 소크라테스가 글을 쓰기보다는 대화로 철학했듯 소은 선생 역시 글을 많이 쓰기보다 제자들과 대화를 통해 철학했다.때문에 소은 선생은 제자들에게는 거의 절대적인 숭앙의 대상이었지만,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사(隱士)의 삶을 산 분이다.이제 그의 사유가 활자화되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우리 철학사에 큰 이정표를 세우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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