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解放村) 가는 길 / 소설 / 전문 / 강신재
by 송화은율해방촌(解放村) 가는 길 / 강신재
가랑비가 아직도 부슬거리고 있었다. 뒤꿈치가 세 인치나 되는 정신 나간 것처럼 새빨간 빛깔의 구두를 신고, 그 까맣게 높다란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는 것은 정말 우스꽝한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기애는 띠뚝거리면서 그 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악스런 폭우가 서울에도 퍼부었던 모양이었다. 좁다란 언덕길은, 굴러 내려 데글거리는 돌멩이들로 어느 험한 골짜기와 비슷하였다. 맑은 물이 돌돌 흘러내리고 있었다. 뾰죽한 돌부리들은 짓궂은 악의를 가진 것처럼 한사코 기애의 발목을 젖히려 들거나 호되게 복숭아뼈를 때려치거나 하였다. 그럴 때마다 누에서 불이 튀어 나도록 아팠다. 그렇게 눈에서 불이 튀어 나도록 아픈 순간이 단속적으로 이어져 나가니까 아픔은 지긋한 어떤 다른 감각으로 변하여 가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지긋한 한 줄기의 감각은 곧 울상이 되려다 말곤 하는 기애의 마음속과 썩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마음 속에 쌓인 갑갑하고 침침한 무엇 때문에 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이 기애는 고개 중턱에서부터 끝내 눈물을 굴러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우산도 쓰지 않은 뺨위로 가랑비가 흐르는 차가운 감촉과 따뜨한 눈물의 이물(異物)다운 느낌에 조금 마음 속이 후련해지는 것같이도 생각했다.
좁다란 골목이 뻗어 올라간 남산께로부터는 짙은 안개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구름뭉치처럼 희뿌옇게 무겁게, 뭉게뭉게 펴지면서 기애의 주위를 둘러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려서 잘 따라가곤 한 깊은 산속의 어느 온천이나 약수터의 새벽과 흡사하였다. 기애는 걸음을 멈추고 두꺼운 베일을 쓴 남산의 검푸른 모습과 머리 위를 지나가는 구름들의 어둡고 산란한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비가 아직도 한참을 더 내려야 할 모양이었다.
대구의 하숙방을 나오면서부터 몇 차례를 젖었다 말랐다 한 레인코우트는 또 흠빡 물이 배어서 거진 검정색처럼 보이면서 기애의 가느단 허리께에서 잘룩죄어 매저 있었다. 이 레인코우트를 다른 옷이랑 구두랑과 함께 불속에 처넣어 버릴까 말까 하고 한참동안이나 망설였던 일을 기애는 지금 마음 속에 되살려 보았다. 그때 마음을 돌려 먹었다기보다도 초조와 자학(自虐)지쳐 버린 결과로 그만 방바닥에 내어던져 두었던 까닭에 그것은 그나마 오늘 기애의 몸에 걸쳐져 있는 것이었다. 이 정신 나간 것 같은 구두를 신고 드레스 바람으로 우중을 돌아다녔어야 했다면 분명히 기애는 좀더 비참한 기분을 맛보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리를 따지고 보더라도 기애는 자기의 광태를 뉘우치거나 후회스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기애의 마음 속 밑바닥에는 아직도 줄기찬 분격이 가시지않고 흐르고 있었다. 그 흐름의 반의 반만큼도 표현을 못했다는 원통함 같은 것이 어린애가 발을 실컷 구르지 못한 듯이 뱃속에 남아 있다면 있는 것이었다.
<죽음만이……>
하고, 기애는 그때도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만이 이 일의 결말로서 그리고 보복으로서도 가장 적당한 것일 테지……>
그러나 기애는 비참한 심경이기는 하였지만 그곳까지 굴러가지는 않고 배겼다. 그것 이상의 더 합당한 귀결을 발견할 수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쩐지 구시대적인 따라서 어는 정도 우스움을 면할 수 없는 일인 것같이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하간 기애는 죽음과도 못지 않은 괴로움을 맛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굴욕감과 절대 절망감에 압도되어서 거의 자기를 잃었던 수술과 입원의 기간. 특출난 수술도 아니었건만 기애의 경우는 남유달리 불운함을 면치 못하였다. 수상쩍은 의사의 솜씨 탓이었는지 혹은 기애의 몸 그것에 원인이 있었던지, 수술은 위험 상태에 빠진 채 장시간을 끌었다. 그처럼 위급한 환자의 상태를 아마도 처음으로 당하는 눈치인 그 젊은 무면허 의사는 숨이 끊어질 듯한 기애의 고통의 호소에는 거의 일고의 주의도 베풀지를 않았다. 기애는 몇 시간을 내리 야수처럼 비명을 질렀을 뿐 아니라 실상도 인간적인 모든 것을 그 몇 시간 완전히 상실해 버렸었다.
수술 후의 경과도 좋지는 않아서 기애는 보자기 하나를 들고 급작히 얻어 든 낮 모르는 하숙집 방바닥에서 소리도 못 내고 딩굴며 아파했다.
그러나 육체의 고통은 그 시간이 사라지면 잊혀질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또 임신을 하고 그 중절의 수단을 취하였다는 정신적인 쇼크도 그 괴로움의 전부는 아니었다. 기애는 죠오가 그처럼 깨끗하고 완전하게 자기 곁을 떠나 버린 그것처럼은, 죠오의 일을 청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죠오는 군인이며 명령에 따라서는 즉시로 귀국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기정 사실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으며, 그에게 명령을 내린 그의 국가에게도 아무런 잘못이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을 죠오나 기애가 미리 계산에 안 넣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애는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노여움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죠오는 결코 냉담한 사나이가 아니어서 그는 그 바닷빛 두 눈에 눈물을 그득 담고 괴로와하였지만 그러나 결국 그는 떠나갔고, 그리고 기애는 그의 정성의 전부인 달러로써 수술을 하고, 몰라보게 사나와진 성질을 가지고 혼자 남아난 것이었다. 그는 그 성미를 자기로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부대의 동료나 GI들과 닥치는 대로 싸움을 하고, 결국은 우두머리인 커넬에게 타이프 종이를 찢어 던지고서 그 자리에서 파면이 된 것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기애는 두 달이나 대구에 머물러 있었다. 어두운, 산란한, 창문에 빗줄기가 흐르는 듯한 날과 날이 지나갔다. 기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혹은 종일토록 엎드려서 울음과 노여움과 그리고 바람같이 가슴을 휩쓰는 허무감과 싸우고 있었다. 죠오는 기애의 심장을 너무나 깊이 깨물어 버린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여기 대하여 기애가 전신으로 의식하는 감각은<노여움>이었다.
어느 날 파리한 얼굴에 눈만 이상히 빛나는 기애는 여지껏 해 본 일이 없는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와 동생이 있는 서울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일은 죠오와의 동서(同棲)가 시작되면서부터 무의식중 자기에게 금해온 일이었다. 어머니 장씨는 필경 딸을 버렸다고 가슴이 무너져 내려야 할 것이었고, 그러한 어머니의 관념에 그대로 동조할 수는 없는 기애로도 또 그리 뻐젓하게 나설 용기도 미처 없는 것이었다. 여하간 모친에게 그것은 너무 잔인한 결과일 것이고, 기애 편에도 일종의 본능적인 수치감이 있었다. 외국 군인과의 동서 생활이 별 거리낄 일로 치부되지 않고 때로는 오히려 어떤 긍지조차 부여하고 있는 거기는 또 그런 윤리가 지배하는 부대 안에서라도, 어떤 사소한 사건이 기애로 하여금 맹렬한 동요를 갖게 하지만 않았던들, 그는 낡고 완고한 종래식의 사고 방식에서 그처럼 쉽게 뛰쳐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어느날 기애는 <스왈러>라는 한 마디의 단어에 주의를 이끌렸다.
「제비.」
「미스 제비.」
그렇게 불리고 있는 것이 바로 자기이고, 그리고 그것은 취직 이래 하루같이 입고 다니는 자기의 곤색 옷에 연유하는 별명이라고 알았을 때 기애는 부끄러움으로 사지가 빳빳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지런히 빨아 다리는 흰블라우스와 함께 내리 석 달은 입어 온 기애의 진곤색 스으츠는 부대에서 바야흐로 명물로 화해 가는 있는 것이었다. 기애의 자존심은 분쇄되었다. <친구>를 만들지 않고, 그래서 초라하게 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자랑이 될 수 없는 세계가 거기 있었다. 검소는 곧 무교양과 연결되었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기애는 몸가짐을 달리 하였다. 죠오의 접근을 용서하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를 이용하였다. 기애는 아름다와지고 군인들은 그의 앞에 공손하였다.
그런데 그러다가 보니 죠오는 퍽이나도 순진한 청년이었다. 내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명백하였지만 이 금발에 바닷빛 눈을 가진 젊은 외국인은 현재로 보아 기애 자기보다 훨씬 순수한 것이 사실이었다. 현재로 보아서 그랬다. 그리고 내일이라는 것을 진실한 의미로 누가 알수 있을까?
죠오보다 자기가 불순하다는 생각은 기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먼날의 자기의<거래>를 위하여 저울질한 애정을 내민다는 것이 기애는 차츰 싫어져 왔다.
기애는 무모한 짓을 하였다.
그리고 그 대가의 하나로서, 언제나 어떤 종류의 비감함과 결부되어서만 생각되는, 서울의 가족과의 결별이 있었다.
그리나 그날 기애는 수척한 머리를 들고 그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 것이었다. 늘 피하려고만 하고 있던 두육친의 환상을 가슴 속에 똑똑히 떠올려 보았을때 기애는 여지껏과는 맛이 다른 뜨거운 눈물을 두볼 위에 흘렸다. 눈물은 슬펐지만 달콤하였고 푹신한 무엇이 그 속에는 있었다. 한밤중에 기애는 대구를 떠났다.
빗줄기가 차츰차츰 굵어져 오는 것 같았다. 기애는 앞 이마에 들어붙은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떼어서 제치고는 그편 손에 트렁크를 옮겨 쥐었다. 그 어느날 밤인가의 처사 때문에 그의 재산은 온 세상에 그 트렁크 하나로 줄어든 것이었다. 그 속의 것들도 정밀히 따진다면 과연 죠오와 관련이 없는 것 뿐이었는지 모호한 일이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따지기도 싫었다. 죠오는 간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이년 전 이 골목을 뛰어 내려가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움켜쥐고 오려고 생각했던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공기처럼 바람처럼 무엇인가가 지나간 것이었다. 시간이 그저 흘러갈 뿐이었다.
기애는 희뿌연 남산을 바라보고 이 년 전 그 중턱의 판잣집으로 이사를 오던 날, 서글픈 감정을 서로 감추느라고 세 식구가 미묘한 고통을 겪은 일을 지금도 생생히 마음 속에 되살려 올렸다. 초라한 판잣집은 정말 너무도 형편이 없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가슴이 쩌릿하게 아파 오도록 그것은 그냥 닭장이나 헛간과 다를 바 없었다. 자기의 안색을 살피는 장씨의 눈길이 기애는 아팠다. 그리고 그렇게 아파하는 기애의 마음은 또 반사적으로 장씨의 심장을 다치는 것이었다. 어색한 웃음소리나 고연히 높은 음성이 그럴적마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공기를 자아 내 갔다. 국민학교의 육년생인 욱이만이 비교적 무관심한 듯 드나들며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다.
그러나 기애가 그 신문지로 초배를 한 방바닥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것도 잠깐 동안 뿐이었다. 빚을 받으러 왔다는 여자가 웬 볼품 사나운 사내들을 너댓이나 몰고 와서 이삿짐도 덜 푼 마당에서 야료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집을 팔고도 깜쪽같이 옮겨 앉는 마음보가 고약하다. 다만 얼마라도 수중에 있을 것이 아니냐. 사람의 형상을 하였으면 체면이 있어야지.
구경군이 늘어섰다. 사내들은 눈을 흡떴다. 장씨는 손발을 가눌 수 없을 만큼 극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일언반구의 대꾸도 못하는 것이었다. 성이 나면 날수록 말문이 꽉하니 막히는 것은 본래의 버릇이기는 했지만 여지껏은 그래도 학교에 다니느라고 별로 이 따위 꼴을 보인 적이 없는 기애의 앞이라는 생각에 장씨는 그만 그들의 욕설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기애는 새파랗게 질려서 떨고 있었다. 이 동네로 발을 들여놓으며부터 누르고 달래고 하던 수치감이 일시에 폭발을 하는 느낌이었다.
기애는 장씨를 밀어내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그들에게 당장에 나가라고 명령하였다. 높은 음성도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도 궁기(窮氣)가 흐르지 않는 미모의 소녀의 새파란 서슬에 그들은 잠깐 멈칫하였다.. 기애는 자기가 그것을 갚는다고 단언하고 날카로운 어조로 빨리 나가라고 되풀이하였다.
그들이 사라진 뒤를 이어서, 기애는 이 고개길을 힘껏 달려 내려갔다. 부글거리는 격정을 새기느라 무거운 것도 무거운 줄 모르고 번쩍번쩍 짐을 들어 옮기고 있던 장씨의 그 순간 휘둥그래진 커단 눈이 오래도록 망막에 있었다. 그리고 서글픈 듯이 귀를 잡아당기면서 판자 문앞에 서 있던 욱이의 모습……
그 집은 아직도 그곳에 그 모양으로 있을 것인가. 어머니와 욱이는 다 무사할까. 거리가 조금씩 다가옴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성은 기애의 맘속에서 반대로 차차 희박해져 오는 것이 이상하였다. 잠깐 사이기는 하나 기애는 그곳에 아무 사람도 있지 않고 따라서 자기의 이러한 모습도 보이지 않고 말았으면 하는 욕망이 가슴에 괴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거기있을 것이었고 그 주소에 대고 기애는 꼬박이 송금을 하여 온 터이었다.
고갯길은 다하였다. 남산 허리를 돌며 뻗어 온 널따란 길이 한참을 그대로 탄탄히 펼쳐져 나가고 있었다. 길 양옆에는 큼직한 집들이 여유 있게 들어앉고, 비에 젖은 정원의 초록이 눈에 새로왔다. 기애는 트렁크에 걸터앉아 조금 쉬었다. 그리고 일어서는데 곁에 철망 안에서 개가 사납게 짖어 대기 시작하였다. 무엇이 그렇게 비위에 거슬렸던지 개는 미친 듯이 껑충대며 더할 수 없이 포악하게 으릉대었다. 보고 선 기애는 별안간 그 개에 못지않게 격렬한 감정이 자기를 휩쓸려고 하는 것을 느꼈다. 개가 힘껏 성미껏 악을 쓰고 있듯이 어딘가에 대고 가슴속을 폭발시키고픈 어리석은 욕망을 그는 억제할 수가 없었다. 기에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셰퍼드의 코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 폐부를 찌르는 듯한 짐승의 비명과 슬프고 비참한 긴 신음 소리 가운데 신경이 산산 조각이 나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끼면서 비칠비칠 걸어 나갔다.
편안치 못한 잠으로부터 기애는 깨어났다. 눈을 뜨니까 곧 잡지책을 뜯어 바른 천정과 벽의 괴상스런 얼룩이 시야에 들었다. 얼룩은 잠들기 전에 쳐다본 때보다도 훨씬 더 그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누운 위치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두어 칸 넓이 방의 삿자리가 깔린 한구석으로부터 가운데로 이불이 옮겨져 있었다. 애초에 누웠던 부근에는 세숫대야와 뚝배기가 대신 널리어 있다. 세숫대야와 뚝배기 속으로는 또닥 딸랑하고 이상스레 동화적인 소리를 내면서 빗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웃목으로는 조금조금한 자루가 너댓 개 바리케이드처럼 포개여 있다. 조금 입을 벌린 그 하나에서는 수수알이 흩어져 나와 있었다. 삼각형으로 깨어져 나간 손바닥만한 거울. 반 부러진 빨간 빗. 이방에 그득차 있는 것은 가난 그것뿐이라 느껴졌다. 기애는 눈을 감았다. 굴욕적인 정상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보다는 동물에 가깝도록 궁핍에 인종하여 살고 있다는 것은 기애에게는 부끄러운 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사올 때 누르고 달래던 굴욕감은 여전히 그대로 굴욕감이었다. 그것 자체 죄악처럼 피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죄악과 비슷한 것이라면 그 죄는 바로 기애의 것이었다. 부친의 생존시에 그들은 이런 생활을 하지 않았고, 장 씨가 지주였을 때만 해도 그들은 체면을 유지하며 살았다. 지금은 기애의 책임인 것이었다.
머리맡을 바림결같이 연달아 지나가는 것이 있어어,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눈을 뜨고 그것의 해방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커다랗고 시커먼 쥐들이었다. 두 마리의 쥐가 자루께에 가서 살살대고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기애는 오싹하고 온 몸의 솜털을 일으켜 세웠다. 황급히 일어나 앉으니까 그 서슬에 쥐들도 놀랐는지 기애의 다리를 스칠 듯이 궁굴러와 이부자리 가녘을 미끄러지며 달아났다. 생리적인 오감을 누르느라고 기애는 한참동안 애를 써야만 했다. 이가 달달 마치도록 떨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세모난 거울을 집어 눈가가 꺼멓게 꺼진 얼굴을 들여다보고 일어서서 마당으로 나왔다. 멎는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이 소리도 없는 가는 비가 아직도 한결같이 내리고 있었다. 국방색 몸빼에 횐당목 적삼을 입고 비를 맞으며 돌아앉아 무엇을 씻고 있는 장씨를 기애는 뒤에 서서 바라보았다. 진일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이 기애는 제일 싫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그렇다고 도울 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다만 싫다고 느꼈다. 그는 상을 찌푸린 채 판자문을 밀치고 골목으로 나섰다.
이년 전보다 말이 못되게 쪼그라지고 새까매진 노모는 기애의 기색만 살피고 있다가 끝내 이렇게 한 마디 문 밖에다 던졌다.
「얘야, 방에 들어가 누워 있으려무나. 곤할 텐데 응?」
응 소리는 사뭇 애원하듯 한다.
기애는 장씨가 자기의 더부룩한 머리 모양이며 너들너들 늘어진 플레어 스커어트며 어깨까지 헤벌어진 얼룩덜룩한 블라우스며를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꾸도 하지 않았다. 기애는 장씨의 노쇠한 얼굴을 보고 심약하게 자기의 낯빛만 엿보는 습관이 전보다 더 심해진 것을 보다 반대로 이상하게 배짱이 생겨난 것이었다.
<이 집에서 기운을 낼 사람은 혼자뿐이야.>
그런 결론이 주는 용기이기도 했다.
기애는 삼사 일만 더 휴양을 취하고는 얼른 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터이었다. 장씨가 자기보다 더 비참한 것 같아 그 곁에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기 싫었다.
기애가 돌아오던 날 개울에서 방망이질을 하다 마주 일어선 장씨의 얼굴에는 확실히 당황한 빛깔이 짙었었다. 딸의 돌연한 귀가가 놀랍기도 하였겠지만 기애를 일별한 그 찰나에 모성의 본능이 무엇인가를 직감한 탓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단정하지 못한 기애의 차림새에 남의 눈을 꺼리고만 싶은 장씨의 기분은 무의식중 그런 데에까지 걸쳐져 있는 것이었다.
장씨와 욱이의 생활은 기애와 조금 의외였을 만큼 극단히 군색한 것이었다. 기애는 자기의 송금도 있었고 조금은 나아졌으려니 믿고 있는 위에 장씨의 편지 같은 것으로 미루어서도 그런 느낌을 가졌었기 때문에 궁한 모양에 한층 더 마음이 어두웠다.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욱이가,
「누나, 학교 갔다 올께」
하고 중학교 교모를 눌러 쓰고 나간 다음에 기애는 트렁크를 열고서 돈이 될 물건들을 끄집어 내었다. 정가표가 붙어 있는 라이타니 필름이니 녹음기의 테이프니 하는 것들이었다. 장씨는 눈이 둥그래지며 놀랐다. 놀라면서도 재빨리 그것들을 보자기에 싸서 옷 궤짝 밑바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비로서 만족한 듯이 미소를 띠고 말문을 열더니,
「저게 값이 얼마나 나갈까? 시세를 잃지 않구 잘 팔아얄 텐데.」
하고, 수군대며 또 곧 근심스런 얼굴이 되는 것이었다.
장씨는 그것을 작게 꾸려서 치마폭에 감추듯이 해가지고 나가서는 돈과 바꾸어 들이곤 하였다. 하루에 몇 차례나 들고 나갔다 들어왔다. 거의 입을 열지도 않고 온 정신을 팔리며 그 일을 하였다. 돈도 역시 치마폭에 감추어 가져오고 보자기를 끄를 적에는 문고리를 몇 번이고 흘깃거려 보았다.
그러한 장씨에게 기애는 무엇인지 비굴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묘하게 돌아가는 일이었다. 장씨 자신 돈은 반갑고 귀하면서 돈이 되는 그 물건에는 무언지 떳떳치 못한 것을 뉘우치듯이, 딸에 대하여도 기특하고 고마운 반면에는 낙담이 되고 꺼려지는 무엇이 없지 않았다. 장씨의 이런 기분은 또 그냥 기애에게 반영되고, 그러니까 장씨에게 느끼는 무엇인지 비굴한 그 느낌은 곧 기애 스스로에게 느끼는 비굴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장씨는 기애에게 더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의혹을 품고 있는 까닭에 시시각각 가슴 속에 자문자답하고는 결국<우리 아이가 그럴리가 없지>하고 일시나마 단정을 내림으로써 기분을 돌리곤 하는 것이니까, 기애로 보면 자기의 실태(實態)를 끊임없이 그리고 전면적으로 모욕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기에 기애는 장씨의 감정에는 일절 개의치 않을 배짱을 세운 것이었다. 장씨와 함께 온갖 주위만 살피다가는 헛간 생활을 면할 길은 영영 없으리라 싶었다.
그래도 순간적으로 장씨에게 동정적인 기분이 되기도 하여 사흘째 되는 엊저녁에는 머리도 감아 빗어 동여매고 꺼내 주는 치마저고리로 얌전하게 꾸며 보이기도 하였다. 등불 아래서 풋콩을 까면서 장씨는 졸지에 환해진 것 같은 얼굴에 안심한 빛을 감추려고도 않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네가 애서 벌어 보내는 게거니 하니 어디 쑬쑬히 써버릴 맘이 나더냐. 돈딜여 고치면 그야 이런 집이라도 좀 나아질 테지만 난 그저 눈 딱 감구 지냈다. 욱이더러두 중학교 들어서 다니는 것만 고마운 줄 알구 매사 참어라 참어라 했지. 누이는 인제 시집 보내야 할 나인데 한 푼이래두 아껴 써야 하느니라고. 그렇지 않느냐. 다 점잖은 걸 객지에 놔두구 늘 걱정이 었드니라.」
장씨는 인제서야 그런 소리도 해 들릴 심정이 되었다는 듯이 대견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건강도 안 좋아 그만두었노라 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였던 안타까움을 장씨는 어지간만 하면 그만 내어던지고 시원해지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기애는 탐탁찮은 얼굴로 잠자코 있는 수밖에 없었다. <결혼? 흥.>하고 그러나 그 코웃음을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장씨는 또,
「얘, 근수가 제대했더구나. 접대 여길 오지 않었겠니. 아 예배당엘 갔다 오는데 웬 장정이 마주 서길래 깜짝 놀랬더니 그게 바루 근수더구나, 가엾더라. 무척 고생을 하는가 바. 것두 그렇잖겠니. 온 천하에 저 한 몸이니……쉬이 또 오마구 하더니만 오늘이라도 안 오려는지.」
한참 수다스럽기까지 하던 그녀는 슬며시 무어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눈초리가 되었다.
「참 어머니, 누나 오기 바루 전날 근수 형님 왔었어요. 삼일 예밴가 뭔가 보러 가신 뒤에요. 내가 그 소릴 안했었네.」
소반 위에다 노우트를 펼쳐 놓고 앉앗던 욱이가 그렇게 얘기 속에 들어왔다.
「그래? 그래 속기 학교엔 들어갔다더냐?」
「네, 들었대요. 그건 됐는데 낮의 일자리가 좀체 구해지지 않는가 봐요. 우울한가 부던데.」
끝의 소리는 기애를 쳐다보며 건네어졌다. 기애는 안들리는 체하고 있었다.
「하긴, 팔이 부자유하니 아무래도 더 힘이 들 노릇이지. 똑똑한 총각이지만……」
「팔요? 팔이 어쨌어요?」
기애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냐. 보매에는 뭐 아무렇지두 않은데 힘줄을 다쳤다나 어쨌다나 팔꿉을 잘 놀리지 못하더구나. 왼편인 것이 천행이긴 하더라만……」
기애는 제대하였다는 근수의 좀 싱거운 듯이 입가로 웃는 샌님답던 얼굴을 그려보았다. 그는 기애의 아버지와 친숙하던 금만가의 아들로서 기애의 집이 몰락한 이후로도 여전히 허물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무언지 조심스럽고 어렵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장씨 뿐이었고, 여학생인 기애는 저락하는 환경에 반비례하듯 점점 더 그에 대해 오만한 자세를 취하였고, 그러나 그것은 근수가 싫어서는 아니었었다. 욱이는 말할 것도 없이 친형이나처럼 그를 졸라서 여전히 온갖 데를 따라다니곤 하였다. 그리고 남성으로서 성숙해 가던 그는 확실히 연정의 표시라 볼 수 있는 태도를 기애에게 보였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꽃을 피우지 못하였다. 근수의 가족은 근수만을 남기도 전멸하였고, 피난, 근수의 입대, 환도, 기애의 대구행, 하고 너무나 어지러운 변천 가운데서 서로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세월이 흘렀다. 한번 장씨가 일선서 온 편지를 전송(轉送)해 주었으나 기애는 그것을 뜯지도 않은 채 난로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크리스마스의 무렵이었다. 화려한 의상과 불빛과 흰 눈과 그리고 죠오와 더불어 소음속에서 보낸, 기애에게는 앞에도 뒤에도 없을 암담한 크리스마스였다. 지금 그 샌님이 다시 눈앞에 나타난들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리, 작은 일에는 신경이 안 미치던 덤덤하기만 하던 그가 지금은 고생을 한다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동정을 할 계제도 못되는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런 일보다는 비나 이제 개어 주었으면 싶었다. 주위가 온통 안개에 두루 말려서 산등성이에 밀집해사는 감이 더한 것 같았다. 기애는 장씨의 고무신을 끌고 문마다 빼금빼금 내다보는 까만 눈들을 곁으로 흘리면서 총총히 들어앉은 판잣집 옆을 지나쳤다. 찔걱찔걱 미끄러지는, 본래는 층계처럼 깍이었던 모양인 황토 샛길을 기어오르니까 뭉큿하고 풀향기가 몰려 들었다. 꽃을 떨군 아카시아의 싱싱한 초록, 우거진 잡초. 다리와 치마를 폭삭 적시면서 함부로 쏘다녀 보았다. 벌써 어스름 저녁때 였다.
산록을 돌면서 곧장 뻗어 온 넓은 길은 여기서는 실날처럼 가늘어져 가지고 그대로 산허리를 감싸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해방촌의 주민들이 그 길을 따라 속속 돌아들 오고 있다. 그것은 멀리서 바라보면 일렬의 길고 가는 행렬이 서서히 앞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기애는 그길께로 다가가서 젖은 바위 위에 기대섰다. 안개 같은 보슬비를 기애가 비라고도 느끼지 않듯이 그들도 한결같이 우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처럼 반찬거리들을 들었다. 짚오라기에 엮어든 생선 마리, 파 배춧단, 여인네들 머리 위에는 또 의례 조그만 자루, 상장, 보자기. 놀랍게도 빠른 걸음새로 미끄럽고 좁은 산길을 휙휙 지나간다. 그러면서 동행끼리는 열을 올리며 사업 이야기, 장사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파고드는 듯한 눈길, 여자고 남자고 힘찬 걸음걸이. 거친 호흡. 똑같은 표정이 어느 몸에나 있었다. 기애는 자기도 그 길로 들어서서 반대쪽으로 거슬러 내려갔다. 길 한쪽이 깍아지른 듯한 벼랑을 이루어, 까마득한 아래쪽에서 연기같이 안개가 피어 오르고, 또 더욱 멀리 펼쳐져 가라앉으면서 시가지의 지붕들이 내려다보이었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니리만큼 산복(山腹)으로 다가붙으며 휘어진 그 길이 홱 꼬부라지며 잘쑥 끊기운 모서리는 아슬아슬하게 위험하여서 기애는 늘어진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간신히 옮겨 서는 것이었으나 책보를 낀 동네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예사로 뛰어넘는 것이었다.
문득 기애는 헙곡 사이로 주의를 이끌렸다. 시냇물이 소리치며 굴러 내리는 까마득한 골짜기를 한 소년이 날쌔게 뛰어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바위에서 바위로 원숭이처럼, 아니 마지 용수철을 튀기듯 갈지자로 뛰더니 어느 바위 그늘로 숨어 버렸다. 기애는 서서 보고 있었다. 동이를 인 계집애도 나타났다. 그들은 조금 더 평탄한 길을 택하려 함인지 한참을 아래로 내려갔다가 빙 도는 오름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식수 때문에 야단이라고 언젠가 장씨의 편지에 적혔던 일이 생각났다.
기애는 그냥 서 있었다. 용수철을 튀긴 듯이 민첩하던 소년이 궁금하여서였다.
이윽고 소년이 바위 그늘에서 나왔다. 양철통에 물을 담아 든 모양이었다. 반즈봉하고 언더샤쓰만을 입은 그는 팔에 걸린 중량에도 그다지 제약을 받지 않는 듯이 협곡을 똑바로 위로 올라왔다. 기애는 혼자 미소하였다. 예기했던 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좀더 자세히 소년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반갑게 소리를 질렀다.
「얘 욱아! 너로구나.」
상수리 숲께로 꺽어들려던 욱이는 응, 누나로군, 하는 듯이 흰 이를 보이고 웃더니 기애가 서 있는 길위에로 성큼 뛰어 올랐다.
「저리루 가는 게 훨씬 가깝지만 에따 누나하고 같이가줬다.」
한다.
「그래 얘, 난 너처럼 원숭이가 아니니깐 별수 없다.」
기애는 위에서 따라가면서 그렇게 지껄여대었다.
욱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어느 때고 마음이 밝아지는 것이었다. 욱이에게는 장씨 앞에서처럼 허세(虛勢)를 부릴 필요가 없었다. 지나치게 남의 눈을 의식하고 남의 맘을 이리저리 미루어 보며 행동을 하는 장씨이기 때문에 반동적으로 이편은 허세를 부리게 되는데 욱이에게는 어느 모로 보나 과잉한 감정이라곤 없었다. 그는 모든 일에 적당히 무관심하고, 밝고 건강하였다. 수학에 썩 자신이 있어하는 그의 두뇌 구조는 수학적으로 치우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혹은 드물게 단순 명쾌한, 축복 받은 천질을 타고 났을까 하고 기애는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무겁겠구나. 좀 붙들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아니 무겁잖어.」
「만날 물긷기 힘들겠다. 정말이지 미안한걸.」
흥 흥 하고 코로 웃고,
「어제 체조 시간에 장애물 경줄 하는데 내가 일등을 했겠지. 나아 원」.
하였다.
기애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걸음걸이가 잽싼 사람들이 몇이나 옆을 빠져 앞서갔다. 기애는 전정으로,
「내가 얼핏 또 취직을 해야겠는데.」
하면서, 어느 새 빗발은 걷히었건만 보오얀 수증기로 더욱 축축해진 것 같은 산마루께를 바라다 보았다.
「취직도 좋지만 누난 얼른 근수 형님하구 결혼이나 하는 게 좋을걸.」
중학교 이학년 짜리가 건방진 소리를 한다.
「어머니랑 너랑 어떻게 살래?」
그런 소린 하지두 말어 하는 대신 기애는 가볍게 야유를 하였다.
「으응 그야 당장 곤란하지만.」
하고, 돌아다보고 웃더니,
「누나랑 근수 형이랑 다 취직하면 그게 그거지 머. 근수 형님은 지금 집두 없거든.」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빗나갔다. 흥 흥 하고 이번에는 기애가 코로 웃었다.
「나도 어쩜 야간 중학으로 옮기구 낮엔 일할까 생가하구 있어.」
쪽 곧은 소년의 뒷다리가 번갈아 앞으로 내어딛는 것을 기애는 멍하니 내려다보면서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집께에까지 와서 한꺼번에,
「불가능한 일이야.」
하고, 여러 가지 대답을 해치웠다.
욱이는 기애의 눈속을 흘깃 들여다보고 찔걱거리는 황토 막바지를 뻔찔나게 달려 내려갔다.
취직 자리를 알아보려고 시내에 들어갔다 나온 기애는 손끝에 시빨갛게 매니큐어 하고 화장도 옷차림도 눈에 뜨이게 하고 있었다. 근수의 앞이라서 그것에 신경이 쓰인다기보다도 초라한 판잣집 안에 그렇게 하고 앉아 있는 걸맞지 않음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기애는 생각했다. 근수의 눈을 감기고 옷을 갈아 입을 수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동작의 유희다움이 지금은 역겨웠다. 근수를 만나면 한번은 맛보아야 한다고 미리 각오하고 있던 스스로움이나 상심의 뒷그림자 같은 것이, 오늘 실지로 그를 대하고 보니까 의외에도 격심한 동요를 자기에게 가져왔다는 그 사실에 기애는 초조한 역정까지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산에나 올라가 보자고 꽤 퉁명스런 어투로 말하였다.
아카시아 숲 그늘의 가느단 길을 걸었다. 무성한 숲은 외계의 모든 것을 시야에서 가리고, 푸른 잎새와 돈닢처럼 땅 위에 떨어진 고요한 햇볕이 있을 뿐이었다. 새 소리가 들렸다.
거추장한 페티코우트와 귀걸이는 그래도 얼핏 떼어놓고 나왔지만 예나 지금이나 근수에게는 그런 일에 신경이 통히 안 미치는 모양이었다. 여자의 옷차림 같은 것에는 여전히 무관심한 근수이지만, 그의 속에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에 관하여서는 대단한 변혁이 있었다는 것을 기애는 그의 얼굴과 그의 몸에서 느끼고 있었다.
너그럽고 무던하고 낙천적인 구석이 싹하니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그는 고뇌의 실체(實體)를 보았는지 몰랐다. 그는 사람이 그것에게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깨달아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몸과 그의 얼굴의 표정은 <절망>인 것 같았다. 기애의 마음을 날카롭게 움켜 잡고 놓지 않는 것도 그것이었는지 알수 없었다.
<이 사람에게는 내가 필요했나 본데 그런데 나는……>
근수의 왼팔은 말을 잘 듣지 않고, 그는 그것을 쳐들적에나 쭉 뻗어야 할 적에는 나머지 손으로 받쳐야만 하였지만 그래도 그의 균형 잡힌 몸집의 아름다움은 상하지 않고 있었다. 염색한 작업복 소매를 걷어 붙이고 있었지만 길쑴길쑴한 사나이의 육체는 매력적이었다.
「대구서는 오공군에 근무했었다구?」
「응.」
근무라는 용어가 기애 귀에 따라왔다.
「난 미군 기관은 싫어!」
앞을 본 채 근수는 꽤 세게 그 말을 잘라 하였다. 그것은 기애의 얘기라기보다는 자기 자신 미군 기관에 취직하기는 싫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어느편이건 기애는 화가 나지도 않아, 웃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란 퍽 힘든 걸.」
컴컴한 목소리로 그는 그렇게 말하였다. 괴롬이 몸에 밴 듯이 그의 낮은 음성은 몹시 컴컴했다. 기애는 반말하는 것을 느꼈다.
<미군 기관이 좀 쉽거들랑 거기 하면 어때요……>
그렇게 내쏘고 싶어졌다. 그러나 잠자코 있었다.
나무숲이 중단되며 동그란 잔디밭이 한쪽으로 나타났다. 오랜 비에 씻긴 신선한 연두색이 기운찬 볕발 아래 환하게 펼쳐 있었다.
잔딧가에서 근수는 문득 발을 멈추었다. 기애를 향해서며, 자기의 마음 속을 거기서 헤아리듯 기애의 얼굴을 물끄러미 건너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눈이 부신 듯이 깜박거리고 고개를 기웃하며 웃어 버렸다. 좀 싱거운 듯이 입가로 웃는 옛 버릇이었다.
풀밭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근수는 또 멈추고 기애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입가로 웃지 않고 눈빛도 아까와 같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기애의 손목을 감싸쥐었다.
「기애, 그동안 나를 잊었었겠지?」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이었다. 넓고 든든한, 기애 가운데의 여성이 저도 모르게 기대어 버릴 듯한 근수의 음성이었다.
「기애, 기애가 알 듯이 나는 여러 가지 것을 잃어버렸어. 생각도 전과는 달라져서 어떤 신념에 따라 한 노선을 간다는 일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야. 말하자면 비참한 지리멸렬이지. 그렇지만 내게도 단 하나 꼭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 온 것이 있어. 기애, 알아줄 터이지. 내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기애, 날 격려해줘. 내게는 아직도 아마 용기가 있을 거야.」
「……」
「기애!기애!」
근수의 억센 한 팔이 기애의 등을 끌어당겨 자기의 가슴패기에 묻어 버렸다. 목 언저리에 그의 입김이 뜨거웠다. 기애의 머리는 그의 말을 분석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마비시킬 듯한 이상한 감각 속에서 숨가쁘게 허덕이며 혼자 생각을 더듬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무얼까, 이건 무얼까.>
남자의 육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기에는 판이한 무엇이 있었다. 언젠가, 오랜 옛날에, 그렇다, 아마도 사변 그때에 다락 속에 숨은 근수에게서 받은 어떤 강렬한 느낌과 이것은 상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대는 온전히 깨닫지 못한 이 느낌은 인생의 진실과 어떤 절대적인 관련이 있는지 몰랐다…기애의 머리는 빙글빙글 도는 것이었다. 무슨 꿈에도 생각지 않은 오산이, 막대한 인생의 가치에 대한 오산이, 자기에게는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어차피 일은 죄다……>
기애는 몸을 비꼬아 근수의 가슴을 떼다밀쳤다.
「기애, 나를 밀어던지면 안돼! 날 사랑해 줘.」
목소리가 되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이며 근수는 자기의 얼굴로 기애의 그것을 덮었다.
꼭 무례한 짓을 당하고 화를 낸 사람처럼, 기애는 어디다 분풀이를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사실 기애는 화가 나 있기도 했다.
바보!바보! 난 자격이 없어요, 하고 내 입으루 설명을 안하면 못 알아보나, 바보, 바보. 그렇잖으면 날 더러 내가 그 모양이었었대도 아마 괜찮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 보란 말인가. 바보. 등신!
집으로 돌아왔으나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담장 앞 평상 위에 두 다리를 내던진 기애는 내내 외면을 한 채로이었다. 실오라기 같은 무궁화나무 곁에 버티고 선 근수는 그런 기애의 옆얼굴을 깜빡도 하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다보고 있었다.
나를 경멸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팔조차 이렇게 되어 버린 나를. 응, 그럴 테지, 그것이 당연한 노릇이다.
근수의 입가에 눈물보다 더 아픈 미소가 어리는 것을 기애는, 보았다. 기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의 초라함, 그의 서러움이 가슴에 저릿저릿 애달파서 그 새까맣게 타고 수척한 얼굴을 가슴에 안고 실컷 울고 싶었다. 기애는 평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고작 방으로 들어가서 양말이며 스커어트를 난폭하게 벗어던질 따름이었다. 그리고 다른 옷들을 주워 걸쳤다. 그 모양은 마치 근수의 손에 닿았던 모든 것을 일시라도 빨리 몸에서 벗겨 버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무궁화나무 께에서 근수는 옷자락이며 기애의 팔다리가 힐긋힐긋 나타나는 방문 쪽을 여전히 옴짝도 안하고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이제 미소도 떠 있지 않았다. 그는 다만 기애의 모든 모습을 뇌리에 깊이 새길 필요라도 있다는 듯이 응시를 계속할 따름이었다.
그들의 서슬에 가슴이 무너지게 놀란 것은 장씨였다. 그는 찾아 온 근수가 무한히 반가왔고, 산에랑 함께 나가는 것을 보고는 분주히 음식상을 마련하면서 이것들이 언제 오나, 욱이도 그만 돌아왔으면 하고 전에 없이 마음이 환했던 것이었다, 장씨는 기애더러 제발 웃는 낯을 보여 달라고 간청하고 싶었으나 그러지도 못하고 근수 쪽만 몇 번 살피다가 그것도 어려워 그만 부엌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이애는 왜 여태 안 오누.」
장씨는 부뚜막 앞에 서서 공연히 큰 소리로 그렇게 투덜대듯 하였다.
마침내 근수는 좀 진정이 된 낯빛으로 방문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기애에게 하여간 화는 내지 말아 달라고 상냥한 인삿말이라도 남기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방 안을 들여다 본 그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욱이의 책상 위에 버릇 사납게 걸터앉은 기애는 담배 연기를 후욱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담배를 끼고, 저리 본턱을 괸 손가락 끝에 길고 빨간 손톱이 표독스러웠다.
근수는 말없이 돌아섰다.
외면을 한 기애의 두 뺨 위로 굻다란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나 물론 근수에게 그것을 알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장씨는 기애와 얘기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에게는 딸의 일이 결국 알 수 없어진 것이었다. 무언지 서글프고 믿을 곳 없는 허전함만이 예전부터 변함 없는 그의 차지였다. 운명에 따라 모든 것이 진행되느니라고 그는 진작부터 단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산의 운명은 남과 같이 밝은 것일 수는 결코 없었고 그 운명에 불만을 품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장씨는 더욱 부지런히 교회에 다녔다.
욱이는 슬픔에 깃들인 눈초리로 기애를 가만히 보고 있을 때가 없지 않았지만 말을 걸면 언제나 적당히 명랑한 목소리로 응수하는 것이었다. 어려움에 두루말리지 않는 사기그릇 같은 매끄러움이 그의 구원일지도 몰랐다.
단지 이만 오천 환의 일자리였지만 기애는 취직을 하였다. 어째서인지도 모르는 도가 넘친 진지함을 가지고 기애는 그 무역 회사 일을 열심히 보았다. 어느날 욱이의 도시락을 쌌던 신문지 구석에서 기애는 조그만 기사를 발견하였다.
<청년이 염세 자살. 넉 달 전에 제대한 육군 중위가…>
이런 제목이었다.
그의 체취도 그의 입김도 느껴 볼 길 없는 무정한고 생경한 전갈이었지만 그것의 주인공은 근수가 틀림없었다.
기애는 기사를 찢어서 백 속에 넣었다. 조금 후에 그는 눈이 부시게 난한 차림으로 용산에 있는 미군 장교 구락부 앞에 나타났다. 다짜고짜로 책임자를 찾아서 자기에게 일거리를 달라고 부탁하였다.
노래도 하고 춤도 곧잘 추지요. 타이프는 물론 비서의 겸험도 없지 않아요. 신체 검사표를 내일 가져올까요?
술취한 것처럼 대어드는 기애에게 능글능글한 미국인은 배를 흔들며 웃었다. 그 밤으로 취직이 되지는 물론 않았지만 기애는 그 장교와 스윙을 추었다. 그리고 마아티니를 반병이나 마셨다. 굽이 세 인치나 되는 금빛 구두를 그는 신고 있었다.
「보아 보아.」
창턱에다 팔꿉을 짚고 않아 기애는 개를 불렀다. 까만 셰퍼드인 보아는 기애가 여지껏 본 개 중에서 으뜸 사나운 짐승이었다. 담 밖으로 부스럭 소리만 나도 공연히 날 뛰면서 으릉대었다. 뜯어 물듯 날뛰는 그 사나운 소리에는 타협도 자비도 있을 수 없고 그저 무정한 맹렬함이 있을 뿐이었다. 기애는 그 놈의 흉포한 모습을 보고 그 소리를 듣기를 좋아한다.
「당신은 언제든지 명령이 내리면 본국으로 휘딱 날아가 버릴 테지만 나중 일을 두려워할건 조금도 없어요.」
하얀 데이지가 흩어져 핀 정원으로 내려서면서 기애는 뚱보 미국인 장교 구락부의 하리이에게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보아가 날 지켜 줄 테니깐요. 도적으로부터, 못난 녀석들로부터 그리고 꼬부랑 할머니들 눈과 입으로부터……」
뚱뚱보 하리이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짐짓 성실한 낮빛을 지으면서 오오 자기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기애는 손가락을 하나 세우고서 애당초 곧이듣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그의 눈 속은 조금도 그늘져 있지 않았다. 앞가슴만을 조금 가린 선드레스의 두 다리를 쭉 펴고 보릿짚 샌들도 힘차게 땅을 딛고 섰는 그는, 투명한 남빛 유리 같은 여름 하늘 속에 자기의 투지(鬪志)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기애는 튼튼해지고 어여뻐져 있었다.
어머니 장씨가 검버섯이 새카맣게 돋은 얼굴로 기어오듯 맥없이 돌아오고 있는 것을 하리이와 함께 탄 차 속에서 보는 일도 있었다. 무슨 산엔가 기도한다고 올라가면 며칠씩 돌아오지 않는다는 장씨였다. 작은 책보를 옆구리에 낀 그날도 기도하러 갔다 오는 걸음인지 몰랐다. 길을 가득 차지하는 자동차 때문에 한옆으로 우두머니 비켜 섰으나 눈은 먼 곳을 항하고 있었다.
하리이가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해방촌 가는 길목집을 사게끔 버려 둔 무신경의 탓으로, 장씨가 그 앞의 큰 길은 피하여 멀고 강파른 돌음길을 다니고 있다는 소식은 기애의 마음을 자극하였다.
그러나 기애는 웃었을 뿐이었다.
욱이는 간혹 가다 들러 주었다. 지나치게 촉각(觸角)을 움직이지 않고, 그저 반갑게 누이를 보고 간다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단순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게 좋아서 만날 가시는 걸 테니까 넌 별 걱정은 말려무나.」
「응, 그다지 걱정은 안해, 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난 학교두 멀구 밤낮 어머니가 안 계셔서 점심두 못 싸 가지구 가구, 그래서 기선이 할머니 집에 하숙이나 할까 생각하구 있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욱이는 그러고 보니 좀 여유고 혈색이 안 좋았다.
「기선이 할머니? 기선이는 찦차에 치여서 죽었다며?」
「응 버얼써 전에, 일 년두 넘었지. 기선이 할머니가 자꾸와 있으라는데 어쩔까?」
기애는 어머니만 오오케이 하거든 그러려무나 하였다. 기선네는 설마하니 판잣집에는 안 살 터이고 그 것만으로 욱이에게는 이로우리라 생각되었다.
「응, 어머니는 좋을 대루 하라구 그러셔. 지금 예배당 생각밖에는 없으시거든.」
그렇게 말하고 욱이는 조금 웃었다.
「그럼 됐네.」
「그런데…… 아마 한 육천 환 하숙비를 내야 할 거야. 안 받는다구 그럴 테지만.」
「그럼 내야 하구 말구. 내지 뭐.」
「그런데…」
욱이는 판단을 지을 수 없다는 듯이 망설이는 눈초리로 기애를 쳐다보았다. 기애는 그의 맘 속을 이해하였다. 그것은 옳은 일일까 하고 욱이의 머리가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부모에게서 떳떳이 받아 쓰는 학비도 아니요, 말하자면 색다른 생활을 하는 누나가 주는 돈이었다. 학교에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고 그 이상의 요구가 자기로서 옳은 일일까 그른 일일까. 이런 주저로움이 그러나 욱이의 경우에는 그저 의문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억압된 수치감이나 이지러진 자존심을 동반하지 않는 까닭에 진흙구렁에 빠진 것 같은 부담을 쌍방에 주지 않는 것이었다.
기애는 조금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하리이한데 의논해서 네 한 달 학비를 정하기루하자. 저두 꼭 너만한 동생이 있다나. 자꾸 널 이리 데려오라구 그러길래 어림두 없다구, 기숙사에 넣어야 한다구 그래 두었지.」
기애의 이야기는 정말이었다.
그러나 정말이 아니라도 무방하였다. 욱이가 똑바로 자라나 줄 것만이 여기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똑바로 자라나 다오. 그것은 누나처럼, 근수처럼, 그리고 어머니처럼 되지 않는 일이다. 다른 무슨 방법을 발견하는 일이다. 너는 그것을 해낼 소질이 있을 듯해 보인다……
보아와 잠깐 장난을 치다가 들어가는 욱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기애는 이번에는 또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하리이가 지금 당장 어디루 가 버린댔자 나는 꿈적도 하지 않을 걸. 백 번 팽개쳐진댔자 꿈적도 하지 않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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