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집에서 - 문장(文章)의 가치
by 송화은율파한집에서 - 문장(文章)의 가치
세상사 중에 빈부(貧富)나 귀천(貴賤)으로 그 높고 낮음을 정할 수 없는 것은 오직 문장(文章)뿐이다. 대개 완성된 문장은 해와 달이 하늘에 빛나고 운연(雲煙)이 허공에서 집산(集散)하는 것 같아서, 눈이 있는 사람이면 보지 않을 수 없고 가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갈포(葛布)를 입은 비천한 선비로도 넉넉히 무지개처럼 찬란한 빛을 드리울 수 있으며, 조맹(趙孟)의 귀함이야 그 세도가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집안을 넉넉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있으랴만 문장에 있어서는 칭찬할 수가 없다. 이렇기 때문에 문장은 일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부(富)로써도 그 가치를 감소시킬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양 영숙(區陽永叔=구양수)은, 후세에 정말 공정하지 못하다면 지금까지도 성현(聖賢)이 없었을 것이다."고 하였다.(卷下 22)
복양 오세재는 재사이나 여러 번 과거에 들지 못했다. 홀연 눈에 병이 나 앓으며 시를 지으니,
늙어 병까지 생겨
한평생 가난한 선비로다
현화는 어른거리고
자석도 광채를 잃어 가네.
등잔 앞에서 책 보기 겁나고
눈 위에 햇빛 보기 부끄러워,
금방이 파하기를 기다려
눈을 감고 앉아 세상을 잊네
老與病相隨 노여병상수
窮年一布衣 궁년일포의
玄華多掩暎 현화다엄영
紫石少光輝 자석소광휘
怯照燈前字 겁조등전자
羞看雪後暉 수간설후휘
待看金枋罷 대간금방파
閉目坐忘機 폐목좌망기
라고 하였다. 세 번 장가를 들었으나 매양 버리고 가니, 아들과 송곳 찌를 땅조차 없어 단사표음(簞食瓢飮)도 계속하지 못하다가,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급제하여 객지인 동도에서 떠돌다가 죽었다. 그렇지만 문장에 이르러서는 곤궁하다고 해서 그것을 버릴 수 있겠는가.
- 빈부 귀천으로 가릴 수 없는 문장의 가치
대개 문장(文章)은 천성(天性)에서 얻어지는 것이나 작록(爵祿)은 사람이 소유하는 것이므로, 도리로 구한다면 쉽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아름다운 것만을 독점하게 할 수는 없었으므로, 뿔이 잇는 것에게는 이(齒)를 버리게 하고, 날개가 있으면 두 다리만 있게 했으며, 이름 있는 꽃에는 열매가 없고, 채색 구름은 흩어지기 쉽게 되었으니, 사람에게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재예(才藝)를 주면 빛나는 공명(功名)은 주지 않게 되는 이치가 이렇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맹자(孟子)·순자(筍子)·양자(陽子)로부터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이백(李百)·두보(杜甫)에 이르는 분들은 비록 문장이나 덕예(德譽)로서는 넉넉히 천고에 치솟을 수 있을지라도 지위는 경상(卿相)에 오르지 못했으니, 장원(壯元)으로 높히 뽑히고 재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실로 고인이 말하는 양주가학(楊州駕鶴)이라 하겠으니 어찌 흔한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卷下 23)
- 훌륭한 문장가 중에 지위가 높은 이가 없는 이유
요점 정리
작자 : 이인로
형식 : 수필, 평론
성격 : 비평적, 예찬적, 논리적
주제 : 귀천이나 빈부로써 평가할 수 없는 명문장의 가치
출전 : 파한집(破閑集)
의의 : 문장은 일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신분의 빈부 귀천으로 이를 좌우할 수 없다(卷下 22)는 것과 뛰어난 문장가가 공명(功名)을 함께 얻기가 무척 힘들다(卷下 23)는 말로 문장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 말한 것으로 이인로가 지은 <파한집(破閑集)>의 권하(卷下)의 22, 23번째 글로 문장(文章)의 가치를 논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내용 연구
운연(雲煙) : 구름과 안개.
갈포(葛布) : 칡의 섬유로 짠 베. '갈포를 입은 선비', 벼슬하기 전의 선비를 가리킴.
조맹(趙孟) : 중국 춘추 시대 진(晋)의 귀족. 중국 역대 명필의 하나.
구양 영숙(區陽永叔) : 구양수(歐陽修)의 이름.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문명(文名)이 높았고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작록(爵祿) ; 관직과 작위, 녹봉(綠峰).
순자(筍子) : 성악설을 주장한 중국 전국 시대 사상가.
양자(揚子) : 중국 전한(前漢)의 유학자. 문인.
한유(韓愈) : 중국 당나라의 문장가.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
유종원(柳宗元) : 중국 당나라의 문장가. 고문(古文)의 대가.
덕예(德譽) : 덕과 명예.
경상(卿相) : ① 재상(宰相) ② 3정승과 6판서.
장원(壯元) : 서당에서 글을 제일 잘 짓거나 성적이 첫째임. 또는, 그 사람.
양주가학(楊州駕鶴) : 많은 즐거움을 함께 받고 싶어하는 것을 비유한 말.
세상사 중에∼문장(文章)뿐이다.
부유함과 가난함,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문장도 그 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개인의 신분은 훌륭한 문학과는 전혀 별개의 문체이다. 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
"후세에 정말 ∼ 없었을 것이다."
후세인들이 옛 성현의 덕을 공평하게 평가하여 추앙하듯, 시인의 훌륭한 작품도 그의 외적 여건에 구애받음이 없이 공평하게 평가된다면 그 가치가 깊이 전해질 것이다.
장원(壯元)으로 ∼ 있겠는가.
훌륭한 문장가이면서 동시에 높은 벼슬에 오르는 일은 흔하지 않다. 뛰어난 재예(才藝)와 공명(功名)을 함께 갖추기 어렵다는 사실의 강조로 볼 수 있다.
이해와 감상
시화(詩話)는 체계적인 비평은 아니나 시 창작에 얽힌 일화나 짤막한 감상평 등을 통해 문학에 대한 그 나름의 견해를 드러낸 것이다. 본문에 쓰인 '문장(文章)'은 오늘날 '문학(文學)'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 글은 원래 제목이 없었으나 주요 내용이 문학의 가치에 대한 것이므로 대부분의 역자들이 '문학의 가치'라고 달고 있다.
이 글에 제기된 문학은 문학외적인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문학 그 자체에 일정한 가치가 있는 만큼 그것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날에도 거듭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입증시키기 위해 이인로는 오세재의 불우한 일생과 그의 시를 함께 제시하면서, 인생은 불우했으나 시는 뛰어나다고 하여,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반대로 보면 같은 죽림(竹林)고회(高會)의 일원인 오세재를 높이면서 그 근거로 문학 자체의 독자적 근거를 내세워 그들의 문학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문학이란 부나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그 나름대로 지고한 가치를 생산·보유하고 있다는 이인로의 문학관을 잘 보여 주는 글이다.
심화 자료
이인로의 문학관
이인로는 무신란으로 권력을 잃은 문벌 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자기의 포부를 펼칠 수 있는 현실적 참여가 상당히 제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문학 자체에 독자적 가치를 두는 입장을 세웠다. 아울러 시 비평의 기준으로는 의미와 표현 양쪽 모두를 중시했으나 대체로 표현, 즉 시어의 갈고 닦음에 보다 더 비중을 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화(詩話)의 등장 배경
'파한집'은 우리 문학사에서 비평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보여 주는 첫 사례다. 문학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창작해야 하는가, 어떤 작품이 좋은가 하는 등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비평이 본격적으로 대두했다는 것은 그 시기에 우리 문학이 상당히 발전했음을 뜻한다. 즉 문학을 하는 것에 대한 반성과 방향 모색이 요구될 정도로 문학의 판도가 커진 것이다. 아울러 문학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작가 개개인의 차원이 아닌 집단의 차원에서 생겼는데, 이는 서로의 견해를 옹호하고 강화해야 할 사회적 필요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파한집(破閑集)
고려 중기의 문신인 이인로의 시화·잡록집. 3권 1책. 목판본. 저자가 69세로 사망하기 직전에 지은 것으로 그의 사후 40년 뒤 인 1260년 3월에 아들 세황(世黃)이 수집하여 간행하였다. <파한집>의 '파한(破閑)'이란 글자 그대로 한가함을 깨뜨린다는 뜻이나 단순함 심심 파적의 저술이 아니라 우리 나라 고전 시학의 귀중한 연구 자료이다. 그는 파한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을 세상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산림에 은둔하며 온전한 한가로움을 얻음은 장기·바둑 두는 일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용을 검토하고 나면 그가 말한 한(閑)의 실체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내용은 주로 시화·일화·기사 등으로 볼 수 있다. <파한집>은 우리 나라 시화집의 효시라고 볼수 있다. 이인로는 이 책에서 우리 나라 명유(名儒)들의 시 작품들이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한 채 인멸 되어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사명감에서, 또 시를 삶의 정수로써 사랑하고 음미하면서 많은 시화를 수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다른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편들이 상당수 실려 있고 시학의 근본 문제에서 작시법(作詩法) 혹은 구체적인 작품평에 이르기까지 두루 제시되어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비평문학서로서도 가치가 있으며, 고려시대의 각판(刻板) 잔존본(殘存本)으로 소중한 것이다. 후일 최자(崔滋)는 이 책을 본떠서 《보한집(補閑集)》을 썼다. 1911년에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중간하였고, 64년에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파한집의 역주본(譯註本)을 발행하였다.
이인로(李仁老/1152~1220)
고려시대의 학자. 자 미수(眉). 호 쌍명재(雙明齋). 초명 득옥(得玉).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난을 피한 후 다시 환속하였다. l180년(명종 10) 문과에 급제, 직사관(直史館)으로 있으면서 당대의 석학(碩學) 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 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 등과 결의, 함께 어울려 시주(詩酒)를 즐겼다. 이들을 강좌7현(江左七賢)이라고 한다. 신종 때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고종 초에 비서감(秘書監)·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었다. 시문(詩文)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능해 초서(草書)·예서(隸書)가 특출하였다. 저서에 《은대집(銀臺集)》 《후집(後集)》 《쌍명재집(雙明齋集)》 《파한집(破閑集)》 등이 있다.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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