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한국 현대소설의 흐름

by 송화은율
반응형

한국 현대소설의 흐름

 

우리의 현대 소설사를 기술할 때 항상 논의되는 것이 기점(起點)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가 발표된 1906년부터 현대 소설의 기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이광수의 '무정'이 발표된 1917년부터 기산(起算)할 것인가가 논의의 초점이다.

대체로 우리 나라의 근대화는 외세에 의해 침탈 당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주체적인 발전의 개념이 아닌 이끌려 가는 수동의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근대화의 분수령이 바로 1894년의 갑오경장과 갑오 농민 전쟁(동학 농민 전쟁)이다. 이 시기를 중심으로 그 이전(중세)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현대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1910년대를 전후로 등장한 이른바 '신소설' 이다. 이에 대한 언급 없이 현대 소설로 직접 들어간다면 '신소설' 은 고대 소설이나 현대 소설의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신소설이 고대 소설과 현대 소설의 중간 시점에 놓여 있으나, 당시대의 현실적 문제들인 독립 사상, 신교육, 자유 연애, 신문명의 수용 등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의식의 소산이므로, 아무래도 현대 소설을 이야기하는 데 끼워 넣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신소설을 우리 현대 소설사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1 . 1910년대

 

1910년대는 우리 현대사에서 핍박과 격동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고, 사회적 문화적으로는 구시대의 봉건적 삶의 방식과 근대적 서구 문명의 수용 의자가 맞부딪친 시대였기 때문이다. 소설사에서 그에 상응하는 형식을 찾는다면 신소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신소설은 고대 소설과 현대 소설을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혼란스러웠던 개화기의 사회상을 담아 내어 미래를 전망하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신소설에는 고대 소설적 특성과 현대 소설의 가능성이 동시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 시기는 대략 이인직이 '혈의 누' , '귀의 성' 이 발표된 1906년부터 이광수의 '무정' 이 발표되는 1917년까지 10여년 간이다.

신소설의 특징은 우선 소설의 허구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 고대 소설과는 달리 매우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설화 또는 설명체 위주의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라 심리와 상황의 묘사를 통한 의미 전달을 시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겠다. 그러나 아직도 고대 소설적 요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문체나 주제면에서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는 이인직으로 '혈의 누' , '모란봉' , '치악산' , '은세계' 등을 남겼다.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이해조는 '자유종' , '구마검' , '화의 혈' , '모란병' 등의 작품을 썼는데 그중 '자유종' 은 문답 형식으로 '토론 소설' 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최찬식은 '추월색' , '안의 성' , '춘몽' 등의 작품을 남겼다. 기타 '금수회의록' 의 작가 안국선, '모란화' 의 김교제, '눈물' 의 이상협, '금산월' 의 박영련, 우회적 풍자적 소설인 '애국 부인전' 의 장재연, 민족주의 소설인 '을지문덕' , '이순신전' , '꿈하늘' 등의 신채호 등도 이 시기의 작가로 꼽힌다. 그 밖에도 이 시대에는 주로 일본의 소설들을 번안한 소설들이 유행하였다.

한국 현대 소설의 사실상의 효시는 춘원 이광수로 꼽아야 할 것이다. 그의 장편 '무정' 은 한국 현대 소설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우선, 의식면에서는 등장 인물들의 자아의 각성이 돋보인다. 특히, 봉건적 도덕 의식을 대표하는 박영채의 변모는 가장 두드러진 예이다. 형식적으로는 문장의 산문성과 취재의 현실성을 들 수 있다. 구어체 문장을 통한 세밀한 묘사는 신소설에서 크게 진일보한 것이고 실생활과 구체적 시간 공간의 반영은 현실감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여러 가지 과잉과 미숙성도 지니고 있는데, 너무 주제 의식에 집착하여 세속적인 사랑의 삼각 관계가 계몽 의지라는 관념에 의해 해소되고 있으며, 심리 묘사나 성격 창조가 작가의 직접적 개입에 의한 논평과 해설에 의존한 결과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노출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판단 기준에 의하건, 근대적 개인 의식을 형상화했다는 문화적 성취도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1910년대는 우리 소설사에 있어서 '출발점' 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대 소설이 막을 내리고 신소설을 통해 이광수의 '무정'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 현대 소설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 시대 정신은 개화 계몽 사상이었다. 그리하여 신소설의 전반적인 주제는 개화의 추구였으며, 이광수의 '무정' 은 그러한 개화 의지가 좀더 실감있게 형상화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 . 1920년대

 

1920년대는 '빈곤화의 시대'로 불려지고 있다. 그것은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의 상태에 직면함으로써, 자각과 계몽의 정신적 진보와는 별개로 경제적으로는 궁핍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시대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기아와 고통을 소재로 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내재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시대 소설에 있어서의 가장 커다란 특징을 꼽는다면 '가난에 대한 인식' 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에 대한 인식의 특별한 유형으로는 먼저 자연주의적 요소를 다분히 간직하고 있는 김동인의 '감자' 를 들 수 있다. 가난으로 인한 윤리 의식의 파탄을 통해 한 여인의 비극적 죽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 다만 그 원인에 대한 규명이나 인식에 있어서는 소박한 감이 없지 않다.

현진건과 나도향 역시 가난에 대한 문제를 중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진건은 '빈처' , '운수 좋은 날' , '고향' 등의 작품에서 가난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비판적 사실주의의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가난에 대한 상황적 인식을 토대로, 인간간의 대립과 갈등보다는 개인과 사회의 역학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도향은 '행랑자식' , '물레방아' , '지형근(池亨根)' 등의 작품을 통하여 가난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데, 현진건의 작품에서와 같은 명료한 현실 인식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가난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애정 관계가 더 큰 원인이 되어 등장 인물이 파멸에 이르는 윤리 의식의 위기를 보여 주고 있다.

가난의 상황을 가장 절박한 문체로 다룬 KAPE의 대표적 작가인 최서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토혈' , '큰물진 뒤' , '박돌의 죽음' , '탈출기' , '홍염' 등의 작품을 통해 궁핍의 사회적 요건과 굶주린 자의 정서적인 변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박돌의 죽음' , '홍염' 등의 작품은 가난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서 살인과 방화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이끌어 내어 굶주린 자의 파괴적인 폭력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기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죽음이란 제재가 많이 선택되었다는 점이다. 김동인의 '목숨' , '감자' , '배따라기' , '광화사' , '붉은 산' , 전영택의 '혜선의 사(死)' , '화수분' , 현진건의 '사립 정신 병원장' , '운수 좋은 날' , 염상섭의 '만세 전' , 나도향 의 '물레방아' , '벙어리 삼룡' 등과 최서해, 주요섭의 일련의 작품들이 모두 죽음을 제재로 택하고 있다. 이는 20년대 현실에 대한 인식이 병적이고 종말론적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사에서 1920년대는 활발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특히, 최초의 동인지로 볼 수 있는 '창조' 의 탄생 이후, 수많은 문예지가 속출하면서 왕성한 창작이 가능해졌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활발한 서구 문예 사조의 유입을 들 수 있다. 이는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현상이 식민지라는 조건에 처해 있어 자발적으로 문예 발전을 진행해 나갈 수 없었다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말하자면 서구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낭만주의 등의 문예 사조가 주로 일본을 통해 유입됨으로써 문예 창작이 활발히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서구 문예 사조의 무분별한 수용은 이후 20년대를 '문예'사조의 혼류' 라고 지적하게끔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시기 소설 양상을 주요한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김동인(1900~1951)은 우리의 현대 소설에서 단편 소설의 미학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작가이다. 그의 문학에 대하여 자주 언급되는 용어는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이다. 이는 소설이 현실의 삶의 모습들을 관찰, 해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배따라기' , '감자' , '발가락이 닮았다' , '명문' 등이 있다.

두 번재로는 시대적 삶과 일상적 삶을 다양하게 그려 내고 있는 염상섭을 들 수 있다. 그는 '표본실의 청개구리' 로 자연주의적 기법의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만세전'(원제는 '묘지')을 통해서는 식민지적 삶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면에, '금반지' 와 '전화' 에서는 범속한 소시민의 생활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서술로 그리고 있다.

세 번째로는 우리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빙허 현진건이다. 그는 '빈처' , '운수 좋은 날' , 'B사감과 러브 레터' 등의 작품에서 반어적인 방법을 통하여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개인과 사회의 딜레마를 단일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밖에 1920년대에서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우리 문단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계급주의 문학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들의 기본 성격은 계급 투쟁과 혁명에의 지향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문학을 그것의 선전 도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문학관은 목적 의식적이며, 소재로는 주로 노동 쟁의나 소작 쟁의 등 당대의 첨예한 사회적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기영의 '홍수' , 이북명의 '질소 비료 공장' , 권한의 '목화와 콩' , 송영의 '석공 조합 대표' , '선동자'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이들과 현실 인식에서는 비슷한 경향을 보이나 계급주의 문학론에 적극 가담하지 않고 개인적인 문학 행위를 이어 나간 작가들이 있는데, 그들을 동반자 작가라고 부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효석의 '노령 근해' , 유진오의 '여직공' , 박화성의 '홍수 전후' 등을 들 수 있다.

1920년대는 우리 현대 소설사의 확고한 출발점인 동시에 현대 소설의 기본적인 성격이 확립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20년대의 소설은 시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전반적으로 암울하고 침울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되며, 당대에 받아들여진 서구 문예 사조는 20년대에 실험적인 양상을 거쳐 이후의 소설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3 . 1930년대

 

1930년대 소설의 특징은 관심의 다원화 현상이다. 20년대 소설이 주로 가난과 어두운 면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비하여 30년대에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가 등장하고 있다. 이 시대는 일제의 수탈 정책이 경제적 침략과 함께 문화적 침략으로 확대되면서 숱한 문인들이 지하로 잠적하거나 전향하는 사태를 낳았으며, 일시적 유화기에는 다양한 사조와 형식들이 창조되었다.

이 시기 소설사의 특징은 첫째로, 관심의 초점이 도시와 농촌으로 양분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이른바 '도시성' 이 내포하고 있는 병리적(病理的)인 여러 요소와 삶의 양식 또는 도시적 세태(世態)를 제시하고 있으며, 후자의 경우 도시적인 분열 대신에 자연과의 화합 내지는 흙의 생활과 농촌의 삶을 제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두 번째로는, 역사 소설의 양산이다. 이는 당대의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발언이 그만큼 제약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밖의 특징으로 이상(李箱)으로 대표되는 심리 소설과 여류작가들의 대거 등장, 그리고 일제의 강압이 심화되면서 친일문학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을 들 수 있다.

먼저 도시적 삶을 중심 제재로 한 소설을 살펴보면, 여기에는 당대에 우리 문학에 유입된 모더니즘의 영향이 숨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소설은 도시를 공간적이 배경으로 삼고 도시의 보편적인 삶의 양식으로서의 가난, 범죄, 쾌락과 매춘, 인간 관계의 마찰과 소외감, 개인적인 분열 증상 등을 수용하면서 식민지 사회의 축소판으로서의 도시를 제시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풍자적 수법을 통하여 당대의 시대를 고발하고 있는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 '인텔리와 빈대떡' , '치숙' , '탁류' , 등의 작품이 있고, 사상의 자유가 억압되고 경제적인 불균형이 널리 퍼져 있는 식민지의 도시 생활의 구체적인 단면을 제시하는 유진오의 '김 강사와 T교수' , '여직공' 등의 작품이 있다.

이효석의 '깨뜨려지는 홍등' , '천사와 산문시' , '인간 산문' , '장미 병들다' 등의 작품들에서는 도시의 빈민층과 상류 사회와의 격화된 갈등과 대비를 통하여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고 있으며, 박태원은 '천변 풍경'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의 작품에서 지식인의 병든 일상과 무기력한 삶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이 밖에도 박노갑의 '무가(霧街)' , 이상의 '지주회시' , '날개' , 김남천의 'T일보사' , '경영' 등의 작품을 들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도시적 삶의 양식과는 다르게 농촌의 삶의 양식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 번째가 도피적인 문학으로, 도시적인 문명의 잡음과 혼란의 현실성을 부정하는 장소로서 농촌이 선택되는 경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효석의 '행진곡' , '마작 철학 (麻雀哲學)' , '오리온과 능금' , '북국점경' , '시월에 피는 능금꽃' , '들' , '산' , '메밀 꽃 필 무렵' , '산협' 등이다.

두 번째로는 당대의 시대 정신의 하나였던, 이른바 '브나로드' 라 불리는 농촌 계몽 운동의 산물로서, 이광수의 '흙' 과 심훈의 '상록수' 를 꼽을 수 있다. 이들 작품에서는 농촌이나 농민과의 정신적인 유대를 강화하려는 인물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대체로 하향적인 시혜(施惠) 의식으로 말미암아 농촌의 현실 파악에 미흡하다는 한계가 있다.

세 번째로는 사회주의 문학론의 일환으로 농민 운동과 관련된 작품들이다. 이기영의 '쥐 이야기' , '부역' , '홍수' , '고향' , 권한의 '목화와 콩' 등이 대표작인데, 이러한 작품들은 문학의 독자성보다는 계급 이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주제 의식은 명확한 편이다. 특히, 자작농(自作農) 이 소작농(小作農) 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식민지적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 은유한 점에서 문학적 의의가 있다.

네 번째로는 민족 운동의 계몽성이나 사회주의의 목적성을 표면화하지 않고 농민의 생활 실상을 리얼하게 다룬 작품들이다. 이무영의 '흙을 그리는 마음' , '제 1 과 제 1 장' , '흙의 노예' , 박영준의 '모범 경작생' , '목화 씨 뿌릴 때' , '일 년' 등의 작품이 대표작이다.

이상의 작품들과 부분적인 유사성을 지니고 있지만 좀더 개성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한 경우로 이태준, 김유정, 김정한을 들 수 있다. 이태준은 상고주의(尙古主義) 와 연민의 정서를 기반으로 소외된 인간상에 대한 애착을 보여 주며 반(反) 도시성과 흙의 예찬을 다루었던 작가라 할 수 있는데, 대표작으로는 '오몽녀' , '달밤' , '까마귀' , '아담의 후예' , '꽃나무는 심어 놓고' , '농군' , '돌다리' 등이 있다.

김유정은 등장 인물의 우직하고 엉뚱한 행동 묘사, 해학적 문체와 현장감 있는 속어 감각 등으로 특이한 소설적 영역을 구축한 작가이다. 대표작으로는 '동백꽃' , '봄 봄' , '산골 나그네' , '소낙비' , '만무방' , '총각과 맹꽁이' 등이 있다.

그 밖에 김정한은 '사하촌' , '옥심이' 등의 작품을 통하여 문학의 현실 고발적 성격을 강조한 작가이다.

이 시기의 소설은 강한 역사주의의 의식을 수용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이는 현실 도피나 복고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으나, 현실의 단절성을 과거와 이어 보려는 의식의 한 발로라는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역사 소설로는 이광수의 '마의 태자' , '단종 애사' , '이순신' , '이차돈의 사(死)' , '세조 대왕' 등과 홍명희의 '임꺽정(林巨正 )' , 김동인의 '젊은 그들' , '운현궁의 봄' , 박종화의 '금산의 피' , '대춘부' , '전야' , '다정 불심' , 윤백남의 '흑두건' , '대도전' , 이태준의 '황진이' , 현진건 의 '무영탑' , '선화 공주' 등이 있다. 이러한 역사 소설의 양적 증가는 비록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속에서 역사 인식의 폭이 넓어졌으며 장편 소설로의 길을 열었다는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족사 소설은 우리 전통의 가족주의 내지는 부족주의에 근거하면서 가족에 미치는 역사와 사회의 영향력의 문제와 세대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가족사 소설로는 염상섭의 '삼대' , 김남천의 '대하' 를 들 수 있다.

엽상섭의 작품들은 각 세대간의 정신적인 갈등과 가족의 운명을 통해 당대 현실에서의 인간의 모습을 잘 그려 내고 있다. 특히, 그의 '삼대' 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할아버지, 아들, 손자 등의 3대에 걸친 시대 의식을 보여 줌으로써 식민지 시대의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김남천의 '대하'는 비록 미완의 작품이지만 봉건 사회의 붕괴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겠다.

이 시기 우리 소설사에서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여류 작가와 여성 문학의 약진이다. 이는 남성 중심의 문학사에서 여성 문학의 위치를 비로소 정립했다는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 가난과 자연 재난의 문제를 파고 든 박화성의 '추석 전야' , '홍수 전후' , '한귀(旱鬼)' , '고향 없는 사람들' , 현실 속에 내재해 있는 생활의 빈곤 현상을 그린 강경애의 '어머니와 딸' , '모자' , '어둠' , '지하촌' , '인간 문제' , 여성적인 감성이나 사고의 영역에서 여성 리얼리즘을 확보했다고 평가되고 있는 백신애의 '적빈' , '꺼래이' , '매소부' , '여인 명령' , 여성 의식을 섬세하게 형상화한 최정희의 3부작인 '지맥' , '천맥' , '인맥' , 그리고 '인간사' 등의 작품들이 있다.

이 시기의 우리 소설사는 '모더니즘' 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이상(李箱)이다. 그의 작품들은 일제 치하 우리 지식인들의 공포 의식과 좌절 의식을 가장 잘 형상화한 예가 된다. 대표작으로 '날개' , '지주회시' , '봉별기' 등이 있다. 그와는 조금 다르게 풍속적 세태를 다룬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천변 풍경' , 심리 묘사를 통해 인간 관계 일반을 심도 있게 포착한 허준의 '탁류' , '야한기' 등도 이 시기 모더니즘 소설의 한 양상이다.

한편,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시대성보다는 인간성을 더 중시하는 문학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2, 30년대를 풍미했던 사실주의의 쇠퇴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KAPF의 해산, 그리고 가속도를 더해 가는 일제의 탄압이라는 상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류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계용묵, 김동리 등이 있다.

흔히 '인생파 작가' 라고 불리는 계용묵은 주로 인간의 참된 가치와 행복이 물질적인 소유 양식과 정신적인 삶의 주관성 중 어느 것에 있는가라는 선택 문제를 중시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 '백치 아다다' 는 그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최 서방' , '인두지주(人頭蜘주)' , '마부' 등이 있다.

한국 문학에 하나의 신화 시대를 창조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김동리는 지방주의와 무속적 세계관을 채택함으로써 역사주의의 초극(超克)을 시도하고 영원성을 회복하려는 문학 정신은 한마디로 '다양하다' 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계급 문학이 중반까지 세력은 지니고 있었으며, 그 이후로는 모더니즘의 문학이 그리고 여성문학까지 가세하면서 우리의 소설사를 다채롭게 꾸미고 있다.

 

4 . 1940년대

 

1940년대는 우리 문학사에서 '어두움' 과 '밝음' 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해방 전까지 일제의 군국주의가 가속도를 더해 감으로써 우리 문학에 시련을 가했다는 의미와 함께, 해방 후 우리 문단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40년대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 해방 전의 문학

해방 전의 상황은 매우 암담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지의 폐간과 일본식 성명 강요, 황국 신민화 등을 통해서 일제에 의한 탄압이 그 강도를 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변절의 붓으로 이른바 '부일 문화(附日文學)' 의 길로 나서는 부류와 붓을 아예 꺾거나 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문인들로 나뉘게 되며 그 외의 작가들 역시 살아 남음과 소멸의 기로에서 고통 받아야만 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문단에 발에 들인 작가로는 황순원, 최명익, 정인태, 현덕, 김이석, 안수길, 김영수, 정비석, 김사량, 최인욱, 곽하신, 최태웅, 임옥인, 지하련 등 이있다.

시에서 출발하여 시적 언어와 산문성을 결함시킨 황순원은 초기 단편에서 소년과 소녀를 등장시켜 그들이 겪어야 하는 통과 제의(通過祭儀) 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기러기' , '세레나데' , '별' , '닭제' , '소나기' , '늪' 등이 있는데, 이는 유년기의 소년, 소녀들이 성인으로 가는 시련과 아픔의 과정을 통하여 역사를 헤쳐 나간다는 것의 어려움, 그런 역사에 대해서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면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최명익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세계관을 토대로 모더니즘적 작품 경향을 보여 주는데, 자의식적인 성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현실의 상황을 절망적이고 암담한 분위기로 조성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에는 '역설' , '장삼 이사' , '무성격자' , '비 오는 길' , '봄과 신작로' 등이 있다.

(나) 해방 후의 문학

'해방' 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한마디로 '새 출발'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방기의 우리 사회는 새로운 출발에 앞서 혼란과 대립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즉, 반도의 허리는 잘려나가고 그 남쪽은 미 군정에, 북쪽은 소련 연방에 편승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상에 그대로 반영되어 이데올로기의 혼란과 좌우익의 대립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되며, 그것은 48년 정부 수립 이후 극점에 도달하게 된다.

문학에서의 해방의 의미는 우선적으로 '회귀' 또는 '복구' 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일제 치하의 상황이 '암흑과 실향' 이라면, 이제 잃어버렸던 고향과 파괴된 삶의 원형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반영하는 문학으로 김동리의 '혈거 부족' , 계용묵의 '별을 헨다' , '바람은 그냥 불고' , 정비석의 '귀향' , 엄흥섭의 '귀환 일지' , 허준의 '잔등' 등의 작품이 있다.

두 번째로는 남북 분단의 비극에 대한 인식이다.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불행하게도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을 낳고 말았고, 한민족은 38선이라는 인위적 조작을 통해 서로간의 왕래마저 통제당한 채 대립과 분열이라는 새로운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은 분단 이후 미소 양군의 진주와 군정 등에서 먼저 그려지게 되는데, 그 대표작으로는 염상섭의 '삼팔선' , '이합' , 계용묵의 '별을 헨다' , '이불' , '짐' , 박연희의 '삼팔선' , 함대훈의 '청춘보' , 전영택의 '소' , 이태준의 '해방 전후' , 박노갑의 '사십 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염상섭의 '양과자 집' , '두 파산' , '임종' , '일대의 유업' 등의 작품을 통하여 소시민의 범속한 삶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김동리는 '역마' , '달' 등의 작품에서 현실을 초월한 좀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하여 문학의 초시대적 기능에 계속적 관심을 표명하게 된다. 허윤석은 서정적 소설의 양상을 드러내는 '옛 마을' , '유두(流頭)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편, 변명과 반성의 문학 양식이 있다. 이는 일제 치하에서의 지식인의 오류나 범죄와 악행에 대하여 자기 비판의 도덕적인 죄책잠이나 자기 변명적인 인식을 투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광수는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해서 일본에 협력하기를 주장했다." 는 글에서 자기 변명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 , '속 민족의 죄인' , 이태준의 '해방 전후' , 지하련의 '도정' 등이 있다.

그러나 8 15 해방 문단에서의 이러한 상황 인식과 그 형상화로서의 소설은 8? 15 해방이 외세에 의한 불완전한 해방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양상을 낳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출발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

5 . 1950년대

 

1950년대는 민족사의 최대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6 25 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민족사의 비극은 1050년대를 암울한 시대로 만들었고, 만과 북의 대립 상황을 첨예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시기의 소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 하나는 이른바 '전선 문학' 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에의 참여 문학으로 6 25 전쟁 기간이 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전쟁을 겪고 난 후의 이른바 전후 문학이다.

50년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면 전쟁을 통해 형성된 일종의 피해 의식이다. 이는 이후의 우리 문학사에서 줄곧 잊혀지지 않는 주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휴머니즘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살육 현장을 체험함으로써 역으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살피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실존주의적 경향이 태동하였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서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옹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주로 전후에 등장하는 '신세대 작가' 들에 의해 제창되기에 이른다.

종군 작가들은 육 해 공군에 각각 나뉘어져 전쟁의 상황을 기록하거나 참전국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문학을 창조해 내게 된다. 그 대표적 작품이 '전시 한국 문학선' 에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소설은 문학적 성취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 하면, 목적 의식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전후의 문학에서 가장 주요한 특징인 피해 의식과 관련하여서는 우선 전쟁 체험을 통한 성장 소설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아이들을 작품에 등장시키면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며 전쟁이 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 주는데, 하근찬의 '흰 종이 수염' , 송병수의 '쑈리 킴' 등이 그 대표적 작품이다. 이와 유사한 양상으로서 삶의 지향 가치가 바뀌거나 삶의 양식의 변모를 다룬 작품들도 양산되는데, 그 대표적 유형이 안수길의 '제 3 인간형' 과 손창섭의 '설중행' 등이다.

전쟁을 체험하면서 50년대 작가들의 작품 세계는 방향 상실, 불안과 혼돈, 피해 의식 등에서부터, 생활의 절박한 어려움이나 일자리 없음의 극한적 고통을 집중 조명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 유형이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 , 김성한의 '암야행' ,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 , 이범선의 '오발탄' 등이다.

이러한 피해 의식에 대한 인식은 그 결과로서의 희생의 구체적인 표상(表象) --- 정신적, 육체적 불구(不具) --- 을 제시하게 되는데, 오상원의 '백지의 기록' , 하근찬의 '수난 이대' , 손창섭의 '혈서' , 유주현의 '장씨 일가' , 서기원의 '암사지도' , '이 성숙한 밤의 포옹' 등은 이러한 양상의 대표적 작품들이라 하겠다.

50년대 문학에서 두 번째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전쟁의 무모함이나 잔혹성을 고발함으로써 전쟁의 비인간성과 반윤리성을 드러내는 '휴머니즘 문학' 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동쪽으로서 결코 적대시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외래적인 이데올로기의 힘에 이끌려서 서로를 부정하고 대립하며 마침내는 정쟁으로 발전하였다는 데서 기인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 의식은 일체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로는 김동리의 '홍남 철수' , 박영준의 '용초도 근해' , 황순원의 '학' , 선우휘의 '단독 강화' , 송병수의 '인간 신뢰' , 홍성원의 'D데이의 병촌' 등이 있다.

50년대 문학의 세 번째의 주요 특징은 '실존주의' 의 유입이라고 볼 수 있다. 서구 문예 사조에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존재와 그 의미, 한계에의 도전과 극복을 언급하며 등장한 실존주의는 전후 한국 문단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젊은 작가들의 피폐화된 정신 세계를 지배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이러한 유형의 대표적 작가들로는 손창섭, 장용학, 오상원을 꼽을 수 있다.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하여 냉소주의를 극한에까지 시도한 손창섭의 '공휴일' ,'비 오는 날' , '낙서족' , 한국 문단의 가장 난해한 작가로 손꼽히는 장용학의 '요한 시집' , '비인 탄생' , '원형의 전설' , 앙드레 말로, 생텍쥐페리의 영향과 의식의 흐름 수법을 보이는 오상원의 '유예' , '백지의 기록' , '모반' , '황선 지대' 등이 이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50년대는 원점에 대한 확인을 다루고 있는 부류로 최일남의 '쑥 이야기' , 이호철의 '탈향' 등이 대표작이며, 월남민의 시각을 다루고 있는 임옥인의 '월남 전후' , 젊은이들의 순수한 사랑과 고뇌를 그린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 '임진강의 민들레' 등이 있다.

6 . 1960년대

 

사회 역사적으로 1060녀대는 자유와 민주로의 지향성을 지닌 4 19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4 19는 비록 '미완의 혁명' 이라는 말처럼 5 16 군사 정권의 발호 속에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그것이 당대의 현실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구시대의 청산과 새로운 시대의 개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문학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닫힌 공간으로서의 '밀실' 에 대한 인식과 열린 공간으로서의 '광장' 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최인훈의 '광장' 이다.

'저 빛나는 사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라는 감격 어린 진술이 담긴 머리말과 함께 월간 잡지(사상계) 에 발표된 '광장' 은 현실을 '밀실'과 '광장' 이라는 관념으로 치환하여 드러내고 있다. 그 속에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주인공 이명준의 '자살' 로 상징되는 한계와 절망의 인식,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제시했다. 광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밀실과 대응되는 개념이다. 애인의 침대에다 장갑이나 라이터를 둘 수 있는 세계가 밀실이라면 광장이란 공동체를 표상한다. 이를 또 다른 추상어로 바꾸면 자유와 평등이다. 주인공 이명준은 이 둘을 동시에 갖고자 하였다. 하나는 남쪽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북쪽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밀실은 남쪽에도 없었고 북쪽의 광장엔 기관총이 걸려 있었다. 6 25 라는, 거대한 두 이념의 충돌에서 그 점이 여지없이 분명해졌다. 낙동강 전선에서 포로가 된 이명준은 포로 교환 때, 중립국 인도를 택했다. 그는 남쪽도 북쪽도 거부하고 제 3국을 선택했지만, 그것조차 허망함을 깨닫고 자살하는 길을 택한다. 최인훈의 관념적 방법론은 이후 '구운몽' , '회색인' , '서유기' 등의 작품에도 나타나고 있으나, 구체적 형상성의 부족으로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60년대 소설의 '밀실' 에 대한 의식은 자유에 대한 정치적 현실적 압박으로부터 생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의식은 70년대나 80년대 우리 소설에서 주요한 제재로 자리를 잡기에 이른다.

이러한 유형의 첫 번째가 '밀실' 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이다. 즉, 감사와 통제, 그리고 연행과 고문이 자행되는 비리화된 사회를 암시하는 동시에 열린 세계와 자유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호철의 '문' ,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 , 이정환의 '까치 방' , '독보(獨步) 꿈' , '호각 소리' , 송영의 '선생과 황태자' , '임께서 오시는 날' ,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 , '겨울 밤' , 이문열의 '어둠의 그늘' 등이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감옥에 대한 인식은 사실적 공간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으로도 설정되어 고통의 상황에 대한 유추나 자유에 대한 대조로서의 의의를 지니며 등장하기도 한다.

60년대는 매우 다양한 문학들이 독특한 서사 구조를 갖추고 등장하고 있다. 최인훈의 관념성과는 다르게 구체적 형상성을 들고 나온 이호철의 '소시민' 이나, 감각적인 문체로 삶의 개별화 현상과 도시적 삶의 위선성을 그린 김승옥의 '생명 연습' , '서울, 1964년 겨울' , '무진 기행' 등이 있으며, 끊임없는 폭력과 억압에 대한 부정을 자유의 정신으로 밀고 나가는 이청준의 '소문의 벽' , '별을 보여 드립니다' , '침몰선' 등의 작품도 이 시대의 대표작들이다.

이 밖에도, 어떤 절대적 가치도 인정하지 않고 상대주의로 일관하는 서정인의 '후송' , '강' , '원무' 등의 작품과, 이제하의 '유자약전' , 박태순의 '무너진 극장' 등이 있고, 구시대 작가들로서 60년대 소설사에 원숙미를 가미시키고 있는 문인들의 작품, 즉 안길수의 '북간도' , 황순원의 '일월' , 박영준의 '종각' , 전광용의 '꺼뻐딴 리' , '죽음의 자세' , 정한숙의 '끊어진 다리' , 최정희의 '탄금의 서' , 손소희의 '남풍' 등도 이 시대의 대표작들이다.

7 . 1970년대

 

1970년대는 우리 역사에서 진보와 발전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거론된 시대이다. 사회적으로 전쟁의 상처가 많이 아물고, 경제적으로는 중진국으로의 진입과 산업화의 가속력이 있었다. 삶의 여건도 많이 변화하여, 농촌 사회가 해체되고 농민들이 산업 노동자로 유입되었으며, 이에 따른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말미암아 도시 빈민이 생성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은 문학에도 영향력을 행사해 우리 소설에 전례 없던 풍성한 자료를 제공했다.

60년대가 관념적 인식과 상징에 의존했다면, 70년대는 현실적 삶에 초점을 맞추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그 대표적 형태가 농촌 공동체의 해체와 근대화에 대한 비판인데, 이문구의 '관촌 수필' , '해벽' , '우리 동네' 연작이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송기숙의 '자랏골의 비가' , '암태도' 는 농민의 저항 의식을 담고 있으며, 농촌 현실을 증언한 김춘복의 '쌈짓골' , 어촌을 배경으로 한 천승세의 '낙월도' , '신궁' , 한승원의 '그 바다 끓며 넘치며' 등을 이 계열에 포함시킬 수 있다.

노동 현실의 소설화 양상도 두드러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 '객지' , 윤홍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직선과 곡선' , '날개 또는 수갑' , '창백한 중년' , 연작 형태의 장편 소설인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이 이러한 유형에 들어 있다.

그러나 70년대는 정치적 삶과 경제적 삶의 불균형 상태를 낳음으로써 불완전성을 내포한 시대였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 소설사에 병리적 상징으로 나타나서 불완전한 인물과 병실 공간의 등장이 두드러진다. 이청준의 '퇴원' , '병신과 머저리' , '황홀한 실종' , 박태순의 '실금' , 정종명의 '이명' , 최인호의 '견습 환자' , 정연희의 '어릿광대 의 치통' ,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2' , 안장환의 '동통' , 이동하의 '파편' 김구영의 '어디가 아프십니까' , 한승원의 '벌받는 사람들' , 오탁번의 '절망과 기교' , 문순태의 '개안 수술' , 현기영의 '순이 삼촌' , 임철우의 '직선과 독가스' 등의 작품들이 대표작들이다.

산업화와 인구 도시 집중은 우리 소설사에서 도시형 소설의 다량 생산을 낳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 예가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 , '서울 사람들' , 이동하의 '도시의 늪' , '장난감 도시' , 신상웅의 '도시의 자전' , 황석영의 '돼지 꿈' , 최인호의 '타인의 방' , 서영은의 '유리의 방' ,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 시대' , 최일남의 '서울 사람 들' , 전상국의 '고려장' , 이문열의 '달팽이의 꿈' 등이 대표작이며, 이러한 양상은 80 년대 양귀자, 최수철, 박영한 등의 소설로 이어지게 된다.

70년대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역사 소설이 큰 호응을 얻었다는 점이다. 이는 4? 19로 비롯된 역사 의식의 성장과 급격한 시대적 변동에 따른 역사적 단절감의 회복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작품들로, 안수길의 '북간도' , 박경리의 '토지' , 유주현의 '조선 총독부' , 서기원의 '혁명' , 유현종의 '들불' , '연개소문' , '임꺽정' , 황석영의 '장길산' , 김성한의 '이성계' , '임진왜란' , 김주영의 '객주' , 이병주의 '지리산' 등이 있으며, 특기할만한 점은 위인 중심의 전기적 역사 소설에서 탈피하여 우리 역사의 숨겨진 부분과 이름 없는 민중들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두드러졌다는 점일 것이다.

70년대 소설에는 제3세계적 시각이 폭넓게 깔려 있다. 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가한 것이 '월남 참전' 이었다. 이로부터 자유와 민주의 문제에서 자주의 문제로 확산되어 반제국주의 의식이 형상화되기 시적했는데, 그 대표적 작품들은 신상웅의 '분노의 일기' , 조해일의 '아메리카' , 이문구의 '해벽' , 천승세의 '황구의 비명' 들과 직접 월 남전을 다룬 작품으로 황석영의 '탑' , '낙타 누깔' , '몰개월의 새' , 박영환의 '머나먼 쏭바강' , '인간의 새벽' 등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80년대에 안정효의 '하얀 전쟁' 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로 이어지게 된다.

70년대는 이상과 같은 큰 흐름 외에도 다양한 작가들이 나름대로의 개성적 문학관을 펼치면서 우리 소설사를 장식하고 있다. 자아와 세계의 불화에 대한 낭만적 인식을 기저로 하고 있는 최인호의 '무서운 복수' , '술꾼' , '예행 연습' , '별들의 고향' , '바보들의 행진' , 한수산의 '해빙기의 아침' , '밤의 찬가' , 오정희의 '직녀' , '불의 강' , '꿈꾸는 새' , 서영은의 '야만인' , '틈입자' , '사막을 건너는 법' 등의 소설이 그 예들이다. 그 밖에도 최일남의 '둘째 사위' , '디오게네스의 변절' , 최상규의 '대합실' , 정을병의 '피임 사회' , 강용준의 '탈주자들' , 김용성의 '리빠똥 장군' , 홍성원의 '무사와 악사' , '흔들리는 땅' , 김채원의 '먼 바다' , 유채용의 '누님의 초상'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동시에 70년대 후반 소설사에 새로운 작가들로 등장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 '들소' , 김성동의 '만다라' , 김원구의 '무기질 청년' 등도 주목해야 할 작품들이다.

8 . 1980년대

 

1980년대는 70년대에 이미 태동하기 시작한 민중 문학의 기운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문단의 큰 세력을 형성한 시대이다. 1980년대를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 80년 5월에 있었던 광주 민중 항쟁이다. 70년대가 유신이라는 폭압과 독재 속에서 유지된 시대였고, 그 억압성은 80년 5월의 광주 항쟁을 낳게 되었으며, 광주 민중 항쟁은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예고하였기 때문이다. 이 비극적 체험은 이후의 문학적 상상력이나 정신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여, 80년대의 문학은 광주를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긴 파장을 드리웠다.

한편, 80년대는 70년대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 산업화의 흐름이 더욱 급격하게 되고 이에 따라 노동자를 양산하면서 그들의 생존권 투쟁은 전국적 규모로 이어졌다. 어쨌든, 80년대는 유례없이 어두운 갈등의 시대였으며, 이에 대한 반작용 및 돌파구로 진보적인 역사관이 강한 목청을 돋운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먼저, 80년대를 휩쓴 진보(進步)의 열기에서 비켜선 자리에서 문학을 했던 일군의 작가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이문열이다. 그는 '금시조' 를 통하여 동양 예술에 관심을 갖더니 '칼레파 타 칼라' 를 통해서는 그리스 도시 국가를 배경으로 우리의 역사에 일종의 의문을 제기했다. 이문열은 훗일 '시대와의 불화' 란 산문집에서 자신이 왜 '어두운 열정에의 경사(傾斜)를 거부했는지' 를 해명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유후명의 '돈후의 사랑' , 샤머니즘 혹은 원시적인 신화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보여 준 한승원의 '불의 딸' , 교육 현장을 다룬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 박양호의 '지방 대학 교수' ,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우리 삶의 정신적, 물리적 폭력의 양상을 그린 이동하의 '폭력 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소설적 기법의 새로움을 추구한 작가군으로 80년대에 모습을 드러낸 이인성, 최수철, 서정인 등도 이러한 현상에 동참한 작가들이다. 이인성은 '낯선 시간 속으로' , '한없이 낮은 숨결로' 등의 작품을 통해 기존의 소설 기법에 대한 과감한 해체를 추구하고 있다. 최수철은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의 양상을 독특한 문제로 표현하고 있다. '고래 뱃속에서' 가 그의 대표적 작품이다. 서정인은 '달궁' 시리즈를 통해 기법 실험의 한 극단을 보여 주었다.

그 밖에 냉소주의적인 입장에서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고원정의 '거인의 잠' 이나, 역사 소설의 기법으로 우리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려 낸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등도 소재의 확대를 가져온 부류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광주 체험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서 우선적으로 대두한 것이 광주 항쟁에 대한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유택의 '먼 길' 은 군에 대한 불신과 공포감을 그리고 있다. 임철우의 '봄날' , '직선과 독가스' , 윤정모의 '밤길' , 몬순태의 '일어서는 땅' ,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 ,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 홍희담의 '깃발' 등의 작품은 그러한 유에 속하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특히, 홍희담의 '깃발' 은 노동자의 시각에서 광주 항쟁을 바라봄으로써 그 동안 지식인의 시각에 한정된 광주 항쟁의 역사적 의미에 진보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이러한 광주에 대한 의식과 더불어 수많은 노동자의 출현으로 빚어진 진보적인 흐름들이다. 시대적 피해자라는 인식으로부터 생성된 노동자의 주체적인 자각은 80년대 소설 문학의 가장 커다란 성과이면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드러난다. 이는 70년대의 조세희나 황석영이 보여 주었던 지식인 시각의 진보 의식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일남의 '파도' , 정도상의 '새벽 기차' , 유순하의 '생성' , 방현석의 '새벽 출정' 등인데, 이러한 작품들의 기본 골격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과 자본가의 탄압에 대한 노동자의 집단적인 행동, 그로부터의 승리 또는 낙관적인 전망의 제시라는 틀을 지니고 있다.

네 번째로는 분단 문학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몇 가지로 그 성격이 분리되는데, 그 하나는 전세대에서 벌어졌던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오늘날의 우리의 삶과는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묻는 작품들로, 윤정모의 '님' , 이창동의 '소지' 가 그 대표적 작품이고, 두 번째는 이데올로기 자체의 허구성과 이로 인한 비극을 다룬 작품으로 이문열의 '영웅 시대' 가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로는 해방 직후의 삶을 통해 우리 삶의 비극의 원천을 형상화한 것으로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 와 조정래의 '태백 산맥' 이 있다. 이 밖에도 분단의 실상과 이의 타개 노력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 이상문의 '황색인' 등이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이웃들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과 이로 인한 삶의 파괴를 그린 작품으로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 박영한의 '왕릉 일가' , '우묵배미의 사랑' 등이 있으며, 사회 역사적 환경을 배경으로 성장 소설의 한 패턴을 마련하고 있는 김용성의 '도둑 일기' , 인물의 심리 분석을 통하여 개인적 사회적 갈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김향숙의 '겨울의 빛' , 소외된 삶을 다루고 있는 윤후명의 '원숭이는 없다' , 역사와 현실에서 파생하는 문제를 유려한 문체로 드러낸 최일남의 '그때 말이 있었네' , 한여인의 회상을 통해 잔잔한 감동의 세계를 그린 김채원의 '겨울의 환' 등의 작품들도 80년대를 빛내고 있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