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파초(芭蕉)- 김동명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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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芭蕉)- 김동명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鄕愁),

너의 넋은 수녀(修女)보다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情熱)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들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후략>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김동명의 제2시집 <파초>의 표제가 된 서정시로 감정 이입과 의인화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조국을 잃은 사람으로서 맛보는 서글픔을 같은 처지에 있는 파초에 의탁하여 쓴 작품이라 할 것이다. , 고향인 남국(南國)을 떠난 파초의 처지와 조국(祖國)을 잃고 비애의 삶을 영위(營爲)하는 시인의 처지는 자연스레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바탕이 될 터이다.

1,2연에서는 같은 처지의 파초의 발견과 동병상련의 정이, 3연부터 마지막 연까지는 파초를 자신의 분신처럼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성격 : 상징적, 우의적, 의지적, 전원적

심상 : 시각적 심상

표현 : 감정 이입, 의인화

구성 : 파초의 가련한 꿈(1)

파초의 외로운 넋(2)

화자의 파초에 대한 정성(3)

서로 의지하고 함께 지내도록 함(4)

파초의 잎사귀로 냉혹한 현실을 가리고 싶음(5)

제재 : 파초

주제 : 잃어버린 조국에의 향수

 

 

<연구 문제>

1. 이 시의 화자와 파초와의 관계를 4자의 한자 성어로 쓰라.

동병상련(同病相憐)

<해설> 동병상련 :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위해 줌.

 

2. 의 상징 의미를 20자 이내로 쓰라.

영혼의 메마름을 채워 주는 정신적 생명수

 

3. 각각의 원관념을 쓰라.

☞ ㉡ 뿌리 위, 파초의 넓은 잎

 

4. 이 시에서 시대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시어를 있는 대로 찾아 쓰라.

, 겨울

 

 

< 감상의 길잡이 1 >

남국을 떠나온 파초와 식민지 현실에 발붙이기 어려운 시인과의 눈물겨운 유대가 이 시의 전체적 골격을 이룬다. 그러나 그것을 식민지 현실에서 안주(安住)할 터전을 잃어버린 민중들에 대한 연대감과 포옹으로 해석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다.

 

󰡔파초󰡕는 이 시에서 작자와 별개의 존재라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정신적 피사체(被寫體)이다. 작자는 자기의 감정적 상태 혹은 활동을 지각의 대상인 파초에 투사(投射)하는, 이른바 감정 이입의 수법을 통하여 시적 대상을 자기와 동일화시키고 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인 셈이다.

 

시적 대상인 파초가 여성화된 점은 일단 수긍이 간다. 그래야 수녀’, ‘정열의 여인’, ‘치맛자락이라는 표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나 우리의 겨울은 앞의 전개로 보아 상황 이미지로 이해함이 옳을 터이다. 그런데 그 겨울을 치맛자락으로가리우자고 한다. 현실의 혹독함을 어떻게든 막아 보자는 뜻이겠으나, 그 엄청난 현실 앞에 치맛자락 하나로 대응하는 자세가 힘차고 강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대상을 여성화한 필연적 결과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시는 亡國의 설움을 달래는 詩情이 파초라는 한 열대 식물에 대한 열애로 승화된 것을 본다. 원산지인 남쪽을 떠나온 파초와 나라 잃은 시인과의 아름다운 유대가 시의 전체적 골격이다.…』이 글은 金東鳴 시인의 파초(芭蕉)를 풀이한 某氏의 말이다.

 

대학수험생을 염두에 두고 쓴 것같은 이러한 글을 읽으면 우선 누구안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시를 읽는 일종의 불안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쉬운 시라고 해도 그 허슨한 문맥과 사전적 의미에서 일탈된 시어들은 확실히 밤길을 걷는 것같이 발을 헛디디게 할 때가 많다.

 

그러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읽기에 필요한 것은 차근차근 시를 맛보아가는 과정보다는 빨리 결론을 내려주는 모범답안인 것이다. 파초는 망국의 설움이다.이렇게 口號로 고쳐주면 불투명했던 의미들이 단순명료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시의 텍스트를 아예 덮어버리고 지은이의 약력을 덧붙이면 된다. 과연 某氏의 그 글에서도 金東鳴 시인이 이 시를 썼던 곳이 함경남도 서호진(西湖津)妻家라는 것과 그 우거(遇居)에서 일제의 탄압을 피하고 있을 때였다는 전기적 사실을 빼놓지 않고 있다.

 

만약에 그 妻家 마당에 파초가 몇 그루 심어져 있었는 지를 밝혀 줄만한 자료가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 비평과 독해를 이념적인 구호로 대치해 왔기 때문에 金東鳴 시인의 파초(芭蕉)에서 보듯 시의 한 부분만이 강조되고 그 주제와 관련이 없는 듯이 보이는 부분들은 노이즈(雜音)로 제거되어 왔던 것이다. 말하자면 파초의 경우에 있어서 풀이의 초점이 되어온 부분은 맨 첫행의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와 맨 마지막 행의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이다. 조국을 떠나온 파초는 바로 조국을 상실한 시인과 처지가 같다.

 

그리고 우리의 겨울은 일제 식민지의 가혹한 상황을 나타내는 정형구다. 그래서 머리맡가련金東鳴파초(芭蕉)는 울밑의 처량한 홍난파의 울밑에 선 봉선화와 일란성 쌍둥이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 파초(芭蕉)를 문자 그대로 거두절미(去頭截尾)해서 읽지 않고 텍스트를 총체적으로 읽으면 어떻게 되는가.

무엇보다도 이제 밤이 차다이제는 무엇인가. 앞으로 겨울을 예고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때까지의 일제 식민지 상황은 봄이며 여름처럼 따뜻했다는 것인가. 파초가 일제 식민지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한 가지 의미로만 읽으려고 할 때 우리는 시의 많은 부분을 제거하거나 눈감아 버려야만 된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다.이 시에서 파초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려고 한 것인가라는 질문을이 시에서는 파초(사물)와 나(시인)의 관계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라고만 돌려도 시는 총체적으로 읽혀질 수밖에 없으며 그 재미와 자극도 커진다.

나와 그 대상(파초)의 관계를 두고 조국을 언제 떠났노 /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의 첫연과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의 끝연을 읽어보면 금세 이상한 느낌이 들게 된다.

 

첫연은 너가 아니라 파초라고 되어 있는데 끝연에 와서는 그것이 라고 2인칭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말 할 것없이 같은 대상을 놓고 그 호칭이 달라진다는 것은 나와 파초와의 관계가 말하자면 그 거리가 달라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좀더 자세히 읽어보면 김동명의 파초는 대상을 부르는 형식적인 호칭의 변화만이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먼데서 가까운 것으로 점차 접근해 오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연의 파초는 파초와의 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장소와 남국만큼 떨어져 있다. 파초의 이미지는 나와 무관한 위치에 독립해 있다. 의인화는 되어 있지만 파초는 어디까지나 파초로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둘째연에 오면 파초는 한결 와 가까워져서 파초라는 객관적인 호칭은 라는 2인칭으로 불려지면서 하나의 여성으로 의인화된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수녀 보다도 더욱 외롭구나로 여전히 자기와는 단절되어 있는 접근 불능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3연에 오면 비로소 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내 쪽에서 능동적으로 파초에 다가간다.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렬의 여인 / 나는 샘물을 길어 네발등에 붓는다로 파초의 관찰자로서의 화자가 하나의 행위자로 바뀌면서 나와 너의 그 관계가 시작된다.

 

동시에 파초의 이미지도 변화한다. 속세와 단절된 고절(孤節)의 수녀에서 정열의 여인으로 변한다. 그래서 나와 파초의 관계를 나타내는 거리 공간은 신체적인 공간으로 좁혀져서 네 발등으로까지 다가간다. 그리고 그런 접근을 가능케 하는 것이 여름 소낙비로 상징되는 여름의 계절이다.

 

4연에 오면 이제 밤이차다 /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로서 계절은 가을 밤(서리)의 계절로 옮겨지고 나와 너의 거리는 더욱 더 가까워진다. 그래서 바깥 공간은 보다 은밀한 실내 공간으로 옮겨지고 3연의 네 발등내 머리맡으로 교체된다. 파초와 나의 관계는 밖에서 안으로 아래(발등)에서 위(이마)로 이동하면서 내면화하여 정신적인 일체감을 이룬다.

 

5연에서는 나와 너의 관계는 독립적인 존재로부터 주인과 종처럼 완전히 종속관계로 합쳐진다. 물론 이때의 종이라는 것은 계층적 용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끼리 흔히 쓰는 당신의 노예와 같은 일체화를 나타내는 애칭이다. 그냥 겨울이 아니라 우리의 겨울이라고 한 것은 완전히 -의 관계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파초의 텍스트 전체를 정밀하게 읽으면 그 호칭이 파초에서 , 가 다시 우리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이방의 먼 땅에 있었던 대상이 그 거리가 축소되어 실내의 머리맡까지 이르고, 너의 발등 나의 머리맡은 하나의 치마로 가려진 따뜻한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진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변화시키는 공간의 의미는 계절의 의미와 밀착되어 있다는 것도 놓쳐서는 안된다. 직접적인 것은 없으나 향수, 외로움등 봄철의 애상이 암시되어 있고 3,4연에는 직접적으로 여름과 가을이 겉으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끝연에는 첫연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올 겨울이 암시되어 있다. 이를테면 봄에서 겨울로 계절이 변할수록 나와 파초의 거리는 좁혀지고 종국에는 겨울 추위에 의해서 나-너의 관계는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로 마무리된다.

 

서정시란 무엇인가. 너 속의 나, 나 속의 너를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 속에서 서정시의 세계가 열린다.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 사랑의 시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동명의 파초는 여 인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의 겨울을 치맛자락으로 가리운다는 상상 속에는 강렬한 에로티시즘까지 내포되어 있다. 이 이상의 연시(戀詩)가 어디 있겠는가.

 

시에서 안정을 추구하려는 세력은 파초가 정치시인가 연시(戀詩)인가 모범답안을 빨리 써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에서 일상의 논리와 길들여진 언어가 해체되는 그 거북스럽고 불안한 떫은 맛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단지 먼 남국의 파초가 밀실의 머리맡으로 다가오는 그 경이로운 시의 축지법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3 >

이 시는 원산지를 떠나와 이국(異國) 땅에서 자라나는 파초를 통해 망국(亡國)의 한을 노래한 작품이다. 파초는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나는 관상용 다년생 식물로 이 시에서는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물로 쓰이고 있다. 시인은 따스한 남국을 떠나와 추운 이 곳에서 가련하게 살아가는 파초의 운명을, 자유를 잃고 조국을 떠나 살면서 항상 조국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처지와 동일하게 제시하고 있다.

 

먼저 1연에서는 조국을 떠난 파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따스한 남국을 떠나와 살아야 하는 파초의 가련한처지에서 화자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파초와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2연에서는 이국 땅에서 남국을 향해 향수를 불태우는 파초를 라고 의인화시켜 그의 외로움을 표출하고 있으며, 3연에서는 파초의 모습을 소나기를 그리는 정열의 여인에 비유하고 있다. 화자는 그런 파초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샘물을 길어 그의 발등에 붓는다. 그리고 4연에서는 밤이 깊어 날씨가 차가워질 것을 걱정한 화자가 파초를 자신의 방에 들여놓겠다고 한다. 마지막 5연에서는 화자가 즐거이 파초의 이 되어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겠다고 다짐한다. 이것은 파초와 화자의 처지가 동일하다는 일체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편, 4연의 5연의 겨울은 모두 화자와 파초가 겪는 시련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련을 함께 나누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일체감이 된 그들은 결국 의 개별적 존재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 운명체임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치맛자락으로 서로를 가리워주고, 암담한 현실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다시 말해, 파초에게서 느꼈던 동정심이 상호 교감(相互交感)의 과정을 거쳐 애정으로 심화됨으로써 그들은 마침내 일체화된 것이다. 여기서 치맛자락이란 파초의 넓은 잎사귀를 뜻할 뿐 아니라, 성숙한 여인의 애정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제의 모진 탄압을 상징하는 우리의 겨울을 막아 주는 보호막이자 도피처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조국 광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나 방법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 감상의 길잡이 4 >

파초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감정이입(感情移入)과 의인화에 의존하고 있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 /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라고 할 때 `조국'이나 `가련함'은 사실 파초의 것이 아니라 시인의 생각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슬픈 사람의 눈에는 보름달이 쓸쓸한 얼굴로 비치듯이 시인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생각들이 파초를 그처럼 여기게 하는 것이다.

 

파초는 그 조국(, 원산지)인 남국을 떠나 먼 나라에 와 있기에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간절하다. 그 쓸쓸한 모습은 경건하게 기도하는 수녀처럼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3연에 와서 파초의 모습은 소낙비를 그리워하는 정열의 여인에 은유된다. 그 간절한 심정을 아는 `'는 샘물이나마 길어 부어 주며 그를 위로하고자 한다. 이처럼 그가 파초를 간곡하게 보살피는 것은 그 외로움과 목마름이 바로 자신의 것과 같다고 여긴 때문이다.

 

그러면 `'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한 느낌, 생각을 파초에 투영하고 있는 것일까? 4, 5연이 해석의 실마리를 내어 준다. 4연에는 `이제 밤이 차다'는 구절이, 5연에는 `우리의 겨울'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 `겨울'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말 그대로의 추운 시간이겠지만, `'의 경우에는 어떤 암시적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시인 자신이 겪어야 했던 어두운 시대, 더 구체적으로는 일제 지배하의 시련기를 연상케 한다.

 

그렇게 볼 때 이 작품의 핵심인 파초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 자신의 괴로움과 소망이 담긴 시적 형상임이 분명해진다. 이 작품의 묘미와 호소력은 그것을 여성으로 의인화하여 `수녀, 정열의 여인, 그리운 치맛자락' 등으로 노래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있다. 특히, 파초의 잎사귀를 치맛자락으로 표현하여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라고 말하는 마지막 구절은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그것을 한 순간 시적으로 관조해 보려 하는 태도를 느끼게 한다. [해설: 김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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